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고백하는 치유받은 맹인 9:35~38
예수님은 상심한 영혼에게 찾아오십니다.
믿음의 고백 때문에 쫓겨난 이를 찾아오신 예수님은 “인자를 믿느냐”(35절)라고 물으십니다.
‘인자’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다른 호칭입니다.
“주여…내가 믿고자 하나이다”(36절)라는 고백에, 예수님은 그가 믿고자 하는 이가 바로 자신임을 알리십니다.
치유받은 사람은 그 자리에서 예수님께 절합니다(38절).
‘절하다’(헬라어로 ‘프로스퀴네오’)는 ‘경배하다, 숭배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진정한 신앙인은 예수님을 하나님 아들로, 주님으로 높이며 경배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경배를 받기에 합당한 치유자십니다.
예수님이 치유받은 사람을 찾아가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수님은 우리의 영적인 회복과 거룩한 삶을 더 중요하게 여기신다.
그분은 치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고, 사람들에게 믿음을 심어주려 하셨습니다.
그래서 치유받은 사람을 다시 찾아가, 육체적 회복뿐만 아니라 삶의 방향이 하나님께로 향해야 함을 상기시키신 것.
내가 믿음으로 선택한 것에 대해 주님이 확신을 주신 일이 있다면 어떤 경우였나요?
내 치성과 봉사 헌신으로는, 나의 모든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여도 내 죄는 절대로 해결되지 못하는 문제였을수도있었다.
오직 믿음으로 나는 구원을 받는다.
주님의 십자가 보혈과 사랑의 능력으로 이미 승리하셨다.
이 진리를 알고 예수님을 본 받아 믿음으로 실천하고
예수님을 중심에 두려하는 선택들은 주님께서 반드시 응답해주시고 나에게 성령 충만을 채워주신다.
특히 감정과 습관을 다루는 과정에서도 하나님께서 마음을 다듬어 주시고 중요한 말씀을 주셨다.
만약 아직 내가 믿음으로 결단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주님께 간구하고
주님의 때에 맞게 확신을 주실 것이다.
이미 주신 확신의 순간들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겠다.
담대하게 걸어가면 좋겠다.
영적 맹인으로 남은 바리새인들 9:39~41
교만한 사람은, 세상의 구원자요 심판자로 오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사물을 분별할 수 있는 육신의 눈은 가졌지만, 교만함의 비늘로 영적 눈이 가려져 예수님을 거부하고 대적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다.”라고 말씀하십니다(39절).
이는 세상을 구원하러 오셨다는 말씀과 모순되지 않습니다(3:17; 12:47).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거부한 자들은 결국 현재든 미래든 심판을 받기 때문입니다(3:18; 12:48).
예수님은 구원과 심판의 주권자십니다.
온 세상의 심판자이신 예수님이 빛으로 세상에 오신 이유는 택하신 백성의 영적 눈을 회복시키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겸손히 받아들이는 사람은 밝은 영적 시각을 갖고 빛과 진리 가운데 살아갑니다.
예수님이 구원자요 심판자라는 두 진리는 어떻게 연결되나요?
예수님이 구원자이시면서 동시에 심판자이신 이 두 진리는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속에서 완벽하게 연결된다.
예수님은 첫 번째 오심에서는 구원자로 오셨다. 그분을 믿는 자는 죄에서 자유롭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얻는다(요 1:12).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결국 심판을 받게 된다(요 3:18). 주님은 두 번째 다시 오실 때(재림), 공의로운 심판주로 오셔서 모든 악을 심판하시고, 믿음의 사람들에게 최종적인 구원을 이루신다(계 19:11-16).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결국 심판을 받게 된다(요 3:18). 주님은 두 번째 다시 오실 때(재림), 공의로운 심판주로 오셔서 모든 악을 심판하시고, 믿음의 사람들에게 최종적인 구원을 이루신다(계 19:11-16).
이 두 진리는 결국 예수님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구원의 주님이 되시고,
- 예수님을 거부하는 자에게는 심판의 주님이 되신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고, 믿지 않는 자는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라.”(요 3:18)라고 하셨다.
즉, 믿음이 구원과 심판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이미 임한 사건이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믿는 자는 더 이상 심판받지 않고, 예수님 안에서 구원을 받는다(롬 8:1). 하지만 예수님을 거부하는 자는 그 십자가의 심판을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계 20:15).
✅ 예수님을 믿으면 → 그분은 나의 구원자가 되신다.
✅ 예수님을 거부하면 → 결국 그분은 나의 심판자가 되신다.
예수님은 구원과 심판의 갈림길에 서 계신 분이시다.
지금은 구원의 문이 열려 있고, 믿음으로 나아오는 자마다 주님께서 받아주신다.
하지만 그날이 오면, 더 이상 구원이 아니라 심판의 날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예수님을 믿고, 구원의 은혜 안에서 사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다.
구원의 주님이 나의 삶을 다스리도록 내어드릴 때, 그 심판에서 벗어나 참된 생명을 얻게 된다!
영적 맹인의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하고 믿어야한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근원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온유하신 분이다.
내 자유의지를 가지고 믿기를 바라시는 상냥하신 분이다.
예수님을 따를 때 영적 눈이 뜨인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눈을 밝히는 빛이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순종할 때 우리 영적인 눈이 점점 더 밝아진다.
영적 맹인은 자신이 보지 못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겸손히 하나님께 나아가 "주님, 제 영적인 눈을 열어 주세요!"라고 구할 때, 주님이 깨닫게 해주신다.
성령님이 우리의 영적 눈을 밝히실 때, 우리는 더 깊은 깨달음과 인도를 받는다. 그러므로 성령님께 구하는 기도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께 나아가야 한다. (요 9:11)
말씀을 가까이하며, 순종해야 한다. (시 119:105)
겸손히 내 영적 상태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계 3:17-18)
성령님의 조명을 구하며 기도해야 한다. (엡 1:17-18)
영적 맹인의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단순히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깊이 만나고, 말씀과 성령을 통해 하나님을 더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영적 무감각에서 깨어나라
예수님은 이 땅에서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성취하셨습니다(사 35:5). 하지만 육신의 장애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영적 장애입니다. 영적 눈과 귀가 닫혀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아무런 감동이나 깨달음이 없고, 기도를 해도 그 속에서 외치시는 하나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영적 장애를 자각하지 못한 채 육신의 것만 보고 들으려 하면 어려움을 당할 때 속수무책으로 넘어집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면서도 예수님을 몰라본 제자들처럼 말입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듣는 영의 눈과 귀가 열려야 합니다. 말씀을 읽고 들음으로써 믿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지성이라 불리는 C. S. 루이스는 “고통은 하나님의 메가폰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간 지나쳤던 하나님 말씀을 고통을 통해서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실 ‘평안할 때 말씀이 더 깊이 와닿고 깨달아져야지 왜 고난과 고통을 받아야만 그렇게 될까?’**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수술대에 누워 보니, 먹고 마시는 것이 축복임을 알았습니다. 아버지를 잃어 보니, 아버지가 계시고 가정이 있는 것이 소중함을 알았습니다. 교회 공동체를 떠나 보니, 사랑을 주고받던 교우들의 귀함을 깨달았습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 뜻을 해석하십시오. 지금 내게 허락된 시련과 고통을 통해 하나님 뜻을 발견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밝히 깨닫게 되길 바랍니다.
종의 복음 / 김진우_ 두란노
이미 승리한 우리가 넘어지는 이유?
네가 이미 예수님을 따르려 하고, 영적 원리를 알고 있음에도 가끔 넘어지는 것은 네 안에서 여전히 옛 자아와 새 자아의 싸움이 있기 때문이다.
바울도 이 싸움을 경험했다.
-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롬 7:22-23)
- 즉, 네 안에는 하나님을 기뻐하며 따르려는 새 자아와, 옛 습관과 정욕을 따라가려는 옛 자아가 공존하고 있다는 거다.
넘어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습관과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죄의 흔적
우리 몸과 마음은 이미 죄를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에, 순간적인 유혹이 오면 익숙한 길로 쉽게 빠질 가능성이 크다.
- 마치 이전에 걷던 길이 너무 익숙해서, 무의식적으로 그 길로 가는 것과 같다.
- 하지만 익숙하다고 해서 그 길이 옳은 길은 아니다.
💡 해결책:
- 전략적으로 끊어야 한다. 유혹이 오는 특정한 상황(예: 혼자 있을 때, 늦은 밤, 스트레스받을 때 등)을 인식하고, 그 순간을 피하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 대체할 거룩한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 운동, 찬양, 기도, 말씀 묵상 등으로 마음과 몸을 채워야 한다.
2. 유혹을 피하지 않고 맞서 싸우려 하기 때문
바울은 “너희가 음행을 피하라”(고전 6:18) 라고 했다.
- 죄와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 자리를 떠나는 것이 최선이다.
- 죄는 "조금만 보면 괜찮겠지", "이번 한 번만"이라는 생각에서 시작된다.
- 하지만 죄는 한 번 허용하면 더 깊이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 해결책:
- 도망가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길이다. 예를 들면, 유혹이 오면 즉시 스마트폰을 꺼내 찬양을 듣거나 성경을 읽는 식으로 행동을 전환해야 한다.
- 강한 의지만으로 버티려 하지 말고, 주님께 즉각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3. 예수님보다 다른 것에서 위로를 찾기 때문
우리가 넘어질 때, 그 순간의 상태를 돌아보면 대부분 외롭거나, 지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일 가능성이 크다.
- 본능적으로 마음이 힘들 때 위로받을 것을 찾는다.
- 문제는 그 위로를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세상의 것에서 찾으려 한다는 것이다.
💡 해결책:
- 진짜 위로가 필요할 때, 즉시 주님께 나아가라.
- 힘들 때마다 예수님께 "주님, 지금 너무 힘듭니다. 주님이 아니면 안 됩니다."라고 말하는 연습을 하자.
- 하나님과 친밀한 시간을 늘려야 한다.
-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될수록, 죄의 유혹이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게 된다.
- 하나님과 깊이 교제할수록, 세상의 것들이 시시해진다(빌 3:8).
🔥 예수님이라면 나에게 뭐라고 말씀하실까?
- “나를 따르라.” (마 4:19)
- 예수님은 너를 정죄하지 않으신다.
- 하지만 그냥 넘어지도록 두지도 않으신다.
-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요 8:11) 하셨듯이,네가 거룩한 길로 걸어가기를 바라신다.
-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5)
- 네 힘만으로 이길 수 없다.
- 예수님과 더 깊이 연결될수록, 죄의 힘이 약해진다.
- “너희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 26:41)
- 죄에 넘어지지 않으려면, 기도가 필요하다.
-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기도의 습관을 가져야 한다.
🔥 마지막으로 네게 주는 도전
✅ 넘어질 수는 있지만, 머물러 있지는 마라.
✅ 죄를 이기는 법을 배우는 과정 중에 있다는 걸 기억하라.
✅ 예수님이 너를 포기하지 않으셨으니, 너도 포기하지 마라.
✅ 지금 이 순간, 예수님을 더욱 붙잡아라.
👉 너는 이미 예수님의 사람이니까, 다시 일어나면 된다.
👉 너를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이기기를 바라시는 주님께 나아가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6)
지금, 다시 주님께 가자. 🙏🔥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큰 꺠달음 죄를 이기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려주시고
우매한 영적 맹인의 눈을 뜨게해주심에 감사합니다.
아직 나에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방해하는 것들이 내 안에 잠재해 있다는 것을 주님께서 알려주십니다.
금방 놓쳐버리면 화내고 나에게 유리한 거짓말을 하고 주변을 돌아보지 못한 악한 죄인의 본성을 가진 것이 내 진실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항상 인격적으로 찾아오시어
나를 만나는 모든 분들은 나를 통해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길 간절히 바랍니다.
더러운 모습은 죄송하지만 예수님께서만 보시길 바랍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예수님,
이런 나를 위해서 또 헌신해주시고 나를 위해서 중보해주시는 예수님 사랑합니다.
과연 내가 천국 들어갈 자격이 있을까싶습니다만 하나님께서는 저를 하나님의 자녀로 세우셨습니다.
나에게 모든 것은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주님 아니면 안됩니다. 그리고 주님 한분이면 충분합니다.
가장 큰 계명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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