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왜 엘리야를 그릿 시내로 보내셨나요?

북 이스라엘의 영적 암흑기에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 강력하게 역사하십니다.

엘리야는 하나님 이름으로 맹세하며 앞으로 몇 년간 자신의 말이 없으면 비도 이슬도 없을 것이라고 아합에게 말합니다.

백성은 번개와 폭풍의 신 바알이 비를 관장한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비와 풍요가 전적으로 그분 주권에 달린 것임을 알리시기 위해 가뭄을 선언하십니다.

아합이 엘리야를 죽이려 하기에 하나님은 엘리야를 그릿 시냇가에 숨기시고 까마귀를 통해 떡과 고기를 제공해 주십니다.

이 일은 동물도 참신이신 하나님 명령에 복종함을 보여 주는 한편, 하나님의 선지자가 목숨 보전을 위해 도망 다녀야 하는 암울한 현실을 보여 줍니다.

위기 상황에서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고 살리신 은혜의 사건은 무엇인가요?

위기 상황이란 다양한 상황에서 인간들이 어려움에 처하는 상황이라고 정의 된다면,

시련과 고난, 재앙을 지날 때에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하시고 살리신 은혜의 사건을 묻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은혜이고 은혜의 사건이지만 구분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그렇다면 시련은 인간의 믿음과 행동이 검증되거나 강화되는 과정으로 묘사된다.

나의 시련은 교회를 나가는 것 부터가 시련이었고, 고난이었다.

그리고 술을 끊는 것, 절제하는 것, 유혹에 빠지지 않는 것,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들이 위기 상황이었다.

그런 시련 상황에서는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하시고 살려주셨다. 시련이 있어서 고난이 있었고 고통이 있었고 아픔이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고난과 시련 마저도 은혜로 되돌아보니 은혜로 바꿔주셨다.

나는 이미 예수님을 믿어서 중생하고 회개하고 거듭났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열매만을 바라면서 신앙생활을 한 것같다.

오직 성령충만과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 안에 거할때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니 그 가지에서 맺힌 좋은 열매를 숭배하는 성령의 열매 마저도 우상숭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 절제하는 것,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 진짜 사랑을 하는 것, 등등 모든 것은 결과이다.

예수님께 접 붙힘 인치심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성령 충만한 결과를 나는 우상숭배한 것이다.

[요6:26-27] 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요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즉 표적을 본 까닭도 아니고 예수님 믿고 나오는 떡고물을 먹고 배부른 까닭으로 예수님을 찾았다.

예수님 제 죄를 자백합니다. 행복한 항복을 합니다. 그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오직 예수님 그 자체를 영생하도록 있는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먹겠습니다. 예수님에게 붙겠습니다. 예수님에게 접 붙어서 나온 좋은 결과를 추앙하고 우상숭배하지 않고 예수님만을 찬송드리고 영광드리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모자란 결핍을 채우려고 시도를 처음에는 하지만, 예를 들어서 내가 모자란 것 성품결함을 고쳐주세요라고 기도를 하지만, 성품결함을 고치는 것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모하고 예수님께 접붙힘 당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진정으로 느끼고 은혜를 풍성히 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새것이 된 결과로 성품결함이 저절로 없어지는 것이지, 거듭났기 때문에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이지, 내가 각 하나하나 항목을 두고 이거 고쳐주세요 저거 고쳐주세요 해봤자 오히려 그 각 항목을 고침 받기 위한 우상을 섬기게 된 것이었다.

즉, 예수님을 바라고 바라면 모든 것을 해결해주시는 데, 나는 이때까지도 지금까지도 의롭다 생각하고 신앙생활, 종교인의 모습으로 예수님을 오해하고 그저 사랑이시고 아낌없이 퍼주시는 예수님의 진짜 사랑을 모르고 단지 내 자기 계발의 도구로 사용을 해버린 것이다.

선하신 예수님을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자기개발의 도구가 예수님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의 거듭남과 인치심 중생은 취소되지 않으며 더이상 악의 길로 빠지지 않는 예수님의 확증과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나의 신앙은 더욱더 굳건하게 되며 하나님과의 관계는 더욱더 가까워 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럼으로 내 의로 열심히 하고자 했던 모든 신앙생활은 이제는 바스라진 낙엽과도 같이 부서졌으며, 나는 죽고 예수님께서 나를 대신 삶을 살아가게 하실 것이며, 더 이상 걱정과 근심 배고픔 굶주림 영적인 갈망 행동과 율법에 대한 제약사항을 모든 리미트를 해제하여 예수님의 무한한 가능성을 바라고 새 예루살렘이 다시 오는 그날까지 그리스도의 순결하고 순전한 신부로서 정결히 예수님의 재림을 간절이 원하고 원하옵나이다.

그러므로 이미 기도하고 간구한 것은 받은 것으로 생각하라. 영생이 이미 나에게 주어졌고, 죄악의 과거의 육체의 일에서는 이미 벗어났다. 나의 내 안의 죄성은 이미 죽었다.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생각이 난다고 해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사단마귀 물럿거라. 부정을 말하지 않는다. 내 입술은 예수님께서 지켜주신다. 나는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하나님께서 나를 예수 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영접하기로 믿게끔 예정했기 때문이다. 이미 모든 성경의 예언과 표적과 기사는 이루어졌고 나의 믿음은 변하지 않는다. 또한 직접적으로 성령의 열매를 구하지 않는다. 이미 받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랑희락화평오래참음자비양선충성온유절제는 받았고 성령의 전신갑주도 받았다. 믿음의 방패 구원의투구 성령의 검 진리의 허리띠 의의 호심경 평안한 복음의 신발 이미 받았다. 그런데 나는 이미 받은 것을 자꾸 간구하니까 주시지 않는다. 이미 받았단다 라고 예수님께서 웃어주신다. 고맙습니다. 예수님.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저에게 풍성한 많은 은혜와 사랑을 무한히 주시고 계셨군요, 마라나타 주님 오실 때 까지 이 마음 소중히 간직하여 영원히 주님을 찬양하겠나이다.

사르밧 과부는 어떤 마음으로 엘리야에게 마지막 떡을 주었을까요?

하나님이 엘리야를 더 멀리 이방 땅 시돈의 사르밧으로 보내십니다.

그곳에서 엘리야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한 과부를 만납니다. 당시 과부는 가난해 도움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었습니다.

기근으로 인해 사르밧 과부에게 남은 것은 가루 한 움큼과 기름 조금뿐이었습니다.

마지막 떡을 만들어 엘리야에게 먼저 주면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을 여인은 믿음으로 받아들입니다.

이스라엘 왕도 믿지 않은 하나님의 선지자 말을 이방 사람인 과부가 믿은 것입니다.

그 결과 기근 내내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기적의 주인공이 됩니다.

풍요를 위해 하나님을 버린 북 이스라엘 백성은 기근을 당하지만, 하나님 약속을 믿은 사르밧 과부는 기근이 끝날 때까지 풍요를 맛봅니다.

내가 약속의 말씀을 신뢰하고 순종할 일은 무엇인가요?

(요 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34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배반자 가룟유다가 빠진 자리에서 나머지 11명의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부여해 주신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 말씀은 구약성경 레19:18의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말씀과 뜻이 같지만 레위기의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내린 민족적인 범주와 인간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있지 못하지만 새 계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실천적 사랑이라고 볼 수 있다.

35절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예수 제자됨의 증거는 서로 사랑하는 것뿐이다. 여기서 '사랑'이 ajgavph(아가페)로 사용되어 하나님 안에서의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 것을 말한다.

http://kcm.co.kr/bible/kor/Joh13.html#요 13:34

http://kcm.co.kr/bible/kor/Joh14.html#bottom

성경을 보면 볼 수록 새롭고 또 겸손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 같다. 지존하신 하나님 앞에서 어찌할 방도가 없으며 그저 행복한 항복을 할 뿐이다.

요한일서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내 속사람을 깨끗하게 해주셨으니 이미 나의 자백할 죄가 없기를 간청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죄를 저지른다면 우리가 우리 죄를 거짓 없이 자백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약속의 말씀을 신뢰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과 계명과 새 계명에 부합하고 일치하는 행동을 따라 살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동행하심을 굳건히 믿사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하나님의 기도 응답을 확인하고 하나님을 제일 크게 사랑하고 하나님의 모든 것을 더욱 사랑하고 사랑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고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의 길을 걷는 것,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거룩함을 구하고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을 목표로 새 예루살렘이 오는 그날까지 하나님 오직 한분만 찬양하겠습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히12:14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요한복음 9:41).

(고전 6:8)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그는 너희 형제로다 (고전 6: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고전 6:10)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고전 6: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이와 같은 삶의 태도와 행위는 성령의 열매의 결과가 아닌 당연히 육체의 일을 행하는 것, 그것을 점검하여 이와 같은 행위의 마음마저 품는다면 속사람의 동기마저 바꾸어주시길 바랍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기를 간구합니다.

왜냐하면 그 행동과 행위와 마음가짐은 예수님을 안다고 해놓고는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부터 진정으로 거듭나기를 구하옵고 원합니다. 그리하여 내 가족, 내 친척, 내 친구, 내 형제자매님들, 성도분들, 한국 기독교 전반, 한국사회, 온 지구, 세계가 모든 하나님의 임재를 구합니다.

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

(갈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7:15, 마26:41 (갈 5: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갈 5: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갈 5: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갈 5: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갈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갈 5: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 5: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갈 5: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하지만 우리는 죄와 싸우는 여정을 겪습니다. 완벽함을 향해 노력하고 성장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절대로 완전히 스스로 완벽하고 의로운 존재가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선을 행하지 못하고 원치 않는 악을 행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영적인 전쟁에서 끊임없이 싸워야하는 현실을 인정하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힘에 의지하여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는 소망과 비전을 보여주십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죄와의 전투에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도음을 구하고, 기도하고, 찬송부르기를 원합니다. 내가 완벽함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해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죄와의 싸움에서 끊임없이 도전하고,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의 은혜를 받으며 성장하고 변화하는 모습이 제자된 삶, 서로 사랑하는 삶, 서로 사랑함으로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 줄 아는 삶을 살도록 예수님께서 도와주세요.

결핍 의식에서 부유 의식으로

나는 1975년 신학교에 입학했다. 신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결핍이 늘 나를 따라다녔다. 그 당시 신학생들은 대부분 가난했다. 수업료 때문에 애절하게 기도하고, 기숙사비 때문에 간절히 기도했다. 나는 왜 하나님이 가난을 통해 신학생들을 연단하시는지 궁금했다. 이후 그것이 하나님이 영적 리더를 키우시는 방법임을 깨달았다. 결핍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결핍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게 만든다. 나는 결핍 때문에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되었다. 1982년 미국 유학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재정이 바닥났다. 어느 주일에는 딸아이 우유 살 돈도, 헌금할 돈도 없었다. 결핍은 우리 부부를 외롭게 하는 한편 하나님만 바라보게 했다. 우리 부부는 결핍의 때에 옷장 하나를 정리하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수없이 경험했다.

하나님은 결핍을 통해 영적 리더에게 ‘결핍 의식’이 아닌 ‘부유 의식’을 심으신다. ‘결핍 의식’은 우리를 좌절시키고 무력하게 만든다. 그러나 ‘부유 의식’은 하나님의 부유하심과 충만하심에 집중하게 한다. 나는 성경을 읽으면서 충만하시고 부유하시고 모든 것이 풍성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결핍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시고, 결핍을 통해 우리에게 풍성한 복을 베풀어 주신다. 결핍은 풍부하신 하나님께 믿음으로 나아가게 하는 에너지다.

리더의 고독 / 강준민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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