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기쁨 15:9~12
사랑과 순종은 불가분리의 관계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9절)라고 명하십니다.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시는 예수님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셨고,
영혼 구원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10:17~18).
고난의 십자가 앞에서도 예수님은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13:1).
예수님이 “서로 사랑하라.”라는 계명을 제자들에게 재차 말씀하시는 이유는 그분의 사랑과 기쁨이 그들 안에 충만하게 하려는 것입니다(11절).
제자들이 그 사랑의 기쁨을 나누고, 그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또 다른 이들에게 사랑을 전할 때 온 세상은 사랑의 기쁨으로 충만해집니다.
사랑만이 미움과 갈등을 극복하게 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라는 계명을 재차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단순한 이웃 사랑을 넘어, 예수님이 보여주신 희생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본받으라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제자들이 서로 사랑할 때, 세상과 구별된 공동체의 모습이 드러나고, 이를 통해 예수님의 참된 제자임을 증명하게 된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 제자들이 세상에서 핍박과 어려움을 견디려면 서로를 사랑하고 하나 되지 않으면 무너지기 쉽다는 것을 아셨다. 사랑은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힘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사랑을 단순한 감정이 아닌,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의 삶의 방식과 존재의 본질로 삼으라고 하신 것이다.
주님 사랑 안에서 나는 어떤 기쁨을 누리고 나누나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주님의 사랑안에서 누리는 가장 큰 기쁨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 자체다.
예수님을 아는 기쁨은 모든 상황을 뛰어넘는다.
세상이 주는 만족과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은 평안과 확신이 그분 안에 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은 그분의 임재 자체가 기쁨이 되고,
어떤 형편에서도 나를 떠나지 않는 사랑을 깨달을 때, 마음 깊은 곳에서 감사가 흘러나온다.
이 기쁨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통해 얻은 생명의 기쁨은 자연스럽게 다른 이들에게 흘러가게 된다.
누군가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할 때, 진리의 말씀을 나눌 때,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할 때, 그 기쁨은 배가된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누리는 최고의 기쁨은 예수님이 내 삶의 중심에 계시다는 사실이며,
그분을 나누는 삶 속에서 참된 만족을 경험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에서 오는 기쁨이 있다.
나의 안에 거하라 하시는 명령을 따를 때, 순복할 때의 기쁨이 있다.
세상에서는 신에게서 자유하라고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순종할 때의 참 기쁨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
기도와 말씀 묵상에서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경험한다면, 그 기쁨이 영원 무궁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는 약속이 현실이 된다.
주님의 사랑은 우리의 죄를 덮고, 정죄에서 자유롭게 한다. 과거의 실수와 실패에 묶이지 않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확신이 마음을 가볍게 하고, 감사와 찬양을 이끈다.
주님의 사랑은 우리의 죄를 덮고, 정죄에서 자유롭게 한다는 말은 성경의 핵심 메시지 중 하나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셨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이는 우리의 죄가 주님의 사랑으로 덮여 더 이상 하나님 앞에서 정죄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더 이상 정죄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로마서 8:1). 주님의 사랑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그 죄로 인해 스스로를 비난하고 짓누르는 마음에서 자유롭게 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과거 실수와 실패에 묶이지 않도록 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17). 주님은 과거에 얽매여 낙심하지 않도록 하시고, 지금 이 순간부터 다시 걸어갈 용기를 주신다.
이러한 자유와 새로움을 경험할 때, 자연스럽게 감사와 찬양이 흘러나온다. 주님의 사랑과 용서가 우리의 삶을 감싸고 있다는 확신이 마음을 가볍게 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게 만든다.
주님의 사랑은 우리가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설 힘을 주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도록 이끄는 근원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매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잠언 24:16은 이렇게 말한다.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우리의 연약함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사랑은 다시 일어설 용기를 준다. 그 사랑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주님께서 붙드시는 힘으로 가능하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과거의 실수와 죄에 묶이지 않고, 매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고린도후서 5:17은 이렇게 선언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는 단지 외적인 변화가 아니라,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변화되어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예레미야 애가 3:22-23은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심으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주님의 사랑과 자비는 매일 새롭게 주어진다. 어제의 실패와 무거움을 내려놓고, 오늘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힘이 바로 그 사랑에서 온다.
우리의 노력과 의지로는 완전한 새로움을 이루기 어렵지만, 예수님 안에서는 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고린도후서 4:16)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은 매일 속사람이 새롭게 되어, 어제보다 더 하나님과 가까이 나아가는 과정이다.
주님의 사랑은 우리를 과거의 실패에 묶어두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매일 새롭게 시작하게 하는 은혜의 샘이다. 넘어졌다면 주님을 바라보고, 다시 일어나 그분과 함께 새로운 길을 걸어갈 수 있다.
주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은 그 사랑을 이웃과 나눌 때 더 큰 기쁨을 맛본다. 누군가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 때, 주님이 주시는 만족과 따뜻함이 마음을 채운다. 이는 사도행전 20:35의 말씀처럼,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진리를 체험하는 순간이다.
주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은 그 사랑을 이웃과 나눌 때 더 큰 기쁨을 경험하게 된다. 이는 성경의 여러 구절과 삶의 실제 경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주님께 받은 사랑은 단지 내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흘러갈 때 온전히 완성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명하셨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3:34)
이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섬김과 나눔으로 나타난다. 누군가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 때, 마음에는 주님이 주시는 따뜻함과 만족이 가득해진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마지막 권면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자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사도행전 20:35)
이는 단순히 물질적 나눔을 넘어, 사랑과 시간을 나누는 것까지 포함한다. 다른 사람을 돕고 그들의 필요를 채울 때, 내 안의 공허함이 채워지고, 주님과 더욱 가까워지는 복을 경험하게 된다.
요한일서 3:18은 이렇게 권면한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사랑을 행동으로 나타낼 때, 주님이 주시는 평안과 만족이 마음 깊은 곳에서 샘솟는다. 이는 단순한 의무감이 아니라, 성령께서 주시는 내적 기쁨이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태복음 25:40)
이웃을 돕는 것은 곧 주님을 사랑하는 행위와 같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주님과 더욱 깊은 관계로 나아가게 되고, 그분의 마음을 더 깊이 깨닫게 된다.
주님의 사랑은 받을 때보다 나눌 때 더 크게 확장되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기쁨과 만족을 누리게 된다. 이는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는 삶 속에서 경험하는 하늘의 복이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사는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부름받았음을 깨닫고, 삶의 목적과 사명을 발견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주님의 계획 속에 있다는 확신이 삶에 의미와 활력을 더해준다.
주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자신이 단순히 우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특별한 뜻을 가지고 창조하셨음을 깨닫는다.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이사야 43:1)
주님은 우리를 사랑으로 선택하셨고, 그 사랑 안에서 우리의 존재 가치는 확고해진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에 분명한 목적과 사명을 주셨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마태복음 5:14) 주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그 사랑을 비추며,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는 사명자로 살아가게 된다.
삶의 어려움과 시련 속에서도 주님의 사랑은 우리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계획하는 바를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예레미야 29:11)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이 함께하신다는 확신은 낙심 대신 소망을 선택하게 만든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사는 사람은 하루하루가 우연이 아니라, 주님의 인도하심 속에 있음을 알기에 삶의 모든 순간에 의미를 찾는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는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신 선한 일을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2:10)
이러한 확신은 삶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지 않게 하고, 하루하루를 사명감과 활력으로 채워준다.
주님의 사랑은 우리의 삶에 방향과 의미를 부여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게 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기쁨과 만족을 누리게 만든다.
주님의 사랑을 나누는 공동체 안에서는 형제자매와의 교제가 더욱 깊어진다. 함께 예배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삶의 무게를 나누는 과정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와 기쁨을 경험하게 된다.
주님의 사랑을 나누는 공동체 안에서는 형제자매와의 교제가 더욱 깊어지고, 함께 믿음의 여정을 걸어갈 때 진정한 위로와 기쁨을 경험하게 된다. 이는 성경의 가르침과 실제 신앙 생활에서 확인할 수 있는 아름다운 현실이다.
공동체는 함께 예배할 때 주님의 임재를 더 깊이 경험하게 된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태복음 18:20) 예배의 자리에서 하나 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말씀을 나누면, 개인의 신앙을 넘어 공동체적 은혜가 흘러넘친다.
공동체는 서로를 위해 기도함으로써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공간이 된다.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라." (야고보서 5:16) 기도의 교제는 마음의 벽을 허물고, 서로의 연약함을 덮어주는 사랑의 통로가 된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공동체는 고통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곳이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갈라디아서 6:2) 서로의 아픔과 어려움을 나누며 기도하고 격려할 때,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와 함께 이겨낼 수 있다는 용기를 얻는다.
주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는 단순한 모임을 넘어, 영적 가족이 된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 (히브리서 10:24-25) 사랑과 선행으로 서로를 세워갈 때, 관계는 더 깊어지고, 주님의 사랑은 더욱 충만해진다.
결국, 주님의 사랑을 나누는 공동체는 개인의 외로움을 넘어, 함께 성장하고 서로를 지지하는 사랑의 장이 된다. 이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위로와 기쁨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기쁨은 세상의 환경과 상관없이, 오직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지속되는 기쁨이다. 결국, 주님의 사랑은 내 안에서 흘러넘쳐 다른 이들에게도 전달되며, 함께 누리는 기쁨으로 확대된다.
환경을 초월하는 기쁨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립보서 4:4)사도 바울이 감옥에 있으면서도 이 말씀을 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기쁨이 환경이 아니라 주님과의 관계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주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기쁨은 외적인 상황에 좌우되지 않는다.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지속되는 기쁨"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 15:11)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할 때, 우리는 그분의 기쁨을 누리며, 어떤 상황에서도 소망과 평안을 잃지 않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흘러넘치는 사랑과 기쁨"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요한복음 7:38)
성령을 통해 주어진 이 생명의 기쁨은 내면에서 샘솟아 이웃과 공동체로 확장된다.
주님의 사랑은 우리 안에 머무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에게 흘러넘친다.
함께 누리는 기쁨의 확대"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로마서 12:15)
기쁨과 사랑을 함께 나눌 때, 혼자만의 만족을 넘어 공동체적 기쁨으로 확대된다.
주님의 사랑을 나누는 과정에서 기쁨은 배가된다.
결국, 주님의 사랑에서 비롯된 기쁨은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사랑과 나눔을 통해 더 크게 퍼져나가는 하늘의 선물이다. 이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만족을 동반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삶 속에서 지속된다.
종이 아닌 친구 15:13~17
예수님 당시에는 랍비의 ‘제자’를 ‘종’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종’이 아닌 ‘친구’로 부르십니다(15절).
‘친구라 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현재 완료로,
예수님이 제자들을 이미 친구로 삼으셨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들으신 것을 모두 제자들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이는 주인의 일을 종들이 전혀 모르게 했던 당시 관례와 대조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친구 삼으신 것은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최고 사랑을 보여 주시기 위함입니다(13절).
또한 예수님 이름으로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시기 위함입니다(16절).
우리를 향한 주님의 기대는 서로 사랑하는 삶입니다(17절).
예수님이 제자들을 ‘종’이 아닌 ‘친구’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계획과 진리를 숨기지 않고, 자신의 사역과 하나님의 뜻을 모두 알려주셨기 때문에 그들을 친구로 여기셨다.
종과 주인의 관계는 일방적이며 의무적이다. 그러나 친구는 상호적이고 사랑과 신뢰로 맺어진 관계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랑하고 신뢰하셨기에, 그 관계를 친구라는 친밀한 표현으로 강조하셨다.
종은 명령에 따라 움직이지만, 친구는 사랑과 관계 속에서 자발적으로 행동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강요된 순종이 아니라 사랑의 관계 속에서 기꺼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길 원하셨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친구라고 부르신 것은 그들과의 관계가 단순한 종속이 아닌,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깊은 교제와 연합임을 나타내신 것이다.
나를 친구 삼아 주신 예수님께 나는 어떤 마음으로 나아가나요?
오직 순종
갈라디아서 5:22-23에 기록된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는 우리의 힘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과 동행할 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열매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를 맺는 과정에서 우리의 역할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성경은 성령의 역사와 우리의 순종이 함께할 때 열매가 맺힌다고 말한다. 다음과 같이 우리의 책임이 분명히 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라디아서 5:16)
성령의 열매는 성령을 따라 살아갈 때 맺힌다. 이는 하루하루의 선택의 문제다. 내 뜻과 욕심을 따를 것인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를 것인가? 우리가 성령의 길을 선택할 때,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열매를 맺어가신다.
“그의 기뻐하시는 뜻을 위하여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빌립보서 2:13)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변화시키신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로 주님의 뜻을 구하는 과정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더 잘 분별하게 된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태복음 16:24)
성령의 열매는 내 의지와 성격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아를 내려놓을 때 맺힌다. 내가 사랑하고, 참으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면서 자연스럽게 열매가 나타나는 것이다.
"땅이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농부의 인내와 같으니라." (야고보서 5:7)
열매는 하루아침에 맺히지 않는다. 성령의 역사를 믿고 기다리며, 포기하지 않고 주님과 동행할 때, 어느새 우리의 삶에 사랑과 희락, 평안의 열매가 맺힌다.
성령의 열매는 내 노력으로 이루는 결과물이 아니라, 성령과 동행하는 삶의 자연스러운 결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의 인도에 귀 기울이고, 자아를 내려놓으며, 말씀과 기도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결국, 우리의 역할은 성령께서 일하실 수 있도록 마음의 밭을 기경하는 것이다. 그러면 성령께서 주시는 은혜로 열매는 자연스럽게 맺히게 된다.
하지만 너무 모호하고 실제적이지 않다.
믿음은 현실이나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 현실과 거리가 먼 것 같은 이상향 같을 때가 있다.
현실적으로 내가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어떻게 노력해야하는가..
1. 말씀 묵상과 적용 (성령의 인도받는 기준 세우기)
현실적인 행동: 매일 성경을 읽고, 하루에 한 구절이라도 마음에 새기며 그 말씀을 실천하는 것.
현실적 적용 방법: "오래 참음"의 열매를 맺고 싶다면, 에베소서 4: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를 묵상하고, 하루 동안 누군가를 참아야 할 때 이 말씀을 떠올리며 행동하는 것이다.
2. 매일의 선택에서 성령의 음성 따르기 (육체의 욕심과 싸우기)
현실적인 행동: 어떤 상황에서 감정적으로 반응하기 전에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묻고,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방향으로 선택하는 것.
현실적 적용 방법: 누군가 나를 화나게 했을 때 바로 반응하지 않고, 잠시 멈추고 “성령님, 지금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라고 기도하고, 화가 아닌 온유함으로 대하는 것이다.
3. 기도로 성령과 대화하기 (성령의 능력 의지하기)
현실적인 행동: 하루에 짧은 기도라도 습관화하는 것. 특히 아침과 중요한 선택의 순간마다 성령의 지혜를 구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현실적 적용 방법: 하루를 시작하며 “성령님, 오늘 제 생각과 말과 행동을 주관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고, 하루 중 갈등이 생길 때 “주님, 지금 이 순간에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주십시오.”라고 짧게 기도하는 것이다.
4. 구체적인 열매를 목표로 정하고 훈련하기 (성령의 역사에 협력하기)
현실적인 행동: 성령의 열매 중 한 가지를 선택해 한 달 동안 집중적으로 훈련하는 것.
현실적 적용 방법: "절제"를 훈련하고 싶다면, 식습관이나 언어 사용에서 하루에 한 번 절제의 행동을 실천하고, 저녁에 스스로 점검하는 것이다. “오늘 내가 절제하지 못했던 순간은 무엇인가? 성령님, 내일은 더 잘하게 도와주십시오.”
5. 공동체 속에서 열매를 점검받기 (성령의 역사 확인하기)
현실적인 행동: 믿음의 동역자와 함께 열매를 점검하고, 서로 격려하며 기도하는 관계를 만드는 것.
현실적 적용 방법: “이번 주에 사랑과 온유를 실천하려고 노력했는데, 이런 일이 있었다.”라고 나누고, 동역자에게 “나의 변화가 보이면 알려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습관화된 작은 실천’이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한다.
성령의 열매는 내 삶 속에서 매일 작은 선택을 통해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과정에서 맺힌다. 중요한 것은 즉각적이고 구체적인 행동과 반복적인 훈련이다.
- 아침에 말씀과 기도로 방향을 정하고,
- 하루 중 성령의 인도를 선택하며,
- 저녁에 스스로를 점검하고
- 공동체와 나눔을 통해 열매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성령께서 자연스럽게 열매를 맺도록 역사하신다. 결국, 성령의 열매는 하루아침에 맺히는 결과가 아니라, 성령과 함께 걷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현실적인 변화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로마서 7:19)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로마서 7:24-25)
성령의 능력이 나를 자유롭게 할 것임을 믿지만, 쉽지않다.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까?
단순히 기도와 말씀 묵상만으로는 부족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은 지속적인 훈련과 결단의 과정 속에서 역사한다.
다음의 구체적인 단계를 실천할 것을 오늘도 각오한다. .
1. 죄의 실체를 직시하고 철저히 미워하라.
죄는 단순한 실수나 연약함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무너뜨리는 본질적 문제다.
현실적인 행동: 반복해서 넘어지는 죄를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그것이 가져오는 결과를 묵상하라. 죄가 주는 순간의 쾌락과 그 뒤에 오는 허무함과 파괴를 마음에 깊이 새기는 것이다.
말씀: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로마서 8:13)
2. 성령의 다스림을 하루의 첫 순간에 선택하라.
하루의 시작을 성령의 인도로 여는 것이 중요하다. 아침에 성령님께 마음을 드리는 기도로 시작하라.
현실적인 행동: 눈을 뜨자마자 “성령님, 오늘 하루 제 마음과 생각을 다스려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말씀: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라디아서 5:16)
3. 작은 승리를 목표로 하고 기록하라.
완벽하게 변하려는 욕심 대신, 하루에 한 가지 작은 승리를 목표로 삼아라.
현실적인 행동: 예를 들어, ‘오늘 하루는 화가 날 때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고 즉각 반응하지 않겠다.’와 같이 현실적인 목표를 정하고, 성공했을 때 기록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다.
말씀: "너희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하나님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라." (데살로니가전서 1:3)
4. 유혹의 순간에 즉각 성령을 의지하라.
죄의 유혹이 올 때 생각과 시선을 즉시 돌리는 훈련이 필요하다.
현실적인 행동: 유혹이 느껴질 때 “성령님, 이 순간을 지나가게 해주십시오.”라고 즉시 기도하고, 그 자리를 물리적으로 피하거나 다른 활동으로 전환하라.
말씀: "시험을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0:13)
5. 공동체와 accountability(책임 관계)를 맺어라.
홀로 싸우는 것은 어렵다. 믿을 만한 신앙의 동역자와 함께 서로의 상태를 점검하고 기도로 격려하는 관계를 맺어라.
현실적인 행동: 주 1회라도 믿음의 친구와 “이번 주는 어땠는지”를 나누고, 실패했을 때도 정죄가 아닌 격려로 다시 시작하도록 돕는 것이다.
말씀: "두 사람이 함께 걸으면 더 따뜻하고, 넘어질 때 서로를 일으킨다." (전도서 4:9-10)
6. 반복되는 실패 속에서도 포기하지 말라.
변화는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실패할 때마다 다시 성령을 붙잡고 일어나는 것이다.
현실적인 행동: 실패했을 때 스스로를 정죄하지 말고, 즉시 회개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말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잠언 24:16)
결론: 변화는 성령과 동행하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성령의 능력은 순간의 기적으로 나를 완전히 바꾸기보다는, 매일의 작은 순종과 결단의 반복 속에서 점진적으로 내 삶을 변화시킨다.
기도, 말씀, 행동, 점검이라는 현실적인 훈련을 통해, 성령님은 내 안에 조금씩 열매를 맺어가신다.
결국, 내가 할 일은 성령께 내 마음과 삶의 주권을 매일, 매 순간 넘겨드리는 것이다. 그러면 성령께서 나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시고, 내가 스스로 감당할 수 없었던 죄의 굴레에서 자유롭게 하신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빌립보서 1:6)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성령님께 내 모든 것을 의탁하고 의존하길 바랍니다.
나를 오늘도 죽여주시고,
성령님께서 불같이 찾아오셔서,
나를 완전히 새롭게 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육체의 소욕을 원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법만 따르는
성령님의 인도하심만 받는 내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힘들지만, 성령님 계셔서, 예수님, 하나님 계시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겠지만 나는 반드시 변화할 것입니다.
주님 알려주신 이 진리를 꼭 붙잡고 세상 끝날까지 주님만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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