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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0 복사https://blog.naver.com/revwhalkim/220991347019 장로교의 예정과 감리교의 자유의지중 어느 것이 옳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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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교인(개혁교인)과 감리교인(성결교, 일부 오순절 계통, 구세군 등도 포함)을 구분하는 매우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예정과 자유의지입니다. 장로교인은 존 칼빈의 예정을 강조하고, 요한 웨슬리의 감리교인은 자유의지를 강조합니다.
요한 웨슬리(1703 -1791)
어느 것이 옳을까요? 정답은 없습니다. 성경은 둘 다 지지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예정된 계획이 있다고 말씀합니다(엡1:4-5). 동시에 성경은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고 합니다(롬8:29).
하나님의 예정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파괴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자유의지 역시 하나님의 예정을 파괴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예정(또는 주권)과 자유의지에 대하여 혼란을 일으킵니다. 물론 장로교인은 하나님의 예정을 믿습니다. 더 나아가면 **이중예정(선택과 유기)**을 믿습니다. 하지만 감리교인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므로 결국 예정보다는 예지에 역점을 둡니다. 다만 자신이 속하여 있는 교파와 교단에 따라서 달리 평가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저도 예정론을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자유의지를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기독교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장로교목사이므로 예정론으로 설교하고 강의할 뿐입니다. 아니면 목사직을 강탈당할지 모르니까요(웃음)
우리는 이 예정과 자유의지가 어떻게 조화가 되는지 전부 다 설명하거나 이해할 수 없습니다. 특히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제3장 8항에서 “깊은 신비에 싸인 이 예정교리는 특별한 명철과 조심을 가지고 취급하여야 한다”**고 경고합니다.
존 칼빈 (1509-1564)
다만 우리는 성경이 이 두 가지 모두를 부정하지 않고 함께 말씀한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이것을 놓치면 감리교를 이단이라고 부르는 무식을 드러내게 됩니다. 이 블로그를 읽는 그리스도인 가운데 부디 이런 무지한 분들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일화를 소개합니다. 1618년부터 1619년까지 네덜란드 도르트 회의에서는 장로교의 교리라 부를 수 있는 5대강령인 튤립(Tulip)을 채택하였습니다. 동시에 감리교의 교리라 부를 수 있는 알미니안주의를 이단 취급하여 정죄하고 추방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회의는 회의라고 부르기에 거북한 종교재판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합니다. 그 이유는 칼빈주의자가 130명인이 참석한데 반하여, 알미니안주의자는 고작 13명이 회의대표가 아닌 국가 죄수로 참석한 겁니다.
알미니안주의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더 강조합니다. 네덜란드 국가 교회에 의하여 쫓겨났던 알미니안주의는 네덜란드 국가로부터 공식적으로 관용을 받아 1631년에는 약 40개의 교회와 50명의 설교자가 있게 됩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알미니안주의도 1795년 같은 나라인 네덜란드에서 정통교리로 인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예정과 자유의지는 부족한 인간의 머릿속에서만 모순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며 모순이 없다는 것이 우리들의 신앙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감리교는 알미니안주의를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감리교를 모르는 보수파 장로교 목사들이 감라교는 알미니즘이라고 비판을 합니다. 자신들이 얼마나 무지한지 낱낱이 드러내는 것이 됩니다.
참고)
예정(豫定) :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기로 결정하신 것을 말한다. 때문에 원인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다. 선택과 유기를 결정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악의 조성자라는 것은 아니다. 악의 책임자는 인간이다.
예지(豫知) : 인간이 자신의 자유의지를 가지고 무엇을 어떻게 행할 것인지를 하나님이 미리 아신다는 것이다. 예지에서 어떤 일의 그 원인이 인간 자신에게 있다. 다만 하나님은 전지하시기 때문에 인간이 할 일을 미리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보다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비중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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