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가 '형제 사랑'과 '말씀의 영원성'을 연결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원받은 성도는 형제 사랑을 실천해야함.
- ‘형제 사랑’에 해당하는 헬라어 ‘필라델피아’는 ‘우애’ 혹은 ‘우정’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성도 간에 서로 세워 주는 사랑의 실천을 의미.
- 베드로는 참된 순종으로 형제 사랑을 실천하라고 권합니다(22절). 이것이 구원받은 성도에게 합당한 삶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 성도의 거듭남(구원)은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 말씀에 따른 것(23절).
- 아무리 좋아 보여도 세상에 속한 것은 사라지지만, 복음(말씀)은 영원(24~25절; 사 40:6~8).
- 복음을 믿고 영생을 선물로 받은 성도는 유한한 세상에서 거짓 없는 영원한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
'형제 사랑'의 관점에 서 내가 반성할 것과 다짐할 것은 무엇인가요?
서로 세워주는 사랑
세워주는 말, 채워주는 사랑, 이런 것들을 해야한다.
상대 방의 말을 잘 들어주고, 말을 끊지 않고, 타인의 감정과 생각을 진심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한다.
상대방에게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줘야한다.
상대방의 작은 성취나 노력을 인정해주고 칭찬하는 것이 큰 힘이 된다. 진심 어린 칭찬과 격려는 상대방에게 사랑을 준다.
도와줄 수 있는 것을 도와주고 내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기꺼이 도와주는 행동을 하자. 중요한 사랑의 실천. 도움 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나도 기꺼이 도움을 구하자.
상대를 이해하고 갈등이 생기면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함께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서로의 관계를 돈독히하고 감사표현을 하며 긍정적인 피드백을 제공하면서 개인 시간을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다.
충실하게 약속을 지키고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 믿음을 주고 신실한 사람이 되어야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회복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수직적인 관계인 하나님과의 관계
오직 예수
오직 예수님만 바라고 구할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된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자동으로 무릎이 꿇린다. 거룩하신 그 존귀하신 분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나는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이 대신 싸워주신다. 마귀는 나를 대적하려면 먼저 하나님을 상대해야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시고 보호하시고 풍성한 은혜와 사람을 넘치도록 터지도록 주신다.
문제를 내가 해결하고 애쓴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내 앞에 있는 문제를 놓고 두손 두발 다 들고 항복하고 하나님께로 나아가자.
하나님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아직도 나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앞서 행동하려고 한 것이 있다면 모든 나의 의지를 회개하고 항복합니다.
오직 내가 반성할 것은 내가 반성하려고 또한 노력한 것도 반성합니다.
단지 하나님께 항복하고 두손두발 다 들고 놓아버리고 죄악에 사로잡히지 않고 예수님 이름 권능으로 자유를 얻을 수 있도록 주님께 다 맡깁니다.
내 힘으로 반성하지 않겠습니다. 주님의 힘으로 반성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마귀에게 먹이를 주지 않겠습니다.
마귀에게 속임 당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 꼭 하나님께서 나를 다짐하게 해주시고 항복하고 회개할 때 비로소 진리의 영 자유의 영 악한 영에서 자유케 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만 생각하고 살도록 하겠습니다.
분명 나를 상대하려면 내 앞과 뒤 사방팔방 내 전방위를 지켜주시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먼저 상대해야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잘것 없는 내 사랑을 받아주세요. 하나님, 내 사랑을 받아주세요.
이 보잘 것 없는 사랑을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으로 바꿔주시고,
그 무한한 사랑을 형제 우애를 다지는데 사용할 수 있도록 저를 고쳐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어떤 존재가 되었나요?
- 은혜로 구원받고 주님의 인자하심을 맛본 성도는 거짓되고 악한 말을 버려야 한다.
- ‘신령한 젖’(2절) 곧 생명을 주는 구원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은 사람에게는 버림받았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받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님을 의지하는 삶.
- 이 돌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가치 없고 거치는 것이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신령한 집’으로 지어질 기초가 되어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삶의 제사를 드리게 한다(4~8절).
- 성도는 하나님 백성이 되고 긍휼을 얻은 새로운 존재가 됨.
-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가 된 백성’으로 살아야 한다.
- 하나님 말씀을 받은 성도는 그 말씀처럼 존귀한 존재.
나는 이 세상에서 어떤 존재 (신분)로 살아가고 있나요?
나는 그리스도의 신부로 살고 있다.
나는 이미 음란한 그리스도의 신부이다.
나는 이미 간음한 그리스도의 신부이다.
나는 이미 타락한 그리스도의 신부이다.
주님께서는 정결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길 원하신다.
나는 과연 예수님 지금 당장 재림하신다고 해도 떳떳하게 예수님 사랑합니다. 쫄래쫄래 가서 입맞출 수 있을까?
정빈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 사랑합니다. 당신께서 아십니다. 주님께서는 아십니다. 오직 주님만이 아십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예수님을 그렇게 사랑한다면서 왜 사랑하는 그 분의 향기를 못 내뿜고 있는가?
내 자신 스스로가 너무 더럽고 추해서 숨지는 않을까? 그 정결함의 최고봉을 내가 직접 본다면 쥐 구멍이라도 부끄러워서 들어가서 숨고 싶지는 않을까?
이런 모자란 나를 그리스도의 신부로 칭해주셔서 너무 주님 정말 감사합니다.
영적으로 타락한 나를 더러운 사단 마귀의 자식 마귀와 하나님을 양다리 걸치고 있는 이런 모자란 나를 죄인중의 괴수이자 먼지만도 못한 인간을 나를 사랑해주시고
영적으로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자녀 하나님 백성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 삼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데 신랑 입장에서 저와 결혼하신다니
나 스스로 고결하고 존귀하다 생각하고 스스로를 높이지 않고 나를 낮추고 타인을 올려주시길 바랍니다.
나를 바닥까지 낮추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발을 핥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은 무슨 죄이신지요? 무슨 죄로 나같은 놈을 신부로 삼아주시나요?
나는 이렇게 쪼잔하고 별볼일없고 불쌍한 사람인데요 더 좋은 것 더 좋은 것 더 좋은 것 원했을 텐데도 급 나누고 비교하고 제단하고 잣대를 두고 치졸하고 처절하게 내 이득과 유익을 위해서 살았을 것입니다.
오늘도 사랑합니다. 예수님.
꼭 나를 주님의 원하시는 대로 사용하시고 내 주변 이웃들 천국 소망 가지게 도와주세요. 인격적으로 예수님 만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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