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떠나는 제자들 6:60~66
진정한 제자는 말씀을 듣는 자가 아니라 말씀을 믿고 따르는 자입니다.
예수님을 떠나는 자들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그들은 예수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렵게 여깁니다(60절). 성령의 도움 없이 이성에만 의지해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 말씀이 영이요 생명임을 알지 못합니다(63절).
둘째, 그들은 예수님 말씀을 걸림돌로 여깁니다(61절). 그래서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비판을 가합니다.
셋째, 그들은 자신을 예수님께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합니다(64절).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자들을 처음부터 아십니다. 말씀을 듣기만 하는 얕은 수준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쉽게 떠납니다.
예수님을 떠나는 자들은 어떤 특징을 보이나요?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한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요한일서 2:15)
세상의 유혹과 즐거움에 마음을 빼앗긴다.
돈, 명예, 쾌락 등이 하나님보다 더 중요해진다.
가룟 유다는 돈을 사랑하여 예수님을 배신했다 (마태복음 26:14-16).
고난을 이기지 못함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 곧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마태복음 13:20-21)
믿음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 시험과 핍박이 올 때 쉽게 무너진다.
예수님을 따르면 편안한 삶이 보장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다가 실망한다.
많은 무리가 예수님의 가르침이 어렵다고 떠났다 (요한복음 6:66).
죄를 미워하지 않고 타협함
"개가 그 토했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다시 진창에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 (베드로후서 2:22)
죄를 버리지 않고 계속해서 즐기고 합리화한다.
처음에는 죄를 두려워하지만, 점점 정당화하며 하나님과 멀어진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을 버렸다가도 반복해서 우상 숭배로 돌아갔다.
자아와 교만을 내려놓지 못함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야고보서 4:6)
자기 의(義)를 붙들고 교만하여 회개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기준으로 해석하고, 하나님의 주권보다 자기 뜻을 앞세운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의를 내세우며 예수님을 거부했다 (마태복음 23:13).
거짓 가르침에 미혹됨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들을 따르리라" (디모데후서 4:3-4)
거짓 선지자나 세상의 철학, 인본주의 사상 등에 미혹된다.
듣기 좋은 말과 가르침을 좇으며, 결국 예수님을 부인하는 길로 간다.
갈라디아 교인들은 다른 복음(율법주의)에 미혹되었다 (갈라디아서 1:6-9).
주님의 말씀을 듣지만 내 안에 깨달음과 변화가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마음이 걍퍅하고 교만하다.
하나님보다 자신이 더 높다.
교만이 하늘을 찔러 자신이 신이다.
성령 충만하지 못한다.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더 의지하고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바리새인들은 성경을 많이 알았지만, 교만하여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하자들에게 은혜를 주신다.
말씀을 들을 때 집중하지 않는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단순히 듣기만하고 깊이 묵상하지 않는다.
설교를 들을 때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다.
자고 있다.
말씀을 단순한 지식으로만 받아들이고 삶에 적용하지 않는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자.
마음 속에 숨겨둔 죄가 있으면 말씀의 능력이 막힌다.
반복적인 죄를 회개하지 않는다.
양심이 화인 맞고 성령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
사울 왕은 하나님보다 자신의 뜻을 앞세우다가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다.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한다.
말씀이 가시떨기에 뿌려져서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에 막혀 결실하지 못한다.
돈, 성공, 인간관계 등의 염려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크게 자리 잡는다.
물질과 세상적인 가치관에 사로잡혀 있으면 말씀을 들어도 변화가 없다.
부자 청년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결국 재물을 포기하지 못했다 (마태복음 19:21-22).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33)
성령을 배제하고서는 말씀을 이해하려고 한다.
"영적인 것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린도전서 2:13-14)
성경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성령의 조명을 통해 깨닫게 된다.
인간적인 논리나 노력만으로는 말씀의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없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부활 전까지 성경의 의미를 온전히 깨닫지 못했다 (누가복음 24:45).
성령님께 직접 기도하며 도우심을 구하며 기도해야한다.
깨달음과 변화는 순종에서 시작된다. 말씀을 듣고도 변화가 없다면, 교만함, 집중 부족, 죄, 세상의 염려, 성령의 도움 부족이 그 원인일 수 있다.
결국, 깨달음과 변화는 겸손, 집중, 회개, 하나님 중심의 삶, 성령 의존을 통해 온다.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할 때, 진정한 변화가 시작된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복음 8:31-32)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 6:67~71
예수님은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가려느냐”(67절)라고 물으십니다.
베드로는 자신들은 떠나지 않겠다고 답합니다.
예수님께 영생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68절).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11:25)의 말씀은 우리를 살리는 생명입니다(63절).
또한 베드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으로 믿고 알았다고 말합니다.
‘믿고 알았사옵나이다’(69절)에 해당하는 헬라어 동사는 완료형입니다.
즉 예수님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과거 어느 시점부터 현재까지 계속해서 믿어 왔으며, 그렇게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그 믿음에 대한 지적 인식 체계를 갖추어야 견고한 신앙인으로 설 수 있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예수님을 떠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한 가르침이 아니라 영생을 주는 생명의 말씀임을 알았기 때문에 떠나지 않았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태복음 16:16)
제자들은 예수님이 단순한 선생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그리스도)**이심을 믿었기 때문에 떠나지 않았다.
그들은 단순히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떠날 수 없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셨고, 끝까지 책임지셨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을 때도, 예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셨다.
제자들은 연약했지만, 예수님의 은혜와 기도로 끝까지 붙들림을 받았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렸다.
베드로는 고기잡이 배를 버렸고, 마태는 세관을 떠났다.
그들은 세상의 유혹보다 예수님을 더 귀하게 여겼다
세상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예수님이 가장 소중한 분임을 알았기 때문에 떠날 수 없었다.
제자들이 끝까지 예수님을 떠나지 않은 이유는 단순한 의리나 습관이 아니라, 예수님이 생명의 말씀, 참된 메시아, 가장 귀한 분이심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한복음 15:5)
예수님이 “너도 떠나려느냐?”라고 물으신다면 나는 어떻게 답할까요?
주님, 어디로 가겠습니까?
주님만이 생명이요 진리요 빛이시며 길이십니다.
영생의 말씀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어떤 것도 주님을 대신할 수 없음을 확신합니다. 주님은 영생의 말씀을 가지고 계시며, 그 말씀은 나에게 진정한 기쁨과 평안을 줍니다.
나는 주님이 그리스도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유혹과 고난이 찾아와도, 나는 주님을 떠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떠나면 나에게 생명도 없고, 소망도 없으며, 내가 참으로 누구인지 아시는 분도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것들은 일시적이고 헛되지만, 주님의 길은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믿음이 흔들리고, 길이 험해 보일 때도 있지만, 주님은 나를 부르셨고, 끝까지 나를 붙잡아 주실 것을 믿습니다.
내 안에 주님의 생명과 사랑이 넘쳐나기에, 나는 더 이상 세상의 것들에 빠져들 수 없습니다.
베드로후서 2:22 KRV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
하나님을 맛보고 그 거룩함을 깨닫고 난 후에, 다시 세상의 더러운 곳으로 돌아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개가 똥을 다시 먹고 토한 것을 먹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진창에 다시 빠지는 말은 불신자들에게나 통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지존하심과 거룩하심과 흠없으심 깨끗하심 고결하심 아름다우심 정하심 지고하심을 내가 맛보았으니 그것보다 고귀하고 진귀하고 보배롭고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존하심과 고결하심을 경험한 내가 어떻게 다시 죄와 더러움에 빠질 수 있겠습니까? 주님만이 나의 유일한 소망이요, 내가 의지할 분이십니다.
그 깨끗함을 맛보고, 하나님의 생명의 샘을 맛보고도 어찌 더러운 물에 빠져서 악을 행하고 죄를 행하겠습니까?
내 성전을 다시는 더럽히는 일이 없도록 기도합니다.
내 성전은 이제 주님의 거룩한 성전입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는 내 안에 더러운 것이 들어오는 것을 허락할 수 없습니다.
내가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주시는 성령의 능력과 충만함이 필요합니다. 주님, 내게 성령 충만을 주셔서 언제나 주님의 뜻을 따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성령 충만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나와 함께하시고 나를 이끌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이제 나는 주님의 길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주님만이 나의 구원이시며, 내 모든 소망의 근원이십니다.
주님이 기대하시는 반응 신앙은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일입니다. 내가 예수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그 분에 대한 교리를 아는 차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은총을 날마 다 공급받아 그분처럼 사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전하면 많은 성도가 부담스럽게 여기는 것이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치유해 주시고 떡을 공급해 주실 때는 군중이 그분을 따랐지만, 그분 이 십자가를 지시는 자리에는 제자들조차 함께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입니 다. 사람들의 이런 마음을 아시는 예수님은 자주 그들의 기대와 다른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들의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하나님 나라 개념을 산산이 조 각내고 해체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하나님 나라를 우리 가운 데 온전히 이루는 과정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고난을 겪을 때, 형통함과 물질적 부유함을 주시는 하나님이 자기 부정을 하시는 것 같다고 느낍니다. 하나님은 그런 과정을 통해 그들의 우상과 교만과 선민의식을 무너뜨리고자 하시는데, 그들은 그런 때에 하나 님을 부정하려 합니다. 자신이 기대하던 하나님 얼굴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입니다. 주님이 영의 양식과 생명의 양식을 주고자 하시는데, 육신의 양식이 없다고 주님을 떠난다면 그보다 큰 비극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너희도 떠나려 느냐?"라고 물으실 때, 주님께만 붙어 있겠다고 반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 곁에 계신 말씀/ 박대영_ 성서유니온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드립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듯, "너희도 가려느냐?"고 하신 그 질문은 우리에게 깊은 의미를 던져줍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이유가 단순히 가르침 때문만이 아니라,
그분이 생명의 말씀을 가지고 계시며,
그분 안에서만 진정한 기쁨과 평안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임을 고백합니다.
주님, 예수님을 떠나는 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 마음 속에 교만함과 세상의 유혹, 죄의 유혹이 얼마나 큰지 깨닫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 고난을 이기지 못하는 연약함, 죄에 대한 타협은 우리의 믿음을 흔들리게 합니다.
주님, 우리가 세상의 것들에 빠져들지 않도록 도와주시고, 오직 주님께 집중하며 나아갈 수 있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합니다.
하나님,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단할 때,
그 결단이 세상의 유혹을 이겨내는 진정한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게 하시고,
그 믿음이 우리 삶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고난의 길임을 알지만,
그 길 위에서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며 가는 길임을 믿습니다.
주님의 길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주님을 따르며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게 하소서.
또한, 우리의 교만함을 내려놓고, 성령의 충만함을 구합니다.
우리의 삶을 주님의 뜻에 맞게 변화시키시고, 죄의 길로 돌아가지 않도록 지켜주세요.
주님께서 주시는 깨달음과 변화의 능력을 믿고, 우리의 마음이 오직 주님을 향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성령 충만 주시옵소서.
우리의 삶이 주님과 하나 되어, 주님의 길을 따르는 믿음의 삶이 되게 하시며,
우리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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