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심 3:10~14
사람이 의롭게 되는 데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게 되는 길이고(12절; 레 18:5), 다른 하나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길입니다(11절). 첫 번째 길은 율법에 기록된 모든 것을 항상 완벽하게 행할 수 없기에 사실상 불가능합니다(10~11절). 바울은 이를 ‘율법의 저주’라고 합니다(13절; 신 27:26).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 대신 율법의 저주를 받으시고 우리를 속량해 주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십자가 대속의 공로에 힘입어 의롭다 여김을 받고,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하박국 선지자의 예언을 성취하게 됩니다(합 2:4). 행위에 의지하면 여전히 율법의 저주 아래에 있지만,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의롭다는 인정을 받습니다.
사람이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되는 유일한 길은 무엇인가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내가 받을 율법의 저주를 대신 받으신 예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할까요? 예수님, 오늘도 내가 받을 율법의 저주를 대신 받아주셔서 너무나도 예수님의 깊은 사랑과 은혜가 느껴집니다. 이 은혜에 어떻게 응답해야할지 고민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 귀한 마음 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 말씀에 감사와 순종하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반드시 나를 세상의 기준과는 다르게 남을 사랑하고 섬기라고 하실 것입니다. 이타적으로 남에게 헌신하고 남에게 나누어주는 삶. 살아내라고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을 항상 기억하며 매일 감사의 마음으로 기도하고 찬양합니다. 나의 믿음을 어제보다 더 깊게 하여주시고 주님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강화시켜주시옵소서.
"마 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실천할 수 있는 자가 되게 하시고 믿음 없이 입으로만 행위로만 기도만하고 찬송만하고 외식하는 바리새인만도 못하고 율법주의자보다 의롭지 못한 내가 되지 않게 하소서. 전심으로 믿음으로 내 모든 것을 바쳐서 기도하고 찬양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내 행위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하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여 믿음이 전부라고 자만하고 교만하여 또, 행하지 않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게 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내도록 결단하고 각오하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요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예수 제자됨의 증거는 서로 사랑하는 것뿐이다. 여기서 '사랑'이 ajgavph(아가페)로 사용되어 하나님 안에서의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 것을 말한다.
가족, 이웃,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긍휼로 대하며 섬기는 것이 예수님을 섬기는 길임을 오늘도 알게 하소서. 숨 쉬고 눈 깜빡일때마다 말씀을 생각하고, 기도하며 주님의 주신 은혜를 생각하길 바랍니다. 날마다 날마다 쉼없이 예수님과 소통하고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기를 원합니다. 서로 격려하고 허물은 덮어주고 세워주고 위로해주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경청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겸손한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거룩한 산 제물로 나를 하나님께 바치기를 바랍니다. 내 몸에 음행 탐욕 거짓이 육체의 일이 드러나거든 속히 나를 치소서. 성령이여 나를 찔러주시고 자복하게 하시며 회개시켜주십시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내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며, 내 시간, 재능, 물질, 모든 것을 주님의 사역과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 예수님을 섬기는 길임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을 깊이 묵상하게 하시고, 내 죄를 늬우치게 하시며, 나의 연약함과 죄를 깨닫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날마다 회개하고, 변화된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께서 주신 은혜와 사랑을 간직하고, 예수님을 섬기는 삶을 계속 걸어가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언약을 성취하심 3:15~18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분의 언약을 반드시 성취하십니다. 이를 논증하기 위해 바울은 사람의 언약을 들어 설명합니다. 언약에 해당하는 헬라어(디아쎄케)는 ‘언약’이란 뜻 외에 ‘유언’이란 뜻도 있습니다. 이에 착안해 바울은 사람의 유언도 한 번 정해진 후에는 함부로 변경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15절).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언약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기 전에 미리 정해진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율법은 언약을 폐기할 수 없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헛되게 할 수 없습니다(17절).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사람은 하나님이 약속대로 아브라함에게 주신 유업(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을 선물로 받습니다.
바울이 사람의 언약을 들어 하나님의 언약을 설명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분의 언약을 반드시 성취하신다. 언약은 사람의 유언으로 표현되는데 유언은 한번 정해진 후에는 변경할 수 없다. 이처럼 하나님의 언약도 반드시 지켜져야한다. 율법은 언약을 폐기할 수 없고 믿음으로 의롭다 한 것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것을 하나님의 약속으로 받는다. 그것을 성경 말씀으로 기록하시고 신실하신 아버지께서는 반드시 약속을 지키실 것이다.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기에 내가 실망하지 않을 일은 무엇인가요? 하나님께서 중요한 약속을 나와 하셨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며, 거짓이 없으시며, 변함 없으시며,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고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약속하셨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나를 버리지 않고 떠나지 아니하신다고 약속하신다. 아무리 어려워도 결코 나를 떠나지 않으신다. 항상 나와 동행하시고 변함없이 내 곁을 지켜주신다.
"신명기 31:6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하고
"히브리서 13:5 KRV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셔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인도하신다고 약속하셨다.
"요한복음 14:16-17 KRV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성령님께서 내 마음 속에 거하시고 나를 인도하신 다는 이 약속은 절대로 내가 실망하지 않을 확실한 근거가 된다.
하나님꼐서는 선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그 계획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
"예레미야 29:11 KRV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하나님께서는 재앙이 아니라 샬롬을 원하시고 소망을 주신다. 때로는 하나님의 계획을 내가 이해할 수 없지만, 개미가 3차원 공간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과 같이 나는 하나님의 계획을 수백차원이 넘으시는 하나님의 선묘한 진리를 내가 알수는 없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그 계획이 무조건 선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이 끝 날 때 새 하늘과 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 하셨다.
"요한계시록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내가 이 땅에서 겪는 모든 고통과 슬픔이 마지막 날에는 결국 끝나고,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새로운 새상을 맞이할 것이다. 내가 결코 실망할 일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시며 반드시 이 일들은 이루어 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변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며 약속은 언제나 성취된다. 하나님을 무조건적으로 신뢰하며 실망하지 않고 소망 가운데 살아내야한다.
효력 있는 속죄 파스타 가게에 식사하러 갔다고 생각해 보라. 주문받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알리오올리오 파스타 주세요."라고 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메뉴가 나왔 는데 카르보나라'를 가져왔다. 주문이 잘못 들어간 것이다. 다시 "저는 알리 오올리오 파스타 시켰는데요."라고 말했다고 하자. 그러자 그 아르바이트생 이 깜짝 놀라며 "정말 죄송합니다, 손님. 제가 잘못했습니다."라는 말을 계속 반복하고는 가 버린다. 그리고 서빙을 하러 지나다닐 때마다 죄송하다고 계 속 말한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라면? 아마도 손님은 대단히 화가 날 것이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계속 죄송하다고 말만 하면 다 된 것이 아니다. 그 사 과가 유효하려면 제대로 된 메뉴를 다시 가져와야 한다. 잘못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잘못을 바로잡고 보상해야 사과가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잘못에 대한 합당한 조처 가 따라야 한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죄송하다고 말할 자 격이 없는 존재다. 정작 자신의 죄에 대해 어떤 대가도 치를 수 없기 때문이 다. 그러나 누군가가 죄의 대가를 대신 치렀다면 어떤가? 누가 나를 대신해 죄의 형벌을 받았다면 어떤가? 그때부터 이야기가 달라진다. 내가 죄를 지어 서 받아야 할 저주의 형벌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셨다. 이것이 바 로 좋은 소식, 복음이다. 일상에서 만난 교리/ 서창희. 생명의말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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