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69 : 29~36

구약/시편 2024. 11. 12. 10:46

고통 속에서 탄식하던 시편 기자의 심경은 어떻게 변화되었나요?

기도하는 자의 마음은 변한다.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더불어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찬양합니다.

값비싼 희생제물보다 감사와 찬양이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시키실 것이다.

절망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궁핍한자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 나아가야한다.

여호와께 돌아오라. 여호와께 돌아가자.

내가 고통 속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계속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나님께서 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택정하시고 선택한 백성은 결코 여호와를 벗어날 수 없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일하시는지는 정확히 증명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다.

내가 하나님을 단정하고 정의할 수 없으신 분.

내가 하나님을 정의한다면 그것이 하나님은 아닐 것이다.

죄인이 무언가를 정의하고 단정하고 확정한다면 죄인 그 이상 그 이하를 넘어갈 수 없지 않겠는가.

토기가 토기장이에게 나를 왜 이렇게 만들었냐고 투정부린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를 바르게 정의해주신다.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 예수님의 제자.

악인이 어찌 하나님을 단정하고 자신의 수준 낮음을 고백하는가?

하나님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신 분이며 더 지존하신 분이며 더 사랑이 넘치시는 분이시며 더 인자하시며 더 거룩하신 분임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오직 지존하신 한분이시여, 오늘도 나에게 거룩히 살아갈 힘과 두렴없는 믿음 주시옵소서.

오늘도 좌정하사 다스리소서.

개인의 억울함을 토로하는 것으로 시작된 기도가 어떻게 마무리되었나요?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의 찬송을 받기에 합당하신분.

그것으로도 부족하신 분, 홀로 존재하시고 홀로 서있으시고 나다라고 할 수 있는 분.

모든 천지와 바다와 모든 생물은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

개인의 억울함과 고통으로 시작된 기도는 가족, 공동체, 나라, 전 우주로 퍼져나간다.

하나님이 의로운 백성을 구원하시는 궁극적 목적,

성도는 온 세상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고 그분을 찬송하게 되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공동체가 회복되고 후손이 복 받기를 간구해야합니다.

눈앞의 문제를 넘어서 내가 궁극적으로 바라며 기도할 것은 무엇인가요?

오직 예수님을 바라며 눈앞의 문제는 쳐다도 보지 않는다.

오직 예수 이 원칙만 지키면된다.

너무나도 쉬운 진리가 너무나도 어렵다.

오늘도 문제를 바라보지 않고 예수님만 바라봅니다.

문제 옆에서 나를 위해서 중보기도하고 계시는 목자장되신 예수님만 바라봅니다.

오직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합니다.

서로 사랑하길 원합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길 원합니다.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길 바랍니다.

내 원대로하지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22379

또 영성 관련 수업을 수강했을 때의 일화도 있다. 당시 담당 교수님은 마지막 수업 시간에 간증을 하셨는데, 그는 **‘나는 목회가 높은 부르심으로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높은 부르심이란 따로 없고 각자의 자리에서 사는 것이 부르심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그 말을 듣는데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나의 내면을 돌보지 못하고 주변 환경과 압박에 이끌리며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2020년도부터 탈봇 신학교 신학대학원 과정을 휴학했다. 그리고 차고(Garage)에서 예배를 드리는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전해지는 설교가 꿀보다 더욱 달았다. 자유함과 함께 내면의 회복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를 탈바꿈했던 시기였다.”

  • 박우정 씨는 찬양사역자다. 목회자를 비롯해 많은 사역자들이 사역 과정에서 빠지는 신앙적 오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개인적 경험을 곁들여 말해 준다면?

“순종과 불순종에 관한 부분이다. 사실 내 자리에서 힘들어 도망치고 싶은 적이 있었다. 힘들어서 도망치면 하나님으로부터 대단히 벌을 받을 것 같았다. 내 수준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재단했다. 실제 도망친 적도 있고, 버틴 적도 있었다. 도망쳤을 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왜 빨리 도망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텼을 땐 후회가 됐다. ‘왜 빨리 내려놓지 못했을까’라고 말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해 선을 이루시는 분이기에 스스로 낭비라고 여긴 시간도 선하게 사용하셨다. 당시엔 버티는 것이 순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하나님은 ‘나의 버팀이라는 순종’이 당신에겐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는 마음을 주셨다. 그저 하나님에겐 ‘우정이, 내 딸이 기쁠까 안 기쁠까’, 이것만이 가장 중요했다는 마음을 주셨다. ‘버틸까, 도망갈까’를 놓고 기도를 많이 했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응답은 사실 없었다.”

기도의 결론은 감사

나는 부모가 엇나간 아들을 위해 수년간 기도했는데도 그 아들이 돌아오지 않는 경우를 적잖이 보았다. 그들은 10년 가까이 기도한 뒤에야 비로소 엇나간 사람이 아들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그들 자신에게 다루어져야 할 영적 문제가 있었고, 그들 안에 하나님이 변화시켜 주셔야만 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그들이 기도 응답을 받지 못했던 것은, 자신이 달라져야 할 필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그 변화를 이루어 주시기를 하나님께 겸손히 요청하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은 우리를 정결하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인 경우가 많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 자신이 응답을 원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자신이 어디서 안전과 기쁨과 의미를 찾는지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은 그분의 선하심을 보여 주는 유형의 것들을 우리 삶 속에 가득 채워 주기를 원하신다. 그와 동시에 우리가 그런 것들을 하나님 안에서 찾기를 원하신다. 우리 삶을 향한 하나님의 가장 큰 목적은 우리에게 뭔가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 가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 삶 속에서 이루시는 가장 큰 선(善)은 우리가 예수님을 닮는 것이다. 기도 응답이 지연될 때, 우리는 자신의 바람과 우선순위를 그리스도보다 세상에 두고 있음을 깨닫고 바로잡을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기도할 때 상황이 바뀌지 않아도 감사할 이유다.

기도 먼저 / J. D. 그리어_ 두란노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나의 입술에 찬양과 감사를 붙입니다.

나의 마음이 슬픔과 고통으로 가득 할 때,

탄식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드려지지만

그럼에도 주님께 나아가며

기도할 때

내 마음이 변화되어 위로와 소망을 얻게 하소서.

주님께서는 나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며

귀 기울여 들으시며 궁핍한 자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회복을 허락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왜 저를 택하셨나요?

왜 저를 택하셔서 진리를 알게 하여서 이렇게 괴롭게 하시나요?

나의 억울함과 아픔이 저를 억누릅니다.

눈 앞의 문제들이 내 눈을 캄캄하게 합니다.

한치의 앞길조차 보이지 않고 좌절하며 무너지고 눈물을 쏟으면서 외로움과 싸웁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오직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만을 바라보며,

나를 위해서 중보하시는 목자장되신 예수 그리스도 만을 의지하게 하옵소서.

내 삶 속에서 일어나는 문제들 속에서도

그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며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를 원합니다.

주님 나의 연약함과 죄성을 고백합니다.

나의 어리석은 이해와 기준으로 하나님을 정의하려고 하고, 하나님을 안다 잘난체하고 하나님을 함부로 드러내서 나의 수준 낮음을 드러낼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의 한계를 초월하시는 분이시며

지존하신 분이시며 창대하신 분이십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일하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나를 올바르게 정의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예수님의 제자로 세워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하나님이시여 나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

무응답도 응답임을 알게하시고

그것이 나를 정결하게 하시려는 주님의 섭리임을 깨닫습니다.

나의 마음과 생각이 세상에 머물지 않고

오직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빚어 가시는 주님의 손길을 신뢰하게 하소서.

기도가 상황이 바뀌지 않아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과정임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을 찬양합니다.

모든 피조물이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길 바랍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간구합니다.

아버지 오늘도 나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며,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내가 어떤 자리에서든 주님께 순종하며,

이 자라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르는 것이야 말로 가장 높은 부르심임을 깨닫게 하시고

오직 예수님의 이름만 높이게 하옵소서.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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