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적 중생

Principle 2024. 6. 12. 18:11

취미 → 성령을 소멸, 근심→구원이 없는 것이 아닌가? → 기도 → 기도응답

 

어제 문득 취미 생활을 가지다가, 은혜 받기 이전, 성령 내주 이전의

악한 마음이 제 영을 더럽히더군요, 그에 대한 의문과 반박, 기도와 적용과 결단에 대해서 나누고자 합니다.

코인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노래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기혐오와 자기파괴적인 마음이 들었고 내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제 마음 속에서는, "아 왜 이것 밖에 못부르지, 옛날에는 더 쉽게 부른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못났지"라는 생각이 들고 노래를 다 부르고 나서는 공허한 허탈감과 성령님이 떠나신 것만 같은 허무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허탈한 생각이 계속되면서 성령님이 떠나신건가..? 제 기도를 응답하시던 성령님이 정말 없어지고 음성이 안 들리는 겁니다. 그러다가 드는 생각이,

정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 맞는가? 영생은 있는가? 구원은 있는가?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구원은 없고 이 진리들은 다 거짓이라고 가정해보면 지금까지 했던 일들이 모두 부정이 되버려서 참 이 무슨 뻘짓을 했는가? 완전 바보였네 라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원이 없다면 뭣하러 중생하여 담배끊고 술끊고 음란물/정욕 끊고 정념 끊고 영 자체가 없는데 무슨 영을 정결케해야하며 뭐하러 구원이 없다면 뭐하러 내가 묵상하고 찬양하고 기도 드리고 경배해야 합니까? 짜릿하게 인생 살다 한방에 죽고 말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하나님께 기도로 간구했습니다. 하나님! 왜 나에게 이런 의문을 주시나요, 무슨 메시지를 주시고 싶어서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그리고 그 기도에 대한 응답을 주셔서 나눠보고자 합니다.

 

의문

  1. 그리스도인이 구원을 잃을 수도 있는가?
  2. 구원 받은 것이 의심된다면, 진정으로 구원받지 못했다는 의미인가?
  3. 행함이 없는 믿음이 왜 죽은 것인가?
  4. 믿는 자에게서 성령님이 떠날 수도 있는가?
  5. 크리스천이 취미를 가져도 되는가?

의문에 대한 답

  1. 그리스도인이 구원을 잃을 수도 있는가
    1.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세주로 믿으며, 성령을 소유 하는 자.
    2. 그렇다면 구원의 시점은 언제인가?
      1.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17). 그리스도인은 그저 “개선된” 버전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완전하게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구원을 잃기 위해서는 그 새로운 피조물이 파괴되어야 할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인은 구속을 받았습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베드로전서 1:18-19). 구속이라는 말은 값을 치르고 샀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값으로 치르고 구입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구원을 잃어 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 자신이 그리스도의 귀한 핏값을 치르고 산 사람에 대한 구속을 다시 취소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3. 그리스도인은 의롭다 칭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로마서 5:1). 의롭다고 칭하는 것은 의롭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에 의해 “의롭다는 선언”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 구원을 잃어 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은 이전에 선언하셨던 것을 “취소”하고, 자신이 했던 말을 번복해야 합니다. 죄책을 사함 받은 자들이 다시 재판을 받고 유죄 판결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신성한 법정에서 내리셨던 판결을 다시 뒤집으셔야만 합니다.
      4. 그리스도인은 영생을 약속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6). 영생은 하나님과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 한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믿으라 그리하면 영생을 얻을 것이다” 라고 약속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이 구원을 잃어 버리려면, 영생이 다시 정의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원히 살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영원이라는 것이 ‘영원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까?
      5.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주목하시고, 성령에 의해 인치심을 받습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1:13-14). 믿는 순간에, 새로운 그리스도인은 하늘의 기업을 보증하는 담보 역할을 하시기로 약속된 성령에 의해 인쳐집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의 영광이 찬양받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이 구원을 잃어 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그 표를 지우셔야 하고, 성령을 거두셔야 하며, 담보를 철회하고, 그분의 약속을 깨고, 보증을 취소하고, 상속을 주지 않고, 찬양받기를 포기하시고, 그분의 영광을 깎아 내리셔야 합니다.
      6. 그리스도인에게는 영화롭게 되는 것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로마서 8:30). 로마서 5:1에 따르면, 믿는 순간에 우리는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로마서 8:30에 따르면, 영화롭게 되는 것은 의롭게 되는 것과 함께 옵니다. 하나님이 의롭다 칭한 모든 자들은 영화롭게 될 것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이 약속은 그리스도인들이 천국에서 완벽한 부활의 몸을 입을 때 성취될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구원을 잃을 수 있다면, 하나님은 택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칭하신 모든 자들의 영광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로마서 8:30은 오류가 됩니다.
      7. 그리스도인은 구원을 잃을 수 없습니다. 구원을 잃을 수 있다면,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일어나는 일에 대하여 성경이 언급하고 있는 내용들이,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 무효가 될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하나님의 은사는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로마서 11:29). 새롭게 지어진 그리스도인은 다시 옛 것으로 피조될 수 없습니다. 구속함을 받은 자는 되돌려질 수 없습니다. 영생은 임시적인 것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을 번복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다고 말합니다 (디도서 1:2).
    3. 즉 구원을 잃으려면 중생했던 내가 다시 파괴되어야 합니다.
    4. 즉 구원을 잃으려면 구속을 다시 취소해야 합니다.
    5. 그러므로 거듭남(중생)을 겪은 나의 구원은 절대 잃을 수 없는 것입니다.
    6. 그 중생의 증명은 구원의 증명은 행동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2. 구원 받은 것이 의심된다면, 진정으로 구원받지 못했다는 의미인가요?
    1. 바울은 고린도후서 13:5에서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라고 말합니다.
    2. 예수님이 진정으로 우리의 구원자이시고, 성령이 실제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를 시험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구원자로 받아들였다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을 결코 잃어버릴 수 없습니다 (로마서 8:38-39).
    3. 만약 그렇지 않다면, 성령이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달아 회개하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중보하실 것입니다.
    4. 구원에 대한 확신은 우리가 한 번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 그것이 영원한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데서 비롯됩니다. 하지만 진정한 믿음의 증거는 행동과 (야고보서 2:14-26),
    5.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갈라디아서 5:22). 이러한 증거가 부족해 우리는 때때로 의심을 하게 됩니다.
  3. 행함이 없는 믿음이 왜 죽은 것일까요?
    1. 야고보는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합니다(약 2:26)
    2. 구원받은 믿음은 선한 행위로 증명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행위는 구원의 증거입니다.
    3.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리스도께 고의적으로 불순종하는 사람은 거짓되고 죽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며 구원받지 못한 사람 고린도전서 6:9-10 KRV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4.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지만 그들의 삶과 우선 순위는 그렇지 않습니다. (마 7:16–23).
    5.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구원받은 믿음의 증거입니다. 야고보는 구원에 따른 순종을 설명하기 위해 아브라함과 라합의 예를 듭니다. 단순하게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과 종교적인 행위는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성령님으로 인해 우리 마음이 중생하는 것으로 그 중생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믿음의 삶으로 드러납니다.
    6. 믿음과 행위의 관계를 오해하는 것은 성경이 구원에 관해 가르치는 것을 오해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행함과 믿음에 관한 두 가지 오류가 있습니다. 첫 번째 오류는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내가 예수님을 믿습니다”라고 말하고 기도했다고 해서 무조건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려는 갈망도 없고 노골적인 죄 가운데 살아가면서도 어렸을 때 교회에서 믿는다고 손을 들었다는 이유로 자신이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때로 “결단적 중생”이라고 불리는 이 가르침은 기만적이며 위험한 것입니다. 악하게 살더라도 믿음을 고백한 사람은 구원을 받는다는 생각은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새로운 부류로 분류됩니다. 이를 통해 다양한 불경건한 생활 방식을 용납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회개하지 않은 간음자요, 거짓말쟁이, 은행 강도면서도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은 “육에 속한 사람”입니다. 야고보서 2장에서 볼 수 있듯이,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 공허한 믿음의 고백은 실제로 죽은 믿음이며 구원을 이룰 수 없습니다.
    7.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의롭게 하기 위해 의로운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8. 구원을 얻기 위해 믿음과 행위를 혼합하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것과 완전히 반대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4:5에서는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라고 말합니다. 야고보서 2:26에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두 구절이 서로 다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9.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의롭게 되고 믿음의 자연스러운 결과가 누구나 볼 수 있는 행위로 드러납니다.
    10. 구원에 따른 행위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의롭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11. 물이 샘에서 흘러 넘치는 것처럼 행위는 중생한 마음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흘러 넘칩니다.
    12. 구원은 거듭나지 않은 죄인이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딛3:5) 다시 태어나게 되는(요 3:3) 하나님의 주권적인 행위입니다.
    13. 이런 일이 일어날 때 하나님은 용서받은 죄인에게 새 마음을 주시고 새 영을 주십니다(겔 36:26).
    14. 하나님은 죄로 굳어진 마음을 제거하시고 성령님으로 채우십니다. 성령님은 구원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끄십니다(겔 36:26–27).
    15. 행함이 없는 믿음은 마음이 하나님에 의해 변화되지 않았다는 것을 드러내기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16.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면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의 행위는 하나님을 향한 순종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17. 보이지 않는 믿음은 우리 삶에서 성령님의 열매를 맺음으로 보여질 수 있습니다(갈 5:22).
    18. 그리스도인은 선한 목자이신 그리스도께 속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양으로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을 따릅니다(요 10:26–30).
    19.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자들은 똑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20. 고린도후서 5:17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21. 행함이 없는 믿음은 하나님으로 인해 거듭난 마음에서 오지 않았기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공허한 신앙 고백은 삶을 바꿀 능력이 없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성령님을 소유하지 못한 자들에게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 7:23).
  4. 믿는 자에게서 성령님이 떠날 수도 있는가?
    1. 간단히 말하면, 없습니다.
    2. 성령은 참된 신자를 결코 떠나지 않으십니다. 이 사실은 신약의 많은 다른 구절들에서도 드러납니다.
    3. 로마서 8:9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4. 이 구절은 누구든지 성령께서 내주하지 않는 사람은 구원 받은 사람이 아님을 분명하게 말한 것입니다.
    5. 그러므로, 만일 성령께서 어떤 신자를 떠난다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와의 구원 관계를 잃어버린 것이 됩니다.
    6. 하지만 이는 그리스도인의 영원한 보증을 가르치는 성경 말씀과 위배됩니다.
    7. 신자의 생명 안에 영구적으로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말하는 또 다른 구절은 요한복음 14:16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시면 그분은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8. 성령께서 결코 믿는 자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에베소서 1:13-14절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9. 그 구절에서 신자들은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그것은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10.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는다는 것은 소유권과 소유물을 나타내 주는 그림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으며, 그 약속을 지키실 것이라는 보장으로서 구속의 날까지 신자 안에 거하실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자동차나 집을 살 때 계약금을 지불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어 내주하게 하심으로써, 미래의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하여 계약금을 지불해 주셨습니다. 모든 믿는 자들이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는 사실은 고린도후서 1:22과 에베소서 4:30에도 나와 있습니다.
    11.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 이전에는 성령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오셨다가 떠나시는” 관계였습니다. 성령께서는 사울 왕과 함께 거하셨지만, 나중에 그에게서 떠나셨습니다 (사무엘상 16:14). 그 대신 성령은 다윗에게 임하셨습니다 (사무엘상 16:13). 다윗은 밧세바와의 간음 이후에 성령이 그에게서 떠나실까 두려워했습니다 (시편 51:11). 성령님은 브살렐에게 충만하게 임하셔서 그로 하여금 성막에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있게 하셨지만 (출애굽기 31:2-5), 그 관계가 영구적인 것으로 묘사되지는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이 예수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후에 바뀌었습니다. 오순절 날을 시작으로 하여, 성령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영구히 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성령의 영원한 내주는 항상 우리와 함께하고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 약속의 성취입니다.
    12. 성령님은 결코 믿는 자를 떠나지 않으시지만, 우리의 죄가 "성령을 소멸"(데살로니가전서 5:19)하거나 "성령을 근심하게" (에베소서 4:30) 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죄는 항상 하나님과의 관계에 영향을 끼칩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그리스도 안에서 안전하지만, 우리의 삶에서 자백되지 않은 죄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방해할 수 있으며, 우리 삶에서 성령의 역사를 실질적으로 소멸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죄를 자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 (요한일서 1:9)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지만, 그분의 임재로 인한 유익과 기쁨은 사실상 우리에게서 떠나갈 수 있습니다.
  5. 크리스천이 취미를 가져도 되는가?
    1. 우리는 세상적이고 죄된 즐거움이 아닌 정결하고 거룩한 즐거움을 찾아 합니다.
    2. 대부분의 취미는 옳지도 그르지도 않고 중립적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취미를 즐기는 사람의 태도입니다.
    3. 바울은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골로새서 3:17).
    4. 오락 자체를 찬양하고 육적인 욕망과 눈의 욕망을 체우는 오락들 말입니다. 우리가 즐기는 오락의 뿌리가 죄인지를 잘 살펴야 할 것입니다.
    5. 취미생활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거나 잘못된 태도로 임한다면 그 취미생활은 잘못된 것일 수 있습니다.
    6.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방해받지 않는 선에서 참여 한다면 스포츠나 취미생활은 우리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입니다.
    7.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갈라디아서 5:13).
    8. 요컨대, 취미를 갖는 것이 반드시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취미에 지나치게 빠져들게 되고 예수님으로 부터 눈을 돌리게 만든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제 아무리 순수해 보이는 취미생활이라도 우리가 지나치게 빠져들게 되면 그리스도인의 인생인 경주에 지장이 되는 것이므로 포기해야 합니다(히브리서 12:1).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9. 이 취미가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가?
    10. 나는 주님 한 분으로 족한가?
    11. 그 취미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만족할 수 있는가?
    12. 크리스천도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것이 그리스도를 대체하게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피해야 할 유혹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드리옵나이다.

어제 또한 제가 믿음과 구원 성령에 대한 정확한 기준을 알게 하시어 의문을 주심에 감사드리옵나이다.

한번 주께 받은 은혜, 믿음, 구원은 인치심으로, 핏값으로 절대로 물릴 수가 없사오니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지 않음에 대한 증거를 내가 보았사옵나이다.

내가 주를 믿사오니 악의 길에서 구해주시옵고 선의 길에서 행할 수 있도록 하시옵소서.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며 살도록 하겠사옵나이다.

내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범사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오직 예수님을 찬양하겠나이다.

또한 나의 모든 행동을 성령님께서 소멸하시거나 근심하셔서 죄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게 하소서, 성령님께서 소멸하거나 근심하지 않도록 항상 그분의 임재와 유익과 기쁨이 나에게서 떠나가지 않게 하소서.

이 모든 불을 밝히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옵나이다.

아멘.

적용과 결단

즉, 구원을 잃으려면 중생되었던 내가 다시 파괴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자괴감과 믿기 이전의 과거를 동경은 했으나, 다시 술먹거나, 담배를 피운다는 행위를 하지 않았습니다. 즉, 구원을 잃으려면 구속을 다시 취소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즉 한 번 받은 은혜와 믿음 또한 그로 인한 중생과 구원은 절대로 잃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본인이 중생했다 생각하면서도 악의 길로 행했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중생을 받은 것이 아니라, "결단적 중생"이라고 합니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내가 예수님을 믿습니다"라고 말하고 기도했다고 해서 무조건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려는 갈망도 없고 노골적인 죄 가운데 살아가면서도 어렸을 때 교회에서 믿는다고 손을 들었다는 이유로 자신이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때로 "결단적 중생"이라고 불리는 이 가르침은 기만적이며 위험한 것입니다. 악하게 살더라도 믿음을 고백한 사람은 구원을 받는다는 생각은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 이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믿는 자에게서 성령님이 떠날 수 있는 가능성은 없습니다. 또한 현재 저는 매분매시매초 그리스도를 그리워 하며 성령 충만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보니, 잠깐 취미를 즐긴 것만으로 성령 충만의 상태가 깨지고 그 성령 충만이 없는 성령 내주의 상태 마저도 외로움에 사무치게 된 것입니다. 이전에는 성령 내주 상태만으로도 충분한 영적 만족감을 느꼈다면, 지금은 항상 성령 충만해야 기쁜 상태였다고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지금은 성령 내주와 성령 충만의 기준이 확실하게 섰으며,항상 성령이 충만하지 않더라도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나를 구원하여 영생을 주신 것을 굳게 믿습니다.

성령 내주하심 마저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 그 고요한 영적인 상태, 정신 상태 만으로도 저는 하나님께 감사로 나아가겠습니다. 나아가서, 취미를 가지는 것은 반드시 잘못은 아니지만, 항상 말씀을 붙들고 경쟁적이고 자기파괴적인 취미의 태도를 버리고, 항상 무엇이든 선의 길이 아니라면, 중립적인 일이라면 아래의 말씀을 되새기고 항상 기도하겠습니다. (골로새서 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하나님 아버지, 제가 노래 부를 수 있도록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제가 노래 부르면서 자괴감이나 포기감, 더 잘부르고 싶은 욕망, 자기 파괴적인 우월감을 느끼지 않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하겠습니다. 는 태도로 임하겠습니다. 또한 제 아무리 순수해 보이는 취미생활이라도 우리가 지나치게 빠져들게 되면 그리스도인의 인생인 경주에 지장이 되는 것이므로 포기해야 하도록 하겠습니다.

히브리서 12:1-2 KRV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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