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복음

요한복음 13 : 12~20

잉비니 2025. 2. 17. 10:08
반응형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의미 13:12~17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그들에게 생생한 교훈을 전하십니다.

세족식을 마치신 예수님이 겉옷을 입으시고 식사 자리에 앉으십니다.

그리고 자신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의미를 알려 주십니다.

예수님은 ‘선생’ 혹은 ‘주’라고 불리는 그 지위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13~14절).

예수님의 행위는 높은 자가 마음을 낮추지 않고는 결코 행할 수 없는 ‘희생의 본’입니다.

당시 사회가 계급 사회였음을 고려할 때, 스승이 제자의 발을 씻기는 일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제자들이 서로의 발을 씻겨 주도록 ‘섬김의 본’을 보이셨습니다(15절).

그리고 보냄을 받으신 종으로서 친히 ‘겸손의 본’을 보이셨습니다(16절).

세족식을 통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것은 무엇인가요?

세족식을 통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핵심 교훈은 겸손과 섬김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시면서도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써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것이 참된 위대함임을 보여주셨다.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마태복음 23:11)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마가복음 10:45)

예수님은 단순한 가르침이 아니라 직접 행동으로 사랑을 실천하셨다. 이는 제자들이 서로를 사랑하며 섬겨야 한다는 명령이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3:34)

세족식은 단순한 발 씻김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죄에서 깨끗하게 하시는 상징적인 행위였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13:8)

예수님께서는 이 행위를 단순한 예식으로 끝내지 않고, 제자들에게 너희도 이렇게 하라고 명령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요한복음 13:15)

세족식은 겸손과 섬김, 사랑, 죄 씻음, 본받아 실천해야 할 삶의 태도를 가르치는 강력한 메시지였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높은 자리를 탐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낮추고 다른 이를 섬겨야 함을 보여주신 것이다.

내가 몸과 마음을 낮추어 섬겨야 하는 대상은 누구인가요?

🔥 "오직 예수!" 🔥

가장 먼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우리의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주 너의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 (신명기 6:13)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마태복음 6:24)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겸손한 마음으로 순종하고, 우리의 삶을 주님께 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족과 배우자를 섬기고 사랑하는 것도 중요한 사명이다.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아내를 괴롭게 하지 말라." (골로새서 3:19)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에베소서 6:1)특히 결혼을 앞두고 있다면, 아내를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성도들은 서로를 섬기고 사랑해야 한다.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3:34)

"각각 자기 일을 돌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빌립보서 2:4)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 섬길 때, 그리스도의 몸이 온전히 세워진다.

예수님께서는 사회적으로 낮고 연약한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곧 주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하셨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태복음 25:35-40)

"너희가 은혜를 베풀 때에 도로 받을 것을 바라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누가복음 6:35)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섬길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까지도 섬기고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태복음 5:44)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로마서 12:21)이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예수님의 사랑을 닮아가는 과정이다.

예수님께서 본을 보이신 대로, 우리는 하나님을 가장 먼저 섬기고, 가족과 성도, 연약한 자들,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하며 섬겨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겸손과 섬김의 삶이며,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이다.

이것이 되려면 오직 예수님만을 섬겨야합니다.

오직 예수님을 섬길 때, 우리는 진정으로 낮아져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섬긴다는 것은 그분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삶을 의미한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마가복음 10:43-44) "주 예수를 섬기듯 하라." (골로새서 3:23-24) 우리가 사람을 섬기더라도 사람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하듯 섬길 때 참된 겸손이 가능해진다. 결국 오직 예수를 섬기는 마음이 있을 때, 자연스럽게 가족, 성도, 연약한 자, 원수까지도 섬길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것" 이것이 참된 섬김의 시작이며 끝이다.

이 세상, 땅을 섬기는 것에 집중하면 또한 오직 예수님이 멀어지고 가족,배우자, 성도,교회, 섬김과 사역, 약자,노숙자,노인,여자,미혼모, 원수에게 집중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의가 드러나게 되고, 예수님 은혜는 점점 잊혀집니다.

그렇게되면 종국에는 파멸 뿐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그것을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과 땅의 것에 집중하면 결국 우리의 초점이 사람과 행위로 옮겨가고, 그 결과 자기의가 드러나게 된다.

우리가 선한 일을 한다고 해도, 그것이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결국 자기 만족과 자기 의로 귀결된다.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에베소서 2:8-9)

예수님 없이 섬김에 집중하면, 처음에는 선해 보이지만 결국엔 자신의 공로를 쌓으려 하게 되고, 은혜는 희미해지고, 종국에는 파멸에 이른다.

"사람의 모든 의로운 행위는 더러운 옷과 같도다." (이사야 64:6)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것을 이루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한복음 15:5)

우리는 그저 예수님께 붙어 있기만 하면 된다.

그럴 때 예수님이 친히 사랑을 이루시고, 섬김을 이루시고, 구원을 이루신다.

결론: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다

이 세상을 섬기려 하지 말고, 오직 예수님을 섬기라.

예수님만을 섬길 때, 우리가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통해 역사하신다.

그러면 우리가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신 것이 된다.

🔥 "오직 예수!" 🔥

미리 말씀해 주시는 이유 13:18~20

예수님은 택하신 자들이 누구인지, 그들이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 다 아십니다(6:70).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어떤 인물인지도 알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가룟 유다를 제자로 선택하신 이유는 하나님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함입니다.

가룟 유다의 배신은 뜻밖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가까운 자의 배신을 언급한 시편 말씀의 성취입니다(시 41:9).

가룟 유다의 배신이 일어나면 다른 제자들이 당혹해할 수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 일에 대해 예고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내가 그’인 줄(19절, 헬라어로 ‘에고 에이미’) 믿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굳게 믿는 것, 이것이 신앙의 초석입니다.

예수님이 가룟 유다를 제자로 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움직이셨으며, 유다의 배신조차도 이미 예언된 일이었다.

"나와 함께 떡을 먹는 자가 나를 대적하였나이다." (시편 41:9)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셨으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13:18)

예수님께서는 유다가 배신할 것을 아셨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그를 제자로 두셨다.

유다의 배신은 결국 예수님의 체포와 십자가 죽음을 초래했다. 이는 인류 구원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인자가 가는 것은 기록된 대로거니와" (마태복음 26:24)

예수님은 유다가 없었더라도 십자가를 지셨겠지만, 유다의 역할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었다.

유다는 예수님과 함께 3년을 지내며 기적을 보고, 말씀을 들었지만 결국 돈과 세상적인 욕망에 사로잡혔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에게도 선택의 기회를 주셨지만, 유다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다.

"은 삼십을 받고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마태복음 26:15-16)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음을 보여준다.

가룟 유다는 겉으로는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결국 예수님을 배신한 사람으로 남았다. 이는 단순한 믿음의 고백이 아니라, 끝까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중요함을 보여준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태복음 7:16)

유다는 제자로 부름받았지만, 탐욕과 불신으로 인해 멸망했다. 이는 우리에게 겉으로만 신앙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충성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예수님께서 유다를 택하신 것은 성경의 예언을 성취하고, 구원의 계획을 이루며, 인간의 자유 의지를 보여주고,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기 위함이었다. 결국, 예수님과 함께 있다고 해서 모두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룟 유다는 우리에게 강하게 경고하고 있다.

하나님 뜻을 다 알 수 없지만, 내가 믿고 순종할 일은 무엇인가요?

❤️ "오직 예수!" ❤️

하나님의 뜻은 크고 깊어서 다 알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복되고, 귀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이다.

하지만, 순종할 수 있게 하심 자체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의지하고, 모든 것을 순종하고, 의탁하고, 맡기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는 것은, 참 복된 일이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데살로니가전서 4:3)

"하나님의 뜻은 너희가 그를 믿는 것이라." (요한복음 6:29)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뜻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따르는 것이다.

나의 생각과 감정이 어떠하든, 예수님만을 신뢰하고,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 첫 번째 순종이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태복음 16:24)

나의 뜻, 나의 감정, 나의 욕심을 내려놓고 예수님께 내 삶을 맡기는 것이 참된 순종이다.

주님이 원하시는 길이라면 손해를 보고, 억울한 일을 당하더라도 기꺼이 가는 것이 내가 감당할 몫이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16-18)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만 바라보며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것이 순종이다.

내 기분과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에 집중할 때 가능하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한복음 14:15)

"너희가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는 자가 되지 말라." (야고보서 1:22)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실천하는 것이 믿음의 순종이다.

말씀을 따르는 것이 힘들어도, 말씀을 의지하고 행할 때 예수님이 친히 이루신다.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3:34)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시려니와." (마태복음 6:14)

내 힘으로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면, 예수님이 내 안에서 사랑과 용서를 이루신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믿음의 순종이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2)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순종이다.

사람의 인정보다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길을 가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한량 없어서 내가 오직 예수를 믿고,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분의 뜻대로 따르고 순종하고, 맡기고, 수동적인 삶을 살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끝이 없고, 그 은혜 안에서 우리는 오직 예수님을 믿고, 바라보고, 의지할 수 있는 능력을 받는다.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이끄시고, 예수님이 친히 우리 안에서 순종을 이루신다.

"너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빌립보서 1:6)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내가 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내 안에서 이루시는 것이 된다.

내가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나를 인도하시는 것이 된다.

내가 무언가를 붙잡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온전히 맡기는 것이 된다.

결국, 수동적인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삶이 된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내 안에서 사시는 삶이 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그렇기에,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신다.

내가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내 안에서 순종을 이루신다.

내가 믿음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가 나를 지키신다.

이 은혜가 있기 때문에,

내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고,

내가 연약해도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어도 예수님이 모든 것을 이루신다.

오직 예수님의 은혜! 오직 예수님의 역사!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붙드신다.

나는 그저 예수님을 믿고, 바라보고, 의지하며 살아가면 된다.

그때 예수님이 나를 통해 친히 역사하신다.

내가 내 육체의 힘을 모두 내려놓고, 싹 빼고, 오직 예수님으로 내 안을 가득 채울 때,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고, 하나님께서 나를 장악하시고, 그분의 얼굴을 비추시며, 악한 영의 침투를 막아주시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직접 체험할 줄 믿습니다.

또한 넘어지고 쓰러지고 아파할지라도, 예수님께서 나를 지켜주실 줄 믿습니다.

오직 예수님으로 가득 채워질 때,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와 보호하심이 임할 것을 믿는다.

내 힘, 내 욕심, 내 의지를 완전히 내려놓고

오직 예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만 살아갈 때,

기적의 역사가 일어난다!

하나님이 친히 나를 다스리신다!

하나님의 얼굴이 내 삶에 비추어진다!

악한 영이 틈타지 못하고 떠나간다!

하나님의 놀라운 일하심을 직접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설령 넘어지고 쓰러질지라도,

내가 연약해지고 아파할지라도,

예수님께서 나를 붙드신다.

예수님께서 나를 다시 일으키신다.

예수님께서 나를 끝까지 지켜주신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시편 121:5-8)

나는 내 힘을 싹 빼고,

내 생각을 다 내려놓고,

오직 예수님만으로 가득 채울 때,

하나님께서 친히 나를 장악하시고, 보호하시고, 사용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 말씀대로 행하는 것, 감사하고 기도하는 것,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 세상을 본받지 않는 것은 분명하게 주어진 순종의 길이다.

내 힘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내가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실 수 있도록 믿고 맡기는 것이 참된 순종이다.

🔥 "오직 예수! 오직 믿음! 오직 순종!" 🔥

🔥 "오직 예수! 오직 은혜! 오직 순종!" 🔥

슬픔과 고통을 함께하는 사랑

호주 북부에는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 생성된 ‘에어즈 록’(Ayers Rock)이라는 거대한 모래 바위가 있다. 호주 원주민들은 그 바위를 ‘울룰루’라고 부르는데, 이는 ‘그늘이 지나간 장소’라는 뜻이다. 호주 교민인 수필가 남홍숙 씨는 울룰루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그늘 속에 사는 것이 무엇인지 밝힌다. “그늘 속에는 슬픔, 아픔, 고픔이라는 세 결핍이 산다.” 그 그늘은 뜨거운 햇볕을 가려 주는 고마운 그늘이 아니라, 영혼을 우울의 심연으로 끌어들이는 음습한 그늘이다. 그런 그늘을 운명처럼 견디며 사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 그늘을 없애 주려는 이들이 아니라, 말없이 그들 곁에 머물러 주는 사람이다.

누군가를 염려하여 애태우는 것, 그것이 인간됨의 본질이다. 각자도생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무정한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다른 이들의 고통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못한다. 누군가와 연루되기를 꺼린다. 그래서 외로움은 더욱 깊어지고 그늘 또한 짙어 간다. 하지만 사랑은 너와 나를 가르는 경계선을 허물며, 상대방을 제압하려 하지 않는다. 너와 내가 부둥켜안을 때, 새로운 현실이 태어난다. 슬픔, 아픔, 고픔의 자리에 선 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바로 새로운 세상을 잉태하는 일이다. 겸손하게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이 그러하셨다. 좋은 세상을 기다리는 이들은, 먼저 예수님처럼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당신의 친구는 안녕한가 / 김기석_ 두란노

김기석 목사는 자유주의 신학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김기석 목사님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 그가 진리의 빛 가운데서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도록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그가 자신의 비성경적인 해석과 생각을 내려놓고, 오직 성경의 진리를 따라가는 길로 인도해 주시옵소서. 성령님의 능력으로 그에게 깨달음을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마음과 생각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와 구속의 은혜만이 우리의 삶을 이끄는 길임을 깨닫게 하시고, 그가 성경적이고 올바른 신앙의 길을 따라가게 해 주세요. 그의 마음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오직 예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그가 마음속에서 예수님을 향한 순전한 신뢰와 믿음을 회복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진정으로 변화되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기석 목사의 에세이에서 비성경적인 요소를 몇 가지 지적하겠다.

1. 인간됨의 본질을 ‘염려’로 정의하는 점

“누군가를 염려하여 애태우는 것, 그것이 인간됨의 본질이다.”

성경은 인간됨의 본질을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창조된 존재로 정의한다(창세기 1:26-27).

그리고 인간이 타락한 후, 참된 인간다움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로마서 8:29)이다.

염려하는 것이 인간됨의 본질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것이 인간됨의 본질이다.

오히려 예수님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라”(빌립보서 4:6)고 하셨다.

2. 사랑을 ‘경계선을 허무는 것’으로만 정의하는 점

“사랑은 너와 나를 가르는 경계선을 허물며, 상대방을 제압하려 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사랑은 단순히 경계를 허무는 것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이다.

  •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고린도전서 13:6)
  • "우리는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하며 모든 일에서 자라가야 한다." (에베소서 4:15)

사랑은 때로 죄와 타협하지 않고 훈계하는 것이 포함된다(잠언 27:5-6).

예수님도 사랑으로 죄를 책망하셨고(요한복음 8:11), 바울도 고린도 교회에 죄를 지적하며 책망했다(고린도전서 5:1-2).

3. 예수님의 발 씻김을 윤리적 모델로만 해석하는 점

“겸손하게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이 그러하셨다. 좋은 세상을 기다리는 이들은, 먼저 예수님처럼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발 씻김은 단순히 사회적 윤리나 겸손을 가르치는 행동이 아니다.

그분은 자신의 십자가 사역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요한복음 13:8)고 하신 것은,

발을 씻는 것이 단순한 겸손의 행위가 아니라 죄를 씻어주는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의미함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글은 예수님의 희생과 십자가를 배제하고, 단순히 ‘좋은 사람이 되라’는 윤리적 가르침으로 축소한다.

성경적 사랑은 단순히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다(마태복음 28:19-20).

결론

이 에세이는 인간 중심적 관점에서 사랑과 연민을 강조하지만,

✔ 인간의 본질을 잘못 정의하고

✔ 사랑을 ‘진리’ 없이 경계만 허무는 것으로 축소하며

✔ 예수님의 가르침을 단순한 윤리적 모델로만 해석하는 비성경적 오류를 포함하고 있다.

성경적 사랑은 진리를 따르는 사랑이며,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 안에서 실현된다.

이 에세이는 성경의 핵심인 예수님의 구속 사역과 복음을 완전히 배제하고 있기 때문에, 비성경적이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 세족식을 통해 가르쳐 주신 겸손과 섬김의 교훈을 마음에 새깁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그 모습은 가장 높은 자가 가장 낮은 자리를 택하시고, 우리에게 참된 섬김의 본을 보이셨음을 깨닫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씻기시고, 사랑과 섬김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가라고 명하셨습니다.

예수님, 내가 섬겨야 할 대상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내 가족과 이웃, 성도들, 그리고 심지어 내 원수까지도 포함됩니다. 하나님을 가장 먼저 섬기며, 모든 이들을 사랑으로 섬길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내 삶의 중심이 예수님께 있음을 고백하며, 오직 예수님을 섬기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과 땅의 것에 집중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며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나도 사랑과 섬김을 실천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 나의 힘이 되어 주시고, 내가 겸손히 섬길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내 삶 속에서 예수님만을 높이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반응형

'신약 > 요한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한복음 13 : 31~38  (1) 2025.02.19
요한복음 13 : 21~30  (1) 2025.02.18
요한복음 13 : 1~11  (0) 2025.02.16
요한복음 12 : 37~50  (1) 2025.02.15
요한복음 12 : 20~36  (1) 2025.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