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살리시는 하나님 6:1~3

하나님은 상처 입은 백성을 치료하시고 살리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상하게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찢기도 하시고, 싸매어 주기도 하십니다. 북 이스라엘과 유다는 하나님의 징벌로 극심한 고난에 처하게 되지만,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이킬 때 회복과 치유를 경험하게 됩니다. 호세아는 “여호와께로 돌아가자”(1절)라고 간곡하게 호소합니다. 깊은 밤이 지나면 어김없이 새벽이 찾아오듯 하나님은 항상 변함이 없으신 분입니다. 더 나아가 호세아는 “힘써(최선을 다해) 여호와를 알자”(3절)라고 외칩니다. 하나님을 알아 가며 그분 안에 거하는 성도는 이른 비와 늦은 비 같은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하나님은 어떤 일들을 행하시나요?

→ 하나님께서는 진정 기적을 보이시며 믿지 못할 일들을 보이신다.

그 중 옳은 행실과 착한 행동일 것이다. 죄가 죄임을 몰랐던 과거에서 벗어나서 나의 행동 하나하나 조목조목 십자가에 두고 엎어져서 눈물로 피로 가슴을 찢어가면서 회개하면서 좁은 문으로 나아가는 기적을 보이신다.

그러므로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인간의 굳은 마음을 눈 녹듯이 녹이시며 교만과 자만 어리석음에 똘똘 뭉쳐있는 나의 치졸한 자아를 산산 조각 내신다.

포도주가 되기 위해서 포도가 짖이겨져야하듯이 회개에는 큰 고통이 따른다. 너무도 힘들고 잔혹하리마저 나를 버리고 비우고 자아를 꺠부수고 바닥까지 내려가게 만드신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이자 광명의 빛을 보이신다. 가장 거룩하고 아름다우시고 깨끗하고 정결하신 그 분을 닮아가기 위해서 노력하게되는 권리를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롭다 칭함을 받은자 되었으니 죽기까지 피흘리기까지 죄와 싸워서 내 안에 그리스도가 있음을 증명해가야 하지 않겠는가?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대로 살게 하시고 예수님을 생각하게 하신다. 나라는 존재는 이제 딱히 중요하지도 않고 아무 상관없게 된다. 내가 더 양보하고 내가 더 겸손하고 내가 더 의롭게 해주신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사랑의 완전 반대로 나는 살고싶다. 이기적이게 살고 싶고 노력하고 싶지 않고 남의 것을 빼앗고 남을 무시하고 내가 제일 잘난 맛으로 살고 싶다.

하지만 그것을 역전시켜주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임할 때 십자가 앞에서 엎드러지고 자복하고 내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고 구원받아서 첫번째 부활을 만끽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다.

그리스도 십자가 구원으로 말미암아, 새로 태어난 것이다.

새로 태어났음에도 우리는 힘들다. 육체의 타성이 남아 있기 떄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할 수 있다. 주님께서, 아버지께서 책임지신다. 천국가는 그날까지, 우리는 할 수 있고 반드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할 줄을 믿는다.

하나님을 힘써 알기 위해 내가 구체적으로 실행할 일은 무엇인가요?

당연히 성경을 읽어야한다.

성경을 읽지 않고 그리스도 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

성경을 읽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고 할 수 없다.

성경대로 살지 않는데 불복종 불순종 거역과 반역의 연속 뿐인 삶…

성경을 읽어야한다. 읽고 기도하고 암송하고 선포하고 쉐마해야한다.

성경을 듣고 읽고 하나님의 언어를 배워야한다.

마음에 새기고 자녀들에게 주야로 가르치고 강론해야한다.

진리가 거기에 있다. 멀리 있지 않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 6:4~11

하나님은 죄악에 빠져 돌아오지 않는 백성을 향해 탄식하십니다. 북 이스라엘과 유다는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인애’(히브리어로 ‘헤세드’), 즉 사랑과 긍휼을 나타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형식적인 제사가 아니라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삶’입니다. 그러나 백성은 에덴동산에서 불순종한 아담처럼 하나님을 반역했습니다. 그들 삶의 자리에는 하나님은 없고 우상과 가증한 일만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드린 모든 제사는 사실상 하나님 앞에 무용지물이었습니다. 길르앗은 악의 도성이 되어 피 발자국으로 가득 찼고, 제사장들은 세겜 길에서 강도떼처럼 살인하고 악을 행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을 알아 가고 인애를 행함으로 이 땅에 하나님 뜻을 실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북 이스라엘과 유다를 향해 탄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죄악에 빠졌기 때문이다.

죄의 속성에 우리는 항상 꼬꾸라진다.

헤세드, 사랑과 긍휼을 나타내지 못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삶이다.

형식적인 제사는 아무 의미 없다.

하나님께서는 내 모든 것을 원하신다.

알량한 우선순위를 깨부셔야한다.

예수님을 1순위로 2순위로 두는 일은 이제 버려야한다.

기억해야한다. 예수님은 0순위 1순위가 되셔야할 분이 아니라.

주님께서는 나의 전부가 되셔야한다.

나를 구성하는 부수적인 가치가 예수님의 자리를 넘보려고 한다면 1순위, 2순위가 뻇기는 정도의 개념이 아니라 내 전부를 뺏기는 정도와 같은 개념으로 봐야한다.

그게 가능하다면 예수님이 전부가 된 채로 우리의 삶을 예수님께서 우선순위를 재정립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나중에는 결국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을 실토하게되고,

내가 감히 생각한 하나님의 은혜가 이 정도 겠거니 한 것의 수십조억만배 더 큰 은혜를 주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인간은 자동적으로 변하게되어있다고 믿는다.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약속까지 이르지 않으면 만족이 되지 않는다는 현실

자라나는 한단계 올라가는데 실수를 만번해야 한다.

단련이라는 것은 천번의 훈련 만번의 연습

실패가 아니고 연습이라는 것

쓸모가 아니라 우리를 만드는 것

실력있는 크리스천이 되게 하심

실력을 키우게 하심.

신앙과 삶이 분리되지 않도록 내가 겸손히 순종할 일은 무엇인가요?

지금 당장 딱 회개하기 좋은 시간이고 즉각 회개하고 순종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살려주신다.

정녕 예수님을 믿는다면 절대로 신앙과 삶이 분리될 수 없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2:20)

지금 바로 내 모든 것을 장악하고 계시는 분께서 지금 내 안에 계신다는 것을 인정하고 겸허히 내 영혼이 주님만을 바래야한다.

내가 겸손히 주님께서 내 주가 되신다는 것을 순종하고 겸손히 나아가고 교만떨지 않도록 기도한다면 즉시 기도응답 들어주신다.

성령께서 도와주신다는 사실을 믿고 성령께 순종하고 성령님의 말을 들으면 절대로 신앙과 내 삶이 분리될 수 없다.

성령 내주는 ON/OFF 스위치가 아니다. 악을 즐기고 낙을 얻으려고 예수께서 나를 이렇게 힘들게 구하셨는데 다시 똥통에 들어 갈 수 없다.

응 나는 예수님 믿어 천국 갈 것이고 하지만 세상의 즐거움과 낙은 모두 즐기면서 구별되지 않는 삶을 살거야 라는 것은 성립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진정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그리스도인은 믿는 척하면서 변화하지 않을 수가 있는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와 거듭남을 “취소”하셔서 다시 나는 나이브하고 매너리즘에 빠지고 열정이 식은 불신자로 돌아가야한다. 악을 좋아하고 악을 즐기는 사람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그 은혜의 감동과 열망 거듭남의 기적을 도로 취소하셔야한다.

왜 그렇게 번거로운 일을 다시 하시겠는가? 이미 구해주셨는데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세상에 나가야한다.

우리는 나약해서 말씀 없이 세상에 뛰어들면 바로 과거의 타성에 젖어서 다시 돌아가려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안되는데 안되는데 하면서 빠지는게 죄의 습성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고 낙을 주고 즐거움을 준다. 중독적인 특색이 있다.

그리고 교만하게 만든다, 자만하게 만든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게 만든다. 하나님을 없다고 문득 문득 생각하게 한다. 그것을 조심해야한다.

그 즉시 회개하고 주님께 나아간다면 순종한다면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신다.

우리 안에 있는 성령님께서 찔림을 주신다. 과거와 똑같이 행동한다면 엄청난 죄책감과 성령께서 근심하시고 성령께서 떠난 것과 같은 기분과 느낌을 주신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며 훈계하시고 채찍질 해주시고 교훈을 주신다.

그러므로 착한 행실로 아버지의 영광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

나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

신앙따로 삶 따로 미적지근한 삶을 살때도 있다.

하나님의 거룩에 다다르기 너무 눈이 부셔서 자포자기할때도 있고 낙담할 때도 있다.

당장 말씀 읽고 기도하는 것 자체도 너무 힘들다.

왜 이런 큰 은혜를 주셔서 이 쓸데없는 나를 구속하여 주시는 지 알 수가 없다.

왜 성경을 읽게하시고 은혜주시고 삶을 변화시키시고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시는지 원망스러울떄도 있다.

그저 몰랐을때는 속편하게 살았던 것 같은데…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오늘처럼 내일도 순종하고 복종할 수 있게 해주시고 교만떨지 않게 해주시고 자만과 오만을 겸손으로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할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도록 오늘도 성령께서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구약 > 호세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세아 8:1-14  (9) 2024.10.10
호세아 7 : 1~16  (9) 2024.10.09
호세아 5 : 1~15  (3) 2024.10.08
호세아 4 : 11~19  (1) 2024.10.08
호세아 4 : 1~10  (5) 2024.10.08
블로그 이미지

잉비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