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움직일 수 없는 믿음은 결코 믿음이 아니다

https://cnts.godpeople.com/p/73474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 사이에 높이 48미터, 너비 90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나이아가라 폭포가 있다.

이 엄청난 폭포와 관련한 일화가 많은데, 19세기 중반 찰스 블론딘이라는 곡예사가 외줄타기로 나이아가라 폭포를 횡단한다고 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가 줄 위에서 눈을 감고 걷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는 것을 보고 환호했다. 찰스 블론딘은 자신을 향해 환호하는 관중들에게 물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여러분의 열렬한 응원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사실 저는 솔직히 마음에 차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게 너무 싱겁습니다. 제 실력은 이게 다가 아닙니다. 저는 사람 한 명을 등에 업고 이 폭포를 건널 수도 있습니다. 믿으십니까?”

사람들은 여전히 환호하며 “당연히 믿지요!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뛰어 난 곡예사입니다!”라고 말했다.

블론딘이 기뻐하며 대답했다. “그토록 저를 믿어주신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모두에게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누가 저의 등에 올라타고 저와 이 계곡을 건너시겠습니까?”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만 젓고 있을 때, 실망한 블론딘은 그의 매니저이자 오랜 친구인 해리에게 가서 “자네도 나를 믿지 못하나?”라고 물었다. 친구는 “믿고말고”라고 대답하고 그의 등에 올라탔다. 그리고 그들은 무사히 계곡을 건너갔다.

믿기는 믿는데 타지는 못하겠다? 그것이 과연 믿음인가? 믿는다고 말만 하고 그 진리에 몸을 싣지는 않으면서 믿었다고 여기고 넘어가고 있지는 않는가? 지식적인 동의나 희망사항은 믿음이 아니다. 나를 움직일 수 없는 믿음은 결코 믿음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그 믿음이 반드시 우리를 움직인다.**믿는다고 말하면서 믿는 대로 살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짜 믿는 것이 아니다.

  • 복음을 영화롭게 하라, 김용의

† 말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 요한복음 11:40

† 내게 주신 말씀

마 19:30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시편 36:9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창세기 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주님을 찬양하오니 나의 영혼을 찬송으로 사용하시옵소서.

왜 주님의 말을 들어야 하나요?

그 이전의 저는 죽은 목숨이었기 때문입니다.

주님 안에서 새로히 내가 살았으니 내 목숨은 오로지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아래에 인치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주님이 가자하면 가고 돌으라하면 돌고 앉으라 하면 앉고 누으라 하면 눕습니다.

주님께서 삭개오를 부르신 것 처럼 내 이름 불러주시고

영에 눈이 멀어 하나님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 영적인 근시를 치유해주시고 안경을 지어주시고 불편할 것 같으니 눈 자체를 갈아 끼워주시는 인자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믿습니다.

또 귀가 멀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싫어하고 불쾌하였던 나의 귀를 뚫어주사 영의 귀로 듣게 하시고 모든 악독과 가시의 날카로운 사단 마귀의 말들 그리고 죄악의 본성인 내가 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오직 내 안의 악이 죄를 행하는 것을 알고 남을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주신 것을 믿습니다.

또한 앉은 뱅이로 단지 그 하루 일요일도 주일 그 하루도 움직이기 귀찮아서 게으른 나를 은혜로 세마포를 입히사 부지런하게 하시고 열망을 가지게 하심에 그 인자하신 주님의 사랑에 감격의 눈물을 흘립니다.

언제든지 걷게 하시고 그리고 뛰게하시고 궁창의 독수리 같이 앙망하여 독수리 날개치듯 솓아 오르게 하시는 주님께서는 나를 이처럼 사랑하셔서

시몬아 나를 사랑하느냐 라는 말에 이처럼 오 주여 주님만이 아십니다.

라고 당당히 대답할 수 있는 떳떳하고 부끄럼 없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소서.

사랑이신 하나님이시여 모든 생명은 사랑과 절대 선이신 주님께 있사오니 모든 사랑의 빛 안에서 우리가 사랑을 느낍니다.

사단은 나를 해하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오직 주님께서는 사단 마저 선으로 바꾸어 꼬꾸라 뜨리사 오늘도 만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믿습니다.

항상 예수님의 하늘 소망만 바라오며

우리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와 기도 드립니다.

아멘.

† 적용과 결단

주님, 감사합니다. 당신을 믿는다고 외치면서도 상황이 흔들리면 덩달아 마음이 흔들리는 저의 약한 믿음을 불쌍히 여기시고 강한 믿음을 부어주소서. 주님을 믿는다는 고백에서 끝나지 않고 실제 삶에서 행하여 믿음과 삶의 간격을 조금씩 좁혀 나가는 하루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나에게 주신 말씀 따라 내가 행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며 실제 삶에서 행하길 원합니다.

오늘은 부활절을 앞두고 약 40일간 몸과 마음을 정결하고 경건하게 하며 지내는 사순절의 시작인 재의 수요일이라고 하네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절을 기념하면서 앞두면서 내가 뭔가 세상적으로 과했었다고 생각하는 한 부분을 절제하고 말씀과 기도와 찬송으로 나아가는 모두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평생 금주를 결단하며 40일간 술을 단 한잔도 안 먹도록 적용과 결단 드립니다.

또한 다가올 부활절을 대비하여 회개하고 금식하며 내 몸을 정결케 하여 예수님의 부활을 맞이 하겠습니다.

http://kidokilbo.com/news/view.php?wr_id=231&id=theology

여담) 사순절을 지키는 곳은 개신교인 대한성공회, 루터교, 감리교,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그리고 한국 정교회. 천주교에서 지키고 있고 하네요.

반면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및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은 사순절 대신 부활절 전 한 주간을 고난주간으로 지키고 있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예장합동은 1999년 열린 교단 84회 정기총회에서 사순절에 대한 연구보고서를 채택한 뒤 사순절을 없앴다. 이 연구보고서에는 “사순절이 교회의 절기가 아니고 천주교와 성공회의 고정된 절기인 만큼 성경적 절기로 보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내용이 담겼다.

예장합동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기본 취지까지 없앤 것은 아니다. 이상원 총신대(조직신학) 교수는 “성경적 근거가 없는 절기이고 로마 가톨릭에서 차용한 만큼 굳이 사순절이라는 명칭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면서 “대신 부활주일 7일 전부터 시작되는 고난주간을 지킨다”고 설명했다. 예장고신도 사순절을 특별한 교회절기로 지키고 있지 않고 지역교회의 상황에 따라 고난주간 등을 지키는 경우다.

흠 아무튼 일단 목사님의 견해는 여쭈어보아야할테지만 암튼 울 교회는 예장통합이니 ㅎㅎ

저는 일단 40일간 작정기도 드리면서 연단해보고자 합니다.

다들 성령 충만한 하루되시길 바랍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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