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 모독에 대한 반론 10:32~36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은 유대인에게 중대한 죄목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스스로를 하나님이라고 한다면서 신성 모독의 죄목으로 예수님을 돌로 치려 합니다(33절).
예수님은 재판장들을 ‘신’이라고 표현한 시편 말씀(시 82:6)을 근거로 자신을 변호하십니다.
그리고 “(구약)성경은 폐하지 못한다.”라고 하십니다(35절).
‘폐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파괴하다’라는 의미로, 성경은 결코 파괴될 수 없는 절대 권위를 갖고 있습니다.
성경의 절대 권위에 대한 인식은 유대인들에게 공통된 신념입니다.
신성 모독으로 자신을 정죄하는 유대인들을 향해 예수님은 구약성경을 토대로 변론하는 지혜를 발휘하십니다.
신성 모독이라는 비난에 예수님은 어떻게 자신을 변호하셨나요?
예수님은 신성 모독이라는 비난에 대해 성경과 자신의 행위를 통해 변호하셨다.
요한복음 10장 34-36절에서 예수님은 시편 82편을 인용하며,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신"이라 부른 적이 있음을 상기시키셨다.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것이 신성 모독이 될 수 없음을 논증하셨다.
또한, 자신의 행위를 통해 하나님과 하나됨을 증명하셨다. 병자를 고치고, 죄를 용서하며,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사역을 통해 자신이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임을 입증하셨다.
결국 예수님은 성경의 권위를 인용하고, 자신의 기적과 사역을 증거로 제시하며, 아버지와의 하나됨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신성 모독이라는 비난에 대응하셨다.
절대 권위인 성경 말씀을 기준으로 내가 분별할 일은 무엇인가요?
진리와 거짓을 분별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관과 사상이 있지만, 성경만이 절대적 진리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어떤 가르침이나 사상이 성경과 일치하는지 늘 분별해야 한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복음 8:31-32)
죄와 의를 분별
자신의 행동과 마음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 판단해야 한다.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무엇이 죄이며, 무엇이 의로운 일인지 분별해야 한다.
“하나님께 속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요한일서 3:9)
올바른 관계를 분별
인간관계에서도 성경을 기준으로 분별해야 한다. 사랑과 용서, 인내와 겸손이 필요한지, 아니면 악한 영향을 주는 관계에서 거리를 두어야 하는지를 성경 말씀을 통해 깨달아야 한다.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고린도전서 15:33)
삶의 선택을 분별
결혼, 직업, 재정, 시간 사용 등 삶의 모든 선택에서도 성경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단순히 현실적인 유익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선택인지 살펴야 한다.
“무엇을 하든지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골로새서 3:17)
영적인 상태를 분별
자신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는지, 교만해지고 있는지,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른지 늘 성경을 통해 점검해야 한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고린도후서 13:5)
결국, 성경 말씀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분별해야 한다. 무엇이 진리인지, 무엇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인지, 삶의 모든 결정에서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
행하신 일을 믿으라는 호소 10:37~42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 아들로 믿지 못합니다.
그러한 유대인들을 향해 예수님은 자신이 지금까지 행한 ‘일’을 믿으라고 하십니다(38절).
예수님이 하신 일들은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결코 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변론과 호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완악한 자들은 예수님을 다시 잡으려고 합니다(39절).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신 예수님은 요단강 동편 세례 요한이 처음 세례 베푼 곳(1:28)으로 가십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의 사명대로 예수님을 참빛으로(1:7),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1:29), 그리스도로(3:28~30) 증언했습니다.
신실한 증언자 한 사람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로 믿습니다(41~42절).
예수님은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하는 유대인들을 향해 무엇을 믿으라고 하셨나요?
예수님은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하는 유대인들을 향해 자신이 행한 일들을 믿으라고 하셨다.
요한복음 10장 37-38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37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하지 않거든 나를 믿지 말라. 38 그러나 내가 아버지의 일을 하거든 비록 너희가 나를 믿지는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 그러면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행한 기적과 사역을 보고 믿으라고 하셨다. 이는 예수님께서 단순히 말로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는 일을 행하셨음을 강조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고, 물 위를 걷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시며, 심지어 죽은 자를 살리셨다. 이러한 일들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들이었고, 오직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때만 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적어도 이 기적들을 보고서라도 자신이 누구인지 깨달으라고 하신 것이다.
즉, 예수님은 행하신 일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증거하셨으며, 유대인들에게 그 일들을 보고 믿으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 앞에서 내가 해야 할 고백은 무엇인가요?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 앞에서 내가 해야 할 고백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나의 주님이십니다."라는 믿음의 선언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해야 한다.
예수님은 기적을 통해 자신의 신성을 증명하셨다. 바다 위를 걷고, 죽은 자를 살리고, 죄를 사하시는 능력을 보이셨다. 이러한 일들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이며,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드러낸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태복음 16:16)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예수님의 기적은 단순한 이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표적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그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인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12:3)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가장 큰 일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이다. 이는 나의 죄를 위한 희생이며, 내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길이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로마서 10:9-10)
예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믿고 고백했다면, 이제는 그 믿음대로 살아야 한다. 내 뜻이 아니라 예수님의 뜻을 따르며, 그분께 순종해야 한다.
"나는 주의 것이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법도를 찾았나이다" (시편 119:94)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나의 주님이십니다. 나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으며, 그분만을 의지하며 살아가겠습니다."
하나님 뜻은 좁지 않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1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자유롭게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자유롭게 베풀고, 자유롭게 거룩해질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께 순종할 방법을 정하는 데 집착한 나머지 실제로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다. 무엇을 하지 말라는 일련의 금령으로 율법을 좁히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 뜻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해서는 안 될 일보다 해야 할 일을 더 중시하신다. 구원자께서 은혜를 베푸신 대로 은혜를 실천하라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이 명하신 일을 하기 싫어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부각했다. 반면 예수님은 해서는 안 될 일보다 해야 할 일에 더 시간을 들이셨고, 그러다 바리새인들의 노여움을 사셨다.
하나님 뜻은 좁고 답답하고 괴로운 게 아니라 넓게 활짝 열려 있다. 하나님 뜻은 덤불을 헤치고 조심조심 나뭇가지와 말벌을 피하며 찾아야 하는 게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 뜻은 작은 배가 떠가는 도도한 강이다. 목표는 강어귀로 나가는 것이다. 강의 범위는 분명히 양쪽 강둑 사이지만 그 강물 위를 나는 어디든 누빌 수 있다. 하류 쪽으로 가고 있는 한, 내 재량대로 하면 된다. 우리가 하나님과 공동체의 소리를 경청하고, 우리가 돌봐야 할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는 한, 우리는 자유 안에서 하나님 뜻을 이루어 갈 수 있다.
혁신하는 교회 / 스콧 코모드_ 두란노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 신성 모독이라는 비난을 받으셨을 때, 성경의 말씀과 행하신 일들로 자신을 증거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그분은 성경이 폐할 수 없는 절대 권위임을 선포하시고, 하나님과 하나되신 증거로 자신의 사역을 보여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분을 믿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여전히 진리를 밝히 드러내셨습니다.
아버지, 저 또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며, 그분이 행하신 일들을 통해 저의 믿음을 더욱 굳게 하기를 원합니다. 세상에는 많은 거짓과 혼란이 있지만, 성경의 진리를 통해 올바르게 분별하게 하소서.
제가 세상의 가치관이 아니라 성경을 기준으로 진리와 거짓을 분별하고, 죄와 의를 분별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소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성경을 기준 삼아 사랑과 용서, 인내와 겸손을 실천하게 하시고, 악한 영향에서 벗어날 지혜를 주옵소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과 사역을 통해 하나님과 하나 되심을 나타내셨듯이, 저 또한 예수님의 말씀과 행하심을 신뢰하며 살아가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고 고백하며, 그 믿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제가 주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면서도 혹여 바리새인들처럼 형식에 매여 하나님을 진정으로 따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하나님 뜻은 좁은 울타리가 아니라, 자유 가운데 사랑하고 베풀며 거룩해지는 길임을 깨닫게 하시고, 기쁨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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