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복음

요한복음 5 : 1~18

잉비니 2025. 1. 15.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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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 된 병자를 치유하심 5:1~9

베데스다는 ‘은혜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양문 곁 베데스다 못에 가십니다.

기둥과 지붕만 있고 사방이 뚫린 다섯 개 행각에 많은 병자가 모여 있습니다.

가끔 천사가 내려와 물을 움직일 때 그 못에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이든 나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에게 주목하십니다.

38년이라는 시간은 그 병의 치유 가능성이 희박함을 드러냅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6절)라는 예수님 말씀에 그는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절망적인 상황만 말합니다.

예수님이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8절)라고 하시자, 그는 치유의 주인공이 됩니다.

예수님은 병들어 소망 없는 자를 말씀으로 치료하십니다.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에게 물으신 것은 무엇인가요?

요 5: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내 수준으로 한계를 긋지 말고 전능하신 주님께 간구할 일은 무엇인가요?

내 능력이나 경험 이해를 넘어서는 영역에서 더욱 선명하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일이 드러난다.

내 수준에서 불가능하다고 느껴지는 기도, 말씀 묵상, 전도,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뿜는 일들, 죄와 죽기까지 싸우는 것들, 하나님께서는 가능하다는 믿음으로 담대히 기도할 수 있다.

마태복음 19:26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내 죄와 연약함을 뛰어넘어 더 거룩하게 변화되기를 구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그분의 뜻을 이루시기를 간구합니다.

마음의 상처, 관계의 깨어짐, 육체적 질병, 트라우마, 사람이 변화하는 것, 모두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주님께 맡깁니다.

전능하신 치유자이신 주님의 손길을 구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소명, 사명이 너무 크고 버거울 때 주님의 능력을 의지해 감당할 힘과 지혜를 구합니다.

특별히 영혼 구원과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에 나를 사용해 주소서.

내 힘으로는 도저히 사랑하거나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주님의 사랑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간구합니다.

내가 방향을 알지 못하고 두려운 상황일때 주님의 선한 계획과 인도를 신뢰하며 담대히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이웃의 고통과 세상의 아픔을 주님께 올려드리며,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구합니다.

인간의 수준으로는 할 수 없는 것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이제껏 교만하여 내 힘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고 나 스스로를 믿은 죄를 십자가 앞에서 고백하고 회개합니다.

함부로 내가 타인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남을 괴롭힌 지난 나날들을 회개합니다.

나는 위로와 공감을 오직 성령님께 의지하며, 하나님을 더 깊이 신뢰합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공동체 안에서 형제자매들과 서로 짐을 나누고 격려하며 살아가길 원합니다. 내가 사람에게만 의지하거나 하나님보다 더 의존하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하나님께서는 조화로우시며 창조적이시며 공의로우시며 아름다우시며 완벽하신분,

다시한번 내 신앙과 하나님과의 관계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의 균형 잡힌 신앙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마태복음 22:37-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되어야 하지만, 이웃 사랑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균형을 보여주심.

야고보서 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그 믿음이 참되다면 행함으로 나타나야 한다. 믿음과 행위는 서로 분리될 수 없음.

에베소서 4:15"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 진리를 말하되 사랑으로 말해야 하며, 사랑으로 행하되 진리를 떠나지 않아야 합니다.

느헤미야 4:9"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들로 말미암아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

→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동시에 현실적인 대비책도 마련했습니다. 신앙은 기도와 행동이 조화를 이룰 때 완전해집니다.

고린도전서 6:19-20"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 우리의 영혼뿐만 아니라 육신도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제물이 되어야 함을 가르치심.

요한복음 1: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예수님은 은혜와 진리의 완벽한 조화를 보여주심. 은혜는 사랑과 자비를, 진리는 의와 거룩을 나타낸다.

마태복음 11:28-30"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열심히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님 안에서 쉼과 안식을 누리는 것도 우리의 신앙에 필수적.

균형 잡힌 신앙은 하나님과 이웃, 믿음과 행위, 진리와 사랑,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는 삶.

이제 껏 둘중 하나만 취해야한다는 인간적인 한계에서 벗어나서

하나님도 사랑하고 이웃도 사랑하고 믿음이 근거가 된 행동, 진리와 동시에 풍성한 은혜와 사랑, 영혼육의 조화

이 모든 균형은 성령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말씀을 통해서 이루어지며, 지속적인 기도와 성령의 내주하심, 성령의 충만하심, 성령께서 감화감동 주심을 통해서 묵상과 암송을 통해서 유지될 것이다.

반드시 하나님께서는 나를 포기하지 아니하시며 그 분의 뜻대로 인도하실 줄을 굳건히 믿습니다. 아멘.

안식일 논쟁 5:10~18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안식일 치유’를 문제 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아들이요 안식일의 주인이기에(마 12:8) 안식일에도 병자를 치유하실 권한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병자를 긍휼히 여기셨기에 미루지 않고 그 자리에서 치료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17절)라는 말씀은 하나님이 창조 사역을 마치시고 안식하셨지만(창 2:2),

지금도 창조 세계를 유지하는 사역을 계속하고 계심을 의미합니다.

치유받은 병자를 만나신 예수님은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14절).

이는 그의 병이 죄에서 비롯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9:3),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이 가장 심각한 죄니 그 관계를 소홀히 하지 말라는 사랑의 권고입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도 병자를 치유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요 5: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나는 전통이나 관행 등을 앞세우며 주님 뜻을 헤아리지 못한 적이 없었나요?

전통과 관행이 나의 믿음을 돋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전통이 하나님의 뜻을 가리는 경우가 있다.

마가복음 7:8-9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내 신앙이 형식과 관행에 치우쳐 본질을 잃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 물어보아야한다.

마태복음 12:7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예수님은 율법적인 관습보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강조하셨다. 전통이나 규칙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

사무엘상 15:22"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외적인 전통이나 관습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과 순종이 진정한 예배임을 강조합니다.

정죄와 판단하지 않고 사랑과 권면으로 나를 하나님의 뜻대로 변화시키시길 바랍니다.

마태복음 7:1-2"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내가 다른 사람의 신앙생활을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께 맡겨야 할 일이다.

예수님은 남을 정죄하기보다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먼저 돌아보라고 가르치신다.

하나님의 자녀를 함부로 판단하고 보이는 것만 보고 믿고 정죄하고 바리새인 율법학자 처럼 외식했던 내 모습을 반성합니다.

교만하여 내가 의롭다고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회개로 나아갑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우심과 자비하심, 십자가 나 대신 대속하셔서 의롭다 칭함 받고는 자만하고 교만하여 남을 상처주고 박해하는 나 자신을 용서하소서,

형식적인 교회 참석보다, 하나님과의 관계와 마음의 자세를 고치소서,

남의 약점이나 실수를 정죄하기보다, 온유와 사랑으로 권면하여, 동시에 나의 연약함도 살펴주소서,

로마서 14:4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거니와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각 사람의 믿음과 신앙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 그 사람의 부족함을 비판하는 대신, 하나님께서 그를 세워주시길 기도하는 태도를 주소서,

히브리서 3:13"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나의 역할은 사랑으로 권면하며 서로 격려하는 것.

정죄는 마음을 완고하게 만들지만,

격려는 공동체를 세우는 역할을 한다.

골로새서 4:6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요즘 어떤 일이 있으셨나요? 교회에 오지 못해 아쉬웠어요. 괜찮으시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눠주실 수 있을까요?”

"교회에 함께 모이는 것은 서로의 신앙을 격려하고 하나님과 더 깊은 교제를 나누는 시간이에요. 당신도 함께 하셨으면 좋겠어요.”

"교회에 오지 못한 이유가 있겠지요.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함께 힘을 내보아요.”

"이번 주 예배 후에 교회에서 식사가 있는데, 같이 오셔서 교제 나누면 좋을 것 같아요. 제가 기다릴게요!”

"오늘 예배 말씀 중에서 이런 구절이 있었어요. 당신도 들으셨다면 큰 힘이 되었을 것 같아요. 다음 주엔 함께 들으면 좋겠어요!”

너무나 어색한 멘트들…

언젠가 나도 저런 사랑과 격려의 멘트로 사랑으로 다가가고 온유와 화평으로 다가갈 수 있는 사람될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마땅히 병자였던 나를 치유하신 예수님의 은혜를 갚아야할 것이다.

내 삶으로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전도가 되지 않더라도, 거절감이 들더라도, 실수할지라도, 포기하고 싶을지라도, 실망하지 말고 기도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사랑을 지속적으로 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빌립보서 4:6-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골로새서 4:6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히브리서 10:24-25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갈라디아서 6: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요한복음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마태복음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오늘의 명언

주님의 은총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심오한 이론이 아닌 단순한 순종이다. - 브루스 윌킨슨

네가 낫고자 하느냐?

제가 처음 미국에 갔을 때 받은 충격 중 하나는 미국 같은 선진 사회에도 집 없이 떠도는 노숙인이 적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일자리가 없어서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돈이 조금만 생겨도 모두 술과 도박, 마약에 써 버리기 때문이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절망이 익숙한 삶의 스타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직장이 아닙니다. 돈도 아닙니다. 절망의 자리를 거부하는 본질적인 치유입니다.

예수님이 물으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지금 이대로 살 수 없다는 의식, 곧 현상 유지를 거부하는 몸짓입니다. 진정한 치유는 익숙한 절망을 거부하는 선언에서 시작됩니다. “나 정말 낫고 싶어요! 나 정말 구원받고 싶어요! 나 정말 변화되고 싶어요!” 이런 의식의 깨어남 말입니다.

예수님은 세속적 해법에는 관심이 없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해법을 포기하는 순간 그분만의 해법, 치유, 구원이 시작됩니다. 진정 예수님을 통한 치유를 갈망한다면 우리에게 익숙한 해법부터 거부해야 합니다. 먼저 성공의 못에 들어가고자 새치기하는 습관, 인맥과 권력을 동원해 사람들을 제치고 첫자리에 들어서는 습관, 돈으로 반칙하고 성공을 사려는 습관 등 모든 익숙한 해법을 포기할 때 비로소 참소망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물으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요한의 복음 이야기 1 / 이동원_ 두란노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주님, 33년 된 병자를 치유하신 은혜의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절망 가운데서도 그를 주목하시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물으신 주님의 사랑과 긍휼을 기억합니다. 저 또한 저의 한계를 뛰어넘는 주님의 전능하심을 신뢰하며 간구합니다.

제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 육체적 연약함과 마음의 상처, 관계의 깨어짐과 세상의 고통까지 모두 주님께 맡깁니다. 전능하신 치유자이신 주님께서 그 모든 상황 속에 개입하시어 주님의 뜻을 이루어 주시기를 구합니다.

주님, 제 삶에 주어진 소명과 사명을 감당할 힘과 지혜를 주십시오. 특히 영혼 구원과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에 저를 사용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저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넘치게 하시고, 나를 통해 주님의 향기가 흘러가게 하소서.

형식과 전통에 얽매여 주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했던 죄를 회개합니다. 남을 판단하고 정죄했던 교만함도 십자가 앞에 내려놓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제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사랑과 온유로 가득 채워주소서. 남을 정죄하기보다 온유와 사랑으로 권면하며 서로를 격려할 수 있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게 하소서.

주님, 저의 연약한 믿음과 부족함 속에서도 당신께서는 일하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오늘도 저를 변화시키시고, 주님의 형상을 닮아가게 하소서.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주님, 이웃 사랑과 하나님 사랑의 균형 잡힌 신앙을 제게 허락하소서. 진리 안에서 사랑을 행하며, 기도와 행동이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게 하소서. 모든 순간에 주님의 선한 계획을 신뢰하며 담대히 나아가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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