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3 ·

오늘의 테마 2024. 10. 30.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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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히즈’ 대학(HIS University)에 다니던 시절, 한 수업 시간에 내가 ‘버려진 감정을 경험한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애착’(attachment)에 관한 인터뷰를 하던 날이었다. 스스로 자신을 인터뷰하거나 다른 사람을 인터뷰하기도 했는데,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여러 질문에 대답하는 방식이었다. 내 차례가 되자 교수님이 물었다.

“어린 시절의 애라는 아플 때 제일 먼저 누구에게 달려갑니까?”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다 솔직하게 답했다.

“기억이 전혀 안 나요, 교수님. 모르겠어요.”

나는 평소에도 워낙 기억력이 나빠서 친구들에게 “너 그래서 어떡할래?”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은 더 형편없다. ‘과연 내 어린 시절이 존재하기는 했나?’ 싶을 정도로 기억나는 것이 거의 없다.

내가 모르겠다고 하자 다음 사람으로 넘어갔다. 그렇게 학우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갑자기 머릿속 깊은 데서부터 불편한 기억이 스멀거리며 떠올랐다.

네다섯 살쯤이었던 것 같다. 당시 한 푼이 아쉬웠던 엄마는 일을 해야 했기에 나를 할머니 댁에 종종 맡겼다. 엄마는 칠 남매 중 맏이로, 할머니 댁에는 이모가 여러 명 살고 있었다. 원래는 엄마 위로 오빠가 한 명 있었는데 아기 때 돌아가셨고, 엄마 아래로 여동생 다섯 명과 막내 남동생이 있었다.

할머니 댁에 맡겨지면, 나는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어린애가 “엄마한테 갈래! 엄마한테 갈래!”를 반복하며 몇 시간이고 계속 울었단다. 이모들이 번갈아 가며 달래도 보고, 혼내기도 했지만 멈추질 않았고, 끝내 울다가 지쳐 잠이 들었단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깨서는 “엄마한테 갈래”를 반복했고, 그렇게 날이 밝았다고 한다.

어린 내가 얼마나 오래 울며 어른들 속을 썩였는지, 이모들은 종종 그때를 회상하며 “너, 정말 고집 센 아이였어”라고 타박하곤 했다. 이모들 말에 ‘난 어릴 때부터 고집이 있었구나’ 생각했다. 사실 지금도 고집이 센 편이어서, 내 자아를 죽이려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곤 한다.

그런데 그날 수업 시간에 ‘어린 애라의 울음’은 고집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달았다.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나를 친정에 맡겨야 했던 엄마의 사정을 어린 ‘애라’는 몰랐다. 왜 갑자기 엄마 품을 떠나 할머니 집에서 자야 하는지, 엄마가 어디로 갔는지, 왜 갔는지, 언제 올지, 오기는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얼마나 엄마가 보고 싶었을까.

어린아이에게 세상 전부인 엄마가 사라진다는 건 커다란 공포다. 아이가 그 마음을 표현할 길은 우는 것밖에 없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밤낮없이 울었던 건 고집이 세서가 아니라, 엄마가 나를 떠났고 그래서 버려졌다고 느꼈기 때문이라는 걸. 그 깊은 거절감과 상실감으로 밤새 울었다는 걸. 울음을 그치지 않은 게 아니라, 그칠 수 없었다는 걸.

사람들이 내게 자주 묻는 말이 있다.

“신애라 씨는 왜 그렇게 고아에게 관심이 많아요?”

그 이유를 나도 몰랐다. 그저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눈이 갔고, 그들의 심정이 가슴으로 느껴졌다. 돌아보면, 어린 시절의 내 울음이 엄마를 기다리며 매일 밤 잠드는 보육원 아이가 삼키는 울분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 댁에서 돌아온 후에도, 어린 시절의 나는 매일 밤 엄마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아침 일찍 나가 온종일 일하고 밤늦게야 들어오는 엄마를.

‘삐걱’ 소리만 나도 현관문을 열어보고, “애라야” 부르는 엄마 목소리가 바람에 실려 올까, 귀를 쫑긋 세우고, 가로등만 외롭게 비추는 골목길을 수없이 내다보던 ‘어린 애라’가 지금도 내 안에 있다.

내 어린 시절은 엄마를 그리워하는 시간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내 존재 이유, 하루의 목표가 엄마 곁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거였다. 엄마는 내 삶의 전부였다. 엄마가 곧 세상이었기에, 엄마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으며, 엄마가 없는 건 세상이 없는 것과 같았다.

몇 번 경험한 엄마의 부재로 인해 어린 애라는 마음을 다쳤다. 그리고 그 무서웠던 기억은 ‘상실감’이라는 상처로 남았다. 실로 내 유년기는 엄마의 빈자리로 인한 결핍과 그에 따른 두려움이 크게 자리 잡은 듯하다.

그런데 엄마가 돌아가신 후,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꿀 비밀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은 한 어린아이의 마음에 생채기로 남은 트라우마조차 달란트로 바꾸신다는 걸. 내 결핍과 두려움을 다른 생명을 살리는 도구로 쓰신다는 걸 말이다.

어린 시절, 나는 친구들보다 상대적 빈곤을 느끼며 살았기에 가난한 아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엄마의 부재로 인한 결핍과 외로움이 깊었기에 부모 없이 자란 아이의 심정과 부모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내 삶의 모든 궤적은 하나님의 예비하심이었다. 목적을 향해 차근차근 인도하시는 그분의 이끄심이었다. 이제는 확실히 안다. 내 달란트는 일대일의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는 아이들에 대한 공감과 애끓는 마음이라는 사실을.

  • 하나님, 그래서 그러셨군요!, 신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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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그래서 그러셨군요!

규장신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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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 에베소서 1:11

† 기도

주님, 나도 알지 못하는 내 마음의 깊은 슬픔과 아픔도 주님께서 생명을 살리는 도구로 사용해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 슬픔과 아픔이 이해되지 않고 원망이 불쑥 찾아 올 때면 지금 나의 슬픔은 원망이 이유가 아니라 주님의 일에 작은 한 부분이라도 사용되는 도구가 되는 과정임을 알게 하소서. 나의 삶의 모든 걸음은 주님께서 예비하신 것임을 믿기 원합니다.

† 적용과 결단

내가 가진 결핍, 슬픔, 아픔들이 어떤 도구로 사용될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가기 원합니다. 나의 모든 걸음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며 원망하지 않기로 결단하고 잠잠히 주님의 역사하심을 바라보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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