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교사의 실체 2:12~16
12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고 그들의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13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즐기고 노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그들의 속임수로 즐기고 놀며
14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15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16 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
배교자의 비참함 2:17~22
17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 가는 안개니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나니
18 그들이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며 그릇되게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는도다
19 그들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신들은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라
20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21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
22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
베드로가 거짓 교사의 선조로 발람을 언급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 말씀이 없으면 분별력도, 지혜도 없습니다.
- 거짓 교사들은 잡혀 죽기 위해 태어난 이성 없는 짐승같이 분별력 없이 행합니다.
- 그들에게 말씀이 없거나 그들이 배운 대로 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그들은 저주 외에는 합당한 응징이 없는 자들로, 베드로는 브올의 아들 ‘발람’을 그들의 선조로 제시합니다(15~16절).
- 발람은 하나님 이름을 의지하면서도 불의의 삯을 사랑해 모압 왕 발락의 초대에 응했고, 자신이 탄 나귀가 칼을 든 천사를 보고 길을 피할 때에도 분별력 없이 행동했습니다(민 22~24장).
- 베드로는 그럴싸한 이유로 속이는 거짓 교사를 발람의 후예로 본 것입니다.
- 주님을 빙자해 다른 목적을 이루려는 이는 모두 거짓 교사입니다.
성경 말씀이나 주님 이름을 악용하는 이에게 속지 않으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하나님 이름을 의지하면서도 불의를 사랑하는 두 신을 섬길 수 는 없는 것이다.
이것을 알고 행해야한다. 발락의 초대에 응한 발람의 일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 분별력있게 행동해야한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을 읽고 암송하고 묵상하여 성령님의 감화 감동을 통해서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주의를 주신다.
성령님의 근심에 반응해서 그 자리를 피하거나 속지 않도록 분별력을 가져야겠다.
그리스도를 알고 세상 더러움에서 벗어났다가 다시 그것에 빠지면 어떻게 되나요?
- 진리에서 벗어난 자들은 거짓으로 행할 뿐입니다.
- 거짓 교사들은 ‘물 없는 샘’,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와 같은 허무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 그들의 끝은 ‘캄캄한 어둠’입니다(17절). 그들은 겨우 거짓을 피한 자들을 음란(육체의 정욕)으로 유혹해 넘어지게 합니다(18절).
- 그들은 자유를 준다고 약속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멸망의 종들’입니다(19절).
-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더러움에 빠진다면, 그때 형편은 처음보다 더 나빠질 것입니다(20~21절).
- 개가 토한 것을 도로 먹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로 되돌아가는 비유는(22절; 잠 26:11), 그들이 본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이들임을 보여 줍니다.
- 거짓 교사와 그를 따르는 이는 모두 비참한 결말을 맞이합니다.
옛사람으로 되돌아가지 않기 위해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요?
구원은 취소되지 않는다. 옛사람으로 돌아갈 수 없는 존재가 우리의 존재이다.
성령의 인치심을 믿고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는 성도의 견인으로 인해서 조그마한 실족과 부끄러운 짓을 할 수 있어도 결국 악에서 끊어지며 죄에서 끊어지는 것이다.
지금 실족하고 부끄러운 짓을 행하고 힘들더라도 노여워하지말고 원망하지말고 자기 자책하지말고 순순히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다면, 언젠가는 들어주신다.
전심으로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회개하고 회개하고 또 회개하면 들어주신다.
정말 벗어날 수 없었던 더러운 구덩이에서 건져주시고 살려주신다. 사랑은 건짐 받는 것이다.
그 사랑을 알았다면 이제는 헌신하고 회개할 때이다.
나의 유혹을 오늘도 회개하고 고쳐주실 줄을 믿습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제 삶이 하나님 말씀 앞에 서지 않으면 작은 유혹에도 넘어갈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음란과 쾌락을 즐기는 세상의 조류에 휩쓸리지 않고 하나님 뜻을 분별하도록 늘 말씀 안에 거하게 하소서. 복음이 전해지는 일에 하나님이 편하게 사용하시는 그릇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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