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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여러 관계 중에 신부로 부르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남편으로 우리를 아내로, 혹은 예수님을 신랑으로 우리를 예수님의 신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신랑과 신부의 관점에서 성경을 보면 성경은 결혼 이야기로 시작해서 결혼 이야기로 마칩니다. 창세기 2장의 아담과 하와의 혼인에서부터 시작하여 요한계시록에서 우리가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것으로 마쳐집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셔서 첫 번째 행하신 기적이 가나 혼인잔치에서의 기적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구약을 읽으며 이해하지 못했던 많은 부분들이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기도의 차원이 달라지게 됩니다. 자녀로서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는 차원에서 어린양의 신부로서 간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이 관계에 대해서 눈이 열린 것은 2005년입니다. 교회에 누구나 와서 기도할 수 있는 기도처를 만들고, 24시간 열방을 위해 중보하는 기도의 집이라고 해서 ‘마가다락방’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마가다락방 기도실들로 들어가는 복도에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사 62:7)는 말씀도 붙여 놓고 쉬지 않는 기도, 선교 완성을 위해 드리는 기도를 모토로 했지만, 문제는 성도들이 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이 기도가 옳은 기도인데 왜 그럴까?’라고 고민하며 억지로 끌고 가려고 하는 저 자신도 지쳐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기도실에 앉아서 이사야서 말씀을 읽는데 62장 말씀에 제 눈이 확 열리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향해 ‘헵시바와 쁄라’라고 부르십니다. ‘헵시바’는 “나의 기쁨”이라는 뜻이고, ‘쁄라’는 “결혼한 여자”라는 뜻입니다.
“그렇구나. 쉬지 않고 성벽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기 위해서는 헵시바요 쁄라가 먼저 되어야 하는구나.” 6-7절이 이루어지려면 4-5절이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시는 너를 버림 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 사 62:4-5
결혼한 부부는 집을 지켜야 한다고 힘들어하지 않습니다. 내 집이니 당연히 지킵니다. 밤에는 문을 잠그고 식구들과 소유를 보호합니다. 그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누가 지키지 말라고 하면 오히려 힘들 것입니다. 사랑하는 내 가족이니까 그렇지요.
아내가 남편을 너무나 사랑하면, 남편과의 관계가 행복하면, 가족을 위해 수고하는 일들이 기쁨이 됩니다. 기도의 파수꾼, 쉬지 않고 기도하는 중보기도자는 먼저 ‘주님의 신부’가 되어 “헵시바와 쁄라”라고 하시는 주님과의 사이에서 사랑을 누려야 한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부에 대한 말씀들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는 힘은 ‘사랑의 관계’에서만 나올 수 있습니다. 다른 모든 봉사와 섬김도 의무적인 종교 활동이 아닌 사랑하는 남편과의 친밀함으로 부르시는 초대입니다.
신랑과 신부의 관점으로 보니 구약의 많은 부분, 특히 어렵게 여겨지는 예언서의 많은 부분들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특히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을 음행한 여인으로 비유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이스라엘을 아내로 대우하셨지만 이스라엘은 어리석게도 남편 되신 하나님을 떠나 세상으로 갔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불같이 화를 내시는 모습으로 묘사된 부분이 많습니다. 우리는 그런 말씀을 읽을 때마다 하나님을 두려운 분으로 생각합니다. 스스로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하시는 말씀을 읽으면 ‘하나님이 왜 그러시지?’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서 읽으면 달리 읽힙니다. 어떤 아내가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나는데 “그럴 수도 있지”라고 하면서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 어떤 남편이 아내가 외도를 하는데 아무렇지 않게 여길 수 있습니까. 만약 그런 반응을 보인다면 그 관계에는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부부관계란 독점적인 관계입니다. “나는 당신만을 사랑하니 당신도 나만을 사랑하라”고 서로 언약을 맺는 배타적인 관계입니다. 다른 사람이 절대 끼어들 수 없는 한몸의 관계입니다.
그런 사랑의 관계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는데 “하나님이 너무 무섭다”, “심하다” 이렇게 반응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나 모르는 것입니다. 고멜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호세아 선지자의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음란함을 버리고 본 남편에게로 돌아오라는 에스겔, 이사야, 예레미야의 호소는 주님의 안타까운 음성이었습니다.
- 기도를 송두리째 바꾸신 예수 그리스도, 박리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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