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있든 잘 찾아 내신다

시편 57편이 전해주는 다윗 영성의 핵심은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모든 것을 이루신다는 믿음과 하나님이 나를 중심으로 모든 것을 이루신다는 믿음입니다.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이 날씨도, 기상도, 해도, 달 도, 세계 경제도, 환율도, 정치도 ****

나를 중심으로 경영하신다

는 다윗의 믿음이 여러분 가운데 있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렇다고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지혜의 하나님은 나뿐만 아니라 수십억 사람 각각을 중심으로 세상을 경영하셔도 아무 문제가 없게 경영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나와 하나님 사이에 과연 어떤 믿음이 있는지를 돌아 봐야 합니다.

초등학교 운동회에 참석한 아버지는 운동장에 수많은 아이가 뛰어다녀도 자기 아이만 봅니다. 뭔가 결정할 때도 자기 아이를 중심으로 결정합니다. 다른 사람의 아이들까지 고려해서 결정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가장 개인적이고 친밀한 분으로 알고 있을 때 나오는 믿음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일만 하신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개인적인 관계에서가 아니라 그저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 입니다.

하나님을 ****

나의 아버지,

나와 가장 친밀하신 분,

나의 모든 사정을 아시는 분,

나의 앉고 일어서는 것을 아시는 분,

나를 구원하시고,

내 머리털 까지도 세시는 분

으로 알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나를 중심으로 일하신다는 사실

을 자연스럽게 믿게 됩니다.

이런 믿음이 없으면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믿기가 참 어렵습니다.

‘세계를 경영하느라 바쁘신 분이 나의 사소한 문제까지 다 기억하고 개입하시겠어?’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은 기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셔서 나를 중심으로 세계를 운영하신다는 믿음이 있을 때 나옵니다.

이 믿음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정말로 나를 구원하신다는 확신이 생깁니다.

다윗 영성의 핵심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움직이시고, 자신을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는 믿음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도 다윗의 믿음, 그 믿음의 황홀함을 경험하여 두려움이 기쁨으로 변화되기를 축복합니다.

  • 황금시편, 고성준

† 말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 이사야 49장 15-16절

† 오늘 내가 읽고 가르침을 주시는 말씀

(마 27:11)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마 27:12)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마 27:13) 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그들이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언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 (마 27:14)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크게 놀라워하더라

†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 세상을 나를 중심으로 경영하심의 주님의 지존하신 능력과 힘에 무궁한 영광을 올립니다.

예수께서 병자들을 고치신 것, 베드로가 예수님의 힘을 빌어 앉은 뱅이를 일어서게 한 것, 태산을 들어 바다에 던지는 것,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셔서 나를 중심으로 세계를 움직이신다는 믿음을 꼭 가지고 천국 문 입성하게 해주심에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식을 긍휼히 여기시어 나를 잊지 아니하심에 그 크신 사랑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 주님의 손바닥에 나를 새기심에 가슴이 아픕니다.

얼마나 미련하고 헛되고 덧 없고 메이며 얽히고 섥히고 죄의 올무를 끊어내지 못해서 얼마나 스스로 고통받으면서 미련하게 어렵게 살았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큰 은총과 은혜로 말미암은 믿음을 굳건히 지키며 하나님께서 나의 망루와 망대 반석이자 견고한 성루 성막 튼튼한 지킴이가 되어주심에 무한한 찬송을 드립니다.

이 모든 고난은 나의 죄로 인함으로 양심이 살아 숨쉬며 나의 죄와 타인의 죄와 함께 씨름하지 않도록 오직 야곱의 하나님과 같이 하나님과 같이 씨름하는 인생 살도록 하시옵소서.

사단 마귀와 씨름하지 않도록 하소서, 그 샅바를 놓아버리게 하소서.

사단 마귀에는 침묵을, 주님께는 땅이 깨어지고 정신이 번쩍들고 깜짝 놀라운 찬송을 내 목청 껏 터뜨릴 수 있도록 하시옵소서.

환난을 기쁨으로 받아들입니다. 환난에는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을 소망을 이루게 하실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적용과 결단

주님, 감사합니다. 나의 아버지가 되어주셔서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위한 모든 계획과 결정에 저를 생각해주시는 하나님의 높으신 은혜의 경륜을 찬양합니다. 나와 내 집을 돌아보시는 참된 아버지가 되어주시니 감사합니다. 나의 사소한 문제까지도 기억하고 개입하시는 주님의 인도하심 따라 살아가길 원합니다. 때로 두려움이 앞설지라도 나를 향한 계획을 이루시는 분이심을 기억하며 그 두려움이 기쁨으로 변화되는 경험하게 하소서.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어째서 이 어려움을 겪습니까? 우리 조상이 주님께서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시어 애굽에서 인도해 내셨다고 말했는데, 그 모든 기적이 다 어디 있단 말입니까? 이제 주님께서 우리를 버리기까지 하셔서 미디안의 손아귀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삿 6:13).

사실 이 고난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로 인함이었다. 하지만 주님은 기드온과 논쟁하지 않으셨다.

  • (느낀점)
  • 아!!! 내가 왜 이때까지 사람들과 논쟁하고 살았을까요? 전혀 논쟁 할 필요가 없군요.
  • 싸울 필요도 화를 낼 필요도 그 사람을 바꾸려고도 오직 하나님 한분만이 그 분을 변화시키십니다. 오직 예수님 만이 그 사람을 변화 시키십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총과 은혜만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나아감을 잠잠히 하나님의 때를 기다립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의 비뚤어진 육의 생각에 답하지 않으셨다.

  • (느낀점)
  • 삐뚤어진 육의 생각과 하찮는 생각에는 답할 가치 조차 없다는 것을 느낍니다.
    • 그 까닭은 그것에 대답하면 우리 안에서 나오는 죄성으로 인한 생각의 발현이 행동이며 말인 즉, 그 생각과 죄성을 행동과 말로 폭발시키는 것은 우리의 잘못이 아니고 간계한 사단 마귀의 전략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는, 그것에 씨름하면 사단과 씨름하는 것이고 사단 마귀와 소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침묵의 힘을 느낍니다.
  • 예수님이 수모를 받을 때 침묵과 말하고 싶은 것을 참는 인내가 느껴집니다.
  • 내가 정죄할 필요가 없습니다. 판단할 필요가 없습니다.
  • 전지 전능한 엘 샤다이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것입니다.
  • http://www.christiantoday.us/sub_read_amp.html?uid=22583
    • 첫째 예수님은 비난에 대하여 침묵하셨다. 비난은 누구라도 기분 나쁜 것이다. 그러기에 누구나 비난을 받으면 변명을 하기에 바쁘다. 그런데 주님은 비난하는 자들 앞에서 침묵으로 일관하셨다. 비난을 받고 변명하는 것도 덕스러운 것은 아니다. 링컨은 “비난이 사실이라면 변명할 필요가 없고, 만일 비난이 허위라면 더구나 변명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 둘째 예수님은 칭찬에 대해 침묵하셨다.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기에 보통 사람은 칭찬 몇 마디만 들었다 하면 어깨가 저절로 으쓱거려 지는데 이는 어리석고 경박한 짓이다. 사람은 남에게 비난을 받을 때보다 칭찬을 들을 때가 더 위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주님은 당신을 ‘선한 선생’이라고 칭찬 섞인 말을 하는 유대 관리에게 말씀하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이가 없느니라”(눅18:19)고 대답하셨다.
    • 셋째 예수님은 약자에 대하여 침묵하셨다. 사람이 강자 앞에 약해지는 것은 교활함 때문이요, 약자 앞에 큰소리 치고 강해지는 것은 옹졸함(너그럽지 못함)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람들 중에는 흔히 강자 앞에서는 약하고, 약자 앞에서는 강해지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사는 모습을 보게 된다. 약자 앞에 큰 소리 치는 것은 비겁한(비열하고 겁이 많음, 성품이 천하고 못남) 짓이다.
    • 넷째 예수님은 십자가 앞에서 침묵하셨다. 아무 죄도 없이 선한 일만 하다가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모략에 의한 거짓 고발을 당해 흉악범을 매달아 처형하는 형틀인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되었을 때 보통 사람 같으면 의를 행한 보상이 고작 십자가의 처형이냐고 반항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능한 자처럼 십자가를 순순히 지셨고 죄인처럼 아무 말이 없으셨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불공평이나 불이익을 당한다고 생각을 할 때 너무 쉽게 반발하고 항의를 하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성도들은 모략중상, 배신, 배은망덕을 당하더라도 조용히 침묵하는 덕을 지니고 인자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선한 섭리를 기다리며 끝까지 인내해야 한다.
  • https://brunch.co.kr/@aventureun/234
    • 너무 필요 이상으로 잘못하지 않았다고 증명하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고 살았습니다.

비난에 대한 침묵

칭찬에 대한 침묵

약자에 대한 침묵

십자가 앞에서 침묵

블로그 이미지

잉비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