2024/10 116

갈라디아서 5 : 1~12

갈라디아서 5 : 1~12https://www.youtube.com/watch?v=rco1vI3Gr4c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란 어떤 자유인가요?예수 그리스도라는 참 자유를 우리에게 주셨다.참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 오직 예수.하지만, 그 자유는 "방종"이 아니다.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라고 권면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나의 행위는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 암은 것이다.내 의지로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실천적인 믿음,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 된다.그 자유를 가지고 이웃으로 사랑을 돌보고 섬겨야 한다.‘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도록 내가 시도할 것은 무엇인가요?거룩함. 거룩함은 구별된다는 것이다. 세상과 구별되어야한다. 오직 예수 붙들고 나아가면 세상이 서..

갈라디아서 4 : 21~31

바울이 아브라함의 두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을 비교한 이유는 무엇인가요?율법을 의지하는 삶은 결국 종살이가 된다.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을 통해 믿음으로 태어난 자녀이스마엘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낳은 자녀임인간적인 방법으로 취한 것은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끝까지 신뢰할 하나님 약속은 무엇인가요?하나님의 사랑, 영생,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 구원, 인도하심, 지혜를 주심, 힘과 위로, 선하심, 인자하심.나는 죄인입니다.내 힘으로 영생을 얻는다 한들 예수님이 없다면 나는 아마 가장 이기적인 방식으로 살 것 같습니다.두뇌를 훈련하고 능력을 키우고 남들보다 우월하고자 세월을 낭비할 것입니다.예수님이 없다면 모든 갈망 채우지 못하고 영생을 저주하..

갈라디아서 4 : 12~20

거짓 교사들이 오기 전까지 바울과 갈라디아 성도들의 관계는 어떠했나요?눈이라도 빼서 줄 정도로 바울을 환대함하지만 거짓교사들이 바울과 성도를 이간하여 거짓교사들을 섬기고 추앙하게 이간질함 결국 바울과 성도들의 사이가 요원해짐사역자를 존중하고 환대하는 일은 내 신앙에 어떤 유익을 주나요?하나님의 종들인 사역자를 존중하고 환대할 수록 나는 더욱 예수님의 의로우심을 느낄 수 있다.그들은 하나님의 말을 지키면서 살아낼 것이고 공의와 사랑의 길을 가게하며 가르쳐주고 영적 성장을 도와주실 것이다.세상은 분리를 원하고 서로 떨어지기를 원하고 연합하기를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마귀의 속성이기 때문이다.맨날 통합 연합 어쩌구 하지만 결코 통합하고 연합 될 수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만이 진정한 통합을 이루실 수..

갈라디아서 4 : 1~11

종과 아들 4:1~7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신분은 어떻게 변화되었나요?아버지의 모든 재산은 아들이 상속합니다그러나 아들이 어릴 때는 후견인이나 청지기의 관리를 받습니다바울은 이를 통해 하나님 백성과 율법의 관계를 연결시킵니다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우리는 ‘이 세상의 초등 학문’ 곧 율법 아래에 있었습니다(3절; 3:25)때가 되자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율법 아래에 있던 우리를 속량하셨습니다(4~5절)또한 아들의 영 곧 성령을 우리 마음에 보내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6절)우리는 종이 아닌 아들의 신분으로 참자유와 권세를 누립니다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우리에게 아낌없이 내어 주신 하나님은,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분입니다(7절; 롬 8..

갈라디아서 3 : 19~29

율법의 기능 3:19~25바울은 율법의 기능에 대해 어떻게 설명했나요?율법으로 난 의를 폄하하는 듯한 바울의 논증에 “그렇다면 율법은 폐기되어야 하는가?”라고 반문.이에 바울은 율법의 바른 이해를 제시.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 더해진 것(19절; 롬 3:20).율법 자체는 하나님 약속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거룩하고 선하다.(21절; 롬 7:12).그러나 사람은 율법을 다 지킬 수 없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오기 전까지 사람들은 율법의 저주 아래 갇히게 되었다.(23절; 3:13).율법 아래에 갇힌 사람들은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자신들을 율법의 저주로부터 풀어 주실 예수님을 기다리게 되었다.그런 의미에서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 교사’(개인 교사)와도 같다.바른 ..

갈라디아서 3 : 10~18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심 3:10~14사람이 의롭게 되는 데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게 되는 길이고(12절; 레 18:5), 다른 하나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길입니다(11절). 첫 번째 길은 율법에 기록된 모든 것을 항상 완벽하게 행할 수 없기에 사실상 불가능합니다(10~11절). 바울은 이를 ‘율법의 저주’라고 합니다(13절; 신 27:26).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 대신 율법의 저주를 받으시고 우리를 속량해 주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십자가 대속의 공로에 힘입어 의롭다 여김을 받고,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하박국 선지자의 예언을 성취하게 됩니다(합 2:4). 행위에 의지하면 여전히 율법의 저주 아래에 있지만, 믿..

갈라디아서 3 : 1~9

책망받는 성도들 3:1~5성도에게 인생길은 믿음의 경주입니다. 바울은 ‘어리석다’는 말을 두 번 반복하며 갈라디아 성도들을 책망합니다(1, 3절).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성령을 받아 하나님 자녀가 되었건만, 그들이 거짓 교사들에게 현혹되어 율법의 행위를 통한 의를 추구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여정은 율법을 지키는 행위나 육체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에 대해서는 죽고 자신 안에 계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갈라디아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밝히 알고도 율법에 의지하는 삶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믿음을 떠나 율법으로 돌아가는 것은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는 어리석은 행위입니다.바울이 갈라디아 성도들을 향해 어리석다고 책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믿음으로 자..

갈라디아서 2 : 11~21

베드로의 외식을 책망함 2:11~14복음의 진리는 결코 타협하면 안 됩니다. 베드로는 야고보에게서 몇몇 사람이 오자 이방인과 식사하던 자리를 떠났습니다. 야고보에게서 온 이들은 유대의 정결법을 지키기 위해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일을 금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베드로는 과거 고넬료 사건을 통해 예수님 안에서 이방인과 유대인이 차별 없이 한 가족이 됨을 경험했습니다(행 10장). 그럼에도 그는 할례자들을 두려워해 외식했고, 그 결과 바나바까지 외식(위선)에 빠지게 했습니다. 베드로와 바나바가 유대인들 앞에서 복음의 진리대로 행하지 않자, 바울은 베드로를 강하게 책망했습니다. 복음대로 살기 위해서는 복음이 아닌 것과 타협하지 않을 용기가 필요합니다.안디옥에 이른 베드로를 바울이 강하게 책망한 이유는 무엇인가..

갈라디아서 2:1-10

거짓 교사들이 헬라인 디도에게 강요한 것은 무엇인가요?할례가 구원에서 필수라고 말함.내가 복음 안에서 얻게 된 자유는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복음 안에서 얻은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 얻게 되는 영적인 자유로,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벗어난 상태이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특권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죽음이 끝이 아님을 알고 영원한 생명을 소망하며,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경험하게 된다. 복음의 자유는 율법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는데, 예수님이 율법의 요구를 완성하셨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자녀로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 복음은..

갈라디아서 1:11-24

바울이 전한 복음은 언제, 어디서, 누구로부터 온 것인가요?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해 받은 것하나님 말씀을 더 깊이 알기 위해 나는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나요?말씀을 더 깊이 알기 위해서 그 성경의 뜻이 무엇인지 파고들려고하고 최대한 정확히 그 뜻을 알고자 한다.암송하다가도 전부 또 잊어버리고 다시 이내 암송하게 되는 데 참 어려운 것 같다.사실 내 노력은 그닥 중요하지 않고 오직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맡기고 편한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탐독하고 성령께서 주어진 바만 따르고 관철하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편하게 성령께서 감화 감동 하는 수준만 해내면 된다.성령께서 딱히 아무 감동도 안주신다면 그냥 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억지로 말씀을 읽고 외워봤자 그렇게 도움이 안되고 머리에 안남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