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 심판 20:11~12
흰 보좌 심판의 때에 하나님 앞에 펼쳐진 책들은 무엇인가요?
흰 보좌 심판은 최후 심판입니다(11절; 11:18). 구약 시대 선지자들도, 예수님과 사도들도 최후 심판을 예고했습니다. 바울은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최후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이는 피할 수 없는 사실이며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최후 심판대 앞에는 생명책과 더불어 ‘책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책들’은 각 사람의 행위가 기록된 것으로 봅니다. 사람들의 모든 은밀한 행위가 마지막 날에 드러날 것입니다.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으나 하나님의 눈은 결코 속일 수 없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나누는 최후 심판이 있기에 오늘 나의 선택은 어떠해야 할까요?
나의 행위나 선한 행실이 먼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 의로움이 드러나려는 마음을 철저히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 구원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달려 있습니다.
나의 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모든 선한 행실은 나를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한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 때, 우리의 모든 삶은 하나님 앞에서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심을 깨닫고, 그분을 찬양하고 예배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생사와 흥망성쇠를 결정하실 권한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오래 참으시며 끝까지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되 사랑이 풍성하신 분입니다.
나는 내 죄로 인해 하나님 앞에 아무 변명할 수 없는 자임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구원하십니다.
내 믿음이 때로 연약해지고 흔들릴 때가 있지만,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며 그 믿음이 변치 않기를 간구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혹여나 내가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할 상황에 놓인다면,
지금이라도 내 입술로 그분의 이름을 높이며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시편 150:6)
내 삶의 남은 모든 순간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간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나의 연약함과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나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시고, 죄와 싸울 힘과 결단력을 주시옵소서.
나의 모든 선택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이 되게 하옵소서.
내 삶의 구주이시며 산성이 되시는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행위 심판 20:13~15
각 사람은 어떤 기준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나요?
하나님은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십니다. 이는 신구약 성경 전체에 흐르는 메시지입니다. 예수님은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마 16:2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벧전 1:17)라고 말했습니다. 흰 보좌 심판은 이러한 말씀이 성취되는 심판이요, 하나님의 공의와 진노가 드러나는 심판입니다.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 곧 불신자들과 흉악한 죄인들과 우상 숭배자들은 불 못에 던져집니다(21:8). 성도는 최후 심판이 있음을 기억하며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겸손히 살아야 합니다.
모든 언행 심사를 살피시는 하나님 앞에서 내가 바로잡을 부분은 무엇인가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형제를 욕하면 지옥불에 들어갈 것이며,
- 음욕을 품고 여인을 보는 자는 이미 간음한 것이며,
- 맹세하지 말고,
- 원수를 사랑하며,
-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도 돌려대라고 하십니다(마태복음 5:21-48).
처음에는 이 말씀을 내 힘과 의지로 지켜보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두 가지 극단에 빠지게 됩니다.
- 지켰다고 자부할 때: 율법주의에 빠져 교만해지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며 스스로 의롭다고 여깁니다. “나는 지켰는데, 너는 왜 못하느냐?”라는 태도가 나타납니다(누가복음 18:11).
- 지키지 못할 때: 절망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기준 앞에서 스스로의 부족함과 죄악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로마서 3:23).
결론적으로, 산상수훈의 말씀은 내 힘으로 완전히 지킬 수 없습니다.
율법의 의로우심과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나는 절망할 수밖에 없고, 내 안에서 나오는 죄와 더러움을 제거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절망 속에서도 답은 오직 하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를 의롭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며(고린도후서 5:21),
그분의 보혈로 나를 깨끗하게 하십니다(요한일서 1:7).
나는 더 이상 내 의로 구원을 이루려 하지 않고, 예수님의 의를 믿음으로 의롭게 됩니다(로마서 5:1).
이제 나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내 삶을 돌이키며 이렇게 결단합니다:
- 내 말을 훈련합니다.
- 불필요한 비판과 판단, 분노의 말을 멈추고,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에베소서 4:29).
- 은밀한 죄를 회개합니다.
-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죄까지도 하나님께 고백하며,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구합니다(시편 19:12).
- 사랑의 계명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 예수님께서 주신 새 계명, 곧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내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겠습니다(요한복음 13:34-35).
-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합니다.
- 예배와 기도, 말씀 묵상에서 소홀했던 부분을 회개하고,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기를 구합니다(요한계시록 2:4-5).
- 내 사명과 역할을 성실히 감당합니다.
- 하나님께서 주신 역할과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지 못한 부분을 돌아보며, 새롭게 헌신하겠습니다(골로새서 3:23-24).
마지막으로,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의 거울이 되기를 원합니다(야고보서 1:23-25).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그분의 감동에 민감히 반응하고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불편한 진실, 심판과 지옥
예수님을 믿기 전 대학에 다닐 때 좋아했던 노래 중에 이매진(Imagine)이 있습니다. 비틀스의 리더였던 존 레넌이 팀 해체 후 1971년에 발표한 이 곡은 오랫동안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은 명곡입니다. 이 노래는 멜로디 가 매우 아름다운 반면 가사는 상당히 논쟁적이고 선동적입니다. 이 노래는, 천국과 지옥은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저 이 땅에서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을 상상하라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이 이 곡이 주는 메시지를 매 력적으로 받아들이지만, 이 땅의 삶에만 매몰되어 장차 올 심판을 무시한다 면 분명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사탄은 어떻게 해서든 '하나님의 심 판'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덮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기독교인조차 이 교묘한 거짓말에 속아 머릿속에서 '심판'이라는 말을 지우고 사는 경우가 종 종 생깁니다. 그러나 진리의 말씀인 성경은 심판과 지옥을 증언합니다. 성경에서 심판과 지옥에 대해 가장 많이 언급한 이는 다름 아닌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왜 그러셨을까요? 이단의 교주들처럼 겁을 주어서 사람들을 조종하기 원하셨 던 것일까요? 전혀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 중 그 누구도 심판을 받아 지옥에 가기를 원하지 않으셨기에, 최후 심판이 있음을 그토록 반복해서 확실하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심판의 말씀에는 우리를 향한 그분의 맹렬한 사랑이 녹아 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소식, 복음 / 이재기_은채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지존하신 아버지를 찬양합니다.
오늘은 주기도문으로 기도하길 원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리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게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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