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찾아간니고데모 3:1~4

진리를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겸손함과 적극적인 실천력이 필요합니다.

니고데모가 그런 사람입니다.

그는 유대 율법과 전통에 엄격한 바리새파 사람입니다.

또한 71명으로 구성된 유대인 최고 의결 기관인 산헤드린의 회원입니다.

니고데모는 당시 유대 사회에서 최상위 계층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뵙고자 밤에 찾아갑니다.

‘밤’에 예수님을 찾아간 것은 높은 신분을 숨기기 위해서일 수도 있지만, 늦은 시간에라도 예수님을 만나 보겠다는 의지와 열정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여러 표적을 보았고, 또 그 표적에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겸손함과 열정으로 나아온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거듭남의 비밀을 가르쳐 주십니다.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간 이유는 무엇인가요?

진리를 찾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았기 때문, 또한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셨기 때문,

진리이신 예수님을 알기 위해 나는 어떤 노력을 기울이나요?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진리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며,

진리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시작하며,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이 변화하고,

예수님께 우리의 전인격을 드리는 헌신으로 이어지는 것,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에 대한 감사로 내 모든 것을 드리는 산 제사,

나를 거룩한 살아 숨쉬는 교회로 만드시고

예수님의 신부된 교회의 지체로 하나님께 속하게 된다.

그 변화로 이어지는 실천적인 삶까지 모든 것을 포함한 것이 진리를 받아들이고 안다는 것이다.

진리를 받아들인 다는 것은 자신의 죄를 겸허히 인정하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며, 그분의 가르침을 삶에 실천하는 것이다.

그 진리를 받아들이고 아는데에 가장 가까운 곳에 답이 있다.

바로 성경이다.

성경은 교훈, 책망, 바르게 함, 의로 교육하기 위한 것이다.(디모데후서 3:16).

성경 읽기가 처음엔 어렵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은 예수님께서 생명의 떡이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 영혼의 양식을 공급받는다, 그 기쁨과 유익은 시간이 갈수록 커질 것이다.

처음엔 힘들 수 있지만,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더 깊이 알게 되는 기쁨이 크다.

성경은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이다.

읽고 듣는 자체로 성령께서 역사할 수 있다.

재미가 없다고 느껴질 때에도, 성경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도구이다.

읽다 보면 하나님께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을 깨우치시고, 진리를 깊이 알게 하실 것을 믿는다.

성경이 꿀보다 더 달고,

내 삶에 양분이되고,

내 마음밭에 열매가 된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로마서 10:17).

성경 읽기는 신앙 성장의 기본이다,

그래서 성경을 읽어야한다.

다양한 방법으로 성경을 읽어보자, 개역개정 뿐만 아니라, 우리말 성경, 쉬운 성경, 새번역 등으로 읽으면 더욱 이해하기 쉽고 접근하기 쉽다.

요한복음부터 시작하여, 말씀 묵상 노트를 작성하면 실질적으로 더욱 도움이 될 수 있다.

복음을 받아들이려고 마음의 문을 열고 받아들이면 내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큰 죄인인지 십자가 앞에서 알게 하신다.

전 우주보다 크신 하나님의 큰 은혜로 인해서 회개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성령 충만하도록, 은혜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자.

예수님께서 진리 그 자체이심을 고백하자.

성령께서 말씀과 삶 속에서 예수님을 더 깊이 알도록 도와주시기를 구하자.

진리이신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자.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과 은혜를 베풀며 예수님의 진리를 삶에서 나타내자.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 이를 본받아 겸손히 다른 사람들을 섬기자.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알고 귀 기울이자.

성령님께서는 진리를 깨닫게하고, 말씀을 이해하며, 삶 속에서 예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도우신다.

요한복음 16:13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사랑을 실천하고 믿음을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해서 교회와 목장모임을 통해서 다른 성도와 함께 예수님을 알아가는 여정을 공유하자,

서로의 경험과 깨달음을 나누는 것은 진리를 더 깊이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믿음의 선배들의 간증과 삶을 통해 예수님을 따르는 삶의 본보기를 배울 수 있다.

예수님을 아는 여정은 나 자신을 돌아보며, 죄와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벗어나는 과정이다.

회개의 삶을 통해 예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자.

사도행전 3: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예수님을 아는 여정은 평생에 걸쳐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빠른 결과를 기대하기보다 꾸준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내도록 기도하자.

진리이신 예수님을 아는 것은 단순한 노력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며

믿음과 순종으로 응답하는 과정이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내가 연약하더라도 수많은 기회를 다시 주신다.

내가 물과 성령으로 구원 받았음에도 여전히 죄와 유혹에 직면하고 있다.

완전한 거룩함은 하나님 나라에서 완성되지만,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지금도 거룩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죄를 짓지 않으려는 결단과 함께 연약함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자.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령을 좇아 행하길 바랍니다.

거듭나야 하는 이유 3:5~9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선행이나 지식이나 돈을 아무리 많이 쌓아도 갈 수 없고, 거듭나야 갈 수 있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니고데모에게 그 나라에 들어가는 방법을 알려 주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성령을 가시화하기 위해 ‘바람’ 이미지를 사용하신 것처럼(8절),

정결하게 하시는 성령을 이미지화하기 위해 ‘물’을 언급하신 것으로 봅니다(7:37~39).

한편 ‘거듭’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노쎈’은 ‘위로부터’라는 뜻인데, 위는 하늘을 가리킵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것은 성결합니다.

그렇기에 위로부터 성결의 옷을 덧입을 때 우리는 다시 태어납니다.

예수님은 어떤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나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갈 수 있다.

나는 거듭난 하나님 자녀라는 확신이 있나요?

나는 물과 세례로 거듭났다. 확신한다.

구원은 성화의 과정을 포함한다.

나는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럼에도 나는 연약하여 죄와 악 유혹의 육체의 일에 시달릴 때가 있다.

그럴때에 나는 항상 하지 말아야지 하지 말아야지 육체의 일에 집중했었다.

그런데 오늘 큰 깨달음을 주셔서 육체의 일을 벗어나는 일은 오직 성령을 좇을때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셨다.

알게 모르게 죄와 나 스스로 싸우려고 노력했던 현실을 처절하게 깨닫게 하신다.

갈라디아서 5:16-2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찌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찌니라

아! 내가 너무도 육체의 일에 집중하고 있었구나,

말로만 오직 예수 성령 하나님 해놓고는 성령을 좇지 않고 있었구나

또한 뼛속까지 나 선민의식,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존감을 너무 가져서 나는 너무도 특별하고 난 너희들이랑 달라라는 마음이 있었구나.

하나님 믿으면 신분 상승할 것이라는 착각

아니 전혀,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낮은 곳에서 찾아오셨다.

낮은자가 천국에서 더 높아질 것이라고 하셨다.

내가 예수 믿는다고 거들먹 거린 모든 행위를 회개합니다.

예수 믿는다고 해놓고는 정죄했던 과거 모두 회개합니다.

하나님 제게 알려주신 진정한 큰 사랑 우주보다 넓은 사랑을 제게 알려주세요.

오직 성령을 좇아 행하도록 결단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곡해하고 오해했던 지난 모든 날을 회개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신 진리의 말씀을 믿는 믿음은 추호도 변함 없습니다.

나는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모두에게 필요한 은혜

1980년대 말, 나는 맨해튼 하버드 클럽의 조찬 모임에서 매달 한 번씩 강연을 했다. 매춘부와 마약 거래상이 늘어선 지하철 F호선의 6번가 역 앞을 지나 하버드 클럽에 들어가면 목재로 장식된 방마다 푹신한 가죽 의자와 활활 타는 벽난로가 갖추어져 있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그 클럽의 회원들에겐 부족한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복음이 내게 하는 말은 하버드 클럽의 니고데모들도, 거리의 사마리아 여인도 똑같이 ‘행위로는 구원받을 자격이 없지만 은혜로는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삶이 아무리 착실하고 잘 정돈되어 있어도 거듭나야 한다. 반면에 삶이 아무리 난잡하고 잦은 실패로 얼룩져 있어도 거듭날 수 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가장 성공한 사람이나 최악으로 실패한 사람이나 하나님께 올 때는 다 똑같다.”

니고데모는 자신의 도덕성과 성취로써 스스로 구원을 이루려 했다. 우물가의 여인은 줄줄이 파탄 난 연애와 결혼에서 기쁨과 만족을 얻으려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는 자기 힘으로 구원 얻기를 시도하는 근거가 도덕성이든 봉사든 미모든 다를 바가 없다. 그 모두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하려고 하나님 자리에 서는 것이다. 그러므로 겉보기에 ‘최고’의 사람이든 ‘최악’의 사람이든 하나님 은혜가 필요하다. 주님이 거저 베푸시는 은혜만이 우리를 구원한다. 복음은 노력을 통해 내 힘으로 얻어 내는 구원과 다름을 깨달을 때만 돌파구가 열린다.

태어남에 관하여 / 팀 켈러_ 두란노

죄와 유혹에서 돌아서는 결단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에 죄를 깨닫게 하시고, 회개하도록 도우십니다. 죄를 깨달을 때 즉시 회개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성령의 일하심을 좇다.

오직 성령님만 좇아 행한다. 오직 예수님만 좇아 행한다. 오직 하나님만 좇아 행한다.

구원에 대한 오해가 있었다. 예수 믿으면 더 이상 죄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 하지만 인간은 연약하여 하나님 나라가 오는 그 날에 완벽해질 것이다. 물과 세례로 구원 받았으나 아직도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에 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대속을 통해 이루어 진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용서와 구원의 시작이다.

요한복음 3:5: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에베소서 2:8-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구원은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며, 세례는 그 구원의 표식이자 시작입니다. 이 구원은 즉각적이며 완전하다.

구원은 순간적인 변화이지만 성화는 신앙 생활을 통해 계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성화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점차 변해가는 과정이다. 구원을 받은 신자는 여전히 세상의 죄와 유혹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빌립보서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로마서 6: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구원받은 신자는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옛 자아와의 싸움이 계속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해 죄에서 구속되었고, 성령의 내주로 새 생명을 얻었지만, 구원은 궁극적인 완성을 향한 여정이기 때문에, 여전히 죄의 유혹과 싸우고 있으며, 성화의 과정 중에 있다.

로마서 6:6-7: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구원받은 신자는 죄에 대하여 죽었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면 성화의 과정이 필요하다.

로마서 7:14-25: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내가 죄의 법을 따라 사망의 법에 속하게 되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다.

구원의 완성은 아직 이 땅에서 완전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신자들은 완전한 구원을 얻게 되며, 그때는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완전히 자유해지게 됩니다. 지금은 아직 그 구원의 마지막 단계에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자는 여전히 죄와 사망의 권세를 경험할 수 있다.

요한계시록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실 때 이루어질 것.

구원은 성령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신자가 여전히 죄와 사망의 권세를 경험하는 이유는, 구원이 성화의 과정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 구원받은 신자는 성령님과 함께 죄와 싸우며 성장하고 있으며, 완전한 자유는 예수님의 재림을 통해 이루어질 것. 우리가 죄와 싸우고 있는 한,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여 이 과정을 지속해야 한다.

예수님의 신부로 지위가 격상된다는 것은 신앙과 구원이 계급 상승으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구원은 계급의 상승이나 세상의 기준으로 평가되는 지위의 변화를 의미하지 않음.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겸손과 섬김을 통해 그분의 뜻을 따르라고 가르치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겸손히 섬기는 삶을 사라고 말씀하셨고, 그분의 삶 자체가 낮아지기를 선택한 모델이었다.

  • 예수님의 겸손과 섬김의 삶 마태복음 20:26-28: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스스로 높아지기를 원하신 것이 아니라, 섬기고 낮아지시기를 원하셨다. 신앙 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마음을 갖는 것.

  • 예수님의 신부로서의 지위 예수님의 신부로서의 지위는 신자들이 예수님과의 깊은 관계와 친밀함을 가짐으로써 얻어지는 신령한 축복. 이는 세상적인 권위나 지위와는 전혀 다름. 신부의 지위는 하나님 앞에서의 영적 결합을 의미하며, 이는 인간적인 자랑이나 교만과는 무관. 신부로서의 지위는 겸손하게 주님과 연합하며,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삶을 나타낸다.
  • 에베소서 5:25-27: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교회를 신부로 삼고, 그 신부는 깨끗하고 거룩하게 하시는 사랑을 받는다. 이는 세상의 지위나 자랑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의 순결하고 겸손한 삶을 강조.

  • 겸손과 낮아짐의 가르침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항상 낮은 자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신앙과 구원은 결코 자랑이나 계급 상승을 의미하지 않으며, 오히려 겸손하고 낮은 자리에서 섬기고 사랑하는 삶으로 나타난다.

마태복음 23:11-12: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을 높이려는 태도가 아니라 자기 낮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따라서 예수님의 신부로서의 지위가 "격상"이라는 의미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의 신부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에서 겸손과 순종을 나타내는 것, 신앙 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겸손히 섬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 예수님은 우리에게 낮아지기를 원하시며, 그분의 본을 따라 자기를 낮추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더이상 죄를 저지르지 않고자 하는 마음이 커지면, 율법주의로 빠질 수 있다. (인간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내가 완벽히 죄를 안 저지를 수 없다라는 것을 인정.)

죄를 더 이상 저지르지 않으려는 마음이 커지면, 율법주의로 빠질 수 있는 이유는 자기 노력과 행위에 의존하게 될 가능성 때문. 율법주의는 ‘내가 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중심으로 해서, 규칙을 지키려고 하거나 행위에 집중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성경이 말하는 은혜와 믿음의 원리에서 벗어나게 된다.

율법주의로 빠질 수 있는 이유: 자기 의에 의존하려는 경향: 죄를 저지르지 않으려는 마음이 강해지면, 자기 노력과 결단에 의존하려는 마음이 생긴다. 그럼 하나님의 은혜보다는 내가 뭔가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부담: 죄를 완전히 멀리하려는 마음이 지나치게 강해지면, 자신이 완벽해져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사람은 완전할 수 없다는 현실을 자주 잊게 된다.

자기 의를 의지하는 경향: 성경에서는 우리가 의로워지지 않기 위해 그리스도의 의를 의지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죄를 멀리하려는 마음이 과도하게 커지면, 하나님의 의보다는 자기 의에 의존하게 될 위험이 있다.

인간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완벽히 죄를 안 저지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이유: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게 된다: 연약함을 인정하면, 그 자리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게 들어온다. 우리가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은혜의 필요성을 더 깊이 느끼게 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마음이 커지게 된다.

겸손과 의존: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은 겸손의 표현이다. 내가 스스로 완벽하게 죄를 멀리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자세가 생긴다. 성령님은 우리가 연약할 때 우리를 도와주고 인도하신다.

죄와 싸우는 원칙은 믿음: 우리가 죄를 저지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건 중요하지만, 믿음으로 승리해야 한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 의지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로마서 8:26-27 KRV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 역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 우리가 연약함을 인정하고 예수님의 은혜로 나아갈 때, 비로소 죄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가 주어진다. 율법을 지키려는 자기 의에 갇히지 않고, 그리스도의 구속의 자유 안에서 죄와 싸울 수 있게 된다.

결국, 죄를 저지르지 않으려는 마음이 강해지는 건 좋은 일이지만, 율법주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선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완벽히 죄를 안 저지를 수 없다는 걸 인정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도움을 구하고, 겸손하게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죄를 끊어내려고 하지말고 성령을 쫓아야함.

갈라디아서 5:16-2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찌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찌니라

나 스스로 죄와 싸우고 있었다라는 현실

성령을 쫓아 행한다는 것은 우리의 힘이나 노력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고 의지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성경에서 명확하게 가르치고 있다. 갈라디아서 5장 16-18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한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하므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성령을 쫓아 행한다는 것의 의미 성령의 인도하심에 귀 기울이는 것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 마음에 깨닫게 한다.

성령의 음성은 성경 말씀과 일치하며, 죄를 떠나고 거룩한 삶으로 나아가도록 인도한다. 기도를 통해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열고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육체의 욕심과 싸우는 힘이 성령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인정 인간의 노력으로는 육체의 욕심(죄성)을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는 죄의 유혹을 이기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수 있다.

갈라디아서 5:22-23에서 성령의 열매(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는 우리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쫓을 때 열매로 맺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역할은 성령께 순종하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도록 마음을 여는 것이다. 말씀과 기도로 삶을 성령의 흐름 속에 놓는 것 성령께서는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치시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인도한다.

요한복음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성령을 쫓아 행하는 삶은 매일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뜻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성령의 능력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

빌립보서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에 거룩함에 대한 소원을 주시고, 그 소원을 실천할 능력도 주신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 겸손히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 성령을 쫓아 행한다는 것은 "내 힘으로 죄와 싸우겠다"는 태도를 버리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며,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와 능력으로 죄를 대적하는 것이다.

에스겔 36: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윤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우리의 힘이 아닌,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것이다.

어떻게 성령을 쫓아 행할 수 있을까?

매일 말씀 묵상과 기도를 통해 성령께 자신을 드리기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검(에베소서 6:17)이며, 말씀을 묵상하고 순종할 때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한다.

기도로 성령께 의지하며, 하루하루의 삶에서 "주님, 오늘 제가 성령을 따라 살도록 도와주십시오"라고 구하는 마음이 중요한다.

죄와 유혹에서 돌아서는 결단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에 죄를 깨닫게 하시고, 회개하도록 도우십니다. 죄를 깨달을 때 즉시 회개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추구하기

성령의 열매는 성령을 쫓아 행할 때 맺혀지는 결과. 이를 위해 인내하며 성령의 일하심을 믿고 따라야 한다. 성령을 쫓아 행하는 삶은 우리의 연약함을 넘어설 수 있는 길을 제시하며,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도록 이끄는 삶. 성령께 의지하며 죄와 싸울 때,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를 진리의 길로 인도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니고데모처럼 진리를 찾고자 하는 마음을 주시고,

그 진리를 더욱 깊이 알아가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 진리 그 자체이시며,

성령을 통해 그 진리를 깨닫게 하심에 감사드리며,

제가 진리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가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더 깊이 알고,

그 가르침을 제 삶에 실천하며,

성령님의 도우심을 따라 진리를 받아들이고 따를 수 있도록 힘을 주십시오.

저의 연약한 마음을 변화시키시고, 제 삶에서 예수님의 사랑과 겸손을 실천하게 하소서.

제가 성령님을 좇아 행하며, 죄와 유혹을 벗어나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거룩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주님, 구원의 은혜가 제게 너무도 크고 귀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제 자신을 죄인으로 인정하며,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구원받았음을 믿습니다.

이제 저의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며, 제 삶이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삶이 되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성령님께서 저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 삶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예수님을 알아가는 여정을 공유하게 하시고,

그 길에서 진리를 깊이 깨닫고 나누는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제가 언제나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겸손히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도와주시길 기도합니다.

주님, 저의 삶이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이 되게 하시고,

언제나 주님께 순종하며 믿음 안에서 자라나게 하소서.

그리고 저의 연약함 속에서도 주님의 은혜로 변화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신약 > 요한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한복음 3 : 22~36  (0) 2025.01.10
요한복음 3 : 10~21  (0) 2025.01.09
요한복음 2 : 13~25  (1) 2025.01.07
요한복음 2 : 1~12  (0) 2025.01.06
요한복음 1 : 43~51  (1) 2025.01.05
블로그 이미지

잉비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