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요한의 기쁨 3:22~30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마 3:13~15).
그때만 해도 많은 사람이 세례 요한에게 물세례를 받았습니다(막 1:5).
예수님이 성령을 통한 세례를 언급하시며 하나님 나라를 전하시자(1:33; 3:5),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간다.”라며 제자들이 푸념하자 세례 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님을 밝히며, 자기 역할을 신랑 친구 역할에 비유합니다.
그는 신랑 친구로서의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예수님은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라는 자기 부인의 고백은 사명의 길에 필수입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이 어떤 기쁨으로 충만하다고 고백했나요?
3: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사사로운 경쟁심을 버리고 내가 자기 부인을 실천할 영역은 어디인가요?
나, 이웃과의 관계, 하나님과의 관계의 영역에서 자기 부인을 실천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게으른 자아와 성실한 자아와 싸우는데 항상 게으른 자아가 경쟁심을 가지고 이길 때가 있다.
게으른 자아가 경쟁심을 버리고, 그래 부지런한 나에게 양보한다, 바로바로 처리하고 바로바로 일하자, 미루지 말자.
게으른 나를 죽이고, 편하고 안락하려는 경쟁심을 버리고, 내 이기심을 버리자.
육신의 불편함을 가장 버리기가 힘들고 자기 부인을 실천하기 어려운 것 같다.
육신이 불편한 것을 되도록 인내할 수 있어야하겠다.
환경에 너무 많이 좌지우지된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특히나 내 몸의 불편한 것들은 자동 반사적으로 피력하고 인내하지 않는 나를 볼 수 있었다.
조금만 불편하고 힘들면 즉각 반응이 오는게 내 연약한 점인 것 같다.
인내하고, 말을 아끼고 듣기를 속히해야겠다.
잔소리하지말고, 오지랖 부리지 말고, 많이 들을 수 있는 하나님의 귀를 주시길 간구합니다.
아직 발견되지 않는 사사로운 경쟁심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지금은 평온하고, 없다.
누군가 잘되면 진심으로 축복할 수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내가 쉬고자하는 마음, 편하고자 하는 마음, 내려놓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묵상하고, 말씀과 친해지길 원합니다.
나를 내려놓고, 자기 부인하여 예수님꼐서 내안에, 내안에 예수님께서 성령 충만해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성령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심에 감사합니다.
성령께서는 여호와이시며 전지전능하시며 지존하시며 홀로 존재하시며 홀로 영광 받으셔야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성령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이제 더이상 악에 휘말리지 않도록 간구합니다.
내 영혼을 정결하게 하여주시고, 타인을 위해서 희생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제 언행을 지켜주시고, 내 입술에 파수꾼을 두셔서 침묵의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복음을 전파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제 주변의 모든 분들에게 복음이 전파될 수 있길 바랍니다.
위로부터 오신 분의 정체성 3:31~36
세례 요한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증언했나요?
세례 요한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려 줍니다.
그의 진술에 따르면 예수님은 위(하늘)로부터 오셨습니다(31절, 신성).
예수님은 만물 위에 계시고(31절, 선재), 만물을 손에 갖고 계십니다(35절, 통치).
예수님은 친히 보고 들은 하나님 말씀을 증언하십니다(32, 34절, 진리).
예수님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자는 하나님의 참되심을 인정한 것입니다(33절, 변증).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으셨습니다(34절, 사도).
예수님은 하나님이 주신 성령을 늘 소유하고 계십니다(34절, 거룩함).
예수님은 아들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십니다(35절, 하나님과의 관계).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주어지나,
순종하지 않는 자에게는 진노가 임합니다(36절, 심판).
이렇듯 예수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고백할 하나님 아들이십니다.
인간 이해를 넘어서는 예수님의 정체성을 나는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나요?
- 나는 생명의 떡이니,
- 나는 세상의 빛이니,
- 나는 문이니,
- 나는 선한목자라,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 나는 참 포도나무요.
-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다 (마 11:29)
- 나는 섬기는 자이다 (눅 22:27)
하나님의 아들이자 구세주이시다.
요한복음 1:1, 14: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예수님은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이시다.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희생의 어린양이시다.
요한복음 11: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나는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나요?
넵
모든 시선을 그리스도께로
목회자는 갈등이 일어났을 때 모든 회중이 그리스도께로 나아가게 해야 합니다. 문제만 바라보면 문제가 더 커지고, 풀리기는커녕 꼬입니다. 갈등이 일어났을 때 가져야 할 기본적인 태도는 하나님만이 이 문제를 푸실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교회들은 문제가 생기면 회의를 엽니다. 제직회로 모여 갑론을박을 일삼다가, 문제를 모르던 사람까지 알게 되고 문제가 일파만파로 퍼져 나갑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에는 불문율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하나님께 아뢰고 기도하기’**입니다. 갈등 구조에서 리더십의 역할은 성도들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고 말씀을 더 가까이하게 하는 것입니다. 문제에서 그리스도께로 시선을 옮겨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묵상하고, 그리스도께 묻고, 문제를 푸시는 그리스도의 방식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질문의 답이 되십니다. 그리스도 중심적 목회를 하면 갈등도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언제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면 살길이 열립니다. 오늘날 가장 큰 위기는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목사든 장로든 집사든 그 누구도 그리스도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공동체 지체 모두에게 그리스도만이 왕이 되신다면 갈등은 자연히 해결됩니다. 삶과 목회 현장에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그리스도의 존귀한 이름이어야 합니다. 그분이 높임받는 것으로 결론이 나야 합니다.
목회를 말하다 / 이규현_ 두란노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내 삶의 모든 시작과 끝을 주관하시는 주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세례 요한이 신랑 친구로서 기뻐하며,
자신을 낮추고 예수님을 높였던 그 모습을 묵상하며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예수님께서 흥하여야 하고 내가 쇠하여야 한다고 고백했던 세례 요한의 자기 부인을 제게도 허락하여 주옵소서.
저의 게으른 자아와 편안함만을 추구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부지런히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며,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특히 이웃과의 관계에서 제 연약함을 고백합니다. 조금의 불편함에도 쉽게 인내하지 못하고,
자기 중심적으로 행동했던 저의 교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귀를 제게 허락하셔서 더 많이 듣고, 말을 아끼며, 주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섬길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쉬고자 하는 저의 마음을 내려놓고, 더 깊은 기도와 찬양, 말씀 묵상을 통해 주님을 가까이 하게 하옵소서.
내 안의 사사로운 경쟁심을 모두 버리고, 누군가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복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주옵소서.
예수님은 위로부터 오신 분이시며, 모든 만물을 통치하시는 신성한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주어진다는 약속을 붙들며, 매일 그리스도께로 시선을 돌리게 하옵소서.
갈등과 문제 속에서도 오직 주님께 묻고, 주님의 방법으로 해결하며, 그리스도께서 영광 받으시는 삶과 공동체를 이루어가게 하옵소서.
주님, 제 입술에 파수꾼을 두사 제 언행을 지켜주시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도구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고,
예수님께서 내 안에 거하시며,
제가 주님의 거룩한 자녀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이 모든 기도를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낮추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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