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어떤 사랑을 보여 주셨나요?

하나님은 오랜 역사 속에서 부모의 마음으로 그들을 이끄셨습니다. 걸음마를 가르치셨고, 안아 주셨으며, 그들의 상처를 치료하셨습니다. 사랑의 줄로 인도하셨고, 풍족하게 채우셨으며,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놀라운 사랑을 경험하고도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기를 싫어했습니다. 참된 사랑을 외면하고 배반한 결과는 다른 나라를 섬기게 되는 징벌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세심한 사랑을 확인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예수님께서는 많은 병자들을 치유하셨다.

처음 성경을 읽을 때, 예수님의 사역을 보고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신앙 생활을 하면서 점차 이것이 영적인 일을 말씀하시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물론 주님께서는 문자 그대로 병자들의 육신을 고치셨다.

하지만 나는 육체적으로는 멀쩡해 보일지 모르나, 영적으로는 병자이고, 눈먼 자이며, 귀먹은 자이고, 말하지 못하는 자이며, 절름발이요, 나병환자요, 중풍병자요, 술에 취한 자가 아닌가?

주님께서는 이런 영적 병자인 나에게 영안을 열어주시고, 귀를 열어주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내 입술로 선포하게 하신다.

이러한 기적 속에서 나는 하나님의 세심한 사랑을 느낀다. 내 존재 하나하나를 차근차근, 인격적으로,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온유하고 온화하게, 주님의 사랑으로 나를 감싸주시고 성장시켜 주시는 그 은혜를 지금도 경험하고 있다.

내가 처음 교회에 왔을 때, 마치 부모의 마음처럼 나를 받아주시고 걸음마를 가르쳐주시며, 상처를 치유해 주시고, 사랑의 줄로 나를 이끌어주시고, 풍성하게 채워주셨다. 또한 자유를 주셨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 놀라운 사랑을 겪고도 하나님을 멀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기를 마다하는 인간의 교만이 그 정도로 클 수 있단 말인가?

참된 사랑과 진리를 어찌 배반할 수 있을까 싶지만, 나는 이 교만을 늘 경계해야 한다.

이것이 나의 참된 교만이며 오만이다. 마귀가 주는 진정한 시험은 바로 이것이다.

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르다며, 나는 하나님과 평생 함께할 것이라며,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셨으니 나는 자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라고 굳게 믿는 척하지만, 그것이 바로 나를 오만과 자만으로 이끌고, 결국 중요한 순간에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게 만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놀라운 사랑을 겪고도 하나님을 멀리했던 것처럼, 나도 넘어지고 시험에 빠질 수 있는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절대로 오만하고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 이 말씀은 바로 나를 위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나는 잘못하면 마귀의 작은 손짓에도 무너질 수 있는 모래성 같은 존재다.

하나님이라는 반석 위에, 예수님이라는 반석 위에 집을 지어야 한다.

내 자아라는 모래 위에 모래성을 쌓지 말고, 하나님의 반석 위에 굳게 서 있어야 한다.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눅 6:43-44, 47-49; 13:25-27)

(마 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마 7: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마 7: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창1:11 (마 7: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마 7: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마 7: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 7: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 7: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마 7: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마 7: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주님께서는 성경을 계속 읽는 가운데 나의 신앙 상태를 돌아보게 하신다.

1독, 2독, 3독을 지나 이제 4독을 하고 있지만, 또 다른 깨달음이 찾아온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교만과 오만, 자만을 일깨워 주신다. 그리고 내가 이스라엘 백성과 다를 바 없는 존재임을 보여주신다.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알게 하신다.

이 교만하고 어리석은 나를 주님께서 택하시어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신다. 이는 생명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이들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구원받을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암시하신다.

이 좁은 문은 곧 내가 문이라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들어가야 하며, 그를 주로 고백하는 믿음만이 구원을 얻는 길이다.

형식적으로 "주여, 주여" 부른다고 해서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했을지라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어떠한 비바람이 몰아쳐도 무너지지 않는 강력한 반석 위에 집을 짓는 믿음을 말씀하셨다.

이처럼 빈틈없고 완전한 말씀을 인간의 논리로 어떻게 다 설명할 수 있을까?

고린도후서 10:3-5 KRV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주님, 어리석은 나를 오늘도 회개합니다.

일말의 내 악은 내 영혼에서 제하여 주시고 발톱의 때같은, 티끌같은 죄일지라도 철저히 십자가 앞에서 회개하고 나아갈 수 있는 담대함을 주시옵시고

나에게 더 큰 고난을 주시옵시고 연단함을 주시옵시고 위기와 박해를 주시길 바랍니다.

철저하게 솔직하고 정직하게 예수님께 나아갑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에브라임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분 마음에서 불타오르는 긍휼과 뜨거운 사랑이 공의의 진노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와 자비는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회복시키실 때 사자와 같이 큰 소리를 발하시면, 사방에 흩어진 백성이 떨면서 돌아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불타는 사랑과 애끓는 긍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나의 잘못과 배반에도 하나님이 계속 사랑으로 이끌고 계신다는 걸 느낀 적이 있나요?

예레미야 29: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내가 잘못 생각한 점은 적당히 신앙 생활을 하고, 적당히 기도하며, 적당히 살면 충분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또한 그것이 잘못된 행동이나 배반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약 조금이라도 고민이 생긴다면, 그것은 내 안에서 사단이 속삭이는 소리일 것이다. "기도는 이따가 해야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것은 배반이며 불순종이고, 마귀의 유혹에 빠진 것이며, 하나님을 멀리하는 게으름과 탐욕, 그리고 죄악이다.

주님, "기도는 이따가 해야지", "묵상은 내일 해야지", "말씀은 나중에 읽어야지"라고 교만하게 생각한 것을 회개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보다 내 기분에 따라 산 것을 회개합니다.

기분이 나쁘면 하나님을 떠나려 했고, 교만하고 오만한 생각에 빠졌던 나를 여전히 사랑으로 인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잘못하고 배반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께서 계속해서 사랑으로 나를 붙잡아주심을 느낍니다.

지금까지의 32년이 아니라, 태초부터 하나님의 계획 속에 내가 있었고,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계속 감싸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께서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나를 치유하시며, 생명의 빛으로 나를 비추고 계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긍휼한 마음과 불타는 하나님의 사랑을 갈망합니다. 세상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한 성령의 충만함을 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목마름과 갈급함, 그리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며, 마음이 가난하고 애통하는 심령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화평케 하는 자로, 의를 위해 박해받는 자로 서고 싶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내 마음을 아십니다. 그 사실만으로 충분합니다. 단 한 분, 주님께서 나를 알아주신다면, 이 세상의 그 어떤 사람이 나를 알아주고 사랑해준다 해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귀하고 고결한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 비유가 떠오릅니다. 내가 백악관에 가서 미국 대통령을 안다고 말해도 그가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대통령이 나를 알아야 비로소 백악관의 문이 열릴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의 주인이시고, 그분께서 나를 알아주셔야만 천국의 문이 열릴 줄 믿습니다.

하나님, 나를 알아주시길 원합니다. 그리고 천국으로 인도해주시길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나를 아십니다. 그러나 나는 주님을 얼마나 알고자 애썼는지, 죄와 싸우며 피 흘리기까지 최선을 다했는지, 간절히 기도하고 회개했는지 돌이켜 봅니다.

주님께서 나를 아시는 것에 비해, 나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도 최선을 다하게 해주시고, 결코 포기하지 않게 하옵소서. 뼈를 깎는 각오로 마귀와 싸우고,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오늘도 주님께서 말씀으로 인격적으로 찾아와 주시고, 나를 연단시키시며 성장하게 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F.I.A LIVE WORSHIP - 하나님의 부르심 + 나는 믿네 + 보내소서 (with 김윤진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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