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하나를 찾고 있었다. 제목은 ‘기도하지 않아서’일 줄 알았다. 그런데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기도할 수 있는데”
그 찬양이 오래도록 내 마음에 머물러 있던 문장이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기도하면서 왜 염려하십니까기도할 수 있는데 왜 실망하십니까기도하면서 왜 방황하십니까주님 앞에 무릎 꿇고 간구해보세요마음을 청결하게 뜻을 다하여
이 찬양을 다시 떠올리는 순간, 내 마음이 멎는 줄 알았다. 그렇다. 나는 기도하지 않아서 걱정했고, 기도하지 않아서 흔들렸고, 기도하지 않아서 사람을 판단했고 상처를 주었다. 기도하지 않아서 말이 망가졌고, 사랑이 식었으며, 예배가 메말랐다.
기도하지 않으면 찬송은 감정이 되고, 찬송 없이 드리는 예배는 결국 형식만 남는다. 하나님은 그런 걸 원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쌓고 있었던 걸까.
기도 → 찬송 → 예배
하나님은 이 순서를 다시 알려주셨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다. 그분 앞에서 나를 여는 자리이고, 고백하고, 애통하고, 회개하고, 구하는 자리다.
찬송은 그 기도가 열매 맺는 자리다. 내 마음이 하나님의 임재에 반응할 때, 입술이 저절로 터지는 고백이 바로 찬송이다.
예배는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기도로 열고, 찬송으로 터뜨리고, 내 삶 전체로 화답하는 것, 그게 예배다.
기도 없이 말하지 말았어야 했다. 기도 없이 판단하지 말았어야 했다. 기도 없이 살아가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이제야 무너졌다.
오늘 나에게 주신 말씀은 하나였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느냐”
하나님은 이 말씀을 한 번도 외치시지 않으셨다. 그저 조용히, 부드럽게, 묻고 계셨던 것 같다.
“너, 기도했니?”“그 말 하기 전에 내게 물어봤니?”“그 판단을 내리기 전에, 무릎 꿇고 애통했니?”
나는 이제야 그 질문 앞에 무너진다. 기도할 수 있었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왜 그렇게 내 힘으로 살아내려 했을까.
오늘의 고백
하루만, 오늘만, 단 하루만이라도
주님 없이 살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내 알량한 믿음을 내려놓는다.
기도하지 않은 죄,
기도 없이 말한 죄,
기도 없이 판단한 죄,
기도 없이 버틴 죄를 회개한다.
오늘의 결단
기도할 수 있는데, 나는 이제 기도하겠다.
입술만이 아니라, 뜻과 태도를 꿇겠다.
기도로 다시 시작하겠다.
기도는 나의 생존이다.
기도는 선택이 아니라 생명이다.
기도는 예배의 입구이고, 찬송의 샘이다.
나는 오늘 다시 그 문턱에 선다.
그리고 주님께 나아간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며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침묵하며 스스로 버티려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얼마나 어리석고 교만했는지 오늘 알겠습니다.
하루만이라도 주님 없이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교만을 내려놓습니다.
주님, 이제는 도망가지 않겠습니다. 숨지 않게 하소서.
기도하게 하소서. 무릎 꿇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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