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과 같은 북 이스라엘 11:12~12:6

하나님과 멀어진 삶에는 거짓이 가득합니다.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과 긍휼에도 이스라엘은 신실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과 멀어진 그들은 앗수르와 애굽 같은, 힘 있는 나라를 의지하며 바람을 먹듯 헛된 것을 추구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행위대로 징벌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은 속이고 계책을 세워 성공하길 바랐으나, 그에 상응하는 혹독한 대가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야곱에게 본받을 점이 있습니다. 그는 위기 속에서 천사와 씨름하며 눈물로 하나님께 복을 간구했습니다(창 32장). 또한 우상을 처분한 후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언약 관계를 회복했습니다(창 35장). 죄를 범했어도 야곱과 같이 하나님 얼굴을 구하며 언약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하나님이 에브라임의 거짓된 행보에 조상 야곱을 언급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야곱과 같이 하나님 얼굴을 구하며 언약 관계를 회복하길 원하심.

야곱과 같이 부족해도 내게 소망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은혜, 무한하고 영원한 사랑.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 속에서도 일하시며 우리를 사랑으로 인도한다.

우리의 소망은 완벽하기 떄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때문이다.

야곱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끊임 없이 변화시키시고, 그분의 섭리 안에서 사용하신다.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순종하고 따르기를 원하신다.

은혜로 먼저 우리를 찾아주시고, 우리가 그 분께 돌아오게 하시고 믿음을 주신다.

변함없는 사랑으로 우리에게도 찾아오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에게 주어진 구원과 회복의 약속이 오직 나의 소망이 되며, 하나님께서는 내가 변화되고 온전해지기를 바라신다.

속이는 에브라임 12:7~14

하나님과 멀어진 이스라엘은 속이는 저울을 사용해 부당한 이득을 취했습니다. 영적 무지에 빠진 그들은 죄를 알지 못하고, 자신들의 부유함을 방패 삼아 불의를 정당화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그들의 부유함을 빼앗고, 그들이 앗수르의 노예가 될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랜 세월 여러 선지자를 보내 다양한 방식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 말씀에 귀를 닫고 길갈에서 이방 신에게 제사를 드렸습니다. 야곱의 삶과 이스라엘 역사는 하나님의 용서와 돌보심 없이는 결코 설명될 수 없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과 돌보심에 감사하며, 거짓된 재물을 좇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야곱의 삶과 이스라엘 역사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은 어떠했나요?

하나님은 오랜 세월 여러 선지자를 보내 다양한 방식으로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과 돌보심에 나는 어떻게 반응하나요?

사랑과 돌보심에도 나는 무너지고 넘어지고 세상에 치이고 하나님을 멀리하고 불순종하고 감사하지 못하며 찬양하지 못하고 헌신하지 못하고 믿음을 깨고 신뢰를 깨게 된다. 사랑을 실천하지 못한다.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로우심, 인자하심에 대한 반응으로 감사, 순종, 믿음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말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은 지금도 나에게 향하고 있으며 주님께서는 일하고 계시며, 주님의 자비는

자격없는 나에게 매일 새롭게 어제보다 더 큰 은혜를 부어주신다.

감사와 찬양으로 나의 입술로 몸과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고 싶습니다.

주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게 해주세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 사랑을 행동으로 표현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신뢰하고 믿음으로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인자하시다는 사실을 믿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공급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걱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그분의 계획을 신뢰하도록 도와주세요.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다른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전하고 실천하고 하나님이 주신 사랑을 행동과 말로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는 것으로 하나님께 받은 사랑의 응답을 할 수 있도록 이웃사랑 실천하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의 명언

우리 삶을 잡동사니로 가득 채운다면, 하나님이 내려 주실 진정 좋은 것들을 받을 공간이 없게 된다. - 데이브 얼리

천국에 어울리는 사람

예수님이 말씀하신 천국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다. 그렇기에 천국에서는 하나님을 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영원한 쾌락의 나라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그런 천국은 딱히 가고 싶지 않은 곳일 수 있다. 그래서 달라스 윌라드는 **“나는 신중히 고민한 끝에 천국을 견딜 수 있다고 자신하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이 기꺼이 받아 주실 것이라고 확신한다.”**라고 말했다. 천국을 견디는 것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힘들 수 있다. 금연 식당이 비흡연자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곳이지만 흡연자들에게는 끔찍한 곳인 것처럼 말이다. 생각해 보라. 지금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사는 것이 싫다면 천국에서 하나님의 지속적인 임재 가운데 영원히 사는 것이 뭐가 좋겠는가.

우리는 고난을 싫어하지만 고난보다도 더 나쁜 것이 있다. 그것은 **‘악’**이다. 고난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이지만 악은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악은 우리 안에 자리한 왜곡된 사고, 타락한 욕구, 시기심, 교만이다. 그래서 우리는 구원에 관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구원받은 우리에게 남은 문제는 **‘성화’**다. 우리는 천국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구원의 핵심은 천국을 우리에게로 가져오는 것이다.

내가 구원받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 존 오트버그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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