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리아 여자의 전도 4:27~30

예수님이 누구신 줄 알면 삶이 변화합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오시기로 한 그리스도가 예수님임을 깨닫자 지체 없이 행동합니다.

그녀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갑니다.

영원한 생수이신 예수님을 만났기에 육신의 갈증을 위한 물동이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지난날 자신이 부끄럽게 행한 모든 일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마음의 모든 상처가 치유된 것입니다.

마음이 회복되니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집니다.

그녀는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29절)라고 담대히 증언하는 복음 전도자가 됩니다.

변화된 한 사람의 간증이 복음 전도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깨달은 사마리아 여자는 어떻게 행동했나요?

예수님을 전파한다.

예수님을 전파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예수님을 전파하게되면 사회는 자본주의의 논리로 돌아가기 때문에,

교회 나와서 헌금하라고 너 이러는 거지,

너 교회 집사하면 월급 얼마받냐? 이런 질문도 들어온다.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접근할 것이냐, 자본주의냐, 민주주의냐, 공산주의냐 따라서 반응이 다 다르다.

OO주의로 우리는 사단에게 지배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복음으로, 복음으로 우리는 살아가야한다.

예수님은 그저 선한 랍비이며 교사이고, 너의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믿지 않는다. 이런 반응도 있고,

내 눈앞에 보여라 증거를 보여라, 할 수도 있겠고,

예수 믿는 것은 능지 탓이다. 교회 탈출은 지능 순이라며 조롱할 수도 있겠고,

너나 잘 다니라는 반응도 있을 수 있겠고,

난 교회는 다니는데 예수님은 도통 도저히 못 믿겠어요 라고 반응이 올수도 있겠다. 교회는 그저 네트워크로 이미 다니고 있다. 라는 반응,

솔직히 저런 힘빠지는 소리를 들으면 손발이 떨리고 심장이 덜덜 떨리고 너무나 큰 시험거리로 다가온다.

답답하다. 내가 만난 예수님을 전하고 싶다.

그만큼 전파하기 힘들고, 수 없는 반박이 날라오고,

그냥 나 혼자 잘 믿고 천국 가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예수를 믿게 되면 갖은 조롱과 멸시는 덤으로 따라오는 듯 하다.

그래서 예수님 이야기는 최대한 배제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일코하는 크리스천이 되어가는 듯 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예수님을 맨정신으로 전도할 수 없다.

성령으로 충만한 자의 특징이 예수님을 전파하는 것이다.

사마리아 여자 같이 담대하게 예수님을 전파할 수 있다.

내 힘으로 전파하는 것이 아닌 예수님의 권위와 성령님의 힘으로 씨앗을 뿌릴 수도 거둘수도 있게된다.

그래서 성령 충만을 간구 합니다.

어떻게 전하든 의미가 왜곡되는 경우가 많다.

공부를 끊임 없이 해야할 것이다.

예수를 전도하는 것은 그렇게 아름답고 고결한 행위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를 짊어지고 희생과 헌신을 하겠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부끄러운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도록 기도와 성령충만으로 이겨내길 바란다.

전도는 엄연한 현실이며 어쩌면 다시 낮아지게 되는 계기가 될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막막하지만 성령님께서 반드시 힘을 주실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만난 예수님을 누구에게 전하고 싶나요?

온 열방에 예수님을 전해야 할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전해야하겠지만,

복음에 대해 전혀 들어보지 못했거나, 예수님을 단순히 역사적 인물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만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전하고 싶다.

그리스도 복음 안에서 진정한 자유와 생명을 누리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들은 모른다.

가장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전해야할 것이다.

어떤 큰 선물보다 더 큰 선물이 그리스도 복음이 아닐까 싶다.

나와 함께 같은 믿음 안에서 기쁨과 소망을 나누길 원한다.

과거에 교회를 다녔거나 하나님을 믿었지만, 나 처럼 믿음을 잃은 사람들에게 내가 만난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전하고 싶다.

예수님게서는 여전히 나를 기다리신 것 같이 그들을 사랑하시고 기다리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육체적, 정신적, 정서적 고통 속에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예수님은 치료자이시다.

예수님 안에서 쉼을 발견하고 새로운 힘을 얻길 바란다.

삶의 목적과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참된 진리, 길, 생명임을 전하고 싶다.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평안과 희망을 갖는다는 것이 정답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복음이 답이다

예배가 답이다.

찬송이 답이다.

예수께서 진리이시다.

이 말에는 권위가 있다. 모든 신자 불신자들을 함구하게 만드는 권위가 있다 이 권위는 내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 있다.

왜 교회다니냐? 예수께서 곧 길이요 생명이시요 진리이시다. 선포하면 아무도 반박 못한다.

왜 믿느냐? 예수께서 곧 길이요 생명이시요 진리이시다.

왜 복음은 전파해야하는가? 예수께서 곧 길이요 생명이시요 진리이시다.

그러나 사단 마귀는 예수님과 친해지려는 우리의 시도를 거부하며, 복음을 전하는데 거부감이 큰 사람들이 많다.

독실한 신자나 사이비 이단이나 다를바 없이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어떻게 사랑과 지혜로 복음을 전달할 것인가.

복음은 하나님의 진리이지만, 그 전달 방식은 사람의 마음을 여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복음을 단순히 말로만 전하기보다,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삶을 보여주는 것이 강력한 설득이 된다.

사랑, 친절, 인내, 겸손과 같은 예수님의 성품을 드러냄으로써 복음의 매력을 직접 경험하게 할 수 있다.

성령의 열매로 보여줘야한다.

우리 빛이 사람앞에 비치게 해야한다. 내가 먼저 빛이 되고 생명이 되어야한다. 온유해야한다.

복음은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생 전체를 예수님께 바치라 하신다.

그 힘든 길을 단순 설득이나 강요 강압으로 할 수 없다.

하나님의 힘이 필요하며 하나님의 섭리가 필요한 것이다.

복음 전도는 단순한 설득이 아니라, 상대방의 삶을 이해하고 사랑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그 사람의 고민과 아픔을 경청하며 공감할 때, 마음의 문이 열릴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 고민과 아픔과 마음의 문을 두드리셨다.

그들의 일상 속에서 공통점을 찾으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열어가야 할 것이다.

강요하거나 비판적으로 접근하면 방어심이 커진다.

특정 교리나 논쟁적인 주제에 집중하기보다는 예수님께서 주신 사랑과 은혜에 대해 이야기해야할 것이다.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기 전, 상대방이 가진 선입견이나 상처를 먼저 이해하려고 노력해야한다.

복음을 전하는 출발점을 가볍고 자연스럽게 설정해야할 것이다.

내 삶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나 기도의 응답을 간증하는 것 간증은 논쟁을 유발하기보다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나눔을 통해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일 것이다.

복음을 전하기 전 그 사람을 위해서 꾸준히 기도해야할 것이다.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을 여시고 준비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사랑으로 상대방의 구원을 간절히 구하는 마음은 복음 전파의 동기를 순수하고 강력하게 한다.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준비되지 않은 상태일 것이다.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며 조급해하지 않고 오랜 시간 사랑과 관계를 유지하며 기다려야할 것이다.

씨를 심는 사람과 열매를 거두는 사람은 다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씨앗을 귀하게 사용하실 것이다.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이다.

종교적인 규칙이나 판단이 아닌 그 사랑이 그들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나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많은 고민들이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그런 평안을 언젠가 다들 느껴봤으면 좋겠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함께 기도하고,

내가 경험한 하나님은 내 삶에서 많은 위로를 주셨다.

사랑으로 모든 것을 감당하며, 나아갈때,

조금씩 마음이 열릴 것이다.

모든 궁극적인 결과는 하나님의 일이다.

내가 모든 것을 바꾸거나 설득하려는 부담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겸손과 사랑으로 다가가면,

언젠가 그들의 마음도 열릴 것이다.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 4:31~42

예수님 말씀과 사마리아인들의 말에서 전도와 전도자에 대해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복음 전도는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분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일입니다(34절).

하나님은 사랑을 통해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맺길 원하십니다.

둘째, 전도자는 복음의 씨를 뿌리기도 하고 그 열매를 거두기도 하며 함께 기뻐합니다(36절).

씨를 뿌리든 거두든 각자 일한 대로 상을 받는데, 모든 것은 그리스도를 위한 일입니다(고전 3:8).

셋째, 전도자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자들과 함께 있어 줍니다(40절).

넷째, 전도자의 역할은 사람들을 주님 말씀을 ‘직접’ 듣는 자리로 초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역사로 사람들이 예수님을 ‘세상의 구주’로 알고 고백하게 됩니다(42절).

복음의 씨를 뿌리는 자와 그 열매를 거두는 자가 함께 기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같은 목표를 위해서 일했기 때문이다.

모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데에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38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고전 3:6 나는 심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셨습니다. 7 그러므로 심는 사람이나 물 주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요,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뿐이니라

영혼이 구원받는 기쁨에 동참했기 때문이다.

사역의 연속성과 협력을 통해 얻는 기쁨이 있다.

서로의 역할과 헌신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때, 그 협력 자체가 기쁨의 원천이 된다.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됨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천국의 보상이 약속되어있기 때문이다.

구원의 열매로 인해서 기쁨이 되기 때문이다.

뿌리는 일이든 거두는 일이든 내가 충성할 일은 무엇인가요?

뿌리는 일은 복음의 씨앗을 심는 과정이다.

말씀 전하기 삶으로 보여주기 사랑과 선행 실천 기도로 준비하기

뿌리는 일의 특징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업이다.

인내와 믿음이 필요하다.

거두는 일은 뿌려진 복음의 씨앗이 열매 맺는 것을 수확하는 과정이다.

구원의 열매가 맺어져 예수를 믿고 구원 받는 일.

구원 받은 이들을 가르치고 양육하며 그들이 믿음 안에서 성장하고 또 다른 복음의 씨앗을 뿌리도록 돕는일.

복음을 통해 개인 뿐 아니라 가정 교회 지역사회가 변화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일

하나님이 열매를 맺으신다.

두 모든 일은 기쁨과 감사의 순간을 가져다 준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순간이다.

이 두 일은 말씀과 같이 서로 연결되어 서로 기뻐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이 주도하시며 집도하시며 하나님께 쓰임받는 도구일 뿐,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 이시다.

어떤이는 씨를 뿌리고, 어떤이는 열매를 거둔다.

각자의 자리에서 충성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한다.

뿌리는 일은 가정,교회,직장,친구, 모두에게 예수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일이고 기도로 준비하며 작은 행동으로도 씨앗을 심을 수 있다.

거두는 일은 전해진 복음을 통해 누군가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들을 격려하고 믿음 안에서 성장하도록 돕는 일이다.

이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내 역할이 무엇이든 그 자리를 충성스럽게 지키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뿌릴때도 있겠고 거둘때도 있겠지만,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다.

하나님께서 나의 든든한 우군이 되어주신다.

혹여나 내가 그렇게 쓰임 받지 못하더라도 기다리며, 인내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참고 참고 또 참는 내가 되었으면 한다.

로마서 5:3-5 KRV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헌신해야 하는 이유

요즘 교회나 사회에서 상처에 대한 말을 많이 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어떻게든 상처를 안 받으려고 한다. 그런데 교회학교 교사를 한번 해 보라. 특별히 사춘기 아이들이 가득한 중고등부 교사를 한번 해 보라. 학교 선생님들은 월급이라도 받지, 교회 선생님들은 다 퍼 주고도 아이들 때문에 속에서 열불이 날 때가 많다. 전화를 해도 안 받고 문자 등도 다 무시한다. 만나기로 약속하고서 바람맞을 때도 수없이 많다. 토요일에 맛있는 건 다 얻어먹고 다음 날 예배 때 쏙 빠진다. 정말 얄밉다. 하지만 아픔과 어려움, 상처받을 것이 눈에 훤한데도 하나님이 그 영혼을 사랑하시기에, 그 일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기에 상처받기로 선택하는 것, 그것이 바로 헌신이다. 그 헌신이 교회를 세우고, 영혼을 살리고, 세상을 변화시킨다.

왜 그런가? 세상은 그런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세상은 그런 일을 못 한다. 세상은 자기 유익만 추구하고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려 하지, 결코 손해나는 짓을 선택하지 않는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힘을 잃은 이유는 이런 세상의 논리가 교회 안에 들어와 헌신을 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성도로서의 강함, 능력이 있으려면 우리에게는 헌신이 필요하다. 지금은 헌신의 때다. 헌신이 교회와 성도를 강하게 한다.

실행자 / 임병선_ 두란노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절대적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합니다.

내 안에 성령님이 계심을 굳건히 믿습니다.

오늘도 누군가를 용서하고 용서받는 하루임을 믿습니다.

우리가 우리죄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성령께서 도와주셔서 어려운 하나님의 말씀 한 토씨도 놓치지 않고 알게하심에 감사합니다.

나를 추악하고 더러운 악에서 건지심에 감사합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굳은 마음을 유연하게 변화시키심에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귀, 하나님의 눈, 하나님의 팔, 하나님의 굳건한 방패, 하나님의 신실한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오니 사망의 깊은 골짜기를 지나갈 때에도 내가 절대로 두렴 없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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