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에게 아주 실망한 어느 날,
주님 앞에 건방진 태도로
머물러 있었습니다.
주님께 반항하듯 말했습니다.
“저 건들지 마세요.
저는 항상 제자리에서 맴도는 아이니까요.
칭찬을 하시든 책망을 하시든
저는 계속 그런 아이로 있을 거예요.”
내 마음의 태도는
지루한 인생 속에 돌이나 나무처럼,
화석처럼 굳어갈 거라는 입장이었습니다.
마음을 굳게 잠근 채
아무리 하나님이어도 굳은 내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진 못할 거라 믿었습니다.
주님이 야단치시면
“저 원래 그런 놈이에요, 모르셨어요?”
라고 말할 생각이었고,
주님이 그분의 일을 시키시면
“네네, 알았어요. 언제까지 하면 돼죠?” 하고
최대한 사무적으로 대답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내가 얼마나 못났는지
얼마나 잘났는지를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도
관심 없으셨습니다.
종교적인 의무를 언급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저 주님은 나를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너에게 예수님의 마음이 있구나.’
칭찬도 책망도 아닌
내 시선을 전혀 다른 곳으로 옮기셨습니다.
‘사랑한다.
누구보다 너를 사랑한다.
세상 그 무엇보다 너를 사랑하기에
내가 아들을 보냈단다.’
내 존재 자체를 바라보시는 주님 앞에
더 이상 마음의 빗장을 잠글 수 없었습니다.
너무나 죄송했고
너무나 가슴 아파서
꺽꺽거리며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메마름 없는 원천이신 그분이
내 안에 거하신다는 생각에
그저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저 부모에게 눈을 맞춰 준 것만으로
부모는 잘했다며
아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봅니다.
아이가 웃으면, 부모는 또 잘했다며
아이를 꼬옥 끌어안습니다.
존재 자체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걸까요?
한 후배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지독하게 사랑을 받지 못하는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성격이 착하고 순해서인지
그는 자신을 사랑해 주지 않을뿐더러
학대까지 하는 부모에게도
사랑 받고 싶어 몸부림쳤습니다.
그리고 청년이 되어서야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습니다.
이 사랑은 결코 놓치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사랑했고, 사역했습니다.
'주님을 사랑해서'라고 하기에는 힘에 부치도록 수고했습니다.
그와 함께 기도할 때
주님이 후배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내 마음에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 존재 자체를 사랑해.
네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여전히 너를 사랑해.
네 수고가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내가 사랑을 거둬들일 거라고 생각하지 말렴.
내 사랑은
지금껏 네가 경험한 사랑과는 다르단다.
나는 너의 존재 자체를 사랑한단다.'
- 길 위에서 던진 질문, 이요셉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존재 자체를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니 불가능한 일인지 이제서야 깨닫습니다.
나는 그것이 가능할 줄 알았습니다.
죄인이 죄인을 서로 어찌 사랑하겠습니까.
이런 미련한 아들을 주님께서 그저 바라봐주시고 함께 있어주시고
내 마음을 정결케하시니
그저 내 눈물 닦아주시고 내 이름 아시고,
나의 진짜 결핍을 채워주시는 주님 사랑합니다.
저는 주님을 사랑하지만 아무것도 안하고 있습니다.
힘에 부치도록 수고도 안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젠가 주님께서 저를 세워주신다면 겸손으로, 낮음으로, 가장 선한 것은 세상에서 가장 낮은 길, 낮은 자리임을 선포하며 순종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