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 사람들의 영접 4:43~45
예수님이 어린 시절을 보내신 나사렛은 갈릴리 지역에 속해 있습니다.
사마리아에 이틀간 머물며 복음을 전하신 후, 예수님은 갈릴리로 향하십니다.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44절)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아는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마리아의 아들 목수로만 인식했기 때문입니다(막 6:3).
갈릴리 사람 중 명절(유월절)에 예수님이 성전에서 행하신 일들을 목격한 이들은 예수님을 영접합니다(2:23).
선지자가 고향에서 높임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마리아의 아들, 목수로만 인식했기 때문이다.
익히 알고 있는 사람에 대한 편견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는 첫인상이 90%를 좌우한다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선지자를 이웃이나 평범한 사람으로 여긴다.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일하시는 특별한 은혜를 깨닫지 못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렵다.
사람들은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일정한 틀 안에 가두고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프레임을 씌워놓고 판단하면 뇌가 처리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특정 변수를 처리하지 않으면 더 편하기 때문이다.
이 틀에서 벗어난 모습에 의구심을 품고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특히나, 인간의 질투심과 부족함을 통해서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하나님게서 주시는 메시지의 진정성을 깨닫지 못하고, 이를 받아들이는데 실패한다.
예수님께서도 배척을 받으셨을때 예수님의 사역을 인정받지 못했다.
종종 우리가 익숙한 환경이나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연약함을 보여준다.
성장 과정을 안다고 해서 내가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을 무시하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하거나 거역하게된다.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알아야한다.
그래서 말씀을 읽고 듣고 보고 알아야한다.
성경의 어느 지도자도 처음부터 잘 한 사람은 없었다.
연단하고 연단하고 연단해서 하나님이 세우심 받은 것이다.
내 주변에 어느 누구라도 하나님이 세운 사람이다.
이 사실을 자각하며, 하나님께 순종하고 복종하고 이웃을 섬기고 사랑해야겠다.
또한, 불순종은 즉각적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들을 통해서 축복과 가르침을 주시는데,
불순종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경험하지 못할 수도 있다.
믿음과 순종의 부족이 하나님의 역사를 제한할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내 마음의 교만과 편견이 자리잡아서 예수님이 아닌, 교만과 편견이 자리 잡았다는 것을 나타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만약 내가 내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면, 영적으로 더 깊이 성장하는데 방해가 될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권위에 순종할 것을 명령한다.
만약 무시하면,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져야할 수도있다.
그렇다면 결국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겸손한 마음으로 주의 선지자에게 행하길 바란다.
그들의 부족함이나 과거가 보일때에도 그들이 하나님의 도구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길 간구한다.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고 판단하기 전에 그가 하나님께 세움받은 존재임을 인식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을 신뢰하는 자세를 가지길 바란다.
왕의 신하의 아들을 치유하심 4:46~54
갈릴리 가나는 예수님이 첫 번째 표적을 행하신 장소입니다.
예수님이 가나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의 신하 중 한 사람이 가버나움에서부터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가 약 40km의 먼 거리를 찾아온 것은 병들어 죽게 된 자기 아들 때문입니다.
왕의 신하는 예수님께 가버나움으로 함께 가서 자기 아들을 치료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도 믿음이 있었다면, 백부장처럼 말씀으로 고쳐 달라고 청했을 것입니다(마 8:8).
예수님은 그분을 메시아로 믿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표적에만 관심을 쏟는 이들을 책망하십니다(48절).
왕의 신하가 절박하게 요청드리자, 예수님은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50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왕의 신하는 그 말씀을 믿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로 그 시각에 아들이 회복되었음을 알고는 그와 온 집안이 예수님을 믿습니다.
치유의 은혜보다 더 큰 선물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왕의 신하와 그의 온 집안이 예수님을 믿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왕의 신하와 그의 온 집안이 표적과 기사를 보고 믿었다.
나의 믿음은 주님 말씀에 근거하나요, 체험이나 기적에 근거하나요?
나는 하나님께서 체험과 기적을 보여주셔서 믿게 하신줄 잘못 알고 있었다.
나의 믿음의 모든 근간은 말씀이었다.
성경을 통해서 인격적으로 예수님,성령님,하나님께서 찾아오신 것이다.
그 결과가 다이내믹해서 표적과 기사에 근거한 줄 알았지만,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내가 성경을 안 읽었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이다.
즉,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씀이라는 것과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권세 많다는 것과
날 사랑하신다는 것,
성경에 써있다는 사실,
하나님의 사랑이 전 우주보다 큰 사랑으로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
그 이후 성령의 이끌림으로 성경을 읽게 되어서
내 믿음의 근간은 결국 영적인 체험과 기적이라 착각,
아니,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과 말씀에 근거한 것을 깨달았다.
꿈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거룩, 거룩, 거룩"을 외친 것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경배하는 모습과 일치한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이사야 6:3)
요한계시록 4:8 KRV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예수님께서 나를 포근히 감싸주셨다는 것은 그분의 사랑과 위로를 나타낸다. 이는 예수님이 우리의 목자로서 우리를 돌보시고 보호하시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한복음 10:1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23:1)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안식과 평안으로 채우는 가장 큰 위로이시다.
하나님께 방해되는 모든 것을 제거해달라고 기도한 것은 성경에서 회개와 거룩함을 구하는 기도와 연결된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편 51:10)
“그러므로 너희는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사도행전 3:19)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에 응답하시며 영적으로 방해가 되는 것을 제거하셨다는 꿈은 내가 진정으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고자 하는 갈망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내 머리에 손을 대시고 하얀 실 같은 것을 제거하셨다는 것은 영적 정결과 악한 영향에서의 해방을 상징할 수 있다. 이는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와 얽매임을 깨끗이 씻으시고 자유를 주시는 모습과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요한복음 8:36)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사야 53:5-6)
“너희는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브리서 12:1-2)
“내가 너희를 물로 깨끗하게 하여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하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에스겔 36:25-26)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이사야 1:18)
“주의 영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이사야 61:1)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요한일서 3:8)
“너희를 자유롭게 하려고 그리스도께서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라디아서 5:1)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2)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불필요하거나 해로운 요소를 제거하시고 영적으로 새롭게 하시는 사역을 나타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과의 관계에서 방해되는 모든 것을 이미 내 안에서 제거해 나가실 것을 약속하셨다.
내 육신의 죄성과 하늘 백성의 본성이 싸우고 있어서, 나는 아직도 나의 죄성과 싸워나가고, 죽기까지 죄와 싸워야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나를 버리지 아니하신다고 약속하셨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나를 성화의 길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나를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삶을 살면서 연단하고 또 연단하고 또 연단해야할 터이지만,
고단하고 힘든 길임에 틀림없지만,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초대해주심에 너무나도 감사하다.
하나님의 영광의 광휘의 발치에 주의 보좌 곁에 앉을 수 있는 권리를 주심에 너무나도 감사하다.
나 같은 죄인 살려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무한하신 긍휼과 자비에 너무나도 감사하다.
아직도 나는 철이 덜 들었으며, 더욱더 성화를 해야겠고, 더욱더 화평과 연합하려고 노력해야할 것이다.
날선 나의 입과 죄악의 혓뿌리와 근본적인 내 안의 죄성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그날에 회복될 것이지만,
점차 회개의 회개를 거듭하며 새로운 나로 태어남을 몸소 느낀다.
항상 겸손하며 항상 성령 충만하길 바라고 항상 악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하길 바란다.
오직 말씀과 오직 성령과 오직 예수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 아버지를 내 몸과 마음과 혼과 영을 다해서 사랑하길 바랍니다.
서로 사랑하길 바랍니다.
예수님 바로 보기
역사적으로 교회의 위기는 기독교(Christianity)가 아니라 교회교(Churchianity)가 되었을 때 일어났다. 유럽과 북미 대륙의 교회가 그랬고 한국 교회도 그 길에 들어섰다. 이 위기로부터 벗어나려면 교회가 예수님을 되찾아야 한다. 교회 제도와 의식 속에 갇힌 예수님을 되찾고, 우리의 잘못된 의식 속에 갇힌 예수님을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 교회가 예수님 없는 종교가 되는 것은 예수님을 잘못 보고 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예수님 당시 사람들도 예수님을 잘못 보았다. 자신들의 이념, 사상, 소원, 기대에 따라 예수님을 바라보니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도 번영과 위로의 표적만을 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해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을 성육신과 십자가를 통해서 봐야만 바로 볼 수 있다. 하늘 영광을 버리고 사람이 되기까지 낮아지신 하나님 아들, 죽기까지 낮아지셔서 죄인을 대신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보아야 한다. 사람들이 성공과 번영의 관점으로만 예수님을 보려고 하기 때문에, 십자가의 예수님은 어리석어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가 낮아지고 연약해져서 그리스도께 완전히 의존하면,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 역사함으로써 부활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새 생명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그럴 때 우리 각자는 교회가 되며, 세상은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를 보게 될 것이다.
방황의 시대, 방향이 되다 / 이재훈_ 두란노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내가 죄 많고 연약한 존재임을 다시금 고백합니다. 어린 시절 예수님조차 고향에서 배척받으셨듯이, 나 또한 내 마음속 교만과 편견으로 당신께서 세우신 사람들을 외면한 적은 없었는지 돌아봅니다. 내 기준과 편견으로 사람을 판단했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내 곁에 두신 모든 이가 당신의 계획과 섭리 안에 세움 받은 사람임을 기억하게 하시고, 겸손히 그들을 존중하고 섬기며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 내 마음의 교만과 편견을 제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왕의 신하가 아들을 살리기 위해 먼 길을 찾아와 간절히 구했던 모습을 묵상하며, 나 또한 간절히 당신의 말씀을 믿고 따르길 원합니다. 기적이나 체험에만 의지하지 않고, 오직 주의 말씀 위에 굳게 서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을 통해 내게 찾아오신 당신의 사랑과 은혜를 붙들고, 날마다 당신의 길을 따르기를 원합니다.
성령님, 내 안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있는 모든 죄악과 방해 요소를 제거하여 주시옵소서. 내게 필요한 것은 오직 당신의 은혜와 성화의 길로 이끄시는 인도하심뿐입니다. 내가 당신의 뜻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도록 힘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고단하고 연단의 길이 이어진다 할지라도, 주님께서 나를 천국의 영광 자리로 부르시는 그날까지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 같은 죄인을 위해 그 큰 사랑과 긍휼을 베풀어주신 아버지, 당신의 발치에 나아가 예배드릴 수 있는 은혜를 주심에 감사합니다.
더욱 철이 들고, 성화를 이루며, 화평과 연합을 이루는 삶을 살아가길 간구합니다. 주의 이름만이 높임을 받으시고, 내 삶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로 쓰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사랑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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