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한 나답은 어떤 평가를 받았나요?

그는 아버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의 경고를 듣고(13:2) 아버지의 실패를 보았음에도, 그는 아버지의 잘못된 종교 정책을 따랐습니다.

공동체 구성원이 잘못된 길로 행할 때, 지도자의 책임이 더 큰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도자가 공동체의 영적인 행동과 방향을 지휘하고 영감을 주어야 한다.

지도자는 공동체 구성원들을 양육하고 교육하는 책임이 있다.

(엡 4: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엡 4: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지도자로서 공동체를 이끄실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모범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행동과 가르침은 지도자들에게 예수님과 같은 품성을 따르도록 이끌었다.

지도자가 그들이 이끄는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책임을 져야한다는 개념이 강조된다.

(히 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겔3:17, 빌4:1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성경에서는 지도자의 책임을 더욱 강조한다. 지도자는 그들의 영적인 안전과 성장을 돕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인도해야한다.

지도자가 책임이 큰 이유는 우리는 암묵적으로 지도자의 권위에 이미 순종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생사가 달린 권위자에게 반항하기 쉽지가 않다. 팀장, 국회의원, 검찰, 판사, 선배 이런 사람들에게 반항하기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지도자가 책임이 너무나도 크다.

목사와 교역자 사역자 CCM 가수들의 세상에서 말하는 스캔들이 터지게 되는 경우,

또한 이단 시비가 걸리는 경우,

그러한 지금까지의 모든 사역이 부정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알고보니 라는 말이 참 무섭다.

알고보니 은혜받고 사랑받고 성령 충만한 역사가

알고보니 사실은 예수님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었고

알고보니 사단 마귀를 아비 삼은 지도자에게로 받은 타락과 교만이였다니

알고보니 그럼 나는 사단 마귀를 신봉하고 있던 것인가? 이런 의문을 또 사단이 주는 것이다.

알고보니 거짓 선지자였고 ?

알고보니 적그리스도였다 ?

이런 무슨 반전 영화보다 더 반전의 뒷통수를 빡 하고 상상만 해도 뒤가 얼얼하다.

그 배신감은 미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유튜브, 설교말씀, 목사님들 말씀, 찬양 다 좋지만,

내가 시간을 내서 남에게 의지하지 않는 신앙적 독립심이 가장 중요하다.

내가 스스로 성경을 읽고 성령 충만해야한다. 그런 고독함과 독립심이 없으면 신앙은 무너지게 되어있다.

목사 누구가 어쩌구 믿었던 크리스천이 알고보니 이단이더라 불륜을 했다더라 무슨 뭘 했다더라 교회가 타락했다더라 그냥 찌라시 가십 신앙생활도 그냥 세상 사람들 처럼 하는 것이다. 뒷담하고 욕하고 정죄하고 판단한다.

인간은 믿을 수 없는 존재이다. 죄인이다. 당연히 죄의 삯은 사망이다.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유다가 배반하다(막 14:10-11; 눅 22:3-6)

(마 26:14)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마 26:15)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마 26:16) 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막14:12, 눅22:9

이와 같이 죄인된 인간을 신뢰하는 것은 단지 하나님이 인자하심과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그 분을 믿어주는 것이고 사랑해 주는 것일 뿐이었구나 싶다.

그리고 인간은 그렇게 실족하고 나도 무너지고 지도자의 큰 실족은 뼈아픈 하나님의 부재를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더욱 더 지도자께서는 더 경건하시고 거룩하셨으면 좋겠다. 높은 도덕률을 가지고 사셨으면 좋겠다. 온화하고 인자한 사람들이 되셨으면 좋겠다.

인간들은 나를 배신하고 버릴 지라도 하나님은 용서와 회복을 통해 나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신다.

인간혐오, 교회 혐오, 예수를 혐오하던 나를 사랑과 은혜로 돌이키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줄 수 있는 존재로 변모하게 하신다.

이런 하찮고 뽀짝한 묵상하는 나도 아는 사실인데

심지어 선한 영향력을 펼치시는 분들이 도덕률과 윤리와 하나님의 법도에 어긋나는 행동을 해서 굉장히 부끄러운 일들이 밝혀진다? 그럼 그분이 한 모든 하나님을 대변한 말씀들은 그냥 한줌 먼지만도 못한 것이다.

하나님 예수님은 용서해주시지만 우리 인간들은 옹졸하고 치졸하다 한번 실수하면 그냥 꼬리표가 딱 붙고 편견이 생기지 않나

그래서 조혜련 집사님의 경우가 참으로 놀랍다. 그저 비호감이라고 생각하신 분이었고 사실 내가 회심하지 않았다면 내 평생 조혜련 집사는 초초초비호감에다가 예수믿는 예수쟁이란다. 더 비호감 아니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딱히 그냥 잘못하신거도 없다, 공인이니까 그냥 싫은거였다.)

근데 이제 내가 은혜를 받고 조혜련 집사님이 예수님 생각하시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시는 것을 보니 정말 은혜를 부어주시고 너무 다행스럽다고 생각하고 말씀을 잘 설명해주시는 은사마저 있으셔서 재밌게 성경을 잘 풀어서 말해주시는 사역도 하시고 너무나도 하나님의 은혜가 놀랍다.

그래서 또 느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표해서 진리를 전한다는 것은 내 생각보다 큰 부담과 영향력을 가진 것이다.

내가 쉽게 쉽게 했다고 생각하는 “예수님이 진리에요, 예수님 믿으세요.” 라는 말은 정말 하나님께서 담대함을 주셨기 때문에 내가 말할 수 있는 오직 예수님께서 대신 말씀해 주신 것임을 뼈져리게 깨닫는다. 아니라면 내가 그냥 저 말을 진심으로 하지 않고 저 말만 내 뱉었을 뿐이던지.

오늘도 주님 임재하시고 있는 이 땅에서 내 믿음을 내 스스로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주시고 그 가운데서 또 내 앞에 계시는 내 보좌에 앉아 계시는 내 우편 좌편 사방팔방으로 나를 사단 마귀에서 지켜주시는 예수님의 임재하심을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또 만나게 해주시고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 아버지의 굳건한 반석에 내 집을 지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아멘.

여로보암 가문이 완전히 진멸당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바아사는 여로보암 가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도구

‘생명 있는 자를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29절)라는 표현은 여로보암 가문이 완전히 진멸당했음을 나타냄.

아히야의 예언대로 이루어진 것(14:10~11).

선지자의 예언과 성취는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을 다스리신다는 것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심.

여로보암 가문이 심판받은 이유는 여로보암이 우상을 만들고 백성에게 우상 숭배를 조장했기 때문. 또한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하나님을 노엽게 했기 때문.

이후 여로보암은 악한 왕의 표본으로 언급됩니다.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죄인이 회개할 기회를 놓치면 두려운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경고는 무엇인가요? 이를 가볍게 여기거나 무시하면 어떻게 될까요?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이사야 45:5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구원의 약속

(사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사 43: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사 43: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출20:2 (사 43:4)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사 43:5)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사 43:6)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며 사45:22 (사 43:7)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요3:3, 고후5:17, 엡2:10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경고는 바로 성경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정미하고 좌우의 날선 검과 같으며 내 혼과 육과 모든 및 관절의 골수를 전부 꿰뚫으시는 꿀보다 더 단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의지와 계획을 알려주고 올바른 길을 보여주신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많이 사랑한다. 이유는 모르겠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나보다. 엄청 잔소리하시고 엄청 귀찮게 하시고 나를 권면해주시고 옳은 길로 인도해주신다. 그래서 예수님 믿고는 팀장님 말에 그냥 무조건 순종 복종하고 옆 동료 님들 말에 그냥 순종하고 복종하고 무조건 넵 하고 하려고 노력한다. 친구든 가족이든 나에게 뭐라하시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받아들이려고 한다. 웬만하면 그 사람말이 맞다 생각하고 하려고 한다. (영 이상한거 뺴고) 엄마 말에 앵간하면 반항 안하고 순종한다. 말 잘듣는 아들이 된 것이다.

예수 믿더니 말 잘듣는다 그런다. (사실은 엄마말 들은건 아니고 예수님 말 들은건데 미안요)

또한 하나님께서는 기도로, 기도응답으로 하나님께서는 경고하거나 우리에게 방향을 제시해 주신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나를 위로해주시고 경고해주시고 사랑해주신다.

또한 생활의 사건들 심지어 지나가는 표지판도 나에게 기도 응답해주시고 경고를 주신다. 천천히 양보하면서 믿음의 길로 가라고 하시기도 한다. 어떤 상황이 반복되거나 우리에게 어려움을 줄 때,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자 하시는지 알 수 있다.

인간은 정말 사악하고 간악하고 꼬람하고 비틀고 말 안듣고 청개구리 하지말라는 건 더 하고싶다.

그래서 아 게임 안해야지 드라마 덜봐야지 음식 덜먹어야지 다이어트해야지 금주해야지 금연해야지 숏츠안봐야지 유튜브 안봐야지 운동해야지 잠 덜자야지 일찍 일어나야지 이러면 못한다. 필패한다.

왜냐하면 안해야지 신을 또 믿고 있는 것이다. 안해야지 신 자기 계발의 신 우상숭배를 또 하는 것이다.

안해야지 안해야지 안해야지 안해야지 그 대상을 바라보고 묵상하고 있으면 결국 또 하더라.

그건 답이 아니다. 결국 답은 예수 그리스도. 진정한 사랑에 푹 잠겨야한다.

나라는 영혼이 그리스도 예수님 오직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사랑의 성령의 은혜 충만에 푹 담궈져서 절여져서 너덜너덜 해져야한다.

오직 주님만 바라옵고 바라고 바라며 네 여호와 하나님을 온 맘다해 온 목숨다해 온 뜻을 다해 온 힘을 다해서 네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라.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을 바라보고 예수님만 사랑하고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는 성령님께서는 임재하신다.

이 경고를 가볍게 여기거나 무시하면 내 자아가 강해지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점점 멀어진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영원부터 영원 전까지 나를 기다리고 계신다, 나와 관계하고 연락하고 이야기하고 싶고 대화하고 싶어하신다. 하지만 그것을 무시하는 것은 연약한 우리가 아닌가?

내가 하나님을 과연 진정으로 사모하는 것이 맞는가?

그래서 시선을 하늘로 돌려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원하고 성령충만을 원한다면 자동으로 부수적인 것들은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이다.

오직 예수님 오직 말씀 오직 하나님 오직 기도 마라나타 할렐루야 아멘

오직 영광을 받으실 한분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오직 한분께 찬양드립니다.

자기 자신을 중심에 둔 결과

우리가 하나님께 “주 뜻대로 하소서.”라고 말하기를 거부하면, 하나님은 “그래, 네 뜻대로 해라.”라고 말씀하신다. 그때부터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울이 전한 다음 말의 의미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롬 1:18). 하나님을 중심에서 끌어낸 탓에 우리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부패했다. 영적 문제, 관계 문제, 경제 문제, 가정 문제, 성 문제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문제가 여기에 포함된다. 사람마다 정도는 다르지만 자기 자신을 중심에 놓기로 한 결정이 우리를 타락시켰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대학교 졸업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이 예배하는 대상이 여러분을 산 채로 잡아먹을 겁니다. 돈과 물질을 예배하면 절대 만족할 수 없을 겁니다. 육체와 아름다움, 성적 매력을 예배하면 항상 자신이 못생겼다고 느끼고, 세월의 흔적이 외양에 나타나기 시작하면 결국 죽기 전에 수만 번의 죽음을 경험하게 될 겁니다.”

이것이 비극이다. 우리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다. 우리가 이것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예배하기로 선택한 탓에 우리는 창조된 본모습과 다른 모습으로 변질되었다. 그러나 여기에 복음이 있다. 심판과 더불어 하나님은 우리가 요구하는 것을 주시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누려야 하는 것, 우리가 깊은 곳에서 진정으로 갈망하는 것을 주신다.

복음 특강 / J. D. 그리어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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