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는 장애를 편견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 과 제자들은 길에서 구걸하는 시각 장애인을 만납니다.
그가 장애인으로 태 어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인지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서 장애를 죄에 대한 징 벌로 여기던 당시 사회상이 드러납니다(2절), 이는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출 34:7)라는 말씀을 율법적으로 해 석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장애와 죄의 연관성을 부정하시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그에게서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3절).
장애에 대 한 편견을 버리면, 육신의 장애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손길을 경 험합니다.
예수님이 장애인을 바라보시는 관점은 어떠한가요?
편견이 없으시며 육신의 장애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손길을 경험한다.
내가 편견을 버리고 하 나님의 관점으로 대해야 하는 지체는 누구인가요?
내가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거나 판단하게 되는 사람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
우리의ㅜ연약함을 훈련 시키기 위해서 그런 자들을 주변에 둔다.
특히 노인 노숙자 장애인 들을 더 주의깊게 돌보고 도와야할 것이다.
은혜가 필요한 친구들을 위해서 기도해야할 것이다.
예수님은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5절)라고 말씀하십 니다.
초막절에 이미 자신이 '세상의 빛'이라고 밝히셨는데(8:12), 여기서 다 시 언급하신 것은 시각 장애인에게 실제적인 빛의 역할을 하시겠다는 의지 의 표명으로 봅니다.
예수님은 땅에 침을 뱉어 그것으로 진흙을 이겨 시각 장 애인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십니다(7절). 실로암'은 '보냄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시기 위해 '보냄을 받았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순종한 시각 장애인은 눈이 밝아져서 돌아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육적•영적 눈을 밝히시는, 세상 의 '참빛'입니다.
예수님이 시각 장애인을 실로암'에 보내신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예수님은 참 빛이시다.
예 수님을 믿은 후에 내가 밝은(영적) 눈으로 보게 된 것들은 무엇인가요?
영적인 것들을 보게된다. 마귀의 일이라든지 하나님의 일들을 성경의 기준으로 구별할 수 있게되었다.
그러나 아직 나는 많이 연약하여 많은 예수님의 도움과 중보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진리를 내가 알게되었고 예전엔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죄임을 깨닫고
이전엔 무의미하게 보이던 것들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소중하게 느껴진다.
삶과 마음을 완전히 바꿔놓는 진리가 나를 사로잡았다.
세상을 일시적이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하다는 것
스스로 선 할 수 없지만 예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된다는 것
고난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연단이며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결단이며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이 참된 사랑이라는 것
이것은 단순한 깨달음이 아니라 삶을 움직이게하는 진리의 말씀이다.
이 눈을 계속해서 유지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기도로 깨어있어야한다.
그래야 어둠이 틈타지 못하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빛 가운데서 행할 수 있다.
은혜의 걸림돌, 자기의 인간에 관한 옳은 분류법은 나쁜 사람과 착한 사람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나쁘다는 것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으로 나누는 것이다. 그런 데 이 점을 가장 깨닫기 힘든 사람은 지독히 악한 사람이 아니라 열심히 순종 하는 사람을 수 있다. 양심적으로 행하는 '순종'은 한 꺼풀 벗기면 불순종'인 경우가 많다. 죄책감이 아니라, 자기 합리화와 자기 의(출)가 은혜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예수님은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사람들'의 죄를 계속해서 드러 내신다. 그분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선포하심으로, 그들이 완전무결함 을 자랑하는 대신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은혜를 경험하게 하신다. 하나님 나라의 기쁨에 참여하기 위한 열쇠는 우리에게 자격이 없음을 솔직 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의 자격 없음은 율법을 어기는 모습뿐 아니라 율 법을 지키는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율법 준수는 우리 마음속의 죄를 없애지 못한다. "누가 커트라인을 통과해 의로워질 것인가?"가 아니라 자신이 절대 커트라인을 통과할 수 없음을 누가 인정할 것인가?"가 예수님이 주목하시는 문제다. 우리 스스로 자격을 쟁취하려는 노력을 포기할 때, 비로소 우리의 모 든 바람과 요구보다도 훨씬 더 후하게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다.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 나라의 일원이 된다. 우리 스스로는 할 수 없는 것 위에 하나님 은혜의 전능함이 있다. 우리가 몰랐던 예수/ 데인 오틀런드_ 두란노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너무도 연약한 나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한번 성령 충만 주시길 바랍니다.
사랑으로 모든 것을 하려고 하나 나는 예수님아니면 안됩니다.
구제하여주시고 나를 죽여주시길 바랍니다.
십자가 질 수 있는 영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찬 하루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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