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과 구원 21:1~3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간절한 기도는 반드시 응답됩니다. 아랏의 왕이 가나안 땅을 향해 가려는 이스라엘을 막고자 이스라엘을 쳐서 몇 사람을 사로잡습니다. 이 일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서원하며 간절히 기도합니다. 만약 그들을 이기게 해 주시면 그들의 모든 성읍을 완전히 파괴하겠다고 약속합니다.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이 이스라엘 손에 가나안 사람을 넘기십니다. 이스라엘은 서원대로 그들과 그들의 성읍을 다 멸망시키고 그곳을 ‘호르마’라고 부릅니다. 이전에 이스라엘은 불순종으로 가나안 사람에게 패해 ‘호르마’까지 이른 적이 있습니다(14:45). 순종하면, 불순종의 치욕이 승리의 영광으로 바뀝니다.
아랏의 왕이 이스라엘을 치자,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뭐라고 서원했나요?
만약 그들을 이기게 해 주시면 그들의 모든 성읍을 완전히 파괴하겠다고 약속합니다.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이 이스라엘 손에 가나안 사람을 넘기십니다. 이스라엘은 서원대로 그들과 그들의 성읍을 다 멸망시키고 그곳을 ‘호르마’라고 부릅니다. 이전에 이스라엘은 불순종으로 가나안 사람에게 패해 ‘호르마’까지 이른 적이 있습니다(14:45). 순종하면, 불순종의 치욕이 승리의 영광으로 바뀝니다.
하나님 은혜를 구하며 내가 하나님 앞에 결단할 일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은혜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은혜란 한마디로 하나님 그분 자신이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은혜는
그분의 성품과 존재 자체에서 비롯된다.
은혜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 방식 그 자체의 표현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은혜는 그 사랑의 구체적 실체다.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는 분'이실 뿐 아니라,
존재 자체가 은혜이시다.
그분은 무언가를 주는 분이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시며, 스스로를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은혜의 결정체이며,동시에 하나님 자신이 인간에게 오신 사건이다.
은혜는 '무엇'이 아니라 '누구'다
- 조건 없는 용서
- 절망한 자를 다시 살리는 생명
- 죄인을 부르시는 자비
- 쓰러진 자와 동행하시는 임재
이 모든 것이 곧 하나님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낸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은혜이시고,
상급이시다.
“하나님의 은혜란 하나님 그분 자신이시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한다는 것은
감정적 위로를 바라는 행위가 아니라,
곧 하나님 자신을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의 하나님!
거룩, 거룩, 거룩!
그저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그 은혜는 단지 용서를 넘어,
삶의 모든 영역에서 거듭남을 요구하는 부르심이며,
그 부르심에 대한 결단으로 응답하는 삶이다.
은혜는 느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 있도록 내 존재를 여는 결단의 자리에서 임한다.
은혜 앞에서의 결단
그러므로 항상 겸손히 성령께 여쭈어야 하며,
내가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응답해야 한다.
주님께 아직 입 밖에 내지 못한 죄,
인정하지 않은 불의,
핑계로 덮어버린 불순종이 있다면
다음과 같이 고백해야 한다.
“주님, 이 죄를 감추지 않겠습니다.말하고, 고백하고, 끊겠습니다.”
반드시 기억할 원칙
- 죄는 죄인에게 고백하는 것이 아니다.회개의 통로가 될 수 없다.
- 죄인은 동정하거나 합리화할 뿐,
- 그는 죄의 동반자이지,
- 은혜의 동반자가 아니다.
- 간증과 죄 고백조차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 이뤄져야 한다.
인간은 간악하다.
다른 사람의 회개를 보고 오히려
“저 사람도 저랬는데 나도 괜찮겠지”
하는 유혹에 빠진다.
그러므로 죄 고백은 반드시 하나님께로만 향해야 한다.
은혜를 입은 자의 응답
- 먼저 손을 내미는 결단
- 먼저 연락하는 결단
- 먼저 용서하는 결단
- 먼저 사과하는 결단
이 모든 것은 믿음 있는 자의 몫이다.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찾으셨고,
먼저 손을 내미셨으며,
먼저 나를 용서하셨다.
그 긍휼을 받은 자답게, 이제는 내가 먼저 반응해야 한다.
온전한 맡김, 온전한 회복
스스로 통제하려는 본능을 내려놓아야 한다.
하나님은 이미 모든 것을 아시고 예정하신 분이시며,
나는 결과를 쥐는 자가 아니라, 순종으로 걷는 자다.
관계, 감정, 미래, 물질, 사역—
모든 영역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길 때,
비로소 내가 지고 있던 짐들을 내려놓을 수 있다.
전권을 원래 주인이신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이회복의 시작이다.
불 뱀과 놋 뱀 21:4~9
이스라엘은 에돔 땅을 통과하지 못하자 홍해 길을 따라 돌아서 행진합니다. 이 과정에서 길이 험하고 힘들어 백성은 또다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합니다. 먹을 것도, 마실 물도 없다며 하나님이 주신 만나를 하찮은 음식으로 폄하합니다. 이는 광야에서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태도입니다. 진노하신 하나님은 불 뱀을 보내셔서 백성이 물려 죽게 하십니다. 그제야 백성은 죄를 인정하고 모세에게 자신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하나님은 장대 위에 매단 놋 뱀을 바라보면 낫는 방책을 알려 주시고, 그 말씀대로 놋 뱀을 쳐다보는 자마다 살아납니다. 놋 뱀을 바라본 모두가 살아난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누구나 생명을 얻게 됨을 예표합니다.
불 뱀에게 물려 죽어 가던 백성은 어떻게 살아났나요?
하나님은 장대 위에 매단 놋 뱀을 바라보면 낫는 방책을 알려 주시고, 그 말씀대로 놋 뱀을 쳐다보는 자마다 살아납니다. 놋 뱀을 바라본 모두가 살아난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누구나 생명을 얻게 됨을 예표합니다.
치유와 회복이 필요한 내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믿음의 행동은 무엇인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는 치유되고 싶다 라고 말하지만
그 이면에는 결국 자기 방식의 평안을 요구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치유보다 ‘순종’을 먼저 요구하신다.
“낫게 해주십쇼” 가 아니라 “내가 낫든 낫지 않든 주의 명령에 순종하겠습니다 라는 것이 진짜 믿음이다.
진짜 회복을 원한다면, 계속해서 상처를 중심으로 자신을 매몰시키는 것을 버려야한다.
나는 이런 상처가 있고 그래서 그렇다, 원래 그렇다라는 사고는 치유를 방해하는 합리화된 자기 중심성이다.
하나님은 너를 피해자가 아닌 사명자로 세우신다.
상처를 예수님께 드리고, 고하고, 맡기고,
상처를 내려놓고, 사명을 붙드는 순간에 기적은 일어난다.
그렇게되면 이제 나는 치유와 회복이 필요하지 않다.
주님께서 치유해주시고 회복시켜주셨기 때문이다.
십자가에서 주님께서 다 이루었다 할때부터 이미 나는 태초 이전부터 회복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이제는 나를 치유하는 것 보다는 남을 치유하는 자리에 세우신다.
누군가를 위로하고, 중보하고, 진심으로 품을 수 있다.
내가 가진 위로와 이해가 너무 작지만
결국 예수님께서 다 채워주실 것이다.
내가 부족하면 부족할 수록 오히려 더 하나님의 영광이 채워지고
그 부족함이 하나님이 역사하실 귀한 자리라는 것을 기억하자
내 모자란 것이 하나님의 완벽하심, 존엄하심, 완전하심, 온전하심을 드러내는 자리이다.
믿음의 행동은 회복을 경험하고 나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회복을 경험하기 위해서
“순종”하는 것이다.
그럼, 낫기를 기다리면서 기복신앙하는 사람에서
순종하며 예수님과 함께 걷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상처를 바라보지 말고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아라
말씀과 사명에 충실하라
순종하고 사랑하라
치유는 은혜로 오지만 회복은 순종으로 길이 열린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은혜를 구하며 나아오는 이 시간, 내가 구하는 것은 위로나 회복이 아니라
하나님, 바로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아랏의 왕이 이스라엘을 쳤을 때,
이스라엘은 두려움에 멈추지 않고
하나님께 서원하며 전심으로 부르짖었습니다.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응답하셨듯이,
지금 이 시간, 내 마음과 삶의 자리에서도 역사하소서.
나는 지금까지 내 상처를 핑계 삼아 회복을 미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압니다.
하나님은 치유보다 순종을 먼저 요구하신다는 것을.
내가 낫든 낫지 않든,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결단합니다.
불순종의 자리에서 당했던 치욕을
순종의 결단으로 승리의 자리로 바꾸시는 하나님,
내 삶에서도 동일하게 역사하소서.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은혜는 더 이상 '무엇'이 아닌, '하나님 그분 자신'임을 믿습니다.
주님은 나를 위로하실 뿐 아니라, 나를 들어 사용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내가 고백합니다.
"주님, 이 죄를 감추지 않겠습니다.말하고, 고백하고, 끊겠습니다."
죄를 죄인 앞에 고백하지 않겠습니다.
오직 주님 앞에서 무릎 꿇겠습니다.
합리화와 자기연민을 내려놓고,
상처가 아니라 사명을 붙들겠습니다.
불 뱀에 물린 자들이 놋 뱀을 바라보았을 때 살았듯,
나는 지금 십자가의 주님만을 바라보겠습니다.
내 시선을 문제와 과거에 두지 않고,
말씀과 주님의 능력 위에 고정시키겠습니다.
주님,
이제는 내가 먼저 손을 내밀겠습니다.
먼저 용서하겠습니다.
먼저 사과하겠습니다.
먼저 사랑하겠습니다.
그것이 믿음의 행동임을 알기에,
이제는 회복을 요구하는 자가 아니라,회복을 전하는 자로 살기를 결단합니다.
내 부족함이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자리임을 믿고,
주님께 내 전권을 맡깁니다.
나는 이제 결과를 통제하려 하지 않겠습니다.
말씀이 이끄는 대로 순종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는 거저 주시지만, 회복은 순종 위에 임합니다.
오늘 내가 드리는 이 고백이 말이 아닌 삶으로 이어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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