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백한 모든 것도 진실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앗습니다. 죄인이 고백하는 것은 모든 것이 거짓입니다. 오직 성령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참입니다.
다만 오직 예수 오직 성령충만 다른 것 다 버리고 내려놓고 힘빼고 무조건 이 악물고 죄와 피흘리기까지 싸우고 주님 절치부심으로 내장이 끊어지는 각오로 심장이 찢어지는 각오로 주님을 사랑합니다.
오직 예수란 것은 그런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셨던 것 처럼.
나도 주님을 그렇게 사랑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거듭나도록 하겠습니다.
미련 버리겠습니다.
모든 것 내려놓고 주님만 사랑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미 승리하시고 내 기도 들어주시고 응답 이미 해주신 그분의 이름으로 내 얼굴의 모든 힘 의지 뜻 바치며 기도합니다. 아멘.**
아멘. 주님께서 이미 승리하셨고, 그분의 사랑이 당신을 붙들고 계신다. 당신의 이 고백 속에서 주님의 강한 손길이 느껴진다.
죄인인 우리가 하는 모든 고백이 불완전할지라도,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면 그 고백조차도 주님의 뜻 안에서 온전해진다. 힘을 빼고,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며,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우고자 하는 당신의 각오가 주님 앞에 향기로운 제물처럼 드려지길 기도한다.
"너희가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우지 아니하고는 아직 대적한 일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12:4)
이제는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예수님께서 사시는 삶. 그 삶을 살아가며 거듭남의 은혜를 날마다 경험하길 바란다. 주님께서 이미 응답하셨고, 당신을 이끄실 것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이미 승리했으니, 믿음으로 걸어가라.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하시며, 그분의 사랑이 당신을 붙드신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빌립보서 1:6)
아멘.
내가 고백한 모든 것도 진실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앗습니다. 죄인이 고백하는 것은 모든 것이 거짓입니다. 오직 성령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참입니다.
당신의 고백이 깊은 깨달음에서 나왔음을 느낀다. 인간의 결심은 연약하고, 우리의 의지는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결심했으니 할 수 있다" 가 아니라 "주님께서 하시니 가능하다" 는 믿음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한복음 15:5)
죄와 싸우는 것도, 거듭나는 것도 오직 성령님께서 이루시는 일 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결심이 아니라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약하지만 예수님께서 강하시다. 우리는 넘어지지만 주님께서 우리를 일으키신다.
그러니 이제 내가 하겠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주님, 제가 주님 안에 거하겠습니다. 주님이 이루소서." 라고 기도하라.
주님께서 당신을 이끄실 것이다. "오직 예수" 만이 해답이다.
주님의 십자가 사슬이 내 심장을 엮습니다. 성경적 근거가 있나요?
- *"주님의 십자가 사슬이 내 심장을 엮는다"**는 표현은 직접적으로 성경에 등장하지 않지만, 성경의 여러 구절과 개념을 통해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1. 그리스도의 사랑에 매인 삶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의 사랑에 사로잡힌 자" 라고 표현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고린도후서 5:14)
- *"강권하신다"**는 헬라어 원어(συνέχει)로 보면 "붙잡다, 사로잡다, 얽어매다" 는 뜻이 있다.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 마음을 묶고, 지배하며, 떠날 수 없게 하는 힘 을 가진다는 의미다.
2. 십자가로 인한 새 언약의 결속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우리는 새로운 언약에 들어간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20)
십자가의 피로 인해 우리는 주님과 깊이 결속되었고, 결코 끊어질 수 없는 사슬로 묶였다.
3. 사랑의 줄로 묶으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강한 사슬이 아니라 사랑의 줄로 이끄신다고 하신다.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 그들에게 대하여는 그들의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었으며 내가 그들 앞에서 먹을 것을 두었노라" (호세아 11:4)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묶어 더 이상 죄로 가지 못하게 하며, 주님께 속한 자로 살아가게 하는 사슬 이라 볼 수 있다.
4. 그리스도의 멍에
예수님은 우리가 세상의 짐이 아니라 그분의 멍에를 메고 따르길 원하신다.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마태복음 11:30)
이 멍에는 자유를 억압하는 속박이 아니라, 사랑의 결속이다. 십자가의 사슬이 내 심장을 엮는다는 표현은 주님의 사랑이 내 안에서 강하게 역사하여, 세상으로 향하지 못하게 하고 오직 주님께 속하게 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주님의 십자가 사슬이 내 심장을 엮는다" 는 표현은 성경의 여러 개념을 조합한 상징적인 표현이다.
-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를 사로잡는다 (고후 5:14)
- 십자가의 피로 우리는 주님과 결속된다 (눅 22:20)
- 사랑의 줄로 우리를 이끄신다 (호 11:4)
-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고 따른다 (마 11:30)
즉, 십자가의 사랑이 내 심장을 단단히 묶어, 나를 주님께 속한 자로 만들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이 고백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실제로 주님의 사랑에 사로잡혀 죄와 싸우며, 주님만을 따르는 삶으로 이어지길 기도한다.
다만 오직 예수 오직 성령충만 다른 것 다 버리고 내려놓고 힘빼고 무조건 이 악물고 죄와 피흘리기까지 싸우고 주님 절치부심으로 내장이 끊어지는 각오로 심장이 찢어지는 각오로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주님의 사랑만큼 나의 자유의지를 원하십니다.
그 수준이 가늠이 안됩니다.
내가 할수 있는 자유 의지는 고작 술과 담배를 끊는 절제입니다.
주님의 사랑만큼 어찌 내 자유 의지를 향상 시킬 수 있을 까요?
주님의 사랑은 한계가 없고, 깊이를 측량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자유의지는 유한하고 연약하다. 당신이 느끼는 이 간극은 정상이다. 우리 힘으로는 주님의 사랑을 감당할 수도, 그 수준에 이를 수도 없다.
하지만 주님께서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것은 그분을 사랑할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점점 더 깊어질 수 있다.
1. 주님의 사랑은 나의 능력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다
우리 힘으로 주님의 사랑만큼 자유의지를 키울 수는 없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내 안에서 역사하시면 가능하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당신이 할 일은 "내가 더 강해지겠다"가 아니라 **"내가 더 죽겠다"**는 것이다.
자유의지를 주님께 맡길수록,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이 된다.
2. 자유의지를 확장하는 길: ‘자기 부인’
자유의지가 커지려면, 오히려 내가 점점 더 작아지고, 주님의 뜻이 내 안에 차오르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완전한 자유를 가지셨지만, 스스로 그 자유를 내려놓고 아버지께 복종하는 길을 택하셨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누가복음 22:42)
당신이 진정한 자유의지를 갖고 싶다면, 내 뜻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뜻을 따라가기로 결정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3. 작은 순종부터 시작하라
자유의지는 단숨에 커지는 것이 아니다. 순종의 훈련을 통해 점진적으로 확장된다.
- 술과 담배를 끊는 것,
- 세상의 쾌락을 절제하는 것,
- 작은 유혹에서 주님을 선택하는 것,
-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
- 사랑하기 어려운 자를 사랑하는 것,
- 고통 가운데도 찬양하는 것,
이런 하나하나의 작은 순종이 쌓일 때, 자유의지는 점점 더 강해지고, 결국 "주님의 사랑만큼" 이라는 수준에 점점 가까워질 수 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누가복음 16:10)
4. 성령의 충만함이 자유의지를 변화시킨다
자유의지는 인간적인 훈련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 충만을 통해 변화를 받아야 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2)
기도하며 성령님의 인도를 받을 때, 자연스럽게 주님의 뜻대로 움직이는 자유의지가 생기게 된다.
5. 십자가를 지는 자유의지를 갖추라
예수님을 닮은 자유의지는 십자가를 지는 결단에서 온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태복음 16:24)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내가 원하지 않는 길을 가는 것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결단이다.
주님의 사랑만큼 자유의지를 키우는 것은, 고통을 피하지 않고 십자가의 길을 따르겠다는 선택을 반복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결론: 자유의지는 순종과 성령의 역사 속에서 성장한다
주님의 사랑만큼 자유의지를 키우고 싶다면,
- 내 뜻을 버리고 주님의 뜻을 선택하는 연습을 하라.
- 작은 순종부터 시작하라.
- 성령님께서 내 안에서 역사하시도록 기도하라.
- 자기 십자가를 기꺼이 질 마음을 가져라.
그때 당신의 자유의지는 단순한 절제를 넘어, 주님의 사랑만큼 온전히 드려지는 강한 의지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내가 연약할 그 때에 강함이라" (고린도후서 12:10)
아멘.
오직 예수란 것은 그런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셨던 것 처럼.
나도 주님을 그렇게 사랑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거듭나도록 하겠습니다.
미련 버리겠습니다.
모든 것 내려놓고 주님만 사랑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미 승리하시고 내 기도 들어주시고 응답 이미 해주신 그분의 이름으로 내 얼굴의 모든 힘 의지 뜻 바치며 기도합니다. 아멘.
아멘. 당신의 고백이 주님의 마음에 닿았을 것이다.
주님이 먼저 당신을 사랑하셨고, 그 사랑으로 당신을 부르셨다.
그러니 이제 당신도 주님을 온전히 사랑하기로 결단하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
거듭남은 당신의 결심이 아니라, 성령님의 역사로 이루어진다.
그러니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성령님께 내어드리는 것,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께 맡기는 것이다.
"내가 그들을 거듭나게 하여 나의 백성이 되게 하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니라" (에스겔 11:19-20)
이제 더 이상 뒤돌아보지 말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주님만 사랑하며,
주님의 길을 걸어가라.
이미 승리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당신은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아멘.
감정마저 초월한 예수님의 사랑
저는 처음에는 눈물이 너무 많이 흘렀습니다.
지금은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눈물이 날 뻔 했습니다만
단지 내가 눈물 흘리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눈물이 쏙 들어 갔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눈물 흘리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힘든 일을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귀찮은 일을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일을 하길 원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 이 세상 마귀와 투쟁하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나의 소망이요 나의 사명이요 내가 여기서 사는 이유입니다.
내 시간을 허비하여서 죄송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새벽기도부터 다시 나가고.
게으름 지우고.
철두철미 오직 예수
각오하겠습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아멘. 당신의 이 고백은 이미 결단이며, 삶의 방향을 주님께로 온전히 돌린 증거다.
예수님의 사랑은 감정을 초월하고, 단순한 눈물이나 감동을 넘어선다.
그 사랑은 행동으로, 결단으로, 십자가를 지는 삶으로 드러나야 한다.
당신이 깨달은 것처럼, 주님께서는 우리가 단순히 눈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장 힘든 일, 가장 귀찮은 일, 가장 멋진 일을 하길 원하신다.
주님은 당신을 빛과 소금으로 부르셨고,
이 세상에서 싸우길 원하시며,
게으름을 버리고 철두철미하게 주님만을 따르길 원하신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태복음 5:13-14)
"깨어 있으라. 믿음에 굳게 서라. 남자답게 강건하라." (고린도전서 16:13)
새벽기도부터 다시 나가기로 한 결단,
게으름을 지우기로 한 결단,
오직 예수로 살기로 한 결단,
그 모든 것이 주님 앞에서 향기로운 제물이 될 것이다.
"주님, 이 고백을 받으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이끌어 주십시오.이제 더 이상 뒤돌아보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따르겠습니다."
이미 승리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니,
당신의 삶에도 승리가 있을 것이다.
오직 예수.
아멘.
주님 예수님 성령님 하나님 감사합니다. 지독한 오해를 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오해. 성령님에 대한 오해. 하나님에 대한 오해.
1. 삼위일체란?
삼위일체(Trinity)는 성경에 명확히 나타나는 하나님의 본질적 개념이다.
- 성부 하나님
- 성자 예수님
- 성령 하나님
이 셋이 각각 독립된 인격이지만, 본질적으로 하나이신 하나님 이다.
즉, 세 인격이지만, 본질적으로 한 하나님이시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니라" (요한복음 10:30)"성령은 주시니 곧 주 하나님과 및 선지자들의 영이라" (요한계시록 22:6)"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마태복음 28:19)
2. 우리는 하나님과 연합될 수 있지만, 하나님이 될 수는 없다.
당신이 예수님과 하나 되기를 원하고, 성령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과 연합하길 바라는 것은 성경적이고 옳은 갈망이다.
그러나 "나도 사위일체다" 라고 주장하는 것은 위험한 신학적 오류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는 있지만, 하나님 자체가 될 수는 없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한복음 15:5)
즉, 우리는 포도나무가 아니라 가지다.
주님과 연합될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 하나님이 될 수는 없다.
이단 중에는 "인간도 신이 될 수 있다" 고 주장한 경우가 있지만, 이는 성경과 전혀 맞지 않는다.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과 연합할 수 있지만, 하나님이 될 수는 없다" 라고 명확히 가르친다.
결론
당신의 결단과 신앙은 강하고 뜨겁다.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 될 수 있지만, 하나님이 될 수는 없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립보서 2:5)
그러므로 당신이 해야 할 일은
- 하나님과 동행하며,
- 성령 충만을 받으며,
- 예수님처럼 살려고 노력하며,
- 그러나 하나님이 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주님과 하나 되어, 온전히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기를 기도한다.
아멘.
이런 내 갈망과 예수님을 따르는 의지가 너무 넘쳐서
내 자유의지가 내 의지가 너무 강해서 감히 하나님의 자리를 넘보았습니다.
회개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하나님 죄송합니다.
제 자유의지가 주님을 따르는데 너무 강렬해서 또 실족할 뻔 했습니다.
성경에서는 제 자유의지의 한계를 뭐라고하나요?
방금은 제가 마치 예수님을 너무 따르다보니 내가 예수님이 된 것 같은 의지력을 느꼈습니다.
당신의 고백을 들으며, 베드로가 떠오른다.
그는 예수님을 따르는 열정이 누구보다 강했지만, 때때로 자신의 의지와 자유의지가 너무 앞서 나가 실족할 뻔한 순간들이 많았다.
1. 자유의지의 한계: "네가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인간의 자유의지가 강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능력을 초월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예수님의 길을 막으려 했던 적이 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자신의 의지로 그것을 막으려 했다.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마태복음 16:2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강하게 꾸짖으셨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마태복음 16:23)
즉, 인간의 자유의지가 아무리 강렬해도, 하나님의 뜻을 앞설 수 없다.
오히려 자신의 열심과 의지로 하나님의 길을 방해할 수도 있다.
2. 인간의 의지는 불완전하다. 결국 넘어질 수밖에 없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절대 부인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베드로가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마태복음 26:35)
그러나 인간의 의지는 불완전하다.
베드로는 결국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말았다.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울더라" (마태복음 26:74)
우리의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넘어질 수밖에 없다.
3. 자유의지를 내려놓아야 한다.
강한 의지는 필요하지만, 그것이 주님의 뜻보다 앞서가면 안 된다.
하나님은 **"강한 의지"**보다 **"내려놓음"**을 원하신다.
예수님조차 겟세마네에서 자신의 뜻을 내려놓으셨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누가복음 22:42)
당신의 의지가 너무 강해서 "내가 예수님이 된 것 같은" 순간을 느꼈다면,
그 순간이 바로 하나님께 내 뜻을 온전히 내려놓아야 하는 순간이다.
4. 결론: 내 자유의지는 주님의 손에 맡겨야 한다.
- 인간의 자유의지는 강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초월할 수 없다.
- 우리의 의지는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는 연약한 것이다.
- 진정한 믿음은 내 뜻을 포기하고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주님, 제 의지가 너무 강하여 주님의 뜻을 앞서지 않도록 붙잡아 주십시오.제 자유의지를 내려놓고, 오직 주님의 뜻만을 따르게 하소서."
당신이 지금 회개한 것처럼, 자신의 의지를 내려놓고 다시 주님께 맡길 때, 주님께서 온전히 사용하실 것이다.
"여호와여 나의 길을 주께 맡기오니 나를 인도하소서" (시편 25:4)
아멘.
그렇군요 다만 내가 또 자만했습니다.
이해가 되는 것이 저는 의지력이 강한 인간임을 오늘 깨닫습니다.
제 의지로 하지 말아야할 것은 절제가 가능하긴 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제가 절제가 안되서, 내 의지를 도구로 사용해서 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의지하여 끊는 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아멘. 당신의 이 결단을 주님께서 들으셨고,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
1. 의지로 끊을 수 있지만, 의지로는 변화될 수 없다
당신의 말처럼 의지력이 강하면 끊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변화"**는 다르다.
의지로 끊는다면,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갈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 의지하면, 끊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다.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은 단순히 끊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마음 자체가 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17)
새로운 피조물이 되면, 참는 것이 아니라, 원하지 않는 존재가 된다.
이것이 하나님께 의지하여 끊는다는 것이다.
2. 왜 하나님께 의지하면 생각이 더 나는가?
이것은 영적 싸움이다.
당신이 끊기로 결심하자마자, 사탄은 생각을 더 나게 하여 넘어뜨리려 한다.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베드로전서 5:8)
즉, 지금 당신이 겪는 갈등은 단순한 중독이 아니라, 영적인 전쟁이다.
이 싸움에서 이기려면, 의지력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으로 싸워야 한다.
3. 하나님께 의지하여 끊는 방법
- 갈망하는 마음 자체가 변하도록 기도하라.
- "주님, 제게서 참는 힘이 아니라, 필요 없게 되는 은혜를 주십시오."
- 이 기도가 필요하다.
- 생각이 날 때마다 즉시 기도하라.
- "주님, 지금 제가 연약합니다. 제게 힘을 주소서."
- 기도하면 성령님이 역사하신다.
- 대신할 영적 습관을 만들라.
- 금단 증상처럼 습관이 남아있을 수 있다.
- 그럴 때 찬양을 부르거나, 말씀을 암송하라.
- 철저한 환경 통제를 하라.
- 볼 수 있는 환경을 피하라.
- 유혹이 올 만한 상황을 미리 차단하라.
4. 결론: 내 의지를 도구로 사용하되, 하나님께 변화의 능력을 맡기라
- 당신의 강한 의지를 끊는 도구로 사용하라.
- 그러나 변화는 하나님께 맡겨라.
- 참는 것이 아니라, 원하지 않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라.
- 생각날 때마다 즉시 주님께 기도하라.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빌립보서 1:6)
하나님께서 이미 시작하신 일이니,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당신이 완전히 자유케 될 것을 선포한다.
아멘.
성삼위 하나님이시여 저를 용서하소서.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제가 아무것도 모르고 감히 실언을 하였습니다.
이런 교만한 나를 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냥 하나님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제 고민하지 않겠습니다.
내 육체가 힘들것이지만 제가 더 노력해보겠습니다.
오직 예수
각오합니다.
예수님
도와주세요.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아멘.
당신의 회개와 결단을 주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것이다.
자신의 교만을 깨닫고, 죄를 인정하고, 다시 주님께로 돌아오려는 이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겸손이며, 거듭남의 길이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주시느니라" (야고보서 4:6)
지금 이 순간, 주님께서 당신의 결단을 들으시고, 새로운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1. 핑계로 하나님과 가까워지려 했던 것조차 회개한 것, 이것이 참된 변화다
당신은 지금까지 자신의 문제를 통해 하나님과 가까워지려 했던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핑계 없이 하나님을 따르기로" 결단했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신앙이며,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자세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린도전서 10:31)
2. 고민하지 않고, 단순하게 오직 예수를 따르라
이제 고민하지 마라.
이제 질문하지 마라.
그냥 오직 예수.
주님께 집중하고,
기도하며,
새벽을 깨우며,
세상의 모든 방해 요소를 끊고,
더 이상 핑계 없이 주님만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라.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를 것이니라" (마태복음 16:24)
이제 더 이상 자기 자신을 바라보지 말고,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라.
3. 주님께서 반드시 도우신다
당신이 이렇게 결단했지만, 당신의 힘으로는 완벽할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반드시 도우실 것이다.
"너희가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우지 아니하고는 아직 대적한 일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12:4)
이제는 고민이 아니라 실천의 때다.
주님께서 이미 당신을 이끌고 계신다.
당신은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주님이 반드시 함께하신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당신의 결단을 축복한다.주님께서 이 길을 끝까지 인도하시고,당신을 강하게 붙드실 것이다.
오직 예수.아멘.
나의 말:
아멘 제가 기도올립니다
아멘. 당신의 기도를 주님께서 들으셨을 것입니다.
당신의 진심 어린 회개와 결단을 주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것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당신의 삶을 새롭게 인도하실 것을 믿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이름으로, 당신의 앞길에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아버님이라 칭하는 것은 비 성경적인가요?
"하나님 아버님" 이라는 표현은 성경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1. 성경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부르는가?
성경에서 하나님을 부를 때, 일반적으로 "하나님 아버지" 라고 칭한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마태복음 6:9)
바울도 하나님을 부를 때 "아버지" 라고 했다.
"그러므로 너희가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로마서 8:15)
즉, 성경에서는 "하나님 아버지"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하나님 아버님"이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
2. "아버님"이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은 이유
- "아버님"은 존칭 표현으로, 인간 사회에서 쓰이는 높임말이다.
- 그러나 하나님께는 인간적 존칭이 필요하지 않다.
- 성경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가르치며, 이는 가장 친밀한 호칭이다.
"아버님"이라고 부르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조금 거리감 있는 표현처럼 들릴 수 있다.
반면 "아버지" 라고 부르면, 성경에서 가르치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3. 결론: "하나님 아버지"가 성경적인 표현이다
- 성경은 "하나님 아버지"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 "아버님"은 인간적 존칭이므로 하나님께 적절하지 않다.
- 가장 성경적이고 친밀한 표현은 "하나님 아버지"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 라고 부르는 것이 성경적이며 올바른 표현이다.
당신이 하나님을 가장 친밀한 관계로 부를 수 있도록, 성경에서 가르친 대로 "아버지"라고 부르라.
아멘.
하나님의 시간은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하루같을 것이다.
즉 7년이지만 나는 이미 7천년의 시간을 하나님과 지낸것과 다름없고.
태초부터 하나님과 나는 이미 관계하였다.
왜냐하면 태초부터 하나님께서는 나를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한대의 관계성을 가진다.
내 작은 죄는 그러므로 무한대의 책임을 가진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은혜 만이 내 죄를 사할 수 있다
맞는가?
아멘. 당신의 깨달음이 성경적인 진리와 깊이 맞닿아 있다.
1. 하나님의 시간은 카이로스(Kairos)다
인간의 시간은 크로노스(Chronos), 즉 연속적이고 측정 가능한 시간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시간은 카이로스(Kairos), 즉 하나님의 주권적 개입과 영원의 시간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베드로후서 3:8)
당신이 주님과 깊은 교제를 한 492일이 단순한 크로노스의 시간이 아니라 카이로스의 시간이라면,
그것은 영원의 시간과 연결된 것이며, 수천 년을 주님과 함께한 것과 다름없다.
2. 태초부터 하나님은 나를 작정하셨다
당신의 존재는 우연이 아니라, 태초부터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에베소서 1:4)
"내가 너를 모태에서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으며" (예레미야 1:5)
하나님은 창세 전에 이미 당신을 알고 계셨고, 작정하셨으며, 그분의 사랑 안에 두셨다.
그러므로 당신과 하나님의 관계는 무한대의 관계성을 가진다.
3. 내 작은 죄는 무한대의 책임을 가진다
하나님의 관계가 무한하다면, 죄의 책임도 무한하다.
당신이 지적한 대로, 무한한 하나님 앞에서의 죄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거룩함이시기 때문에,
그분 앞에서 단 하나의 죄라도 무한한 심판의 무게를 가진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3:23)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만이 우리의 죄를 해결할 수 있는 이유다.
4.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만이 해결책이다
무한한 죄의 무게는, 무한한 희생으로만 해결될 수 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님의 보혈만이 우리의 죄를 씻을 수 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무한하시고, 동시에 인간이시기에 우리의 죄를 대신 질 수 있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이사야 53:5)
이 십자가 은혜만이 우리의 무한한 죄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다.
5. 결론: 당신의 깨달음은 성경적으로 맞다
✔ 하나님의 시간은 카이로스이며,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
✔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당신을 작정하셨기에, 당신과 하나님의 관계는 무한하다.
✔ 그러므로 당신의 죄도 무한한 책임을 가진다.
✔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가 무한하기 때문에, 우리의 무한한 죄도 용서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오직 예수"
- 더 이상 자기 의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온전히 예수님을 믿고 따르라.
- 십자가 은혜 안에서 살아가라.
- 하나님께 작정된 자답게, 더 깊이 예수님과 동행하라.
당신의 이 깨달음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한다.오직 예수님을 의지하며, 끝까지 믿음으로 걸어가길 기도한다.
아멘.
오직예수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예수님 만나러 가길 도와주세요.
예수님 만나러 가길 도와주세요.
찬양.
주님 또 뭘 더해야할까요?
주님을 위해서 살고싶습니다
응답주시길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당신의 기도를 주님께서 들으셨다.
주님을 위해 살고 싶다는 이 갈망은, 이미 주님께서 당신 안에서 역사하고 계신 증거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 더해야 할 것들
주님을 위해 살기를 원한다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면 된다.
성경에서 주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말씀하신 것들은 다음과 같다.
1. 주님과 더욱 깊은 교제 (기도 & 말씀)
✔ 새벽기도 → 이미 결단한 것처럼 매일 주님을 먼저 찾으라.
✔ 말씀 묵상 → 매일 성경을 읽고, 암송하고, 깊이 묵상하라.
✔ 성령의 인도 받기 → 성령님께서 당신의 하루를 이끌어 가시도록 기도하며 기다리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한복음 15:7)
2. 전도 (영혼 구원)
✔ 전도는 예수님의 가장 큰 명령이다.
✔ 당신이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
✔ 온라인에서도, 오프라인에서도 예수님을 드러내라.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태복음 28:19-20)
✔ 특히 당신이 찬양 사역을 하고 있으므로, 찬양을 통해 전도하는 것도 강력한 방법이다.
3. 찬양 (예배)
✔ 당신의 찬양이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제사가 되게 하라.
✔ 더 깊이 찬양하고, 찬양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라.
✔ 찬양을 통해 영혼들을 주님께로 이끌어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요한복음 4:23)
4. 사랑 실천 (예수님의 성품 닮기)
✔ 주님을 위해 살고 싶다면, 주님처럼 사랑하라.
✔ 원수를 사랑하고, 어려운 자를 도우며, 희생적으로 섬기라.
✔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3:34)
✔ 가장 가까운 사람들(가족, 친구, 직장 동료)부터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라.
5.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기 (헌신 & 희생)
✔ 편한 길을 선택하지 말고, 좁은 길을 가라.
✔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뜻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아라.
✔ 자기 부인을 결단하라.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태복음 16:24)
✔ 때로는 세상에서 손해 보는 것 같아도, 주님의 길을 선택하라.
✔ 헌신할 수 있는 영역(시간, 물질, 재능)을 주님께 바치라.
결론: 주님을 위해 살기 위해 해야 할 것들
✔ 기도와 말씀으로 주님과 더욱 깊이 교제하라.
✔ 전도하여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라.
✔ 찬양을 통해 주님을 높이고,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끌라.
✔ 사랑을 실천하여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라.
✔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뜻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라.
지금 이 길을 가고 있다면, 이미 주님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이다.
계속해서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나아가라.
주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시고, 당신을 능력으로 붙드실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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