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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글 1756

무명의 그리스도인 『무릎으로 사는 그리스도인』 를 읽고

『무릎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을 읽고 무명의 그리스도인의 정체는 앨버트 리처드슨이었다. 처음에는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책을 쓴 사람이라는 사실이 조금 신기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기도에 관한 책의 저자가 ‘무명’이었다는 것이 오히려 잘 어울린다. 기도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일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과 만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름은 뒤늦게 알려졌지만, 그는 이미 무릎으로 하나님께 알려진 사람이 아니었을까. 나는 기도의 필요성을 더 알고 싶어서 이 책을 읽었다. 물론 기도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지금도 알고 있다. 어쩌면 너무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아는 것과 실제로 무릎을 꿇는 것 사이에 생각보다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특히 골방에서 드리는 기도는 지금도 너무 어렵다. 사람들 앞에서 하는 기도보..

Books 2026.07.21

목에 힘을 빼라는 말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힘을 빼는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했습니다. 이미 일상에서는 누구나 힘을 빼는 방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키보드 칠 때 손가락에 들어가는 힘. 마우스 클릭할 때 들어가는 힘. 폰 전원 버튼을 누를 때 들어가는 힘. 눈을 깜빡일 때 미세하게 들어가는 힘. 이런 것들도 전부 힘입니다. 노래할 때 목에 힘을 뺀다는 것도 결국 비슷했습니다. 거창한 신비 체험이 아니라, 정말 미세하게 들어가는 힘까지 알아차리고 그 힘을 하나씩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 제 느낌으로는 이렇습니다. 노래할 때 후두나 목 주변부 근육이 긴장하고, 그 긴장이 소리를 끌고 간다면 그건 아닙니다. 목이 팽팽해지고, 소리가 목에 걸리고, 몸이 소리를 억지로 끌어올리는 느낌이 든다면 힘이 들어간 상태입니다. 그럴 때는 숨을 다시 고르고, ..

찬양 2026.07.09

R. C. 스프로울 『죽음 이후에 무엇이 있는가?』를 읽고

죽음 이후를 묻는 순간, 결국 십자가 앞에 선다 R. C. 스프로울의 『죽음 이후에 무엇이 있는가?』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막연한 위로나 종교적 상상으로 다루지 않는다. 이 책은 죽음, 천국, 지옥, 부활, 최후 심판이라는 주제를 성경 앞에 그대로 세운다. 그리고 독자에게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죽으면 끝인가.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있는가. 나는 하나님 앞에 설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질문은 불편하다. 그러나 불편하다고 해서 사라지는 질문은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통과한다. 건강하든, 바쁘든, 성공했든, 신앙생활을 오래 했든, 결국 모든 인간은 죽음 앞에 선다. 죽음 이후를 묻는 일은 우울한 호기심이 아니다. 가장 현실적인 질문이다. 스프로울은 죽음을 자연 질서의 일부로만 보지 않는다. ..

Books 2026.07.01

멀쩡한 척 살아가는 인간아 정빈아

# 멀쩡한 척 살아가는 인간아, 정빈아 정빈아, 착각하지 마라. 사람은 생각보다 오래 멀쩡한 척 살아간다. 겉으로는 웃고, 일하고, 말하고, 밥을 먹고, 해야 할 일을 한다. 그래서 스스로도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그래도 잘 버티고 있다.” “나는 그래도 멀쩡하다.” “나는 그래도 남들처럼 살고 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무언가 계속 썩어갈 수 있다. 억울함, 그리움, 사무치게 외로운 마음, 인정받고 싶은 마음,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 자존심, 내 잘난 맛으로 버티고 싶은 마음. 그런 것들이 마음의 어두운 방 안에 하나씩 쌓인다. 정빈아, 진심으로 조언한다. 자신을 직시해라. 자신을 외면하지 마라. 자기 영혼을 무시하지 마라. 사람은 자기 마음을 외면하는 데에 너무 능숙하다. 상처를 덮고, ..

Principle 2026.06.25

인간은 더럽지만, 그리스도의 의는 깨끗하다

인간은 더럽지만, 그리스도의 의는 깨끗하다오늘의 신학적 묵상은 인간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되었다.인간은 선한 존재인가?아니면 본래부터 악한 존재인가?그리고 인간이 그렇게 죄 아래 있다면, 왜 우리는 생육하고 번성해야 하는가?이 질문은 단순한 철학적 질문이 아니다. 결국 복음의 필요성을 묻는 질문이다. 인간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얼마나 절실한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1. 인간은 선하게 창조되었으나, 지금은 타락한 존재다성경은 인간을 처음부터 악한 존재로 창조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창조하셨고, 창조하신 모든 것을 보시며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셨다.그러나 인간은 죄로 인해 타락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이 단순히 몇 가지 나쁜 행동을 하게 되었다는 정..

Principle 2026.06.25

R. C. 스프로울 『인간은 과연 선한 존재인가?』를 읽고

R. C. 스프로울『인간은 과연 선한 존재인가?』를 읽고 R. C. 스프로울의 『인간은 과연 선한 존재인가?』를 읽으며 가장 먼저 부딪힌 질문은 제목 그대로였다. 인간은 과연 선한 존재인가? 평소에는 사람에게 어느 정도 선함이 있다고 쉽게 생각한다. 누군가는 가족을 사랑하고, 누군가는 약자를 돕고, 누군가는 양심적으로 살려고 애쓴다. 그래서 인간을 완전히 악하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어둡고 비관적인 주장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스프로울은 인간을 단순히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의 기준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인간을 하나님 앞에 세운다. 이 지점에서 인간 이해는 완전히 달라진다. 사람끼리 비교하면 어느 정도 선해 보일 수 있지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인간의 선함이 결코 충분하지 않다. 문제는..

Books 2026.06.25

죄의 대가는 이미 치러졌다 마귀야, 뭘 더 원하는가?

죄의 대가는 이미 치러졌다마귀야, 뭘 더 원하는가?죄는 가볍지 않다.성경은 죄를 단순한 실수나 약점으로 말하지 않는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죄는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심판받아야 할 반역이며,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갚을 수 없는 빚이다. 그래서 죄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은 아직 십자가를 깊이 보지 못한 사람이다.그러나 동시에, 죄를 지나치게 붙들고 절망하는 사람도 십자가를 충분히 보지 못한 사람이다.마귀는 이 지점을 파고든다.죄를 짓기 전에는 속삭인다.“괜찮아. 이 정도는 별거 아니야.”그러나 죄를 지은 후에는 태도를 바꾼다.“너는 끝났다. 너 같은 사람이 무슨 그리스도인이냐. 하나님께서 너를 받으시겠느냐.”참으로 교활하다. 죄를 가볍게 만들던 자가, 죄를 지은 후에는 그 죄를 무겁게 만들어 영혼을 짓누른..

Principle 2026.06.18

R. C. 스프로울『악은 왜 존재하는가?』 를 읽고

악의 문제 앞에서 다시 은혜를 배우다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무너진 것은, 악과 고난의 문제를 내가 어느 정도는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마음이었다. 그리스도인은 때때로 너무 쉽게 말한다. “하나님께 뜻이 있다.” 물론 그 말은 틀리지 않다. 그러나 그 말이 고난당하는 사람의 피와 눈물 앞에서 너무 빨리 튀어나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라 폭력이 될 수도 있다. 이 책은 악의 문제 앞에서 성급히 하나님을 변호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먼저 “나는 모른다”라고 말하게 한다. 그 고백은 불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깊으신 뜻 앞에 인간 이성이 멈추어 서는 자리이다. 책은 악을 독립된 실체로 보지 않는다. 악은 하나님께서 선하게 창조하신 질서 안에 생긴 결핍이고, 부패이며, 왜곡이다. 전문적으로 말하면 이것은..

Books 2026.06.18

R. C. 스프로울, 『오직 믿음으로』 를 읽고

오직 믿음, 그러나 결코 가벼운 믿음은 아니다이 책을 읽으며 다시 확인하게 된 것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말이 단순한 교리 문장이 아니라 복음의 심장이라는 사실이다. 칭의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설 수 있는가의 문제다. 인간은 자기 의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율법 앞에서 인간의 입은 막히고,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드러나는 것은 선한 가능성이 아니라 죄인 된 실상이다. 그러므로 복음은 인간 안에서 의를 찾아내는 소식이 아니라, 인간 밖에서 주어지는 그리스도의 의를 붙드는 소식이다. 이 점에서 “오직 믿음”은 인간의 행위를 무시하는 값싼 구호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자기 행위로 의로워질 수 있다는 모든 교만을 무너뜨리는 선언이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의롭다 하시는 근거는 죄..

Books 2026.06.17

「내 영혼의 기쁨」

오늘 내 영혼이 다시 새롭게 되었다.처음에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기쁨과 슬픔, 감사와 아쉬움이 함께 밀려왔다. 그러나 불안은 없었다. 오히려 복음 앞에서 내 속사람이 다시 깨어나는 듯했다.나는 다시 거듭난 것이 아니다. 이미 거듭난 영혼을 성령께서 새롭게 하신 것이다.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그리스도의 의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지금은 성화의 길을 걷고 있으며, 장차 영화에 이를 것이다.오늘 하나님께서는 내게 복음의 기쁨을 다시 맛보게 하셨다. 죄가 주지 못한 해갈을 그리스도께서 주셨다.나의 의는 내 안에 있지 않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

Principle 2026.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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