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8:31~32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사람만이 진정한 자유를 누립니다(롬 8:1~2).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 말씀에 거해야 합니다. ‘거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노’는 ‘함께 산다’는 의미로(31절), 예수님 말씀과 늘 함께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 말씀에 거하면 참제자가 됩니다. 예수님의 참제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릅니다(마 16:24). 또한 예수님 말씀에 거하면 진리를 알게 됩니다. 진리는 다름 아닌 예수님 자신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라는 말씀을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이 주시는 참된 자유를 누립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자유는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얻을 수 있나요? 진정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 내가 추구할 것은 무엇인가요?
하나님 아들인가, 죄의 종인가 8:33~47
자유를 누리는 ‘하나님 아들’이 있고, 자유가 없는 ‘죄의 종’이 있습니다. 죄의 종은 죄를 범하는 자입니다(34절). 죄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서 벗어난 모든 것,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죄의 종은 그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집에 거하지 못합니다(35절). 회개하는 마음이 없기에 하나님께 돌아오지도 않습니다. 죄의 종 안에는 예수님 말씀이 없습니다(37절). 예수님 말씀은 생명인데, 죄의 종 안에는 생명이 없기에 죽음의 죄만 있습니다. 죄의 종에게 아버지는 마귀입니다(44절). 그래서 마귀가 심어 주는 욕심대로 행하고 살인하며 거짓말을 합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진리를 알지 못하고 구원에서 멀어지는 죄의 종으로 멸망하고 맙니다.
하나님 아들과 죄의 종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죄의 종으로 살지 않으려면 나는 무엇을 멀리해야 하나요?
직관이 아닌 믿음으로
오늘날 많은 사람이 ‘직관의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간다. 직관적 느낌, 눈앞에 보이는 것대로만 판단하며 사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살아가면 망할 수밖에 없다. 태초의 선악과 사건이 그것을 잘 보여 준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보고,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까지 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열매를 먹고서는 어리석은 자가 되고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 상황이 어떻게 보이고 어떻게 느껴지든, 감각적인 또는 이성적인 직관으로만 판단하고 행동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죄인들과 함께 망하는 죄악의 길이다. 직관으로 보고 이해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먹음직해 보인다고 해서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듯, 좋아 보인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사탄은 모든 것을 직관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라고 속삭인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직관을 의지하지 말고,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행동하라고 하신다. 직관을 의지하는 사람은 바람이 불면 휩쓸려 가는 겨와 같은 삶을 살게 된다. 그러나 진리이신 주님께 믿음의 뿌리를 내린 사람은 열매 맺는 삶, 바르고 견고한 삶을 산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직관이 아니라 ‘믿음’이다. 주님의 주권을 믿는 것이다. 이 진리 안에 속해 있을 때 우리는 가장 자유롭고 안전하다.
그리스도인으로 잘 사는 법 / 이태희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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