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제사장들이 가이사에 대한 충성을 빌라도에게 강조한 이유는 무엇인가 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하기 위함
내 주변에서 바른 판단을 흔드는 요소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핵심적 요소를 말하자면 죄악이 나의 바른 판단을 막게한다.
특히, 타인의 죄에도 넘어지곤 하는데,
타인의 죄는 극도의 이기심과 복수심응 불러 일으킨다.
판단을 흐리게한다.
내 죄보다 타인의 죄가 더 큰 쓰라림을 초래하므로 내가 남에게는 결코 내 죄로 인해서 실족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겠다.
또한 타인의 죄는 그들의 죄인 것, 회개를 촉구하고 기도하고. 나는 내 신앙이나 잘 지키자.
잘 하지도 못하면서 남 챙기면 가랑이 찢어진다.
오직 성령님께서 내 대신 행하셔야 가능한 것이다.
내려놓고 주님을 찬양합시다.
예수님이 혐오스러운 십자가 형벌을 오롯이 감당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혐오와 저주의 상징인 십자가죽음을 통해 죄문제를 해결하시고 우리에게 새 생명을 선물하기 위함
지금 내가 겪는 고난은 예수님의 고난에 비하면 어느 정도인가요?
무한대의 고난과 고통을 겪으셨는데. 그럼 내 고난은 0이다.
아무 고통도 없게 만드신다.
십자가 앞에서 내 고통과 내 환난을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리면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아파봤자 누군가가 죽거나 누군가가 배신했거나 사랑이 깨졌거나 그런 부류이다.
십자가 앞에 두면 아무 것도 아니다. 애처로울 정도로 아무 것도 아니다.
그래서 십자가 앞에 인생을 두지 않는 사람들은
감정에 휘둘리고 영원하지 않는 것을 쫓는 다. 넓은 길을 택한다.
하지만 십자가 앞에 인생을 두는 사람들은
그 어떤 것에도 휘둘리지 않는다. 영원한 것을 쫓는다. 좁은 길을 택한다.
그것이 예수님의 정도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예수를 안다고 믿었다고 한들, 좁은길을 행하는 것은 어렵다.
남의 십자가는 져줄수 없으나 단지 함께 있어줄 수는 있다.
그리고 십자가를 전도할 수 있다.
그 길이 아무리 험하고 어려울지라도 우리는 해야한다.
세상 기준에서 인간 기준에서는 말도안되는 일이지만
성령님께서 도와주시면, 충분히 행하고도 남는다.
그 이후에는 믿음이 성장해있는 나 자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은 튜토리얼이고 나중에 예수님의 신부로서 진정한 사랑을 만날 것이다.
그럼 이 세상은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허무주의가 아니라, 비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예수님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이 진리고 현실이다.
냉정해보이는가? 정녕 가치 있는 것은 예수님 빼고는 없다.
그런 가치있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하고 죽으셨다.
이 사실을 믿고 있다면, 하루 속히 예수님을 믿고 구원에 이르렀으면 좋겠다.
우리는 언제 죽을지 아무도 모른다.
'신약 > 요한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한복음 19 : 31~42 (0) | 2025.03.10 |
---|---|
요한복음 19 : 23~30 (0) | 2025.03.09 |
요한복음 19 : 1~13 (0) | 2025.03.07 |
요한복음 18 : 28~40 (2) | 2025.03.06 |
요한복음 18 : 15~27 (0) | 2025.03.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