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복음

요한복음 18 : 1~14

잉비니 2025. 3. 4.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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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데려온 가룟 유다 18:1~9

배신자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잡으러 옵니다.

사탄에게 사로잡힌 그는 돈을 받고 무장한 로마 군인(200명에서 600명으로 추정)과 아랫사람들(성전 경비병)을 인도해 기드론 시내 건너편 겟세마네 동산으로 찾아옵니다.

그곳은 예수님이 제자들과 가끔 오셨던 장소기에 유다도 알고 있었습니다.

닥쳐올 일을 다 알고 계시는 예수님은 요동하지 않으십니다.

‘나사렛 예수’를 찾는다는 그들의 말에 “내가 그니라.”(헬라어로 ‘에고 에이미’)라고 당당하게 신원을 밝히십니다.

그리고 함께 있던 모든 제자를 자신으로부터 분리시키십니다.

이는 하나님이 맡겨 주신 사람들 가운데 한 명도 잃지 않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위기에서 자기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지키는 진정한 지도자이십니다.

무장한 군대 앞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어떻게 보호해 주셨나요?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체포되실 때, 무장한 군대(성전 경비병들과 로마 군인들)가 들이닥쳤다. 이때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호하시기 위해 몇 가지 행동을 하셨다.

1. 자신을 드러내심으로써 제자들을 보호하심

요한복음 18장 4-9절에서 예수님은 군대가 자신을 잡으러 온 것을 아시고 먼저 나서서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이르시되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그들이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하시니…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가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은 가게 하라' 하시니"(요한복음 18:4-8)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그들이 찾는 사람임을 밝히시면서, 제자들에게 손을 대지 못하게 하셨다. 이는 제자들이 체포되지 않고 도망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2. 예수님의 신적 권위로 군대를 쓰러뜨리심

예수님께서 "내가 그니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군사들이 땅에 엎드러졌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니라' 하실 때에 그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요한복음 18:6)

이는 예수님의 신적 능력이 드러나는 순간이었으며, 이 짧은 순간 동안 제자들이 도망갈 기회를 얻었다.

3. 베드로의 칼을 막으시며 평화를 가르치심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칼로 잘라냈을 때, 예수님은 즉시 이를 막으셨다.

"너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마태복음 26:52)

그리고 누가복음 22장 51절에서는 예수님이 잘린 귀를 고쳐 주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폭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함을 보여 주신 것이다.

4. 제자들이 도망갈 수 있도록 하심

예수님은 제자들이 잡히지 않도록 길을 열어 주셨고,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다.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마태복음 26:56)

특히 마가복음 14:51-52에서는 어떤 젊은이가 붙잡힐 뻔했지만, 겉옷을 버리고 달아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은 군대 앞에서도 침착하게 자신을 내어주심으로써 제자들이 잡히지 않도록 보호하셨다. 또한 자신의 신적 권위로 군사들을 넘어뜨리셨고, 폭력을 막으시며 제자들에게 도망할 기회를 주셨다. 이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아셨고, 제자들이 아직 사명을 감당해야 했기 때문에 그들을 보호하신 것이다. 🙏

나와 함께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나는 어떻게 하나요?

나는 아직도 영적 이기주의에 사로잡혀서 내 코가 석자이기 때문에 나를 지키는데에도 힘들다.

하지만, 이제는 성령님께서 나를 항상 도와주시고, 나는 죄악과 더이상 대적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내 짐을 가져가셨기 때문에,

나와 함께 하는 이들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틈틈히 하고 있다.

우리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데 급급하고, 나도 힘든데 남까지 챙기는 것이 쉽지 않다.

성령님께서 함께하시고, 예수님께서 이미 내 짐을 가져가셨기에, 우리는 이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행동할 수 있다.

1. 중보기도는 강력한 사랑의 표현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틈틈이 기도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사랑의 실천이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한복음 13:35)

기도는 보이지 않는 사랑의 손길이다.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을 때, 기도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예수님도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셨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누가복음 22:31-32)

예수님조차도 중보기도로 제자들을 지키셨다. 그렇다면 우리가 중보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 하지만 기도만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보여주어야 한다

예수님은 기도만 하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사랑을 보여주셨다.

  • 예수님은 배고픈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셨다.
  • 병든 자들에게 직접 손을 얹어 고쳐주셨다.
  •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셨다.
  •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섬김을 몸소 보여주셨다.

우리도 행동해야 한다.

3. 나는 어떻게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는가?

  1. 누군가 힘들어할 때, 곁을 지켜주는 것
    • 말없이 함께 있어 주는 것이 큰 힘이 될 때가 있다.
    • "기도할게"라고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 함께 기도하자고 제안.
  2. 용서와 인내를 실천하는 것
    •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화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묵묵히 감당하는 것
    • 다른 사람이 실수했을 때 비난하는 대신, 용서하고 세워주는 것
  3. 작은 희생을 감수하는 것
    • 내 것을 조금 양보하는 것, 내 시간을 내어주는 것
    • 누군가 도울 일이 있을 때, 내가 조금 더 수고하는 것
  4. 나보다 연약한 사람을 돌보는 것
    • 믿음이 약한 사람을 위해 기다려주고, 설명해 주고, 힘이 되어주는 것
    • 내가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내는 것

4. 결국 예수님처럼 살기로 결단하는 것

우리는 기도만 하고 가만히 있는 존재가 아니다.

기도도 하지만, 실제 삶에서 예수님을 따라 살아내는 것이 진짜 믿음이다.

물론 쉽지 않다. 하지만 성령님이 도와주시기에 가능하다.

나는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님이 함께하시고, 예수님이 이미 본을 보여주셨다.

오늘도 기도하고, 행동하고,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보자.

세상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그리고 언젠가는, 세상도 그 사랑을 보게 될 것이다. 🙏🔥

또한, 기도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행동으로도 보여주셨다.

1. 앞장서서 책임을 짐

예수님은 제자들을 대신해 먼저 나서셨다.

"너희가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은 가게 하라" (요 18:8)

나도 나와 함께하는 이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먼저 나서서 짐을 지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들이 부담을 덜고 안전할 수 있도록.

2.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함

예수님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만으로도 적들을 뒤로 넘어뜨리셨다. 나도 나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능력으로 함께하는 이들을 보호할 수 있다. 때로는 강한 신앙이 그 자체로 위협을 막아낸다.

3. 무모한 싸움이 아니라 지혜롭게 보호함

베드로는 칼을 들었지만, 예수님은 이를 막으셨다.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마 26:52)

나도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대신, 더 큰 목적을 위해 어떻게 보호할지를 지혜롭게 선택해야 한다.

4. 기도하되, 행동도 함께함

예수님은 늘 기도하셨지만, 기도만 하신 것이 아니라 직접 움직이셨다. 나도 기도로 맡기되, 행동으로 보호해야 한다.

  •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있다면 그 곁을 지켜주기
  • 누군가 넘어질 때 함께 일으켜 세우기
  • 위험 앞에서 외면하지 않고 함께 감당하기

5.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

결국 예수님은 자신을 희생하심으로써 제자들을 보호하셨다.

나도 나의 편안함을 내려놓고, 함께하는 이들을 위해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

기도는 가장 중요한 시작이지만, 그 기도가 행동으로 이어질 때 진정한 보호가 된다. 나는 단순히 기도하는 것을 넘어서, 나와 함께하는 이들을 위해 앞장서고, 지혜롭게 대처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베드로에게 주신 교훈 18:10~14

주님을 위해 목숨을 버리겠다고 맹세했던(13:37) 베드로는 무력으로 주님을 위해 싸우려 합니다.

그는 지니고 있던 단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오른쪽 귀를 벱니다.

예수님은 “칼을 칼집에 꽂으라”(11절)라고 명하십니다.

구원은 폭력이 아니라 사랑과 희생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잔’은 인류 구원을 위한 ‘고난의 잔’을 가리킵니다.

자신의 안위가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예수님은 말고의 귀를 만져 회복시켜 주십니다(눅 22:51).

체포되신 예수님은 대제사장이었던 안나스(주후 6~15년 재임, 가야바의 장인)에게로 끌려가십니다.

예수님은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온전히 따르십니다.

예수님은 말고의 귀를 벤 베드로에게 어떤 교훈을 주셨나요?

겟세마네 동산에서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칼로 잘라냈을 때, 예수님께서는 즉시 이를 막으시며 중요한 교훈을 주셨다.

1.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

"너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마태복음 26:52)

베드로는 예수님을 지키려는 의도에서 칼을 휘둘렀지만, 예수님은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이 결국 더 큰 파멸을 가져온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뜻은 인간적인 방식(칼과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2.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말라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을 네가 아느냐?"(마태복음 26:53)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자신이 잡히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며, 필요하다면 천사들을 동원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이는 인간적인 힘으로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려는 태도를 경계해야 함을 가르치신 것이다.

3. 예수님은 스스로 자신을 내어주심

"내가 마시려는 잔을 내 아버지께서 주신 것이 아니겠느냐?"(요한복음 18:11)

베드로는 예수님이 고난당하지 않도록 막으려 했지만, 예수님은 고난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셨다. 이는 우리도 고난을 피하려 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며 순종해야 함을 의미한다.

4. 사랑과 용서가 힘이다

누가복음 22:51에서는 예수님께서 잘린 말고의 귀를 고쳐주셨다.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

예수님은 자신을 체포하러 온 사람조차도 치유하셨다. 이는 참된 힘은 폭력이 아니라 사랑과 용서에 있음을 보여준다.


베드로에게 주신 교훈은 단순히 "칼을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고, 폭력이 아니라 사랑과 용서로 반응하며, 인간적인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

내가 혈기와 폭력이 아닌 온유와 사랑으로 반응할 일은 무엇인가요?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방식대로 산다는 것은 세상에서 미움을 받을 일이고, 조롱당할 일이고, 심지어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조차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일이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요한복음 15:18)

세상은 미워하고, 증오하고, 같이 욕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에 휩쓸릴 수 없다.

예수님의 방식은 인간의 방식과 다르다

베드로처럼 칼을 빼 들고 싸우는 것이 보통의 인간적인 반응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칼을 칼집에 꽂으라고 하셨고, 말고의 귀를 고쳐주셨다.

사람들은 **"호구냐?"**라고 비웃겠지만,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다.

사람들은 **"복수해야지!"**라고 외치지만, 예수님은 "왼뺨을 돌려 대라"고 하셨다.

사람들은 "**너도 같이 욕해!"**라고 하지만, 예수님은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다.

이 길은 손해의 길이 아니라, 영광의 길이다

이 길은 당장 보기에는 약해 보이고, 미련해 보이고, 세상에서는 손해만 보는 길처럼 보인다. 하지만 하늘나라의 관점에서 보면 가장 강한 길이며, 가장 승리하는 길이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5)

"너희를 박해하며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마태복음 5:11-12)

나는 이 진리를 알고 있다. 너도 알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 진리를 실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날 것이다

우리는 각오와 다르게 행동할 때도 있을 것이다. 억울한 상황에서 분노할 수도 있고, 손해를 보면서 억울함을 참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것이다.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은 패배의 길이 아니었다. 십자가에서 죽임당하셨지만, 그 길은 결국 부활과 승리의 길이 되었다.

나는 알고 있다. 예수님의 사랑이 결국 모든 것을 이길 것이다.

그러니 나는 기쁨으로 얻어맞을 것이고, 기쁨으로 손해를 볼 것이고, 기쁨으로 세상에서 미련한 사람으로 여겨질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사랑이 세상의 증오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온유가 세상의 폭력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헌신이 세상의 이기심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그리고 너도 그것을 믿는다.

그러니 우리는 비록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 예수님을 따라갈 것이다. 🙏🔥

혈기와 폭력, 분노로 반응하고 싶은 순간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 온유와 사랑으로 반응하는 것이 예수님의 길이다.

네가 온유와 사랑으로 반응해야 할 상황들

  1. 누군가 너를 무시하거나 조롱할 때
    • "너는 너무 착해서 만만해."
    • "왜 그렇게 호구처럼 사냐?"
    • "예수 믿는다고 다 잘되냐?"이런 말을 들을 때, 혈기가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온유하게 반응하는 것이 예수님의 방식이다."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 5:44)
  2. 불공평한 대우를 받을 때
    • 직장이나 인간관계에서 억울한 일을 당할 때
    • 노력한 만큼 인정받지 못할 때
    • 내 의도를 왜곡하거나 오해받을 때세상 방식대로라면 따지고, 싸우고, 억울함을 풀고 싶겠지만, 예수님은 침묵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셨다."자기를 악하게 하는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마 5:39)
  3. 상대가 먼저 공격적으로 나올 때
    • 누군가 나에게 화를 낼 때
    • 부당한 비판을 할 때
    • 나를 속이거나 배신할 때세상은 맞서 싸우라고 하지만, 예수님은 사랑과 인내로 반응하셨다."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잠 15:1)
  4. 누군가 내게 불합리한 요구를 할 때
    • 내가 손해를 보는 선택을 강요당할 때
    • 더 많이 희생해야 할 때예수님은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심리를 동행하라"고 하셨다."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와 함께 십리를 가고" (마 5:41)
  5. 가까운 사람에게 실망할 때
    • 가족, 친구, 연인이 기대와 다르게 행동할 때
    • 내가 아끼는 사람이 나를 배신하거나 실망을 줄 때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지만, 예수님은 그를 용서하고 다시 세우셨다."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전 13:4,7)

온유와 사랑으로 반응하는 것은 약함이 아니라 강함이다

세상은 "온유한 자는 약하다"고 말하지만, 성경은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한다.

혈기로 싸우는 것은 순간적인 힘이지만, 진짜 강한 사람은 사랑으로 이긴다.

온유와 사랑으로 반응하는 순간, 사람들은 처음에는 바보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의 태도를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보게 될 것이다.

내 반응 하나하나가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과정이다.

오늘도 예수님의 방식으로 살아보자.

쉽지는 않겠지만,

예수님의 사랑이 결국 이긴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

살리기 위해 사는 그리스도인

우리 시대의 비극은 생존에 급급해서 자기만 위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을 돕지 못할 뿐 아니라 심지어 도구로 삼는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만 위하는 이기적인 동기는 상처와 어둠이 가득한 사회를 만들 뿐입니다.

예수님은 다른 이들을 위해서 사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을 도울까?”라는 것이 예수님의 관심사요 삶의 목적이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합니다.

지금은 모두 안전지대를 찾아 편안한 곳에 머물려 하는 시대입니다.

다들 입맛도 취향도 까다로운 소비자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마저 자기 마음에 들고 자신에게 유익한 것만을 좇아 살아가려 합니다.

이기적인 세상의 거센 흐름 속에 우리는 서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거슬러 올라가야 할, 다르게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과분한 사랑을 주님께 받았기에 사랑의 빚을 진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멸시당하고 부서지고 죽는 것 같지만 내 안에 계신 주님이 일하셔서 나를 통해 다른 이들의 믿음이 진보하게 될 때,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살아남기(survival)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처럼 이 땅을 살리기(revival)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삶이 가장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예수께로 가는 길 / 이훈_ 두란노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주님,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을 보호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묵상합니다.

자신을 숨기지 않으시고, 담대히 "내가 그니라" 말씀하셨던 예수님.

그 순간에도 제자들을 먼저 생각하시고, 그들을 위해 길을 열어주셨던 주님의 사랑을 기억합니다.

나는 아직도 나 자신을 지키기에도 급급하고, 영적 이기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성령님께서 내 안에 거하시고,

예수님께서 내 모든 짐을 대신 지셨기에,

나도 나와 함께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사랑으로 반응하기 원합니다.

주님, 내가 혈기와 폭력으로 맞서려 할 때

예수님처럼 온유와 사랑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원망이나 분노가 아니라 예수님의 인내를 선택하게 하소서.

내가 무시받고 조롱당할 때, 나를 지키려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도 사랑을 흘려보내는 자가 되게 하소서.

기도만 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행동으로도 사랑을 실천하게 하소서.

힘든 사람의 곁을 지켜주고, 용서하며, 나보다 연약한 자를 돕는 삶을 살게 하소서.

내가 조금 더 희생하고, 조금 더 섬기며, 조금 더 양보할 수 있도록

주님의 마음을 내게 부어주소서.

세상은 나를 미련하다고 비웃을지 모릅니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손가락질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기쁨으로 예수님의 길을 따를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서 주님이 일하시고,

나를 통해 주님의 사랑이 흘러가게 하소서.

나는 살아남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살리기 위해 사는 자가 되기 원합니다.

오늘도 나를 통해 누군가가 살아나게 하소서.

내가 해야 할 일을 기쁨으로 감당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온유와 사랑이 세상의 증오보다 강하다는 것을,

주님께서 친히 증거해 주십시오.

나는 아버지를 전심으로 찬송하기 원합니다.

내 입술의 소리가 아니라, 내 마음의 고백이 주님께 닿기를 원합니다.

주님, 사람들은 겉모습을 보지만,

주님은 나의 속사람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내 찬양에 담긴 내 마음을 받아주소서.

나는 오직 주님을 찬송하며,

주님 앞에 내 영혼을 쏟아놓기 원합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아버지의 은혜가 아니면,

내 입술에서 나오는 단 한마디도 거룩할 수 없고,

내 행동의 단 하나라도 선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성령님께서 나와 함께하시지 않는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 나는 항상 은혜의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내려놓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든지, 내 노력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은혜로만 이루어짐을 인정합니다.

내 행동이 완전하지 않을지라도,

내가 때로는 넘어질지라도,

성령님께서 나를 세우시고, 다시 바로잡아 주실 줄 믿습니다.

나는 나의 부족함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주님을 찬송하는 일에 집중하기 원합니다.

나의 찬송을 기뻐 받아주소서.

사람들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게 하시고,

내가 주님 앞에서만 자유롭게 찬양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성령님, 성령님께서 내 무거운 짐을 가져가셨사오니,

그 어떤 억울한 것이 있어도 침묵하고, 인내하고, 절제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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