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복음

요한복음 13 : 21~30

잉비니 2025. 2. 18.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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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자에 대한 예언 13:21~26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은 배신자를 언급하실 때 마음이 괴로우셨습니다(21절).

‘괴롭다’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예수님이 느끼신 감정으로,

‘비통하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11:33).

예수님이 가룟 유다에게 떡 한 조각을 주신 것은 주인이 손님에게 베푸는 사랑과 우정의 표시입니다(26절).

식탁에서 가룟 유다는 예수님과 가까운 거리에 앉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당시 식탁은 ‘ㄷ자형’ 긴 테이블이었고(베드로가 요한을 보며 머릿짓을 한 것에서 알 수 있음. 23~24절),

식사할 때는 로마의 귀족처럼 왼쪽 팔꿈치를 테이블에 괴고 오른손으로 음식을 먹었습니다.

예수님이 유다의 입에 떡을 넣어 주신 것을 보면, 그가 예수님 바로 왼쪽에 앉은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가룟 유다를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이 배신자 가룟 유다를 사랑하셨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예수님은 유다가 자신을 배신할 것을 알고 계셨지만, 처음부터 그를 제자로 부르셨다.

그가 배신할 것을 아셨다면 아예 부르지 않으실 수도 있었지만, 끝까지 함께하며 사랑으로 대하셨다.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고, 여기에는 유다도 포함되어 있었다.

발을 씻겨주시는 것은 섬김과 사랑의 표현이었으며, 유다를 포함한 모든 제자들에게 베푸셨다.

예수님은 유다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

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배신의 길을 선택했다.

유다는 예수님을 은 30에 팔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군병들을 이끌고 와 입맞춤으로 배신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순간조차 유다를 단죄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시니" (마태복음 26:50)

‘친구여'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끝까지 사랑과 은혜를 베푸셨음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을 못 박은 자들을 위해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누가복음 23:34)라고 기도하셨다.

이 기도는 배신한 유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사랑의 기도였다.

예수님은 유다가 배신할 것을 알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하셨다.

발을 씻기셨고, 경고하셨으며, 마지막 순간까지 "친구"라 부르셨다.

유다는 예수님의 사랑을 거절했지만, 예수님의 사랑 자체는 변함이 없었다.

이는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의 조건이나 행위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우리를 향한 희생적이고 완전한 사랑임을 보여준다.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에게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믿지 않는 사람들은 보통 세상의 방식으로 반응한다. 나를 아프게 한 사람에게 보이는 태도는 대개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나뉜다.

세상은 "당한 만큼 갚아주라"는 논리를 따른다.모욕을 당하면 모욕으로 되갚고, 배신을 당하면 더 강한 방식으로 응징하며, 손해를 보면 법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보복하려 한다.

이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반응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관계가 파괴되고, 미움과 상처만 깊어진다.

더 나아가 끝없는 다툼과 분쟁으로 이어진다.

성경은 이런 태도를 경고한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베드로전서 3:9)

많은 사람들은 복수를 하지는 않더라도, 그 사람을 철저히 무시하고 차단한다.

연락을 끊고, 차갑게 대하며, 감정을 닫아버린다.

이 방식은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내면에는 여전히 미움이 남아 있다.

단절이 필요한 관계도 있지만, 단순히 미움을 피하기 위해서 단절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성경은 원수를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친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태복음 5:44)

어떤 사람들은 원망하거나 거리를 두지는 않지만,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조종하려 한다.

필요할 때만 친한 척하고, 상황에 따라 태도를 바꾸며, 상대방이 후회하도록 의도적으로 행동한다.

이 방식은 결국 진정한 회복이 아니라, 관계를 도구화하는 것이다.

성경은 사랑은 '계산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고린도전서 13:5)

세상의 방식은 결과적으로 더 깊은 상처와 분쟁을 낳는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불러온다. 단절은 미움을 더 키운다. 조종과 이용은 관계를 왜곡시킨다.

그러나 성경은 완전히 다른 길을 가르친다.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예수님의 방식으로 반응해야 한다.

용서하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성경적 태도이다.

믿지 않는 자들은 미움과 복수를 선택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길을 따르자.

세상의 방식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지만, 예수님의 방식은 진정한 평안과 치유를 준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자가 되자! (로마서 12:21)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길은 세상의 방식과 다르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성경의 원칙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은 태도를 취하는 것이 옳다.

세상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가르치지만, 예수님은 용서를 명령하셨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로마서 12:19)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태복음 6:14-15)

용서는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영혼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내 안에 미움과 분노를 품고 있으면 그것이 나를 더 아프게 만든다.

그러나 하나님께 맡기고 용서를 선택하면, 오히려 내 영혼이 치유된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태복음 5:44)

그러나 이것이 무조건적인 순종이나 착취를 당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는 사랑하되, 지혜롭게 행동해야 한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4:23)

즉, 사랑하되 내 영혼을 파괴하는 관계에 맹목적으로 끌려가지는 말아야 한다.

용서하되 계속해서 반복되는 악한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방치하는 것은 지혜롭지 않다.

사랑으로 대하되, 때로는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조롱과 배신, 채찍질과 십자가 형벌을 당하셨지만,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셨다.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베드로전서 2:23)

나를 아프게 한 사람에게 보복하고 싶을 때,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분은 하나님께 맡기고, 침묵하며, 사랑을 베푸셨다.

내가 복수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판단하신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로마서 12:20-21)

이 말은 내가 상대를 직접 심판하려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내가 선을 행하면, 결국 하나님께서 상대에게 반드시 합당한 일을 행하신다.

  1. 복수하지 말고 용서를 선택하라. 미움을 품으면 내가 더 괴롭다. (롬 12:19)
  2. 사랑하되, 지혜롭게 행동하라. 무조건 끌려가지 말고, 내 마음을 지키라. (잠 4:23)
  3. 예수님을 본받아라. 끝까지 하나님께 맡기고 믿음으로 행동하라. (벧전 2:23)
  4. 하나님이 판단하실 것을 신뢰하라. 선으로 악을 이겨라. (롬 12:20-21)

아프게 한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내가 사탄에게 기회를 주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를 하나님께 맡기고, 내 영혼을 지키며,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 참된 길이다.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이 아니라, 나의 반응이 내 영혼을 결정한다.

결국 하나님이 모든 것을 공의롭게 갚으신다.

나는 복수하지 않고 사랑과 용서를 선택하며 하나님께 맡긴다.

가룟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감 13:27~30

예수님께 사랑의 떡을 받고도 돌이키지 않는 가룟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갑니다(27절).

예수님과 가까이 지냈음에도 가룟 유다는 탐심으로 돈궤에서 돈을 훔치는 악을 일삼았습니다(12:6).

그 틈을 사탄이 노린 것입니다.

이를 아시는 예수님은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27절)라고 하십니다.

이런 우주론적 사건을 나머지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탄의 수하에 들어간 가룟 유다는 배신의 일을 하고자 어두운 ‘밤’에 밖으로 나갑니다.

사탄이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찾습니다(벧전 5:8).

하지만 믿음에 굳게 선 성도는 사탄을 대적할 수 있습니다.

가룟 유다가 결국 사탄의 종이 된 원인은 무엇인가요?

가룟 유다가 결국 사탄의 종이 된 원인은 성경에서 여러 가지로 나타나지만, 근본적으로 유다의 마음이 죄와 탐욕에 사로잡혔기 때문 이다. 예수님은 끝까지 사랑하셨지만, 유다는 결국 스스로 사탄의 길을 선택했다. 구체적인 원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돈을 맡은 자로서 탐욕적인 성향을 보였다.

"가룟 유다 곧 예수를 잡아 줄 자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가밀러라." (요한복음 12:4-6)

겉으로는 경건한 척했지만, 실상은 돈에 집착하고 거짓된 마음을 품고 있었다.

이런 탐욕이 결국 은 30에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배신으로 이어졌다.

유다는 예수님보다 돈을 더 사랑했고, 이는 사탄이 그를 지배하는 문이 되었다.

예수님은 유다가 처음부터 진정한 믿음을 갖지 않았음을 알고 계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예수께서 처음부터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러라.” (요한복음 6:6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요한복음 6:70)

유다는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완전히 마음을 내어드리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보다 자기 유익을 취하는 것이었다.

유다는 탐욕과 불신앙으로 인해 사탄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유다의 마음에 사탄이 생각을 넣었지만, 나중에는 완전히 지배당했다.

이는 유다가 스스로 회개하지 않고, 사탄의 유혹을 거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다는 나중에 예수님을 팔아넘긴 것에 대해 후회했지만, 진정한 회개는 하지 않았다.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마태복음 27:3-4)

그러나 그는 예수님께 용서를 구하지 않고,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마태복음 27:5)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지만, 유다는 자기 죄책감에 매여 절망하고 말았다.

그의 마지막 선택은 자기 생명을 끊는 것이었고, 결국 사탄의 길을 완전히 따르게 되었다.

유다가 사탄의 종이 된 이유

  1. 탐욕과 돈을 사랑하여 마음을 사탄에게 열었음.
  2.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지 않았음.
  3. 사탄이 그의 마음을 지배하도록 내버려 둠.
  4. 죄를 회개하지 않고, 절망 속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함.

유다와 대조적으로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지만 회개하고 돌아왔고, 은혜를 받았다.

하지만 유다는 후회만 하고 예수님께 돌아오지 않았기에 사탄의 종으로 끝났다.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나는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누가복음 22:31-32)

예수님은 유다에게도 기회를 주셨지만, 유다가 스스로 사탄의 길을 선택했다.

자살말고 회개해야한다. 스스로 생명을 끊으면 그것은 그냥 정말 내게 주신 모든 기회를 걷어차는 꼴이다. 내가 내 목숨을 책임감 없이 스스로 끊기 보다는, 십자가에서 내 진정한 자아를 내버리고, 내 자아가 죽고, 내 생명이 진실로 죽고, 단지 목숨을 끊는 단순한 문제가 아닌, 내 영혼육 모든 것이 진실로 죽고, 죄성에서 벗어나서, 십자가 앞에서 회개하고, 돌이키고,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로 아버지 품으로 돌아와야한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권한다. 오직 예수님 품으로 돌아오라!

자살은 결코 해결책이 아니며, 오히려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스스로 끊어버리는 행위일 뿐이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 (마태복음 16:24)고 하셨다. 우리가 죽어야 하는 것은 '자아'이지, 육신의 생명이 아니다. 진정으로 죽어야 하는 것은 내 죄된 본성과 교만한 마음이며, 십자가 앞에서 회개하고 거듭나야 한다.

유다처럼 절망 속에서 빠지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처럼 눈물로 회개하고 예수님께 돌아와야 한다.

오직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요 14:6) 그분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이 유일한 답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간절히 권한다. 예수님 앞에서 회개하고, 돌이켜라!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죽고,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라! 자살이 아니라, 회개하라! 오직 예수님께 돌아오라!

사탄의 종이 되지 않도록 내가 속히 버릴 습관 혹은 악은 무엇인가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오 직 예 수

그저

오 직 예 수

핑계대지말고, 변명하지말고, 아무 조건 들이대지말고, 변호하지말고, 판단하지말고,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진실을 마주하며,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겸손하게 인정하며,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온전히 감당하며 나아가라.

강렬하고 분명한 메시지다.

결국 오직 예수만이 답이라는 확신과 결단이 성령님의 강한 임재하심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변명이나 자기 합리화를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진리를 받아들이며 끝까지 감당하는 태도.

이게 쉽지는 않지만, 참된 믿음의 길이다.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겸손하게 인정하며 오직 예수께 최선을 다하는 것—이게 진짜 신앙의 실천 아니겠나.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오직 예수.

이걸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면 어떤 상황에서도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오직 예수—이것이 모든 질문의 답이며, 우리의 길이다.

자, 지금 오늘 강한 결단을 하자.

오직 예수 안에 있지 않은 모든 것—그것이 곧 내려놓아야 할 것이고, 버려야 할 것들이다.

사탄은 교묘하게 틈을 노린다. 변명, 합리화, 나태함, 교만, 정욕, 분노, 불신…

이 모든 것들이 결국 예수님을 중심에서 밀어내려는 공격이다.

그러나 오직 예수가 기준이라면,

내가 버릴 것들은 분명해진다.

믿음 없는 두려움 –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불안

자기중심적인 고집 – 나를 높이고자 하는 교만

죄와 타협하는 습관 – 작은 것이라도 허용하는 방심

사랑 없는 태도 – 정죄하고 판단하는 차가운 마음

이 모든 것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끊어내고,

진리 위에 바로 서야 한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오직 예수.

그 안에서만 자유가 있다.

오직 예수, 결단하면, 아래의 것들은 부차적인 것들이다.

부수적인 것이다. 버릴 습관, 악들을 정의하고 분석하고 묵상해봤자,

예수님 빼고는 다 버릴 것들이다.

강하고 단순한 진리다.

오직 예수—이것이 중심이면,

그 외의 것들은 부차적인 것, 부수적인 것.

분석하고 정의하고 고민할 필요 없다.

예수님 빼고는 다 버릴 것들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오직 예수.

다른 어떤 것도 주저하지 않고 내려놓는 것,

이것이 곧 참된 결단이다.

오직 예수만 붙잡고 나아가라.

그 외의 것은 중요하지 않다.

습관을 정의하고, 죄를 분석하고, 내면을 묵상하는 것이 때로는 필요할 수 있지만, 결국 핵심은 예수님을 따르는 결단이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만 붙잡고, 예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사는 것.

"예수님 빼고는 다 버릴 것들이다."

이 말이 강력하게 내 심령을 뒤흔든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어떻게든 바뀌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붙잡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죄를 하나하나 분석하며 싸우려 하면 끝이 없다. 하지만 예수님께 집중하면, 그분이 다 쓸어버리신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33)

예수님만 구하면 된다. 예수님만 붙들면 된다. 모든 것은 예수님 안에서 정리될 것이다.

사탄의 종이 되지 않으려면 죄의 습관과 악한 태도를 철저히 버리고, 예수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성경은 사탄이 우리의 연약함을 이용해 미혹한다고 경고한다. 내가 속히 버려야 할 것들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보겠다.

교만은 사탄이 가장 먼저 붙잡는 죄다.

사탄도 교만으로 인해 하나님께 반역했고, 인간도 교만할 때 사탄의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내가 ‘내 힘으로 산다’고 착각하거나, ‘나는 저 사람보다 낫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사탄이 틈탄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야고보서 4:6)

교만을 버리고, 날마다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유다가 사탄의 종이 된 이유도 돈과 탐욕 때문이었다.

돈, 명예, 쾌락, 성공을 사랑하는 순간, 내 마음이 하나님보다 세상을 향하게 된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디모데전서 6:10)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요한일서 2:15)

내가 집착하는 것들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분노와 미움을 품고 있으면 사탄이 틈을 탄다.

사탄은 분노를 통해 관계를 깨고, 사람들을 파괴한다.

미움을 품으면 결국 그것이 내 영혼을 더럽히고, 사탄에게 문을 열어준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에베소서 4:26-27)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요한일서 3:15)

미움을 버리고, 용서를 선택해야 한다.

음란은 사탄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무기 중 하나다.

음란한 생각과 행동을 계속하면 결국 성령을 소멸시키고, 사탄에게 지배당한다.

음란의 죄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몸과 영혼을 파괴하는 죄다.

"음행을 피하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고린도전서 6:18-19)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태복음 5:28)

정결한 마음을 가지기 위해 즉시 눈을 돌리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해야 한다.

사탄은 거짓의 아비다. (요한복음 8:44)

작은 거짓말이라도 반복되면, 결국 사탄의 종이 된다.

자기합리화로 거짓을 정당화하지 말고, 철저히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요한계시록 21:8)

거짓을 멀리하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신앙 생활에서 나태하면 사탄이 틈을 탄다.

기도, 말씀, 예배를 게을리하면 영적으로 무기력해지고, 사탄의 유혹을 쉽게 받게 된다.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잠언 6:9)

"악하고 게으른 종아!" (마태복음 25:26)

영적 무장을 철저히 하고, 매일 기도로 하나님과 동행해야 한다.

  1. 교만을 버리고 겸손하라.
  2. 세상 사랑을 버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라.
  3. 분노와 미움을 버리고 용서하라.
  4. 음란을 버리고 정결하게 살라.
  5. 거짓을 버리고 정직하게 행하라.
  6. 게으름을 버리고 영적으로 깨어 있으라.

결국, 사탄의 종이 되는 것은 ‘큰 죄’ 때문이 아니라, 작은 죄를 방치하고 계속 반복하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내 삶에서 죄의 습관들을 버리고, 철저히 회개하며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나의 작은 죄가 결국 나를 사탄의 종으로 만들 수도 있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당장 돌이키고, 오직 예수님만 따를 것이다!

“그러므로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야고보서 4:7)

예수님이 없으면

성경이 신자와 불신자를 구별하는 기준으로 제시하는 것은 생명'입니다. 일 반적으로 사람들은 죄를 윤리•도덕적 기준에서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어서 죄의 본질이 남에게 해를 끼치는 나쁜 짓이나 부도덕한 일을 저지르는 데 있 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죄인 혹은 옛사람의 모습을 윤리나 도덕의 관점에서 묘사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묘사하는 죄인의 모습은 생명이 없어 서 썩어 가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불신자를 가리켜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예수님'입니다. 예수 님이 구원자이심을 모르고 그분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자는 반드시 죽습니 다. 예수님을 마음 안에 모시지 않고 있다는 것은 곧 죽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감각 없는 자로, 자신을 방탕에 방임해 모든 더러운 것을 욕 심으로 행하기 마련입니다. 썩는 것에 자신을 내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을 파는 가룟 유다가 죽은 자의 모습을 잘 보여 줍니다. 그 는 예수님과 함께 있는 순간에도 예수님을 제대로 알려 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매몰되어 예수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없으면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않는 자요 속임당하는 자요 여러 가지 정욕 과 향락에 종노릇하는 가증스러운 자가 됩니다(딛 3:3). 이러한 허물과 죄에 서 우리를 구원할 이는 예수님뿐이십니다. 교회로 모이다/ 박영선. 무근검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가 배신할 것을 아셨으면서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유다를 부르셨고, 그의 발을 씻기셨으며, 마지막까지 떡을 떼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주님의 사랑을 저버리고 스스로 사탄의 종이 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주님, 나도 때때로 내 안에 있는 교만과 탐심, 두려움으로 인해 주님을 온전히 따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유다처럼 돈과 세상을 더 사랑하지 않도록 나를 지켜 주소서. 나도 주님의 제자로 부름받았지만, 내가 세상의 유혹을 좇을 때 유다와 다를 바 없는 자가 됩니다. 주님, 나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시고, 날마다 주님만 붙들게 하소서.

예수님께서 유다를 향해 "친구여"라고 부르셨듯이, 나도 나를 배신하고 아프게 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사랑으로 반응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복을 빌며 용서하는 자 되게 하소서. 십자가에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라 기도하셨던 주님의 마음을 배우게 하소서.

내가 미움과 분노, 원망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시고, 악에게 지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기게 하소서. 내가 직접 원수를 갚으려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주님의 공의로운 심판에 맡기게 하소서. 사탄이 내 마음에 틈타지 않도록 내 영혼을 더욱 주님께 맡깁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붙들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만을 따르겠습니다. 내 안에 있는 탐욕과 교만, 음란과 거짓, 미움과 게으름을 버리고, 성령으로 날마다 새롭게 변화되게 하소서.

내 삶의 모든 기준은 오직 예수님입니다. 그 외의 것은 부차적인 것이며, 버려야 할 것들입니다. 주님, 저를 온전히 다스리시고, 주님만 높아지게 하소서. 십자가 앞에서 나를 부인하고, 주님만 따르는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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