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생물은 보좌 위에 앉으신 이를 어떤 말로 찬양했나요?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창조주와 피조물의 격차를 느낄 때, 나는 창조주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나요?

격차를 느낀다.

하나님과 나의 격차, 나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찬양드릴수 밖에 없다.

그러지 않고 목이 꽂꽂한 자는 정녕 하나님을 만난 것이 아니다.

차원이다른 수준이 다른 격차를 느끼면 인간은 절망한다.

하지만 그 순간 나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지켜주신다.

지존하신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반응한다.

이십사 장로는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를 어떤 말로 찬양했나요?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나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고백하나요? 그 고백을 담아 하나님을 찬양하세요.

하나님은 지존하시며 광명정대하시며 아주 크신 분,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며 모든 것을 아시며 나의 모든 계획을 이미 세우신 분,

내게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모르겠으나, 인간의 기준으로 암울하든, 희망적이든, 부요하든, 가난하든, 이미 나는 구원을 받아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으니, 오직 그분의 뜻대로 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영원히 찬송드리는 예배자의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삶의 방황을 끝내게 하는 '예배' 삶의 방황은 어디에서 시작됩니까? 사람의 영혼이 참된 예배를 드리지 못한 데서 비롯됩니다. 그 허기진 영혼, 뚫려 버린 가슴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 습니다. 예배를 통해 만족을 얻지 못하면 영혼의 불만족이 생깁니다. 그래서 다른 곳에서 늘 뭔가를 추구하지만, 마음이 채워지지 않기에 끝없이 방황합 니다. 그러나 예배가 예배다워지면, 예배드리는 우리에게 하늘이 열립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은총이 흘러들어 옵니다. 이 은총은 삶과 죽음을 가를 정도로 중요합니다. 예배의 성공과 실패에 영적 생사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 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목적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화롭 게 하는 것이기에 예배는 창조 목적을 성취하는 행위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구원 이야기의 결말도 예배입니다. 소망 없는 죄인들이 구원받은 후 그 감격과 감사로 찬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 런 의미에서 예배는 구원받은 인생의 시작과 끝이며 전부입니다. 구원의 역 사는 오늘도 진행되고 있고, 구원의 열매는 이 순간에도 새롭게 맺히고 있습 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지금도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우리의 예배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날마다 우리 삶을 이끄는 동력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닌 예배의 감격이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 이규현_두란노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영원히 나의 찬양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오직 예수 당신만이 나의 빛이십니다.

찬란하고 높디높은 보좌에 앉아서 나를 구원하소서.

나의 이 타락하고 더러운 영을 회복시키시어 주께로 나아가게 하소서.

주여 내가 주님을 믿사오니 천국가게 하소서.

내 힘은 연약해도 예수 그 이름 권세로 이겨내게 하소서.

나의 유일하신 구세주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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