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시편

시편 77 : 1~9

잉비니 2025. 6. 18.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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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부르짖어 간구함 77:1~3

77편은 절망으로 괴로운 중에 하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을 기억하며 지은 시입니다. 이 시의 배경은 이스라엘의 멸망으로 봅니다. 시편 기자는 깊은 고난 가운데 있었습니다. 상처가 너무 깊으면 어떤 위로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시편 기자는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는 밤새도록 손을 들고 하나님께 구원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기도하면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데도 응답이 없으니, 그는 불안해하며 근심합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면 서운한 마음에 한숨이 나오고, 자신의 문제를 생각하면 마음이 약해집니다. 위기 상황일수록 성도는 적극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진짜 위기는 기도를 멈추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환난 날에 무엇을 했나요?

기도한다.

내가 불안과 근심을 떨쳐 버리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할 일은 무엇인가요?

내가 하나님 없이 무엇을 해봤자 무얼하겠는가

불안과 근심은 내가 하나님보다 내 힘과 계산을 더 신뢰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 주님의 뜻을 제가 모르겠습니다. 내 판단보다 주님의 지혜를 구합니다.”라는 항복의 선언이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은 불안과 고통의 원인이된다.

그때 필요한 것은 침묵이다. 그 사람을 바꾸려는 시도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나아가 내 마음을 새롭게 하소서 라고 부르짖는 기도이다.

내 뜻과 내 의로움을 고집하고 있다면 근심과 불안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보다 내가 더 잘안다는 착각에서 나온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내 계획 내 꿈, 내 기대가 깨질떄 분노하거나 두려워진다면

바로그순간이 하나님께 부르짖어야하는 시간이다.

영적으로 무기력하고 말씀과 기도가 멀어졌을떄,

영적인 냉당함은 죄보다도 더 무서운 상태다.

양심의 소리가 무뎌지고, 회개가 희미해진다

하나님 제 안의 불을 다시 태워주소서 부르짖어야한다.

내가 사람의 평가 세상의 성공 기준에 마음을 빼앗기면 반드시 근심이 찾아온다.

이럴때 해야하는 기도는 하나님 저의 마음을 다시 주앞에 두게 하소서, 세상의 목소리보다 주의 음성에 민감하게 하소서. 라고 기도한다.

왜 불안한지, 그 불안 속에 어떤 신념과 죄가 있는지, 하나님은 나를 무엇으로 이끄시려는지 직면해야한다.

기도는 회피가 아니라 직면이고

도피가 아니라 항복이고

감정의 배출이 아니라 하나님 뜻 앞에 무릎 꿇는 것이다.

모든 확신이 흔들림 77:4~9

암담한 현실은 신앙의 확신마저 흔듭니다. 시편 기자는 괴로워서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지나간 세월을 생각하니 근심이 더 깊어집니다. 과거에는 저녁이 되면 하루를 신실하게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을 드렸는데, 이제는 기도해도 응답이 없으니 찬양도 멈춥니다. 과거에는 가까이 계시던 하나님이 이제는 멀리 계신 것 같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언약 백성을 영원히 버리시고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않으실까 염려합니다. 하나님이 더는 사랑하지 않으시며, 약속의 말씀도 잊으신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는 하나님이 은혜 베풀기를 잊으시고, 분노하심으로 심판을 하신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의 영웅도 믿음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믿음이 흔들릴수록 성도는 약속을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자, 시편 기자의 마음에는 어떤 생각이 들어왔나요?

믿음이 흔들렸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고 하나님이 멀게만 느껴질 때 나는 어떻게 하나요?

그래도 기도해야한다.

시편을 읽으면서 울부짖어야한다.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믿음은 진리 위에선 날선 결단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자신을 약속하셨다.

내 감정이나 내 기분으로 그 약속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그 느낌에 속으면 안된다.

그 침묵은 하나님이 멀어진 것이 아니라, 너의 믿음이 순수하게 정련되고 있는 과정이다.

하나님이 침묵하신다면,

나도 침묵해야한다.

침묵의 기도를 들어주신다.

내 믿음을 침묵의 믿음으로 인도하신다.

내 자아를 꺠뜨리신다.

정욕과 욕망에 빠지지 않도록 불순물을 제거해주신다.

나를 더 깊은 영적 친밀함으로 이끄신다.

거절감, 그것은 예수님이 당하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내 기도는 거절당할 것으며 내 믿음은 짖밟힐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들어주신다.

침묵하고 계시는 것 같지만 다 들어주신다.

죄인들은 하나님을 거절하고 멀리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를 더 욱더 찾아와주신다.

그러니 계속 기도를 해야한다.

기도하면 된다.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희미해진 가장 확실한 증상은 메마른 기도 생활이다. - 팀 켈러

은혜는 당연하지 않다

독일 작가 에드빈 드빙거의 소설 ‘그래도 신은 침묵한다’(Und Gott schweigt…?)는 소련에서 벌어진 잔혹한 사건인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배경으로 한다. 민간인 포함 수백만에 달하는 사상자를 낸 끔찍한 전쟁을 보며, 하나님은 왜 침묵하시는지 우리는 묻게 된다. 꼭 수류탄이 난무하고 요란한 대포 소리와 죽어 가는 이들의 울부짖음이 가득한 생지옥의 한복판이 아닐지라도, 하나님의 침묵은 신앙의 큰 시험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침묵 이면에는 그분의 더 깊은 뜻이 있다. 십자가야말로 가장 적막한 하나님의 침묵이다. 죽어 가는 아들이 그분의 침묵 앞에 애타게 부르짖었다.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 마태복음 15장에서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으로부터 침묵보다 더한, 거절과 같은 선언을 들었다. 그런데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진다. 그녀가 “주여 옳소이다”(마 15:27)라고 답한 것이다. “주님이 옳으시다고 인정합니다. 저를 도와주시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다. 저는 아무런 권리도 없습니다.”라는 뜻이 담긴 말이었다.

이 말에 함축된 엄청난 의미를 깨닫겠는가? 하나님 나라는 무조건 주어지는 게 아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을 권리가 전혀 없다. 그분의 은혜를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 이 심오한 이야기를 우리 삶에 적용해야 한다. 주님이 침묵하시는 것 같을 때 우리도 가나안 여인처럼 그분과 씨름해야 한다. 그분께 우리의 빈손, 간절한 마음을 기도로 보여 드려야 한다.

하나님의 침묵/ 헬무트 틸리케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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