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교사들이 헬라인 디도에게 강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할례가 구원에서 필수라고 말함.
내가 복음 안에서 얻게 된 자유는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복음 안에서 얻은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 얻게 되는 영적인 자유로,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벗어난 상태이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특권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죽음이 끝이 아님을 알고 영원한 생명을 소망하며,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경험하게 된다. 복음의 자유는 율법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는데, 예수님이 율법의 요구를 완성하셨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자녀로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죄의 종노릇에서 벗어나 의의 도구로 살아갈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
이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과 지속적으로 교제하며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분과의 관계가 유지될 때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지속적으로 누릴 수 있다.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는 삶은 죄의 유혹에서 벗어나 복음 안에서 자유를 누리게 하며,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살아갈 때 진정한 자유를 경험할 수 있다. 우리는 복음의 자유를 남용하지 말아야 하며,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데 그 자유를 사용해야 한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믿음 안에 굳건히 서서 복음의 진리를 흔들리지 않고 붙들어야 하며, 세상의 유혹과 거짓 가르침에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서로 격려하고 기도하며 신앙을 나누는 것도 중요하며, 이를 통해 자유 안에서 더 강건해질 수 있다.
복음 안에서 주어진 이 자유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주어진 값진 선물로, 우리는 이 자유를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통해 자유를 지켜 나가야 한다.
하나님은 베드로와 바울을 각각 어떠한 사도로 부르셨나요?
베드로는 유대인 전도, 바울은 이방인 전도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임을 인정하고 복음을 위해 내가 동역할 이는 누구인가요?
단지 내 생각이지만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임을 인정하고 복음을 위해 내가 동역할 이는 원수일 수 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으며, 원수를 사랑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원래의 세상적 관점에서는 원수와 절교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복음 안에서는 원수조차도 사랑하고 그들과 화해하며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심으로써, 그들을 우리의 삶 속에서 중요한 동역자로 받아들이는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셨다. 그러므로 원수라고 여겼던 이들조차도 하나님의 사역 안에서 나와 함께 동역할 수 있는 사람들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과연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가?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으로는 매우 어려운 일이나, 예수님께서 명하신 중요한 가르침이다. 인간적인 감정으로는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일 수 있으나,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는 가능하다.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명령하신 이유는, 그분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에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그분의 사랑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은 인간의 능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구하고, 그 사랑으로 우리의 마음이 변화될 때 우리는 원수에게도 자비와 용서를 베풀 수 있다.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닌 선택이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예수님을 본받아 그분의 사랑을 힘입어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가능하며,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중요한 삶의 자세이다.
인간적인 관점에서의 원수는 보통 나에게 해를 가하거나, 고통을 주는 사람으로 정의된다. 이들은 나와 적대적인 관계에 있거나, 나에게 상처를 주었기 때문에 멀리하고 싶은 대상이다.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원수는 피하거나 보복하고 싶은 사람이며, 분노와 미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원수는 나와 의견이 다르거나 나를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되며, 본능적으로 관계를 끊고 거리를 두고 싶어지는 대상이다.
원수의 기준은 각 사람의 경험과 가치관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에게 피해를 주거나 모욕감을 준 사람, 혹은 나와 대립적인 관계에 있는 사람을 원수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대립으로 인해 원수로 간주되기도 하고, 개인적인 배신이나 갈등으로 인해 원수로 느껴질 수 있다. 이 기준은 감정적이며, 주로 상처나 갈등을 기반으로 한다.
하나님의 시선에서의 원수는 인간적인 관점과 다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며, 죄인조차도 구원의 대상으로 바라보신다. 인간은 서로를 원수로 여길 수 있지만,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회개하고 구원을 얻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누구도 포기하지 않으신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명령하셨는데, 이는 하나님의 시선에서 원수도 사랑의 대상이며, 화해와 용서를 통해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존재라는 의미이다. 하나님께는 죄인도, 적대적인 자도 결국 구원의 대상이며,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 안에서 회복될 수 있는 존재들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원수를 그저 적으로만 보지 않으시며, 그들 역시 하나님의 자녀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로 바라보신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사람에게 미치며, 이 사랑을 통해 원수도 변화될 수 있음을 강조하신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할례든 무할례든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는 사실을 한껏 일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하셨는데 원수는 커녕 이웃 사랑하기도 벅찹니다.
오직 성령께서 인도해주셔야 가능한 것 같습니다. 주님 성령 충만 주어주십시오.
오늘도 겸손하게 하루를 시작하길 바라옵고 나의 교만은 주님께서 가져가시고 나를 가장 낮은 사람으로 낮추어 주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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