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과 아들 4:1~7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신분은 어떻게 변화되었나요?
- 아버지의 모든 재산은 아들이 상속합니다
- 그러나 아들이 어릴 때는 후견인이나 청지기의 관리를 받습니다
- 바울은 이를 통해 하나님 백성과 율법의 관계를 연결시킵니다
-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우리는 ‘이 세상의 초등 학문’ 곧 율법 아래에 있었습니다(3절; 3:25)
- 때가 되자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율법 아래에 있던 우리를 속량하셨습니다(4~5절)
- 또한 아들의 영 곧 성령을 우리 마음에 보내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6절)
- 우리는 종이 아닌 아들의 신분으로 참자유와 권세를 누립니다
-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우리에게 아낌없이 내어 주신 하나님은,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분입니다(7절; 롬 8:32)
하나님의 자녀로서 내가 담대히 행할 일 혹은 피할 일은 무엇인가요? 담대히 행할 일:
- 예수님을 시인하고 하나님을 인정하는 일 : 복음 전파
- 기도 :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나아가기
- 사랑하고 용서하기 : 우리가 우리 죄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기. :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피할 일:
- 죄와 유혹 :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를 피하고,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도록 한다.
- 교만 : 자신을 높이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태도, 오만, 자만, 교만,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다.
- 비난과 분노 : 정죄하고 판단하지 말고 남을 라가라하는 자는 지옥에 간다고 하셨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 화를 내는 태도를 피하고, 온유와 인내로 대하여야 한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하루를 넘기지 말자
- 불신앙과 두려움 : 시 23: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종으로 돌아가려는 어리석음 4:8~11
갈라디아 성도들이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 종노릇하며 지킨 일은 무엇인가요?
- 아들의 신분을 버리고 종이 되려 한다면 어리석은 것입니다
-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의 어리석은 행동을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키는 일과 연관시킵니다
- 이는 절기와 관련된 율법을 지키는 일일 수도 있고, 복음을 받아들인 이방인들에게 율법 준수를 강요했던 거짓 교사들의 꾐에 빠지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 복음에서 벗어난 갈라디아 성도들의 행위는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다시 육체로 마치는 것이며(3:3), 바울의 수고를 헛되게 하는 것입니다(11절)
-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복음 안에서 하나님 아들의 자유와 특권을 누립니다
- 그러므로 다시 과거로 돌아가 하나님이 아닌 것들 곧 종교 의식이나 율법주의 등에 종노릇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다시 매이면 안 되는 일은 무엇인가요? 율법에 다시 매이면 안된다. 육체에 다시 매이면 안된다. 죄에 다시 매이면 안된다. 영적으로 정서적으로 해로운 사람과 관계에 다시 얽히면 안된다. 세상에 다시 매이면 안된다. 과거에 다시 매이면 안된다. 두려움에 다시 매이면 안된다. 걱정에 다시 매이면 안된다. 불신앙에 다시 매이면 안된다. 옛 삶의 방식, 태도로 다시 돌아가면 안된다.
새 삶을 위한 약속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사랑해서 결혼식을 올릴 때, 일반적으로 주례자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는다. “병들 때나 어려울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상대만을 사랑하고 정조의 대의를 유지하겠습니까?” 이 성혼 선언의 절차가 때로는 형식적으로 행해지지만, 사실 그들은 공중 앞에서 이 서약을 함으로써 상대에게 얽매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이 서약을 무시하고 다른 이성을 지나치게 가까이하거나 취한다면, 신성한 약속을 어겼다는 지탄을 받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예를 들어 새 가정을 꾸린 사람이 과거를 잊지 못하고 옛 연인에게 얽매인다면 어떻게 될까? 이는 배우자에게 큰 상처를 주고, 그들의 결혼을 축복해 준 사람들에게 배신감을 안겨 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결혼해 그리스도의 은총 속에 살게 되었는데도 율법에 끌려다니는 모습이 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성경이 “이제 너희는 율법에 대해서 죽었다. 너희를 지배하고 있던 존재는 죽었다.”라고 하는데도,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고 율법에 얽매여 있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예수님을 믿고도 이 단계를 넘지 못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말은 죄를 지어도 상관없다는 것이 아니라 새 주인에게 속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즉 율법이 아닌 예수님을 위해 사는 존재가 된 것이다!
복음의 언어, 로마서 / 박광석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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