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복음

요한복음 9 : 13~34

잉비니 2025. 2. 2.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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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에 대한 다양한 반응 9:13~23 예수님의 치유 표적에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게 반응합니다.

첫째, 율법주의 적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침 뱉음, 진흙 반죽하 기, 진흙 바르기 등)을 했기에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 아니라고 판단합니다 (16절).

둘째, 신비주의자들은 표적에만 관심을 보일 뿐 예수님 말씀이나 제 자됨에는 관심이 없습니다(16절)

셋째, 현실적인 사람들인 시각장애인의 부모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시인하면 출교당하게 되는 현실을 두려워합니 다(20~23절).

넷째, 치유받은 시각 장애인은 위협 속에서도 예수님을 선지 자라고 당당하게 고백합니다(17절).

자신이 믿는 바를 용기 있게 말하는 사 람이 진짜 신앙인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치유 표적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식일에 병자를 고친 것에 대한 전통적 율법 해석과 충돌이 있었음 그래서 범법 행위로 간주하고 정죄하려고듬, 이단으로 간주한 것임

내가 하나님 은혜보다 앞세우는 율법의 잣대는 무엇인가요?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책망한 이유는 율법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율법을 자기 의로 삼아 하나님보다 앞세웠기 때문이다.

은혜는 행위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된다.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 하나님의 공의를 기준으로 삼는지?

상대의 신앙 수준, 행위, 생활 방식을 보며 은근히 우월감을 느끼거나, 그들의 부족함을 지적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는지?

은혜보다 ‘올바름’과 ‘규칙 준수’에 초점을 맞추지는 않는지?

기도나 봉사, 성경 읽기를 꾸준히 하지 못하면 스스로 하나님께 덜 인정받는다고 느끼는지?

반대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하나님께 더 사랑받을 것이라 생각하는지? 죄를 짓는 사람을 보면 연민과 사랑이 먼저인가, 정죄하고 싶은 마음이 먼저인지? 죄인을 대할 때 “나는 저러지 않는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지? 나는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종교적 규칙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지? 기계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는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는지? 형식적으로 신앙의 틀을 지키면서도 실제로 하나님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율법의 잣대란 하나님의 은혜보다 율법을 앞세워 스스로 또는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을 말한다. 본래 율법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것이지만(로마서 7:12), 인간이 이를 잘못 적용하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왜곡된 잣대가 될 수 있다.

  1. 율법의 잣대란?

율법의 잣대는 다음과 같은 형태로 나타난다.

  1. 행위 중심적 판단
    1. 신앙의 본질보다 ‘얼마나 기도했는가, 얼마나 성경을 읽었는가, 얼마나 봉사했는가’ 같은 외적인 행위로 신앙의 깊이를 평가하는 태도.
    2. 신앙의 기준이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내가 얼마나 잘 지키고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질 때, 율법의 잣대가 작동한다.
  2. 자기 의(義) 세우기
    1. ‘나는 이런 죄를 짓지 않으니까 하나님 앞에서 괜찮다’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의롭다고 여기는 마음.
    2. 반대로, ‘나는 이것을 잘 못 지켰으니 하나님께 벌받을 것이다’라는 두려움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도 포함된다(로마서 10:3).
  3.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사용
    1. ‘저 사람은 기도를 저렇게밖에 안 하네.’
    2. ‘저 사람은 신앙생활이 부족해. 저런 태도로 어떻게 믿음이 자라겠어?’
    3. 율법을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정죄하면, 자신도 모르게 바리새인의 길을 가게 된다(마태복음 7:1-5).
  4.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께 인정받으려는 태도
    1. 하나님이 이미 사랑과 은혜로 우리를 받아주셨음에도, ‘더 많은 규칙을 지켜야만 하나님께 더 큰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 믿는 마음.
    2. 이는 마치 탕자의 형이 아버지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고 ‘나는 항상 충성했는데 왜 나에게는 이런 은혜가 없지?’라고 원망하는 것과 같다(누가복음 15:29-30).
  5. 율법의 잣대를 내려놓는 법
    1. 율법보다 예수님의 은혜를 붙잡아라 예수님은 ‘나는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마태복음 9:13)라고 하셨다. 율법 준수보다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더 중요하다.
    2. 자기 의를 내려놓고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라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의롭게 된다(갈라디아서 2:16).
    3. 남을 판단하지 말고, 은혜를 베풀라 하나님이 내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며 다른 사람에게도 같은 은혜의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골로새서 3:13).

율법은 원래 좋은 것이지만, 은혜 없이 사용될 때 인간의 의를 세우는 잣대가 된다. 율법의 잣대가 아니라, 예수님이 베푸신 은혜로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계속되는 바리새인들의 심문 9:24~34 바리새인들은 치유받은 사람을 다시 불러 집요하게 심문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24절)라는 말은 진실을 말하라는 뜻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안식일 법을 위반한 죄인으로 단정하고, 죄인이 하나님의 엄청난 표적을 일으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깁니다.

치유받은 사람은 반복되는 심문에 "당신들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싶은가?"라고 반문합니다(27절) 그 러자 바리새인들은 욕을 하면서 자신들은 모세의 제자라고 말합니다.

치유 받은 사람은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임과 하나님 뜻을 행하시는 분임을 분명히 선언합니다(31~33절).

치유받은 사람의 확실한 신앙 고백은 종교 지도자들의 불신앙과 대조됩니다.

치유받은 사람이 계속되는 심문에도 자신의 확신을 꺾지 않은 이유는 무엇 인가요?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직접 보고 들어도 결코 믿지 않는다.

미련하고 멍청한 사람은 오직 직접 경험해봤을때 그 사실과 진실을 굳게 믿는다.

혜로운 사람은 듣고 배우지만, 어리석은 자는 직접 겪어야 깨닫는다

잠언 12:15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 →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방식이 옳다고 고집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남의 조언을 듣고 배운다.

잠언 22:3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거니와, 어리석은 자들은 나아가다가 해를 받느니라.” → 지혜로운 사람은 위험을 미리 알고 피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직접 당해야 깨닫는다.

잠언 26:11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의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 → 어리석은 사람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직접 고통을 겪고 나서야 후회한다.

잠언 29:1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멸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 → 계속 경고를 듣고도 고집을 부리는 사람은 결국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지혜로운 자는 듣고 배우지만, 미련한 자는 고집을 부린다

전도서 7:5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어리석은 자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 → 지혜로운 사람은 충고를 통해 배울 수 있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듣기 좋은 말만 찾아다닌다.

성경은 지혜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의 조언과 경고를 듣고 배우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직접 고통을 겪어야 깨닫는다고 반복해서 가르친다. 세상의 속담과도 일맥상통하는 개념이지만, 성경은 단순한 지혜를 넘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것이 가장 큰 지혜라고 가르친다.

이처럼 어리석은 나를 위해서 예수님이 친히 인격적으로 성경의 말씀으로 나를 찾아와주셨다.

그럼에도 나는 죄에 초점을 두고, 행위와 율법에 시선을 두고 하나님과 예수님 사랑을 목도하지않고 한눈파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예수님, 당신의 진정한 진리를 또 깨닫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떠나면 이내 왜곡되는 내 마음을 정결케 하소서.

나의 간증은 무수히 많지만 나는 직접 경험한 나의 하나님이 계신다.

우주보다 넓으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라.

깊은 만물의 주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내 인생에서 직접 경험한 기적이 있기 때문에 이 사실을 결코 부정할 수가 없었다.

어느 때에든 예수님을 주로 믿고 시인하는 일은 부당함이 따랐다.

그 당시에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생명을 거는 일이었다.

그러나 눈뜬자는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확신했고 진리를 따르는 길을 선택했다.

이처럼 직접 경험한 나의 하나님, 나의 예수님, 나의 성령님께서 친히 성령의 불로 찾아오시고 성령 충만 주셔야 우리가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입지 않으면, 지식으로만 하나님을 알게 되고, 상황이 흔들릴 때 쉽게 넘어질 수 있다. 그러나 **“나의 하나님, 나의 예수님, 나의 성령님”**께서 친히 역사하시고 성령의 불로 우리를 채우시면, 어떤 시험과 핍박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 위에 서게 된다.

직접 경험한 하나님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준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봅니다.” (욥기 42:5)

우리도 하나님을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불로 직접 체험할 때 믿음이 더욱 견고해진다.

성령 충만이 흔들리지 않는 힘이 된다 제자들도 처음에는 두려워 숨어 있었지만, 성령 강림 후에는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8)

성령의 불이 임하면, 두려움이 사라지고 세상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생긴다.

성령께서 친히 인도하신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시고, 성령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인도하신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한복음 14:26)

그러므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성령 충만이다. 성령께서 내 안에서 직접 역사하실 때, 세상의 풍파와 시험이 와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

🔥 “주님, 나에게 성령의 불을 부어 주시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주소서!”

내가 신앙 면에서 양보할 수 없는 일은 무엇인가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 순종.

다른 어떤 것도 이것보다 앞설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구원이 없음을 믿는 것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사도행전 4:12)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라는 진리는 절대 양보할 수 없다. 세상의 타협이나 인간적인 논리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나의 구원의 근거임을 확신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최우선으로 두는 것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시나니” (히브리서 4:12)

성경을 내 삶의 절대적 기준으로 삼고, 내 생각이나 세상의 가치관과 타협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것

“너희가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라디아서 5:16)

성령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 기도, 말씀, 순종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성령님의 인도하심 없이 인간적인 판단과 감정대로 행동하는 것은 신앙의 방향을 잃게 만든다.

거룩한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베드로전서 1:16)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죄를 가볍게 여기거나, 세상의 타락한 가치에 맞추려는 타협은 절대 있을 수 없다.

신앙 공동체와 형제 사랑을 지키는 것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모이는 것을 폐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브리서 10:25)

교회 공동체와 신앙의 형제들을 섬기고 사랑하는 것은 신앙의 본질이다. 갈등이 있더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는 것은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다.

양보할 수 없는 것은 많지만, 결국 핵심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 성경을 삶의 기준으로 삼는 것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 거룩을 지키는 것 신앙 공동체와 사랑을 실천하는 것

이것들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신앙의 본질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유혹 앞에서도 이것들을 굳게 지킬 때, 진정으로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갖게 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비록 연약하여 나는 넘어집니다.

참 부끄러운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오직 예수님만 바라봐야하는데 자꾸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려서 할말이 없습니다.

또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또 쓰러질 지라도

주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저는 안됩니다.

두렵고 떨립니다. 이래선 천국 못 갈것 같고 행위나 치성으로 자기 만족을 얻고 싶기도 합니다.

율법을 모두 지키면 천국 갈 것 같은 기분도 듭니다.

혹여 주님이 책망하시지 않을까 걱정되기도합니다.

나 같은 죄인도 과연 천국에 갈 수 있느냐? 라는 질문에

오직 그리스도 예수 십자가만을 의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내가 죄인일 때부터 이미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내 죄가 아무리 크더라도 예수님의 보혈은 그것보다 훨씬 더 큰 것을 믿습니다.

천국은 내가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며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받는 하나님의 선물임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이미 영원한 생명을 얻었음을 믿습니다.

나는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음을 믿습니다.

네가 넘어지고, 실패하고, 죄를 짓더라도, 예수님의 은혜가 너를 붙드심을 강하게 믿습니다.

나는 이미 예수님의 피로 천국의 시민권을 받았습니다. 내가 할 일은 그 은혜를 믿고, 붙들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뿐입니다.

네가 죄를 지었기에 천국에 못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네가 누구든 어떤 죄인이든, 천국은 확신합니다.

나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에 걸맞는 인생을 살아낼수 있도록

오늘도 항상 도와주시는 성령님께 감사합니다.

또한 강하게 불처럼 내게 임하셔서 독수리 날개치는 올라가게 하소서.

나의 영원한 구세주이신 오직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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