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 교회는 주님께 어떤 책망을 받았나요?
에베소 교회는 사랑의 수고와 인내가 풍성했던 교회입니다.
더욱이 이단에 대항해 정통 진리를 사수하고 사도의 가르침을 끝까지 지킨 교회입니다.
‘처음 사랑’(4절)은 하나님 은혜를 처음 깨달았을 때 가졌던 사랑과 열정을 뜻합니다.
‘진리와 사랑’, 두 가지는 교회가 반드시 지킬 덕목입니다.
그러나 에베소 교회는 오랜 교리 논쟁과 진리 싸움에 시달리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회복의 첫 단계는 어디에서 떨어졌는지 생각(회상)하는 것입니다.
‘생각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기억하다’라는 뜻으로(5절), 이는 언약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언약 백성은 하나님 은혜와 더불어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신을 올바로 진단하고 회개하며, 처음 행위를 실현해야 합니다.
지금 나는 주님을 향한 처음 사랑을 가지고 있나요?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요?
처음에는 설레고 가슴떨리고 눈물이 흐르고
모든 것을 내 놓을 것 같은 열정을 가지고 신앙한다.
그것도 아니라면,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진정 인격적으로 찾아오셔야 할 것이다..
정말 인격적으로 찾아오셨다면, 우리는 목숨을 다해서 예수님을 사랑한다.
조건 환경 시간 장소 안 가리고 예수님을 사랑한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그분을 따르고자 한다.
뜨겁다, 열정이 넘친다. 에너지가 넘치고 긍정적일수 밖에 없다.
성령은 불 같이 타오르시기 때문이다. 불로 찾아오시기 때문이다.
불이 뜨겁지 차가운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불은 점점 꺼지며
타협할 수 있는 중간 지점을 찾는다.
왕년에 라떼는 말이야~! 와 같이.. 과거의 모습이 영광으로 남고,
현재의 믿음은 뜨뜻 미지근 해진다.
그런 때에도, 나는 주님의 사랑이 나를 붙들고 있음을 반드시 믿는다.
반드시 다시 일어서고 부활시키시며 성령 충만 주실 줄 믿는다.
지금도 하나님의 사랑은 내 옆에서 행하시고 계신다.
하나님은 속 사람을 보시는 분, 내 마음을 보실 것이다.
나는 첫 사랑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그 첫사랑이 너무나도 생생하고 지금도 충만하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끼며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며,
갈급한 내 영혼이 하나님을 바라고 있다.
오직 진리이신 그분을 추구하고 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주님의 사랑을 확인하게 하신다.
성령 충만으로 나를 도와주신다.
그 사랑은 내 삶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게해주신다.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무한하고 전지 전능하시다.
가끔은 응답도 안해주신다.
광야길을 걸으면서 그 사랑을 잃은 것 같이 느껴질 때가 많다.
예배의 시간이 아니라면, 스위치가 꺼진 듯 그 사랑이 없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두려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나와 함께하신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결단코 끊을 수 없는 것이다.
내가 그 사랑을 잃어버릴 수 없다.
하나님의 사랑을 그 자체로 변하지 않는 근원적인 사랑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근본적이며 내 삶을 변화시킨다.
존재와 관계를 재 정립하는 대사건이 일어난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늘의 시민권을 소유한다.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하는 특권을 얻는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행위나 경험에 따라 달라지지 않으며, 절대적이다. 그 사랑에 단지 의지하면된다.
하나님께서는 홀로 존재하시며 섬김을 받지 않아도 되시고 높고 높은 존재이시지만,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먼저 찾아오셨다.
그는 자신을 낮추셔서 우리를 섬기셨다.
이것은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이해하는 방식과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섬기신 그 사랑은 우리가 다른 이들을 섬기고 헌신하는데에 본보기가 된다.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적이다.
나의 부족함과 방황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을 결코 변하지 않는다.
심지어 우리가 그 사랑을 받아들일지 말지 선택할 수 있게 하신다.
그 사랑은 강력하고 무한하여 그 사랑을 온전히 경험한 자는 그 사랑을 결단코 놓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 사랑을 회복하는 방법은,
진정한 회복은 십자가에서 자아를 내려놓고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에 온전히 의지하며, 십자가 앞에서 회개하고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회개와 순종으로 나아가는 것
여호와께 돌아가는 것.
우리가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께 순종하며 예배하며 그분을 절대적으로 인정하는 것,
우리가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하심을 믿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도하며 그 분을 따를 떄, 그 분은 우리에게 다시 오셔서 사랑과 성령 충만과 성령의 열매와 세상에 둘도 없는 복을 주신다. 성령 충만을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풍성하게 부어주신다.
모든 일에서 그분을 인정하며 순종하고 충성하며 감사하며 주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과 삶에 충만토록 바랍니다.
여호와께 돌아가자 Love Never Fails | 예람워십
환난과 궁핍을 겪는 서머나 교회에 주님이 주신 권면은 무엇인가요?
서머나는 외형상 아름답고 부요한 도시였으나 정작 성도들은 환난과 궁핍을 겪었습니다.
그리스도를 거부하며 성도를 박해하는 유대인들 곧 사탄의 회당도 있었습니다(9절).
주님은 서머나 교회에 “죽도록 충성하라”(10절)라고 권면하십니다.
‘충성하라’는 단순히 열심을 내라는 것이 아니라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라’는 뜻입니다.
‘죽도록’은 박해 혹은 순교를 각오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충성의 모범이시며(1:5), 충성된 증인들에게 ‘생명의 관(면류관)’을 약속하십니다.
면류관은 기쁨, 존경, 명예, 승리의 상징입니다.
당시 경기나 전쟁에서 승리한 자에게 화관을 수여했는데, 주님의 약속은 이를 능가하는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믿음을 흔드는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죽도록 충성할 일은 무엇인가요?
믿음을 흔드는 상황이 무엇일까?
세상을 살면서 지켜야하는 것들, 상황적인 것들, 관계적인 것들이 믿음을 흔들지 않을까?
정말 믿음만 지킨다고 생각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전부 세상과 단절된 수도원에 들어가서 살아야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랑이셔서 세상을 살으라고 하시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을 온 민족에, 온 세상에 전파하라고 하신다.
그래서 세상과 동떨어져서는 살 수가 없는 것이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심지어 원수도 사랑해야한다.
나는 믿음이 부족했을때에는그냥 다 접고 산속 수도원에 가서 16시간 찬양드리며 성경 읽고 예배 드리는 것이 너무 즐겁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 같고 심지어 그러고 싶었다.
상상만해도 너무 재미있고 그러고 싶었다. 그게 답이 아닐까? 했었다.
하지만 세상과 동 떨어져서는 빛과 소금이 될 수가 없다.
단지 하나님 너무 좋아서 내가 좋아서 자기 멋대로 수도원 들어가서 성경 읽고 기도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방식일까? 아닌 것 같다.
그것은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니까.
세상에서 살면서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내 역할이니까
세상이 내 믿음을 흔들지라도 나는 세상에 나가서 마귀와 투쟁해야한다.
하나님의 믿음도 절대적이기 때문에 절대로 마귀는 나를 최종적으로 승리하지 못한다.
우리 믿음을 흔드는 것은 마귀의 소행이다.
마귀는 나를 기만한다.
행위와 기복신앙 율법주의 내세론 구원으로 교묘하게 왜곡시키고 교란시킨다.
하나님께서는 고난 주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주시는 분이시다.
믿음을 흔드는 상황에서 죽도록 내가 붙들 것은.
이 상황은 하나님께서 내게 진정으로 하고싶은 말이 있어서 나를 위해서 예정된 일이다.
태초부터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다.
그러므로 이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행동하셨을까
가장 큰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사람들에게 헌신하고 섬겼을까
이 의문을 항상 가지면서 오직 예수님께 충성합니다.
다시 처음처럼 오늘날 한국 기독교는 교인 수도 많고, 교회 건물도 크고 아름다워졌습니다. 좋은 프로그램도 많아졌습니다. 원하기만 하면 인터넷에서 최고의 설교를 얼마든지 들을 수 있으니, 지금처럼 하나님 말씀이 풍성한 때도 없을 것입니 다. 그런데 많은 것이 좋아진 것 같지만 과거에 비해 모자란 것이 보입니다. 바로 열정'입니다. 좋은 조건과 환경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아이러니하 게 열정은 상실한 것입니다. 열정의 부족은 믿음의 조상들이 가졌던 신앙을 껍데기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과거 부모님 세대만 해도 모든 것이 부족하고 미흡했지만 모이기에 힘썼습니다. 주중에는 내내 새벽기도회에 가고, 철야 예배로 한 주를 마무리했습니다. 주일에는 종일 교회에서 보내다가 저녁예 배까지 드리고 귀가했습니다. 수요예배를 드리고 정기적으로 구역예배를 드 렸습니다. 더 큰 은혜를 사모하며 기도원 집회와 부흥회 등에 참석했습니다. 요즘은 어떻습니까? 주일예배도 편하게 온라인으로 드리겠다고 합니다. 예배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이 아닌 내가 중심이 되었기 때문 입니다. 주님을 처음 만났던 때의 첫사랑을 회복합시다. 다시 처음처럼, 차갑 게 식은 가슴에 불을 붙이고 거룩한 영적 습관을 회복합시다. 습관, 신앙을 말하다/ 한기채_토기장이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제게 열정을 다시 불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배가 회복이고 생명입니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받고 주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며 각자의 믿음의 분량대로 행하고 봉사하고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작은 저의 몸짓이지만 하늘에서 아버지께서 크게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어릴적 매일매일 할머니와 아침 점심 저녁으로 예배하던 어린 시절이 생각납니다.
그때 당시에는 멋도 모르고 드렸습니다만
그처럼 천국이 없습니다.
중한 죄짐 벗고보니 천국으로 화하도다.
지독한 믿음을 주시고 지독한 열정과 지독한 오직 예수를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신약 > 요한계시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한계시록 1 : 9~20 (2) | 2024.11.19 |
---|---|
요한계시록 1 : 1~8 (1) | 2024.1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