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기능 3:19~25
바울은 율법의 기능에 대해 어떻게 설명했나요?
- 율법으로 난 의를 폄하하는 듯한 바울의 논증에 “그렇다면 율법은 폐기되어야 하는가?”라고 반문.
- 이에 바울은 율법의 바른 이해를 제시.
-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 더해진 것(19절; 롬 3:20).
- 율법 자체는 하나님 약속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거룩하고 선하다.(21절; 롬 7:12).
- 그러나 사람은 율법을 다 지킬 수 없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오기 전까지 사람들은 율법의 저주 아래 갇히게 되었다.(23절; 3:13).
- 율법 아래에 갇힌 사람들은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자신들을 율법의 저주로부터 풀어 주실 예수님을 기다리게 되었다.
- 그런 의미에서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 교사’(개인 교사)와도 같다.
- 바른 신앙생활은 진정한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것.
율법으로 죄를 깨달은 내가 그 죄에서 자유롭게 되는 길은 무엇인가요? 내 생각에서는 현대사회 지성체로서는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기도 참 힘들다고 생각한다. 아마 2000년 전 바울은 유대인에게 하는 말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율법으로 죄를 깨달았을 것이다. 구약이 쓰인 시대는 힘의 시대였기 때문에 살인도 빈번하고 도둑질 약탈 등등 지금 생각하면 비 도덕적인 것들이 정상이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십계명 안 지키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고도화된 지성 사회이고 이 시대에서 율법을 읽으면서 죄를 깨닫기는 매우 힘들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법과 도덕은 현대사회에서 모두 잘 지키기 때문이다. 오히려 율법보다 더 높으신 기준을 보이신 주님의 산상수훈의 말씀이 더 나를 죄인으로 인정하게 하고 더 회개하게 만드신다. 2000년 전 산상수훈 말씀은 매우 센세이셔널 했으며 지금 들어도 너무나도 충격적인 말씀 진리이신 그 말씀.
구약의 말씀
- 살인하지 말라.
- 간음하지 말라.
- 이혼 가능.
- 맹세를 꼭 지키라.
-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 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라.
예수님의 말씀
- 욕해도 심판
-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이미 간음
- (음행한 이유없이) 이혼 불가
-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
- 오른편 뺨을 치면 왼편도 올려대라
- 원수를 사랑하라.
구약에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 :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고 그 들이 어떻게 살아야할지 안내하기 위함. 도덕적, 사회적, 종교적 규칙을 포함하고 있고 유대교의 중요한 기반이 됨.
예수님께서 오신 후 율법을 폐지하거나 무효화 하려고 한 것이아니라 율법을 완성하러 오심. 율법의 참된 의미와 목적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하고 사람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강조하는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심.
마태복음 5:17-18 KRV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틴 루터는 “산상수훈은 우리가 지킬 수 없는 말씀들이고 그것은 우리가 죄인임을 알려준다.”라고 말한다.
내 생각에는 요즘 시대에서는 율법을 두고 죄인임을 기준한다면 죄인임을 자각하기 힘들다. 어 나는 십계명 다 지키거 같은데? 죄 안짓고 사는데? 저런 나쁜 짓 안하고 잘 살고 있다. 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율법을 들으면 들을 수록 더 내 의가 자라나고 교만하고 오만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말도 안되는 율법들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외식하게 되는 것이다. 구원과 아무 상관없는 행위들을 율법이 생겨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곡해하는 것이다. 돼지고기가 부정하다든지, 서로 다른 재질의 옷감을 섞어 만든 옷을 입지 말라든지, 시체를 만진 후 정결하기 위해서 송아지의 재를 사용해야한다든지, 유월절 초막절 같은 절기를 지킨다든지 하는 구원에 있어서 본질적인 요건이 아닌 것들을 외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들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미 완성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핵심은 오직 믿음과 은혜로 이루어진다는 것.
롬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KRV
롬 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KRV
그러므로 죄에서 자유롭게 되는 길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나의 죄를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시인하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인정하고,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는 것.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그러함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된 자유를 누리게 된다.
세례, 그리스도와의 연합 3:26~29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가 누리는 영적인 복은 무엇인가요?
- 예수님과 연합한 자는 그분 안에 있는 영적인 복을 누립니다.
-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이신칭의 은혜와 하나님 자녀가 되는 은혜를 누립니다(26절).
-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은 ‘그리스도와 연합한다’는 의미인데,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세례’입니다(27절; 롬 6:1~11).
-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개인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공동체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인종·신분·성별에 관계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지체가 됩니다(28절).
- 또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 아브라함의 복과 유업을 상속받습니다(29절). 믿음의 특권은 차별 없이 모두가 누립니다.
모두에게 차별 없이 주신 영적인 복을 받은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다. 영적인 복을 모두가 받고있고 다만 그것을 스스로가 자각하는 정도가 다른 것 같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믿음과 소망 사랑이 계속 부어지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은혜로 찾아오시고 말씀으로 찾아오시고 진리로 빛으로 예수님으로 찾아오시지 않으면 전혀 알 수가 없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큰지 절대로 알 수가 없다.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인격적으로 나를 찾아오셔서 지금까지 부어주신 은혜보다 더 큰 은혜를 오늘 부어주시고 찾아와주시길 바랍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구원과 은혜를 받은 것을 깨닫고 매일 감사하며 하나님을 높이는 삶을 살도록 힘써주시길 바랍니다. 서로 사랑하고 하나님께 받은 이 큰 사랑을 기억하고 이웃에게 나눌 수 있도록 저를 연단하소서. 하나님의 선물이고 은혜이니 절대로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순종하는 삶. 이웃을 섬기고 헌신하는 삶. 겸허히 받아들이고 화평하는 삶 살도록 도와주십시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하나님의 은혜로 새롭게 된 사람은 세상에서 소금과 빛으로 살게 하시고 선한 일을 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도록 이끄소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고, 약한 자를 보호하며, 공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영적인 복임을 알게하소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하신 말씀과도 같이 받은 은혜를 나누며, 나 자신을 내려놓고, 교회를 섬기며, 교우들을 섬기며, 형제자매님들을 섬기며, 나 자신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은연히 주님의 향기를 내뿜을 수 있는 주님의 수선화가 되게 하시며, 주님의 꽃이 되게 하셔서 나비와 벌과 아름다운 꽃밭의 주님의 사랑의 향기가 풍성하게 행복이 충만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믿음이 몸에 밸 때까지
하나님은 믿음을 가진 자를 기뻐하시고 구원해 주신다. 그러면 어떻게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 C. S. 루이스는 자신이 무신론자였을 때, 믿음을 갖지 못하도록 자신을 가장 방해했던 것은 이성이 아니라 기분과 감정이었다고 한다. 사람의 기분과 감정은 늘 변하는 것이어서 그것에 따라 움직이면 믿음을 붙들 수 없기 때문에, 그는 예수님을 믿기 어려웠다.
나중에 그는 ‘믿음은 내 기분이 좋든 나쁘든, 아니면 내 감정이 고조되든 바닥을 치든 상관없이, 내가 받아들인 하나님의 진리를 끝까지 고수하는 기술’임을 깨닫고 변화되었다. 내 감정이 아무리 흔들려도 진리를 끝까지 붙드는 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이다. 그는 믿음을 깊이 간직하고 살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며 믿음 생활을 위한 방법들을 제안한다.
첫째, 인간의 기분은 언제나 바뀔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둘째,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에 감정이 아니라 먼저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살아야 한다. 셋째, 교회를 떠나지 말아야 한다. 주님이 머리 되시는 교회 공동체와의 영적 교제 속에서 개인의 믿음이 자라기 때문이다.
믿음은 이론과 생각에 머물면 안 된다. 말씀대로 살면서 그 말씀을 마음과 뼛속 깊이 채워야 한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다. 우리의 믿음은 학습된 믿음 정도가 아니라, 몸에 밴 믿음이 되어야 한다.
평생의 순례자 / 박신일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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