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이르는 유일한 길 14:1~7

믿음의 시선으로 주님을 바라볼 때 근심은 멀어집니다.

예수님이 떠나신다는 것과 베드로의 부인 예고에 제자들이 근심합니다(13:33, 38).

이에 예수님은 말씀으로 제자들을 위로하십니다.

첫째, 믿음을 권면하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십니다(1절).

둘째, 천국 소망을 품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떠나시는 이유는 우리를 위해 하늘에 거처를 마련하시기 위함입니다(2절).

거처를 마련하신 후에는 다시 오셔서(재림) 우리를 그곳에 있게 하리라고 약속하십니다(3절).

셋째, 참된 구원의 길을 알려 주십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이시요,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성취한 진리이시며, 하나님의 신적 생명을 우리와 결합시키는 영원한 생명이십니다(6절).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주신 위로와 소망은 무엇인가요?

예수님께서는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약속과 소망을 주심으로 위로하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 땅에서 겪는 모든 어려움을 뛰어넘는 영원한 처소를 마련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혼자가 아니라 성령님을 통해 계속해서 인도받고 보호받을 것임을 말씀하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오직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 길을 잃지 않을 것임을 확신시켜 주셨다.

이처럼 예수님은 천국의 소망, 성령의 위로, 그리고 자신이 영원한 길이 되심을 통해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확신과 평안을 주셨다.

근심이 생길 때 내가 자주 묵상하는 말씀은 무엇인가요?

공중 나는 새를 보라 찬양과 함께

마태복음 6장을 묵상한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이 말씀은 하나님의 섭리와 공급하심을 강조하며, 불필요한 근심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가르침을 준다.

하나님은 창조물을 돌보신다 → 새들도 돌보시는 하나님께서 내 삶을 책임지신다.

근심한다고 문제 해결되지 않는다 → 걱정이 키를 한 자라도 더하게 할 수 없듯, 염려 대신 믿음을 선택해야 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참된 평안을 주신다 → 현재의 염려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신다는 확신이 더 크다.

이 말씀을 자주 묵상함으로써 걱정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는 믿음의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31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솔로몬의 영광도 들꽃 하나만 못하다고 하신 것은 인간의 노력과 영광보다 하나님의 공급이 더 완전함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오늘 있다가 내일 사라질 들풀도 아름답게 입히신다면, 사랑하는 자녀인 우리를 더욱 돌보신다는 약속이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하는 생계의 염려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가지는 불안이다. 그러나 하늘 아버지는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공급하시는 분이시다.

우선순위: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와 뜻을 최우선으로 삼고 살아가라는 뜻이다.

그렇게 하면 세상의 필요는 하나님께서 책임지고 채워주실 것이라는 약속이다. 오늘에 충실하라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은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는 대신,

오늘 주어진 하루를 믿음으로 살아가라는 권면이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다는 표현은 지나친 걱정이 오히려 믿음을 약화시킨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하나님을 신뢰하라: 모든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을 믿고 걱정을 맡기자.

우선순위를 바로잡자: 세상의 걱정보다 먼저 하나님의 뜻과 나라를 추구하자.

오늘에 충실하라: 미래의 염려를 내려놓고 오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 집중하자.

이 말씀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 속에서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라는 예수님의 초대다. 공중의 새와 들꽃도 돌보시는 하나님이 당신의 삶을 반드시 책임지신다.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 주신 예수님 14:8~14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십니다(1:1).

빌립이 예수님께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하자, 예수님은 자신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십니다(8~9절).

이는 예수님의 인격이 하나님의 인격과 연합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 계셔서 그분의 일을 행하시기에,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들을 보면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10~11절).

믿음이 곧 능력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할 수 있고,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습니다(12절).

무엇이든 우리가 ‘예수님 이름으로’ 구하면 예수님이 응답해 주시는 이유는 그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때문입니다(13절).

예수님 이름이 능력이요 응답의 비결입니다.

아버지를 보여 달라는 빌립의 말에 예수님은 어떻게 답변하셨나요?

예수님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과 같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골로새서 1:15)이시며, 그분을 보면 하나님의 성품과 영광을 볼 수 있다.

예수님과 아버지는 하나이시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시다"라는 말씀은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가 본질적으로 하나이심을 나타낸다(요한복음 10:30).

예수님의 말씀과 행위는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거하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요한복음 14:10).

즉, 예수님이 하시는 모든 말씀과 기적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통해 이루시는 일이다.

빌립의 요청에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대답하셨다. 이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 되시는 분이시며, 하나님의 성품을 완전하게 나타내시는 분임을 의미한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으며, 예수님을 믿는 것이 곧 아버지를 믿는 것과 동일하다는 메시지다.

내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며 실행할 일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믿음과 사랑 안에서 행하는 것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에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 기도하고, 복음 전파에 힘쓴다.

의로운 삶을 살며, 세상의 가치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한다.

가족과 교회 공동체 안에서 사랑을 실천한다.

이웃을 돕고, 섬기는 삶을 살아간다.

기도하며 성령의 능력으로 죄를 이기고 거룩한 삶을 추구한다.

마음과 삶을 하나님께 헌신하여 주님을 더욱 닮아간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화해하는 마음을 가지며, 원수를 사랑하는 삶을 실천한다.

용서받은 자로서 용서를 베풀며 예수님의 사랑을 드러낸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을 제자로 삼는 일에 힘쓴다. 삶으로 예수님을 증거하며,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삶을 산다.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삶의 모든 순간에 감사하는 태도를 가진다.

염려 대신 믿음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신뢰한다.

결론은 오직 예수,

주제는 오직 예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실행할 모든 일의 핵심은 "오직 예수"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브리서 12:2) 삶의 모든 순간에서 예수님을 중심에 두고, 예수님의 뜻을 따르며 살아가는 것이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한복음 14:15) 성경의 가르침을 삶에 실천하고, 예수님의 사랑과 진리를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는 삶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3:34)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 이웃을 사랑하고, 용서와 화해의 삶을 사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는 삶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골로새서 3:17) 모든 말과 행동이 예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실행할 일은 예수님을 따르는 삶,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 그리고 예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다. 오직 예수님만이 삶의 중심이요, 목적이요, 능력의 근원이다.

"예수 외에는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습니다." (사도행전 4:12) 그러므로, "오직 예수!" 이것이 모든 기도와 행동의 이유이며 목표이다.

오직 예수! 주님만 바라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날마다 옛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결단!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린도전서 15:31)

매일 자아를 내려놓고 예수님만 바라보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 믿음의 여정이다.

"오직 예수!" 이 한마디가 모든 삶의 중심과 방향이 되길 기도합니다. 🙏🏻❤️

주님, 저의 회개와 오직 예수만을 따르겠다는 다짐을 받으소서. 오늘도 자아가 죽고, 예수님의 생명만이 흘러넘치게 하옵소서. 오직 예수! 주님만 바라보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예수님의 전 존재를 각인하며 살아가는 것은, 삶의 모든 순간을 예수님의 사랑과 진리 안에서 해석하고 반응하는 삶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한 의식 수준을 넘어, 예수님과의 관계가 내면 깊숙이 뿌리내려 삶의 중심이 되는 상태를 뜻한다.

아침에 일어나 예수님께 하루를 맡기고, 밤에는 하루를 돌아보며 감사와 회개의 기도를 드린다.

일하는 중에도 '예수님, 지금 제 마음을 지켜주소서.'와 같이 짧은 기도로 마음을 주님께 돌린다.

일, 대화, 휴식까지도 예수님과 함께하는 동행의 마음으로 임하면, 세상일이 곧 주님과의 교제가 된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떠올리지 못하는 순간이 있더라도 죄책감을 느끼는 대신, 다시 그분께 마음을 돌리는 것이다. 이는 관계의 문제이지, 완벽함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한복음 15:7)는 말씀처럼, 주 안에 거하는 연습을 꾸준히 하면, 예수님의 존재는 점점 더 삶에 깊이 각인될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예수님, 당신만이 아버지께 이르는 유일한 길이심을 고백합니다. 주님을 바라볼 때 내 마음의 근심이 사라지고, 오직 소망과 평안이 임합니다. 제자들을 위로하셨던 주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굳건히 서길 원합니다.

주님, 이 땅의 염려와 불안을 내려놓고 하늘에 마련된 영원한 처소를 바라보게 하소서. 제 삶의 방향과 목적이 오직 주님께 있음을 기억하게 하시고, 어떤 상황에서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만 붙잡게 하소서.

공중의 새를 돌보시고 들풀을 아름답게 입히시는 하나님, 오늘 제 삶의 모든 필요도 아버지께서 책임지심을 믿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지 않고 먼저 주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내일 일은 주님께 맡기고, 오늘 주어진 사명에 충실하게 하소서.

아버지를 보여달라는 빌립에게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 하신 예수님, 저의 삶에서도 예수님의 형상이 드러나게 하시고, 말씀과 행동으로 주님의 사랑을 증거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할 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응답하심을 믿고 기도하게 하소서.

주님, 매일의 삶에서 내 자아는 죽고, 오직 예수님께서 살아 역사하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내 생각과 감정, 계획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겸손히 주님의 길을 걷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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