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민수기

민수기 27 : 12~23

잉비니 2025. 5. 23.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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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죽음 예고 27:12~17

두 번째 인구 조사와 땅 분배에 대한 말씀 후, 하나님은 모세의 죽음을 예고하십니다. 지도자로서의 그의 사명을 마무리할 때가 된 것입니다. 모세는 약속의 땅을 바라보지만, 그곳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가데스에서 불순종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새로운 지도자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백성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방황하지 않도록 하나님이 직접 인도자를 세워 주시길 요청합니다. 이렇듯 모세는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여전히 백성을 위한 책임과 사랑을 보여 주는 충성된 일꾼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자는 후계자를 위해 기도하며 책임감 있게 인생을 마무리해야 합니다.

자신의 죽음 예고를 들은 모세는 하나님께 어떤 요청을 드렸나요?

모세는 새로운 지도자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16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 원하건대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17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주어진 사명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 내게는 어떤 준비가 필요한가요?

성령께서 책임지신다 - 그래서 나는 ‘육체’를 훈련한다

이제 나는 확신한다.

성령님께서 항상 내 안에 임하시고, 나를 지키시며,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내게 주어진 사명을 잘 마무리하기 위한 영적 준비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님께서 모두 책임지실 것이다.

영적인 모든 일은 ‘은혜의 결과’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로마서 14장 8절

성령께서 오셨다는 사실은 이미 전쟁이 끝났다는 선언이다.

내가 의로워지기 위해 애쓰는 고단함은, 율법 아래 있는 자의 고통일 뿐이다.

그러므로 역설적으로, 나는 영적으로 준비할 것이 없다.

이 말은 방종이나 게으름이 아니라, 성령께 항복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참된 평안을 뜻한다.

깊은 깨달음도, 영적인 갈급함도, 내 힘으로 만들어낼 수 없다.

영적인 모든 갈망과 충만은 오직 성령께서 일으키시는 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육체 훈련’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현실에서 내게 맡겨진 것은 ‘육체’다.

육체를 다스리는 것,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유일한 준비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고린도전서 9장 27절

성령은 나를 거룩하게 인도하시지만,

죄는 육체의 통로를 통해 들어온다.

그러므로 성령이 일하시기 좋은 환경을 ‘내가’ 준비해야 한다.

  • 운동으로 체력을 관리하고
  • 정욕과 탐심과 자랑에 맞서 싸우며
  • 내 몸을 쳐서 말씀 앞에 세우고,
  • 기도하지 않아도 무릎을 꿇는 육체의 결단을 훈련한다.

성령은 그 자리에 오신다.

피곤해도 성경을 펴는 손, 기도 안 돼도 무릎을 꿇는 육체.

그 자리를 통해 성령이 임하신다.

유혹이 올 때, 회피하고 절제하는 건 순전히 육체의 선택이다.

성령이 경고하셔도 반응하지 못하는 이유는, 게으른 육체 때문이다.

정신의 전환 - '힘을 빼는 것'이 준비의 시작이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는이라.”– 스가랴 4장 6절

운동에서도 힘을 빼야 정확한 동작이 나온다.

신앙에서도 마찬가지다. 힘을 빼야 성령이 정확히 일하신다.

나 역시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 10년이 걸렸다.

내 힘으로는 안 되더라.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나서야 내 몸의 모든 힘이 쫙 빠졌다.

그 이후로 나는 내 힘이 아니라 성령님의 힘으로 운동하고, 말씀을 읽고,

봉사하며, 정욕에 맞서 싸운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시편 46장 10절

성령님께 모든 것을 맡길 때, 나는 비로소 가만히 있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그분은 일하시고, 이끄시고, 끝까지 나를 인도하신다.

그러니

이제 나는 육체를 훈련하며, 오직 그분께 순종할 뿐이다.

사명의 끝도, 능력도, 열매도 – 모두 성령의 것이다.

후계자 여호수아 27:18~23

하나님은 후계자를 위한 계획을 이미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새로운 지도자로 세우라고 명하십니다. 여호수아는 그의 안에 하나님의 영이 머물러 있는 사람입니다. 모세는 여호수아를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에게 안수해 자신의 모든 직무와 권위를 위임합니다. 공식적으로 그를 새로운 지도자로 세우는 절차를 진행한 것입니다. 그러면 온 이스라엘이 새로운 지도자인 여호수아에게 복종하게 됩니다. 제사장 엘르아살은 판결 흉패 안에 있는 우림(‘빛’이라는 뜻)과 둠밈(‘완전함’이라는 뜻)으로 하나님 뜻을 물어야 하며, 여호수아가 백성을 잘 인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모세는 후계자를 세우고 사역을 위임하라는 하나님 뜻에 온전히 순종합니다.

하나님이 모세의 후계자로 세우신 여호수아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여호수아는 그의 안에 하나님의 영이 머물러 있는 사람

공동체의 지도자를 선택할 때 나는 어떤 면을 중요시하나요?

권위의 근원은 하나님이다.

그래서 어떤 지도자가 내 기준에 안 맞더라도, 하나님께서 그 권세를 허용하셨다는 점에서 함부로 무시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 말이 곧 모든 지도자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다는 뜻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권세를 세우신다면, 히틀러는 왜 허용하셨는가?

극단적인 예시지만, 이 질문은 하나님의 주권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히틀러도 하나님이 세우신 권세자인가?

1. 권위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다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로마서 13:1)

하나님은 질서를 위해 ‘권위’라는 구조를 세우셨고, 그 구조 자체는 선한 것이다.

하지만 각 권위자의 행위나 인격이 하나님께 합당하다는 말은 아니다.

예를 들어:

  • 사울 왕: 하나님이 세우셨지만, 교만과 불순종으로 버려졌다.
  • 느부갓네살: 하나님의 도구였지만, 교만으로 짐승처럼 낮아졌다.
  • 빌라도: 권세를 받았지만, 예수님의 죽음을 결정한 죄에서 자유롭지 않다.

2. 악한 통치자도 하나님의 허용 아래 사용되기도 한다

히틀러는 분명히 사탄적인 통치를 했고, 수많은 생명을 죽였다.

하지만 그조차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는 제한적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

“내 뜻을 이루기 위하여 앗수르 사람을 보내노라.” (이사야 10:5–6)

하나님은 악을 기뻐하지 않지만, 악까지도 더 큰 선을 위해 사용하시는 분이다.

3. ‘모든 권세에 복종하라’는 조건 없는 복종이 아니다

로마서 13장은 질서 유지의 원칙을 말하는 것이지,

모든 통치자의 행위를 무비판적으로 따르라는 명령이 아니다.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사도행전 5:29)

신자는 불의한 명령, 비성경적 권위, 양심을 짓누르는 강요에 저항할 책임이 있다.

바울도 로마 권세에 항의하고, 항소했다 (행 25장).

4. 정리 요약

질문 대답

권위 자체가 하나님께서 세우셨는가? ✔️ 그렇다 (질서 유지 차원)
히틀러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지도자인가? ❌ 아니다 (악한 자, 사탄의 도구)
그가 권력을 갖는 것을 하나님이 허용하셨는가? ✔️ 허용하셨다 (섭리 차원에서)
우리가 그에게 순종해야 했는가? ❌ 아니다 (불의에 저항할 책임 있음)

5. 하나님은 악을 허용하시지만, 창조하시지는 않는다

항목 하나님이 악을 기뻐하심? 하나님이 허용하심? 목적

❌ “하나님은 악의 창시자가 아니다” (약 1:13) ✔️ “요셉을 팔게 하신 것도 허용하심” (창 50:20) 더 큰 선을 위해
시험 ❌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신다” (약 1:13) ✔️ “예수님도 시험 받게 하심” (마 4:1) 믿음을 연단하기 위해
악한 권세자 ❌ 그들의 죄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 “바벨론도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됨” (사 10:5–7) 심판과 경고 목적

6. 하나님의 뜻: 긍정적 뜻 vs 허용적 뜻

개념 설명

긍정적 뜻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뜻 (구원, 의, 진리, 사랑 등)
허용적 뜻 하나님이 악을 도구로 사용하여, 더 큰 섭리를 이루시기 위해 허락하심 (예: 유다의 배신, 사탄의 시험)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창세기 50:20)

7. 맹목적 복종은 믿음이 아니다

  • 불의하거나 죄를 범하는 지도자는 복종의 대상이 아니다.
  • 죄에 침묵하면 공동체가 병든다.
  • 타협하지 말고, 존중하면서도 단호하게 진리를 말해야 한다.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서 책망하라” (딤전 5:20)

8. 죄를 감싸는 사랑은 위선이다

  • 진리를 외면한 온정주의는 방임이다.
  •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죄를 덮는 것은 교회를 무너뜨린다.
  • 죄는 지적되어야 하고, 회개로 이끌어야 한다.

9. 심판과 권면은 다르다

  • 나는 정죄자가 아니다.
  • 그러나 하나님의 기준에 어긋나는 것을 권면할 책임은 있다.
  • 비난이 아니라 회복을 위한 중보와 대화로 접근해야 한다.

“진리를 떠난 자를 돌아서게 하면,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 (약 5:19–20)

10. 모든 것은 지혜로 해야 한다

  • 성령의 인도 없이 하는 정의는 폭력이 되고,
  • 감정적 분노는 믿음이 아니다.
  • 발언의 시기, 방식, 말투까지 성령의 지혜로 조율되어야 한다.
  • 때로는 침묵이 가장 강한 메시지일 수 있다.

“온유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잠 15:1)“너희 말은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내라” (골 4:6)

하나님은 악한 것조차도 허용하시며, 그 모든 것을 사용하여 선을 이루신다.

그러나 신자는 그 어떤 권위도 무비판적으로 따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분별하고 지혜로 반응할 책임이 있다.

지도자를 분별하는 기준은 "하나님이 세우셨느냐?"가 아니라,그가 지금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있느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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