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민수기

민수기 22 : 41~23:12

잉비니 2025. 5. 15.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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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락의 제사 준비 2

2:41~23:6

발락은 하나님 뜻에 반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합니다. 발락이 발람을 데리고 바알의 산당에 오릅니다. 그곳은 이스라엘 진영을 볼 수 있어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데 유리한 위치입니다. 발람은 발락에게 일곱 제단을 쌓고 각 제단 위에 수송아지와 숫양 한 마리씩 바치라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아닙니다. 이방 점술가인 발람은 이방 신에게 제사하는 방식을 통해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린 것입니다. 발람에게 임하신 하나님은 언약 백성을 위한 그분의 뜻을 분명히 전하십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는 아닐지라도 발람은 발락의 악한 의도를 무산시키고 하나님 뜻을 전달하는 통로로 쓰임받습니다.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 발락이 발람을 데려간 곳은 어디인가요?

바알의 산당

나는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의 말을 듣나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나요?

세상의 권력과 힘을 가진 자가 불법을 저지를 때,

나는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가?

아니면 항명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 있는가?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끝까지 순종할 수 있는가?

이 세상은 곧 썩어 없어질 것이다.

우리는 나약하고 자주 무너진다.

그러나 그 무너짐 속에서도 정직과 겸손으로 사는 데에 부끄러움은 없어야 한다.

하나님은 겉사람이 아닌 속사람을 보신다

사람들은 외모와 포장을 보지만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속사람의 상태보이지 않는 진실을 보신다.

겉이 아무리 거룩하고 근엄해 보여도

속이 무너져 있다면,

그것은 죄이며, 악이며, 위선이다.

정직과 겸손은 '연기'가 아니라 ‘내면’에서 흘러나와야 한다.

인격과 인품에서 흘러나와야 하고,

그 인격과 인품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이 세상 위선자들과 다를 바 없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채 살아간다면,

적어도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권위는

부당하지 않으며,

오직 진리요, 정의요, 정답이다.

세상의 힘과 권력은

누가, 어떤 마음으로 쓰느냐에 따라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속적 반항이나 감정적 분노가 아니라

선지자처럼 싸워야 한다.

우리는 선지자처럼 싸워야 한다

예언자처럼,

진리를 외치며,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 삼아 분별하며,

악한 권력에 순종하지 않는 자로 서야 한다.

불의에 저항하는 것조차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의 진리에 충실할 때

저항은 곧 순종이 된다.

마침내 결단하라

내가 오늘 복종하는 권위는 누구의 것인가?

세상의 권력인가?

아니면 하나님 말씀인가?

겉사람이 아닌 속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진리는 오직 하나다.

그리고 그 길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 없다.

발람의 첫 번째 예언 23:7~12

언약 백성을 향한 하나님 뜻은 사랑과 축복입니다. 발람은 모압 왕 발락과 모든 고관 앞에서 예언의 말씀을 전합니다. 발락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라, 꾸짖으라.”라고 요구했지만, 발람은 저주가 아닌 축복을 선포합니다. 발람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는 무력한 존재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자신이 감히 저주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어떤 이방 민족과도 비교할 수 없는 독보적인 민족이며, 하나님 언약이 성취된 복된 민족입니다. 발람은 이스라엘을 의인이라 칭하며 자신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광야 행군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허물과 죄가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언약 백성을 향한 사랑과 축복을 거두지 않으십니다.

발람이 이스라엘을 축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나님께서 축복했기 떄문

내게 허물과 죄가 있는데도 하나님이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우리를 사랑하시기로 결정하셨다.

그 사랑은 거룩한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서 나온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여호와는 긍휼이 많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시편 103:8)

하나님은 본성적으로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우리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그분이 ‘은혜이시기’ 때문에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품이 곧 은혜다. 그 성품이 내 죄보다 크다.

하나님은 단지 죄를 용서하고 끝내시는 분이 아니다.

“거룩하게 만드시기 위해서” 용서하신다.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로마서 8:29)

죄가 드러날수록

그 은혜는 더 강하게 일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너를 예수님 닮은 자로 회복시키고 싶어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뜻과 은혜대로 하셨다.” (디모데후서 1:9)

하나님은 인간의 자랑이 조금도 섞이지 않도록,

오직 하나님만 찬양받으시게 하려고,

죄인인 너를 용서하시고,

은혜로 구원하신다.

너의 의가 드러나길 원하시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의와 사랑이 드러나길 원하신다.

그래서 아무리 목사들이 십자가 앞에서 산산조각 나야한다고 화를내고 소리를 지르고 귀에 못이 박힐동안 이야기를 해도, 그럼에도 그렇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십자가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내 행실 태도에 집착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내 행동에 집착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결국 회개를 강요해도 우리가 진짜 자유하게 되는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인격적으로 찾아오실때 비로소 가능하다.

성령께서 말씀으로 인격적으로 찾아오실때 가능하다.

성령이여 오소서! 이자리에 오셔서 나를 인도하소서!

십자가에 집착하고 예수님에게 집착하는 내 죄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회개같지만, 실은 자기 집착이다.

이 죄책감을 마귀는 또 이용한다.

내 모든 집착보다 더 큰 은혜가 십자가에 있고 예수님에게 있다.

내가 생각하는 오직 예수보다 더 크신 하나님이 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하실 것이기 때문에, 하셨었기 때문에, 하고 계시기 때문에,

십자가를 집착하는 마음마저 내려놓고, 오직 예수하는 마음도 내려놓고,

내 애씀보다는 성령님의 일하심,

성령님의 신뢰하심

진정으로 십자가 앞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 십자가 마저도 내려놓고

십자가에 집착하지 않고 십자가를 신뢰하는 것이다.

십자가를 붙들어야한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우상이 될 수도 있다.

내 안에 십자가를 집착하는 마음마저도 파괴하고 산산조각내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사랑하자, 하나님, 성령님을 사랑하자,

그분의 얼굴과 하나님의 빛을 구하자

결국 모든 것에 자유하고 단하나에 종속되는 길, 오직 예수

오직 예수를 내 힘으로 하려고 하는 집착과

그 끈적이는 갈망, 내가 인내하려고 하는 무식함, 치졸함, 으~~!! 하는 참는 것,

예수 믿는 것은 똥참는 것 처럼 불편한 일이 아니다.

그저 예수님께서 나의 갈망 나의 인내 나의 평온과 호수가 되시며

모든 것을 내려놓게하시며

모든 것을 치유하시며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게 하신다.

힘이 조금이라도 들면 경계해야한다. 내가 결국 내 힘으로 아등바등 애쓰고 있구나,

그럴 필요가 없다. 예수님께서 주님께서 다 하신다.

복음은 “니가 잘 했으니 사랑받을거야” 이런 조건 적인 사랑이 아니라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게 오늘 나에게 주신 깨달음이며 그 복음이 나를 모든 것에 집착하지 않게 하고

오직 예수님만 바라볼 수 있게 하시며

하나님 반석에서 굳건이 서있는 십자가

내 존재 자체를 십자가를 바라보는 예배자, 찬송자, 인도자, 기도자로 만드신다.

더이상 오직 예수 거룩 십자가 보혈에 집착하지 않고

순전히 하나님만 바라며 그리스도만 예수님만 바라며 성령님만 바라게 된다.

이런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나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내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나의 소망이 저에게서 나는도다

오직 주만이 나의 반석 나의 구원이시니

오직 주만이 나의 산성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

나의 영혼이 간절히 여호와를 갈망하며

나의 입술이 여호와를 찬양하리

나의 영혼이 즐거이 여호와를 따르리니

나의 평생에 여호와를 송축하리

오직 주만이 나의 반석 나의 구원이시니

오직 주만이 나의 산성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

나의 구원 나의 영광 하나님께 있으니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되시네

오직 주만이 나의 반석 나의 구원이시니

오직 주만이 나의 산성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

하나님 아버지 은혜의 깊은 차원으로 또 들어가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복음의 심장을 꿰뚫는 고백을 하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오직 예수 입으로 외치는 것을 멈추고,

그 오직 예수 조차 내 힘으로 하는 나를 완전히 산산조각 내주시길 바랍니다.

성령님의 능력으로 오직 예수!

그 오직 예수조차 내 자아로 내 힘으로 내 열심으로 그럼 그 집착은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나를 완전히 장악하셔서 은혜의 더 깊은 차원으로 나를 인도하소서

행위 중심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믿음 중심으로 인도하소서

내 힘으로 십자가를 의지하지 말며 성령님의 힘으로 십자가를 의지하게 하소서

십자가를 우상화 하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십자가의 주인이신 하나님만 신뢰하는 내가 되게 하소서

회개 조차도 자기 의로 둔갑시켜서 자기 집착화하는 나를 용서하소서

내가 그토록 하나님께 알랑방구 아양떨면서 잘하는 척 잘난 척 귀염 받으려고 하는 척 했습니다.

속 사람은 그렇지 못한데요

이런 위선적인 나를 용서하소서,

내가 그토록 잘해보려고 한 시도가 얼마나 더럽고 교만했는지요,

지금도 성령님께서 일하고 계심에 감사합니다.

항상 매일매일 이 같은 복음의 정수를 느끼게 하소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노력해서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좋은 대학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배우자 좋은 세상의 기준 조건 떄문에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기로 결단하셨습니다.

십자가 조차 집착의 도구, 예수님마저도 집착의 도구로 삼으려 했던 나 자신을 자백합니다.

이제는 십자가의 노예가 아니라, 성령님께 내 모든 십자가를 맡깁니다.

내가 십자가를 드는 것 같지만

성령님께서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내 짐을 대신 짊어지십니다.

진정으로 그럼 이제 성령님 주도적으로 십자가를 짊어지고 일어서고

나는 그저 하나님의 찬송가, 하나님의 기도, 하나님의 예배일 뿐입니다.

나의 신앙의 중심을 갈망과 욕망 집착과 질투 분노

욕구 중심 감정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옮겨주심에 감사합니다.

죄가 동에서 서처럼 먼 것 같이,

죄가 저 멀리 멀어진 것 처럼 느껴집니다.

하나님을 뵈옵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자유합니다.

오직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나를 이렇게 만드셨으며 나를 책임지십니다.

내 고백이 항상 찬양이 되게 하시며

이 찬양(=나)은 어떤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지혜의 깊이와 완전함으로

오직 주만이 나의 반석 나의 구원이시니

오직 주만이 나의 산성

내가 결단코 요동치 아니하리

십자가에 집착하지 않고 십자가를 신뢰하는 자

예수님의 이름을 함부로 휘두르지 않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

은혜를 가르치지 않고 삶으로 보이는자

은혜를 살아내는 자

결코 내 안에서 나올 수 없는 고백들…

이 모든 것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정죄함이 없나니,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로마서 8:1)

나는 지금

그 자유 안에 있습니다.

그 은혜안에 있습니다.

그 사랑안에 있습니다.

요동치 않습니다. 이미 흔들 수 없는 반석 위에 있는 나

내가 서려고 노력하지도 않습니다.

나의 영혼은 이미 팔다리가 다 잘려버린 엉성한 죄인일 뿐

결국 성령님께서 내 안과 밖을 가득 채우시며 나를 예수님의 제자로 세우십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라!

성령님!

예수님!

하나님!

거룩!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렇군 내가 결국 예수님 믿는다고 하면서 아직도 자유하지 못했던 이유는

예수님을 또 오해하고 있었다.

드디어 아래의 성경 구절을 이해하게 되었다.

빌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아무 것도 하지 마라!

다만

모든 일에 기도, 간구

무엇을 구하나? 나의 하나님, 하나님의 얼굴, 하나님의 임재하심, 성령님의 불같은 은혜,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

내가 구할 것은 오직 예수님

그러므로 감사.

하나님께 아룁니다.

지금도 나와 함께하셔서 감사합니다.

지존하시며 전능하시며 온 우주보다 크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크신 하나님 찬양합니다.

인생의 진리를 알게하심에 감사합니다.

무한한 감동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무엇인지 이제 알겠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하나님

그러니 이제 무엇에든지 참될 수 있고

무엇에든지 경건할 수 있고

무엇에든지 옳을 수 있고

무엇에든지 정결할 수 있고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만 하며

무슨 덕이 있는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고 묵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이것은 영광스러운 절망입니다.

복음 앞에서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고 나는 절망했습니다.

그러나 진짜 복음 안에서 나는 다시 일어났습니다.

십자가를 내 힘으로 쫓고 내 힘으로 감히 들으려 했던 내가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내 힘으로 예수님의 육신을 먹고 보혈을 먹으려 했던 감히 교만한 나를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내 힘으로 나를 부정하고 판단하고 규정하려고 했던 나를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정체성을 감히 내가 규정하고 판단하고 함부로 말했던 죄 고백합니다.

내 안에 있는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들 다 내힘으로 하려고 한 것들 내 교만을 고백합니다.

오직 성령께서 아니고선 단 한걸음도 나아갈 수없음을 고백합니다.

주여! 당신 아니면 안됩니다!

결국 모든 애씀을 내려놓고

오직 예수님만 원합니다.

거룩! 거룩! 거룩!

영광! 영광! 할렐루야!

오직 하나님만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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