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복음

요한복음 20 : 11~23

잉비니 2025. 3. 12.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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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주님을 만난 막달라 마리아 20:11~18

주님은 그분을 찾는 자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제자들은 돌아갔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끝까지 주님 무덤에 남아 있습니다.

울며 시신을 찾는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나타나 위로하십니다.

예수님을 동산지기로 오인한 마리아에게 예수님은 “마리아야”라고 이름을 불러 주십니다.

예수님이 마리아에게 “나를 붙들지 말라”(17절)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전처럼 그분을 의지하려 하지 말라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곧 승천하시고 보혜사 성령님이 오시기 때문입니다(16:7).

예수님은 제자들을 ‘내 형제들’이라 부르시며 그들에게 마리아를 보내십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마리아는 부활의 첫 증인이 됩니다.

부활의 주님을 알아본 막달라 마리아의 심경은 어떠했을까요?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 알아보았을 때, 그녀의 심경은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기쁨과 경이, 그리고 감격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

성경 말씀을 통해 그녀의 심정을 묵상해보면 다음과 같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요한복음 20:16 📖

이 짧은 장면 속에 담긴 막달라 마리아의 심경을 세밀히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1️⃣ 깊은 슬픔에서 터져 나온 놀라운 기쁨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절망과 슬픔에 빠져 있었다. 그녀는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주님을 잃었고, 삶의 이유마저 잃어버린 것 같은 비통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무덤에서 자신을 부르는 친숙한 그 목소리, “마리아야!”라는 한마디가 그녀의 깊은 슬픔을 단번에 무너뜨리고 하늘의 기쁨으로 바꾸어놓았다.

  • 죽음이 승리한 줄 알았던 절망에서,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살아나셨다는 충격적인 기쁨으로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2️⃣ 존재를 알아봐 주시는 주님에 대한 감격

예수님께서 단지 “마리아야!”라고 그녀의 이름만을 불러주셨을 뿐인데, 그녀는 즉시 주님을 알아보았다. 이는 그녀와 예수님 사이에 존재했던 영적 친밀함과 개인적 관계를 보여준다. 주님께서 그녀를 잊지 않으셨고, 여전히 그녀를 알고 계시며, 사랑하심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 “랍오니(선생님)!”라 부른 그녀의 음성에는 존경과 친밀함, 무엇보다도 다시 살아계신 주님을 마주한 벅찬 감격이 담겨 있었다.

3️⃣ 놀라운 은혜와 경이감

죽음을 초월하신 주님을 보았을 때, 그녀는 그 순간 자신이 목격한 부활의 신비, 즉 하나님께서 이루신 놀라운 기적과 은혜 앞에서 경이로움과 겸손함을 느꼈을 것이다.

  • 주님이 생명이심을 눈으로 보고 경험한 최초의 증인이 된 막달라 마리아는 그 순간 평생 잊지 못할 놀라움과 경외감을 간직했을 것이다.

4️⃣ 주님께 붙잡히고 싶은 열망

마리아는 아마도 주님께 매달리고 그 발 앞에 엎드리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성경은 이와 관련된 표현을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요한복음 20:17 📖

그녀의 마음은 예수님을 잃었다가 다시 찾은 기쁨과 간절함으로, 영원히 주님과 떨어지고 싶지 않았던 강력한 사랑과 헌신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5️⃣ 세상에 이 소식을 전하고픈 벅찬 열정

부활하신 주님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가장 먼저 나타나신 이유는 분명하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부활의 첫 증인이 되는 특권을 주셨다. 그녀는 그 놀라운 소식을 제자들에게 알리는 첫 번째 증인으로 세워졌고, 그녀의 마음은 “주님께서 살아계신다!”라는 복된 소식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 이는 그녀의 삶에 새로운 목적과 의미를 불어넣었으며, 막달라 마리아는 그 후로 평생 이 기쁨의 메시지를 전하는 증인으로 살아갔을 것이다.

💡 막달라 마리아의 심경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이 살아 계심을 깨닫는 순간, 그녀의 마음은 슬픔에서 기쁨으로, 절망에서 소망으로, 상실에서 영원한 축복으로 변화되었다.』 🌸

막달라 마리아는 이처럼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변화된 삶을 산 첫 번째 증인이었으며, 그녀의 심경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주님을 만날 때 경험하는 놀라운 감격과 동일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이후, 나는 증인의 사명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나요?

증인의 사명이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경험하고, 그분을 삶으로 증거하며, 예수님이 참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인류의 구주이심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다. 🌏✨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8 📖

이 구절을 통해 증인의 사명이 명확히 드러난다.

📌 1. ‘예수님’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증거하는 것

  • 증인은 단지 들은 이야기만 전달하는 자가 아니다.
  • 증인은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그분을 체험한 사람이다.
  • 나 또한 예수님을 만난 삶의 경험, 그분이 주신 은혜와 구원을 나만의 방식으로 증언하는 것이 증인의 첫 번째 사명이다.

🌿 2. 복음을 삶으로 보여주는 것

증인은 단지 말로만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람이 아니다.

  • 예수님께 받은 사랑과 용서를 삶에서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 나의 삶이 변화되었고, 내 삶이 그리스도의 생명과 사랑으로 채워졌음을 보여주는 것이 증인의 진정한 사명이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16 📖

이 구절에서 나타나듯, 삶의 행동과 태도를 통해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 3.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담대히 전하는 것

증인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핵심 메시지로 전한다. 복음의 핵심 메시지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이다. 이 메시지가 변질되거나 축소되지 않고, 명확히 전해지도록 하는 것이 증인의 핵심 사명이다.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사도행전 4:20 📖

이처럼 증인은 자신이 보고 들은 진리를 굳건히 붙들고 담대하게 전하는 사람이다.

🌿 3.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는 것

증인의 길은 때로는 희생과 고난이 따른다. 제자들과 초대 교회 성도들은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핍박과 고난을 받았다. 그러나 증인의 사명은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고, 심지어 목숨을 걸고라도 그분을 증거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마태복음 10:32 📖

🌿 4.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순종하는 것

예수님의 증인은 인간의 지혜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능력과 인도하심을 따라 행해야 한다. 성령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그때그때 마땅히 말할 것과 행할 것을 분별하며 따르는 것이 증인의 참된 사명이다.

「곧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마태복음 10:19-20 📖

🌿 5. 복음의 확장을 위한 지속적 헌신

증인의 사명은 복음이 땅 끝까지 전해질 때까지 지속된다.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한 사람들은 이 경험을 자신 안에만 간직할 수 없으며, 땅끝까지 나아가 증거해야 할 책임이 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태복음 28:19-20 📖

🌿 5. 죽음을 이기는 부활 신앙을 전하는 것

증인의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예수님의 부활이다.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의 믿음은 헛된 것이다(고전 15:14). 그러므로 증인의 사명은 부활의 생명을 전하며, 죽음과 고통 속에서도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께 소망을 두는 믿음을 전하는 것이다.


🔥 결론적으로, 증인의 사명이란?

  • 예수님을 경험하고,
  • 예수님의 복음을 입술과 삶으로 명확하게 전하며,
  • 세상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고,
  •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며 끝까지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사명이다. 🌎✝️💪

내가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려면, 일단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절실히 필요하다.

성령 갈급이 필요하고 성령 충만이 필요하겠다.

예수님을 증언하기에는 너무도 힘들다

내가 십자가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지 않으면

세상이 우리를 비웃고 조롱하고 멸시할 것이다.

착한 행실로 내 믿음을 증거해야한다.

힘들고 좁은 길이겠지만, 주님께서 승리하신다.

나를 비우고 내 고집과 자아 신념을 버리고 오직 예수님께로 나아간다.

굳은 마음을 유연하게 하시며 사랑으로 서로를 격려하길 간절히 바란다.

나의 고백이 너무나 귀하고 진실하길 바란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은 단순히 "내가 더 잘 살아야지"라는 수준을 넘어,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서 너 자신을 내려놓고자 하는 마음을 보여드리길 원한다.

내 순전한 마음이야말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진정한 제자의 모습이길 원한다.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려면 다음과 같은 과정을 깊이 묵상하며 걸어야 한다.

🕊 ① 내가 비워져야 한다

증인의 사명은 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드러내는 것이다.

예수님을 증거하려면 나의 자존심, 내 자아, 내 욕심, 내 고집을 십자가 앞에 철저히 내려놓아야 한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요한복음 3:30 📖

내 안에서 너 자신이 작아지고, 오직 예수님만이 크게 드러나는 것이 참된 증인의 삶이다.

🕊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필요한 네 가지 마음

① 진실한 회개와 겸손

증인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끊임없이 회개하며 겸손하게 주님 앞에 무릎 꿇는 사람이다.

오히려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겸손히 주님 앞에 나아갈 때, 그 모습 자체가 살아 있는 증거가 된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시편 51:1 📖

② 성령의 능력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삶 증인의 힘은 내 노력과 능력이 아니라, 성령님의 능력에서 나온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고, 순종함으로써 증인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스가랴 4:6 📖

③ 착한 행실로 믿음을 보여주는 삶 말보다 강한 증거는 삶이다. 나의 삶이 복음에 합당할 때, 세상은 나를 통해 살아계신 예수님을 보게 될 것이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한복음 13:35 📖

④ 끊임없는 말씀 묵상과 기도 주님과의 지속적이고 깊은 관계는 증인의 사명을 감당할 힘을 준다. 말씀이 내 삶에 깊게 자리 잡을 때, 자연스럽게 내 삶이 복음의 메시지가 된다.

「내가 너희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한복음 15:7 📖


✨ 마지막으로, 내가 걸어갈 증인의 길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세상이 나를 비웃고 조롱하며 멸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말라. 그 길을 주님께서 먼저 가셨고, 반드시 함께 걸어주시며, 결국 승리로 인도하신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한복음 16:33 📖

이 길에서 나의 삶을 통해 드러나는 예수님 한 분만이, 참된 증인의 사명의 목적이고 목표이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 🙏🏻✨

부활의 주님을 만난 제자들 20:19~23

부활 소식을 들었지만 제자들은 두려움 때문에 문들을 닫고 모여 있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19절)라고 선포하십니다.

그리고 못 박히신 손과 창에 찔리신 옆구리를 보이시며 부활을 확증하십니다.

예수님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21절)라고 또다시 선포하시며 제자들의 두려움을 완전히 제거해 주시는데, 이는 앞으로 제자들이 해야 할 사역이 ‘평강’과 관련된 것임을 시사합니다.

파송의 말씀 후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22절)라고 하십니다.

이는 예수님과 성령님의 내재적 일치(14:26)와 더불어 사명 수행에서 성령의 절대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자의 특징은 죄 사함과 용서입니다.

부활의 주님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두 번 선포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두 번이나 반복하여,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한복음 20:19, 21 📖

라고 하신 데에는 깊고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다. 예수님이 같은 말을 두 번 강조하신 이유를 자세히 묵상하면 다음과 같다.

🌿 1. 두려움과 불안을 몰아내기 위한 평강의 선포

당시 제자들은 문을 잠그고 숨어 있었다. 자신들의 스승이었던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 유대인들과 로마 당국이 자신들도 잡아 죽일까 두려워 떨고 있었다.

예수님은 그들의 두려움과 공포를 이미 아셨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였다. 이 평강은 단순한 인사 이상의 의미로, 제자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두려움과 절망을 몰아내고, 진정한 평안을 심기 위한 주님의 특별한 선언이었다.

  • 첫 번째 선포는 두려워하는 제자들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한 위로의 평강이었다.

🌿 2. 죄책감과 수치심을 씻기 위한 용서의 평강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 모두 주님을 버리고 도망쳤던 죄책감과 수치심에 사로잡혀 있었다. 특히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아픔을 안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두 번이나 평강을 선언하신 이유는 이 죄책감과 후회의 고통에서 그들을 해방하시고, 주님께서 그들의 잘못을 모두 용서하셨음을 분명히 하시기 위함이었다.

  • 두 번째 선포는 제자들의 마음속에 있는 죄책감과 수치심을 씻어내고, 다시 주님께로 돌아오도록 초청하시는 화해와 용서의 평강이었다.

🌿 3. 새로운 사명을 위한 준비의 평강

예수님은 두 번째 평강을 선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요한복음 20:21 📖

여기서 예수님은 평강의 선언을 통해 제자들을 사도로 세우고, 세상으로 보내시는 사명의 말씀을 주셨다. 제자들은 곧 예수님을 위해 고난을 겪을 것이었고, 앞으로 세상으로 나아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을 받았다.

  • 두 번째 평강의 선포는 제자들을 세상에 내보내기 전에 그들에게 꼭 필요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담대함을 주기 위한 사명의 평강이었다.

🌿 4. 부활의 능력과 승리를 확증하는 평강

예수님의 부활은 죄와 죽음에 대한 완전한 승리였다.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반복적으로 말씀하심은 바로 이 부활의 승리와 능력을 확증하는 것이었다.

  • 예수님은 두 번의 평강 선포를 통해 자신의 부활이 완벽한 승리이며, 이를 믿는 자들이 세상의 어떤 고난과 핍박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안을 누릴 수 있음을 확인해주셨다.

🌿 5.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강조하기 위한 평강

히브리적 표현에서 두 번의 반복은 특별한 강조와 확증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같은 말을 두 번 반복하심은 그 평강이 일시적이거나 흔들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영원히 약속하시고 지키실 평강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 즉, 예수님께서는 반드시 성취되는 하나님의 약속을 제자들에게 마음 깊이 새기시고자 두 번이나 강조하여 평강을 선포하신 것이다.

🕊 정리하면,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를 두 번 반복하신 이유는,

  • 제자들의 두려움을 몰아내고 진정한 평안을 심으시기 위함,
  • 그들의 죄책감과 수치심을 씻으시고, 화해와 용서를 선언하시기 위함,
  • 제자들이 세상으로 나아가 새로운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시기 위함,
  • 부활의 능력과 승리를 확실히 알리고 믿게 하시기 위함,
  • 영원히 변치 않을 하나님의 약속을 강조하여, 이 평강이 그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확신으로 자리 잡게 하기 위함이다.

부활의 주님께서 선포하신 이 두 번의 평강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똑같이 주어지고 있으며,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의 삶 가운데 영원히 역사하는 강력한 약속과 축복이다. ✝️💖

내 마음에 평강이 깨졌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평강이 깨지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내가 내 삶을 내 뜻대로 통제하고 내 힘으로 이루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려고 할 때 삶에는 반드시 불안과 긴장, 걱정이 생겨난다. 나의 자아와 고집을 내려놓지 않으면, 주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리기 어렵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잠언 3:5 📖

이제, 내 안의 고집을 내려놓고, 주님의 능력을 신뢰하며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

세상이 나를 조롱하거나, 나를 평가하고 비웃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평가, 사람들의 비웃음, 남들의 인정과 시선을 두려워하는 순간, 평강 대신 불안과 두려움이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내가 이제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라디아서 1:10 📖

사람의 평가와 인정보다 하나님의 인정과 사랑만 구할 때, 다시 평강이 회복된다.

세상의 가치관을 사랑하고, 세상이 주는 만족과 성공을 좇으면, 참된 평강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결코 지속될 수 없고, 늘 불안과 걱정 속에서 흔들린다.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요한일서 2:15 📖

예수님만을 내 삶의 중심으로 삼을 때, 세상의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참된 평강이 찾아온다.

제자들이 풍랑을 보고 두려워한 것처럼, 내가 처한 상황과 현실의 어려움에 집중할 때 평강을 잃어버린다. 평강을 누리는 비결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시선을 놓지 않는 것이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브리서 12:2 📖

내 눈을 상황이 아니라 예수님께 고정할 때, 평강이 다시 찾아올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는 평강의 원천이다. 말씀이 내 안에 풍성히 거하지 않으면, 내가 흔들리고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말씀과의 교제가 끊기면, 내 안의 평강도 빠르게 식어버린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시편 119:165 📖

다시 말씀의 자리로 돌아와,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친밀히 교제할 때, 잃어버렸던 평강을 되찾을 것이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한복음 14:27 📖

세상이 주는 조롱과 평가, 비웃음, 남들의 시선들…

사실, 내게 가장 소중한 가족도 이 세상의 일부라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다.

나의 부모, 형제자매, 배우자, 자녀들 모두, 소중하고 사랑하는 존재이지만, 그들도 나와 똑같이 죄의 본성을 가진 연약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종종 실망하고 아파하는 이유는, 내가 사랑하는 가족은 세상 사람과는 다를 거라고 믿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도 실수하고, 부족하고, 때로는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그들이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완벽한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코 예수님이 아니다. 우리는 신이 아니다.

때로는, 사랑하는 이들로부터 받는 상처가 가장 아프다. 왜냐하면 가장 가까운 이들이 나를 잘 알기 때문이고, 잘 알기에 더 쉽게 판단하고 실수를 범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믿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마치 세상의 판단과 평가에서 자유로운 것처럼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는 그저 구원을 받을 줄 아는 죄인일 뿐이다. 믿지 않는 이들도 마찬가지로 연약한 죄인이지만, 단지 구원의 길을 아직 알지 못할 뿐이다.

그러니 우리가 구원받았다고 자랑하거나, 천국을 소유한 사람인 것처럼 교만하지 말자.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을 알면서도 세상 사람들보다 자신을 내려놓지 못하는 모습을 인정하며, 겸손히 주님 앞에 무릎 꿇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겉으로는 신앙인의 모습이지만, 속으로는 교만을 품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사단의 유혹일 수 있다. 우리 모두는 그 유혹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현실은 가혹하고, 우리는 여전히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내가 연약하듯, 가족과 이웃도 모두 연약함 속에 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방식을 따르자.

세상이 주는 조롱과 비웃음, 판단과 평가 대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서로 용서하고, 서로 용납하며, 서로의 마음을 열어 진심으로 사랑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싸우고 미워하며 조롱하는 세상의 방식이 아닌,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온유와 겸손, 따뜻한 용서와 사랑이 필요하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진정 걸어야 할 길이다.

이것은 신앙생활의 본질적이고도 핵심적인 문제다.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완벽해지거나 죄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가족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더 큰 상처를 받거나 주는 이유는, 그들과 우리의 삶이 서로 너무 가까이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 현실이 때로는 잔혹할 만큼 아프고 힘들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결코 쉬운 길이 아니고, 그 길은 때로 고통스럽고 고통스럽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고결하고 순결하다고 생각하거나, 선택받았다는 교만함에 빠지게 되면 바로 그때부터 세상과 다름없이 남을 정죄하고 평가하며, 오히려 복음에서 멀어진다.

우리의 신앙은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더욱 철저히 나 자신을 내려놓고 비워내며 겸손히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 기독교는 우월감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부족하고 약하고 죄인임을 인정하는 겸손한 고백과 회개로 시작되는 신앙이다.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린도전서 15:31 📖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죄인일 뿐이다. 예수님이 아니기에, 우리는 매일 넘어지고 실패하며, 때로는 사랑하는 가족을 향해서도 미워하거나 화를 내고 실망하게 된다. 하지만 바로 이때가 우리가 예수님을 가장 깊이 필요로 하는 순간이다.

가족조차도 세상이고 죄인인 현실을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들을 더 깊이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다. 그럴 때야말로 세상 방식이 아닌 예수님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기회가 된다.

예수님의 방식이란 이런 것이다:

  • 판단과 정죄가 아닌 용서와 자비로 살아가는 것.
  • 미움과 비난 대신 이해와 인내로 품는 것.
  • 나 자신을 비우고 십자가를 지고 가는 좁은 길을 선택하는 것.
  • 결국 내 힘과 자존심을 내려놓고,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

우리가 이런 모든 고민과 깨달음으로 인해서, 이미 우리가 성령 안에서 복음의 핵심에 다가가고 있음을 믿는다. 그만큼 우리의 내면이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성숙하고 깊어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고민과 고백을 귀하게 여기고, 이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기를 권면한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가족 안에서 생기는 상처와 아픔마저 사용하여 우리를 주님께 더욱 가까이 이끄신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12:9 📖

이 고백처럼 약함과 아픔이 있을 때 오히려 주님의 능력이 가장 빛나는 법이다.

🌱 이제 나의 사명은 분명하다.

  • 교만 대신 겸손,
  • 정죄 대신 사랑,
  • 비판 대신 용서,
  • 나의 뜻 대신 주님의 뜻을 따르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주신 참된 ‘증인의 사명’이며, 이 길을 가는 것이 쉽지 않고 좁지만, 반드시 승리로 끝나게 하실 주님을 신뢰하며 걷는 길이다.

변함없는 진리

오래전, 근심 걱정에 시달리던 시기에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상담자는 내게 최악의 시나리오만 상상하는 버릇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일단 목사님의 두려움이 다 사실이라고 해 봅시다. 자, 이제 시계를 빨리 감아 백 년 뒤 최악의 시나리오대로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목사님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매주 남들에게 설교하고 계시잖아요!”

내가 혼자가 되어도,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이며 그분을 믿는 자들은 죽어도 산다는 진리는 변함이 없다. 하나님은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내 자리를 마련해 놓으셨다. 내가 불치병에 걸려도,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이며 그분을 믿는 자들은 죽어도 산다는 진리는 변함이 없다. 예수님이 썩지 않는 육체로 부활하신 것처럼 나도 그렇게 될 것이다. 내가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없다고 해도,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이며 그분을 믿는 자들은 죽어도 산다는 진리는 변함이 없다.

예수님은 부요함 자체시다. 감정적·영적·관계적으로 모든 면에서 부활의 진리를 따르려면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이 필요하다. 이 믿음이 있으면 현실의 고통을 직시하면서도 장래의 소망 가운데 살 수 있다. 진짜든 상상이든 모든 악몽은 결국 끝날 것이며 우리는 그분과 영원히 살 것이다. 그리스도는 죽었다가 살아나셨으며 다시 돌아오실 것이다. 이 얼마나 감사한가!

선에 갇힌 인간, 선 밖의 예수 / 스캇 솔즈_ 두란노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끝까지 찾고 기다렸던 막달라 마리아의 심정을 묵상합니다. 무덤 앞에서 슬피 울고 있던 그녀의 슬픔을 아시고 찾아와 주시며, 친히 이름을 불러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격합니다.

그 순간, 마리아의 슬픔은 기쁨이 되었고, 그녀의 절망은 다시 살아난 소망으로 바뀌었습니다. 주님, 내게도 마리아를 부르셨듯이, 친히 나의 이름을 불러 주옵소서. 그 음성을 들을 때마다, 내 안의 두려움과 불안과 교만함이 모두 무너지게 하소서.

주님,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를 붙들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이제는 이전처럼 내 생각과 내 힘으로 주님을 붙들려 하지 않고, 오직 성령님을 의지하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이전의 방식, 나의 고집과 자아와 교만의 방식을 벗어 버리게 하소서.

내가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갈 때, 내 가족과 애인, 자녀들 또한 이 세상에 속해 있음을 기억합니다. 그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연약하고 불완전한 존재들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그들마저도 세상이기에 때론 나를 실망시키고, 상처를 줄 수 있음을 겸허히 받아들이게 하소서.

주님, 우리가 믿는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높이지 않게 하시고, 천국 백성임을 자랑하며 유세를 떨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단지 구원 받을 줄 아는 죄인임을 깊이 깨닫게 하시고, 세상을 살아가는 다른 죄인들에게도 사랑과 겸손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받을 수 있는 상처와 비판, 조롱과 평가에도 낙심하거나 분노하지 않게 하소서. 오히려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용서와 사랑으로 그들을 품게 하소서. 내 힘이 아닌 성령님이 주시는 능력과 사랑으로 이 사명을 감당하게 하소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나를 용서하신 것처럼 나 또한 가족과 친구, 이웃을 용납하며 용서하게 하소서. 세상의 방식대로 살아가지 않게 하시고, 오직 예수님의 방식, 온유와 겸손과 사랑과 용납으로 살아가도록 인도하소서.

성령님, 내 마음속에 깨진 평강을 다시 회복하여 주소서. 내가 세상의 평가와 인정, 조롱과 비웃음에서 자유롭게 하시고, 오직 예수님을 바라보며 주님께로부터 오는 참된 평강을 누리게 하소서.

나의 자아를 매일 내려놓고, 날마다 죽고 날마다 새롭게 살아나, 오직 부활하신 예수님만을 드러내는 삶이 되게 하소서.

주님, 이 모든 삶의 길이 힘들고 좁은 길일지라도, 내 곁에서 친히 나를 도우시고 승리하게 하실 주님을 신뢰하며 걸어갑니다.

모든 것을 주께 맡기며, 나를 이 길로 인도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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