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부인하는 베드로 18:15~18
위기 때 드러나는 신앙이 진짜 신앙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죽을지언정 결단코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마 26:35).
그러나 실제 상황에서 문을 지키는 여종과 불을 쬐던 사람들이 그가 예수님의 제자임을 알아보자 베드로는 “나는 아니라.”라고 부인하고 맙니다.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말고의 친척이 그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하자,
베드로는 세 번째로 저주하고 맹세하며 부인합니다(마 26:74).
그러자 곧 닭이 웁니다(13:38).
위기 앞에서 인간은 누구나 연약합니다.
베드로처럼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자만심을 버리고 겸손히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위기 앞에서 베드로의 믿음은 어떻게 드러났나요?
베드로의 믿음은 여러 위기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났다. 그는 때로는 담대한 신앙을 보였지만, 때로는 두려움과 연약함 속에서 흔들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 속에서도 예수님께 대한 그의 사랑과 헌신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1. 풍랑 속에서 예수님을 향한 믿음 (마태복음 14:28-31)
- 베드로는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믿음으로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말했다.
-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물 위를 걸었지만, 바람을 보고 두려워하며 빠져들기 시작했고, 예수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셨다.
- 이는 베드로가 주님을 향한 믿음으로 행동했지만, 위기의 순간에 두려움으로 인해 흔들렸음을 보여준다.
2.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결단과 연약함 (마태복음 26:33-35, 69-75)
-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예고하셨을 때, 베드로는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장담했다.
- 그러나 위기가 닥쳐 예수님이 체포되었을 때,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며 두려움에 무너졌다.
- 닭이 울자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라 통곡하며 회개했다.
3.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재회 (요한복음 21:15-17)
- 예수님의 부활 후, 베드로는 다시 갈릴리에서 어부로 돌아갔지만, 예수님은 그를 찾아오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 물으셨다.
- 이는 베드로의 세 번 부인한 실패를 회복시키는 과정이었고, 그는 다시 예수님을 따를 결단을 내렸다.
4. 성령 강림 후 담대한 믿음 (사도행전 2:14-41)
- 성령을 받은 이후, 베드로는 완전히 변화되어 담대하게 예수님을 증거하며 복음을 전파했다.
- 오순절 설교를 통해 많은 사람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며 교회가 시작되었다.
- 이후에도 공회 앞에서 예수님을 담대히 증언하며 핍박 속에서도 믿음을 지켰다(사도행전 4:8-20).
베드로의 믿음은 처음에는 흔들렸지만, 결국 회복되고 더욱 굳건해졌다. 위기 속에서 연약함이 드러났지만, 주님께서는 그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다시 세우셨다. 그의 삶은 "믿음이 때로 흔들릴 수 있지만, 예수님을 끝까지 의지하면 회복될 수 있다"는 중요한 교훈을 보여준다. 💡
나는 어떤 상황에서 내가 그리스도인임을 밝히길 꺼리나요?
딱히 없다. 지금까지 살면서 예수님 안 만나서 힘든 점이 더 많았다.
전혀 나는 하나님 앞에서 십자가 앞에서 부끄럽지 않고 당당히 살고자한다.
죄인 앞에서 내가 꿀릴게 뭐가 있는가? 나는 예수님의 제자이다.
세상이 뭐라 하든, 죄인이 나를 조롱하든, 내가 예수님을 만난 이상 예수님의 이름을 숨길 이유가 없다.
나는 죄에서 자유롭게 되었고, 세상의 눈치 볼 필요가 없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는데,
그 은혜를 입은 내가 세상 앞에서 움츠러들 이유가 무엇인가?
"사람이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그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마태복음 10:19-20)
나는 예수님의 제자다.
십자가 앞에서 나는 부끄러울 것이 없다.
세상 앞에서 나는 당당하다.
어디서든 예수님의 이름을 선포한다.
🔥 "나는 예수님의 제자이다!" 🔥
굳이 이 질문을 스스로 깊이 묵상해 보면, 내 믿음이 가장 흔들리는 순간과 신앙을 드러내기 어려운 이유를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몇 가지 가능성을 점검해 보자.
직장,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신앙을 밝히면 ‘너무 독실한 사람’, ‘고리타분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받을까 걱정할 때가 있다. 혹은 사회적으로 불리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을 때,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내길 주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를 부끄러워하리라" (마가복음 8:38)
내 행동이 신앙과 일치하지 않을 때 내 삶이 신앙적으로 완전하지 않거나, 나도 죄를 짓고 실수하는데 ‘내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자격이 있을까?’ 하고 스스로 주저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분노하거나 실망을 줄 만한 행동을 한 후,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밝히면 오히려 ‘위선적’이라는 말을 들을까 두려울 때가 있다.
하지만 신앙은 완벽함이 아니라,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따라가려는 삶이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고린도후서 12:9)
공격받거나 논쟁이 생길까 두려울 때 요즘 세상에서 신앙을 밝히면 논쟁으로 이어질 때가 많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공격적으로 "과학과 신앙이 충돌하는데 어떻게 믿느냐?", "기독교가 왜 이렇게 위선적이냐?" 같은 질문을 던질 때, 내가 준비되지 않은 것 같아 신앙을 드러내는 것을 피하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수님도 세상에서 미움을 받으셨고, 우리도 같은 길을 가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요한복음 15:18)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손해로 작용할 때 어떤 상황에서는 신앙을 밝히면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비즈니스에서 특정 거래를 잃거나, 인간관계에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있을 때 신앙을 숨기고 싶어질 수 있다. 혹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면 더 높은 도덕적 기준을 요구받을까 봐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고, 우리가 믿음으로 결단할 때 책임져 주신다.
"오직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33)
신앙을 밝히는 것이 불필요하거나 부담스럽다고 느낄 때 "굳이 여기서 신앙을 드러낼 필요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며 침묵할 때도 있다. 가족이나 친구들 사이에서 이미 관계가 복잡한 경우, 신앙을 드러내면 더 큰 갈등이 생길까 봐 조용히 있을 때가 있다. ‘말하는 것보다 행동으로 보여 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고 합리화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복음은 행동뿐만 아니라 말로도 선포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히브리서 13:6)
나는 예수님의 제자이다!
대제사장의 심문 18:19~24
예수님의 체포는 한밤중에 불법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 안나스(18:13)가 먼저 예수님을 심문합니다.
그가 예수님의 제자들과 그분의 교훈에 대해 심문한 이유는 예수님이 정치적으로 제자들과 반란을 도모했는지,
종교적으로 율법에 반하는 것을 가르쳤는지 확인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21절)라며 그분의 말을 들은 자들에게 물어보라고 하십니다.
답변을 해도 그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곁에 있던 아랫사람이 손으로 예수님을 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무죄를 당당히 밝히시며 항의하십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셨다는 사실을 믿지 않기에, 안나스도 그의 아랫사람도 모두 불의를 일삼습니다.
안나스의 심문에 응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어떠했나요?
안나스 앞에서 예수님께서 보이신 모습은 침착하고 위엄 있는 태도였다. 그분은 억울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변호하려 하지 않으시고, 진리에 충실한 태도로 답변하셨다. 또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억울함을 호소하기보다 의연하게 반응하셨다.
📖 1. 예수님은 안나스 앞에서 조롱과 부당한 심문을 받으셨다
- 예수님께서 체포되신 후, 먼저 대제사장 안나스에게 끌려가셨다(요한복음 18:12-14).
- 안나스는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 중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고, 전직 대제사장이었다.
- 그는 예수님을 직접 재판할 권한이 없었지만, 종교적 권위를 이용해 먼저 예수님을 심문했다.
📖 2. 예수님은 자신의 가르침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졌음을 강조하셨다
📍 요한복음 18:19-21
"대제사장이 예수에게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하여 물으니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나는 모든 유대인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은밀하게 아무 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게 들은 사람들에게 물어보라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그들이 아느니라."
- 예수님은 자신이 공개적으로 가르치셨으며, 은밀하게 무언가를 꾸미지 않으셨음을 밝히셨다.
- 이는 예수님께서 진리를 숨기지 않고 증거하셨음을 강조하는 태도였다.
- 또한, 심문이 정당하지 않음을 드러내셨다.
- 유대인의 법에 따르면, 피고가 스스로 증언하는 것이 아니라 증인들의 증언이 먼저 있어야 했지만, 안나스는 예수님을 직접 심문했다.
- 이는 불법적인 재판이었음을 의미한다.
📖 3. 예수님은 부당한 폭력에도 온유한 답변을 하셨다
📍 요한복음 18:22-23
"예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매 곁에 서 있던 하속 하나가 손으로 예수를 쳐 이르되네가 대제사장에게 그같이 대답하느냐 하니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그 잘못한 것을 증언하라바르게 말하였으면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시더라."
- 예수님이 대제사장에게 무례하게 말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하속은 예수님을 손으로 쳤다.
- 예수님은 이에 대해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으시고, "내가 잘못 말했다면 그것을 증언하라"며 조용히 진리를 말씀하셨다.
- 이는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지 않으시고, 온유하면서도 강직한 태도로 반응하신 모습이었다.
📖 4. 안나스는 예수님을 더 이상 심문하지 못하고 가야바에게 보냈다
📍 요한복음 18:24
"안나스가 예수를 결박한 상태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내니라."
- 예수님의 답변에 안나스는 더 이상 심문을 진행하지 못했다.
- 결국 그는 예수님을 당시 공식적인 대제사장이었던 가야바에게 넘겼다.
- 이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으셨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 예수님의 태도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 진리를 숨기지 않으셨다 – 예수님은 두려움 없이 자신의 가르침을 공개적으로 증언하셨다.
- 폭력과 부당한 대우 앞에서도 의연하셨다 –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으시고 진리를 온유하게 말씀하셨다.
- 억울한 상황에서도 믿음을 지키셨다 – 자신의 방어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집중하셨다.
💡 예수님의 태도는 우리가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진리를 따라 담대하게 서되, 분노나 감정적인 대응이 아니라 온유함과 인내로 반응해야 함을 가르쳐 주신다. 🙏✨
나는 어떤 대상 앞에서도 늘 하나님 말씀을 당당히 전하나요?
나는 어느 누구에게나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당당히 전했다.
완벽하거나 무조건 항상 전할 수는 없을지라도,
틈만나면 나는 전도하려고 최대한 노력한다.
누구는 못 믿고, 누구는 너무 예수 예수 하나님 하나님 한다 그러고, 누구는 은혜를 받고, 누구는 나를 시험에 들게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서 하나님의 진리는 빛처럼 밝고 소금처럼 맛을 내며 부폐를 방지한다.
사람들의 입을 막아버리게 하는 진리의 빛이 있다.
그러므로 나는 담대히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 성경 말씀을 당당히 전한다.
그냥 내 두뇌 자체에 오직 예수 장착하고 있으면 그냥 내 행실 자체가 세상 사람들과 많이 다르다.
행동하면서도 예수님을 전하고, 입술로도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당신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당신을 위해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고 진리이시며, 오직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할 수 있습니다.
라고 당당히 말하자.
이 정도는 요즘 사람들은 다 똑똑해서 다 안다. 하지만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감동을 전해주실 것이다.
성령이 없는 자가 텍스트만 읽어서 어떻게 복음이 전해 지겠는가. 성령이 있는 사람이 전해야 마땅하다.
복음은 타협하는 것이 아니고, 세상과 적당히 섞이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빛이며, 생명이며, 능력이다.
나는 예수님의 사람이다.
입을 닫고 있을 이유가 없다.
내가 아니면 누가 전하겠는가?
내가 전하지 않으면 돌들이라도 소리칠 것이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로마서 1:16)
세상이 뭐라 하든,
사람들이 나를 조롱하든,
시험에 들게 하든,
내가 해야 할 일은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나는 예수님의 제자다.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고, 성령이 계신다.
나는 어디서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 오직 예수! 오직 복음! 끝까지 전진! 🔥
은혜의 보호막이 사라질 때
때로 우리는 원하지 않는 상황에 빠져, 원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고, 원하지 않는 문제 속에 들어갑니다. 그렇게 한참을 고생한 후 “내가 어쩌자고 여기까지 와서 이런 수모를 당하는가!”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런 일을 겪을 때 원망하거나 불평해서는 안 됩니다. 일이 뒤틀리고 상황이 복잡해질 때, 원망과 불평을 멈추고 자신의 영적 상태를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위기 순간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는 실수를 했습니다. 베드로만 이런 실수를 할까요? 우리 모두 이런 실수를 합니다. 아무리 훈련이 잘되어 있고 지성과 의지가 있어도 누구나 이런 실수와 자기 절망을 경험합니다. 지금까지 무탈하게 지내 올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똑똑하고 잘나고 거룩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 은혜의 보호막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은혜의 보호막이 우리의 실수와 죄를 막아 주었고, 우리의 허물을 덮어 주었습니다. 그 보호막이 없어져 버리면, 인간의 죄 된 본질이 그대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더는 어찌할 수 없는 절망적 상황에서, 닭 울음소리와 더불어 성령이 베드로를 강타합니다. 인간 베드로의 생애에 지각 변동이 일어나는 순간입니다. 깊은 절망 속에서도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절망 속에서 성령의 강타하심을 경험하길 바랍니다. 바로 그 순간이 우리 존재가 깨어지고 변화되며, 다시 태어나는 소망의 순간입니다.
부활, 죽음을 딛고 피어난 영원의 꽃: 마태복음 5 / 하용조_ 두란노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베드로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연약함과 주님의 은혜를 다시금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맹세했지만, 위기 앞에서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다시 회복시키시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주님, 나도 때때로 위기 앞에서 연약해질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주님의 이름을 밝히길 꺼리거나, 믿음을 지키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그런 순간에도 성령께서 내 안에서 역사하시어 담대히 주님의 이름을 증거하게 하소서.
베드로가 예수님의 부활 이후 성령을 받고 담대한 전도자가 되었던 것처럼, 나 또한 성령의 능력으로 세상 앞에서 예수님을 전하게 하소서. 핍박 속에서도 주님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어떠한 환경에서도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자 되게 하소서.
예수님께서 대제사장 안나스 앞에서 침착하고 의연하게 진리를 말씀하셨듯이, 나도 부당한 상황 속에서도 진리를 전하는 담대함을 주소서. 억울한 일을 당해도 분노하지 않고, 온유하면서도 강직하게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 내 입술이 늘 주님의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내 삶 자체가 복음의 증거가 되게 하소서. 사람들의 반응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담대하게 행하게 하소서. 나를 통해 주님의 진리를 듣고 변화될 영혼들이 있도록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나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나는 어디서든 주님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담대히 나아갑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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