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브핫 딸들의 기업 문제 36:1~4
기업은 삶의 중요한 터전이자 언약 성취의 증거입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가볍게 여기면 안 됩니다(신 27:17). 슬로브핫의 딸들은 아들 없이 죽은 아버지의 유산을 용기 있게 지켜 냈습니다(27장). 그런데 그들이 다른 지파 남자와 결혼하면, 그들이 상속받은 유산은 남편이 속한 지파에 귀속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희년이 되면 슬로브핫 딸들의 기업이 다른 지파 기업으로 확정될 것이기에, 므낫세 지파 기업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므낫세 지파 사람들은 이 문제를 모세에게 가져갑니다. 기업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믿음의 기업을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므낫세 지파 사람들은 슬로브핫 딸들의 기업에 관해 무슨 문제를 제기했나요?
그런데 그들이 다른 지파 남자와 결혼하면, 그들이 상속받은 유산은 남편이 속한 지파에 귀속됩니다.
나와 우리 가족이 지킬 믿음의 유산은 무엇인가요?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에베소서 1:12)
남들과는 다른, 특별히 내게 주신 믿음의 유산은 무엇인가?
나는 분명히 믿는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유산은 ‘하나님의 찬송’ 그 자체라는 것을.
나는 찬송으로 지음받았다.
내 존재 자체가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설계된 작품이다.
찬양은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존재하는 방식이다.
그러니 억지로 지키려 발버둥칠 이유는 없다.
본성 자체가 찬송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 찬송을 빼앗으려 한다.
사단은 내가 찬송 그 자체로 살아가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찬양의 자리를 흔든다.
내가 찬양할 때 사단은 침묵하고,
내가 침묵할 때 사단은 환호한다.
찬양의 자리는 곧 임재의 자리다.
그러니 나는 그 자리를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누구보다 진실하게,
누구보다 깊이 있게,
가장 아름답고 거룩하게 주님을 찬양할 것이다.
하나님이 지어주신 내 이름처럼
나는 바르고 빛나는 삶으로,
하나님의 찬송임을 증명하며 살아갈 것이다.
내 이름은 ‘바를 정, 빛날 빈’.
이름은 단순한 표시가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주신 정체성과 방향이다.
나는 찬송으로 태어났고,
찬송으로 살다,
찬송으로 죽을 것이다.
내 침묵은 예배의 유산을 무너뜨리는 일이 되고,
내 찬양은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거룩한 유산이 될 것이다.
나는 나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선포할 것이다.
내가 떠난 자리에 남겨질 이름은 ‘하나님의 찬양’이다.
이것이 나만이 지킬 수 있는 믿음의 유산이다.
세상이 빼앗을 수 없고, 사단이 조작할 수 없는 것.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기타를 든다.
하루에도 골이 깨질 듯한 연습을 하고,
머리가 빠질 듯한 암기를 하고,
지겨운 화성 이론도 다시 붙든다.
하나님이 주신 음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며 내 마음에 새긴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어렵게 음악을 배우게 하시는가?
그것은 나로 하여금 ‘귀한 줄 알게 하시기 위함’이다.
만약 내가 음악의 천재로, 한 번 보고도 다 해낼 수 있었다면
지금처럼 절절하게, 땀과 눈물로 치열하게 훈련하지 않았을 것이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사라지지만,연단으로 얻은 것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나는 단순히 도를 누르고 치는 것이 아니라,
머리와 손과 귀와 영혼이 동시에 은혜를 받는 훈련을 한다.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 질서 안에서
손끝 하나, 음 하나에 담긴 그분의 질서와 아름다움을 배운다.
아름다운 찬송보다 더 깊은 복음의 전파는 없다.
내가 음악을 잘하게 되길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음 하나하나를 귀히 여기며,
겸손하고 정직하게 하나님을 찬양하길 원하시는 것이다.
쉽게 얻은 실력은 자기 과시의 무기가 되지만,
연단과 고통 속에서 얻은 실력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 된다.
이 고통은 은혜다.
이 좌절은 겸손의 문이다.
이 반복은 순종의 훈련이다.
하나님은 감정에 휘둘리는 찬양자가 아니라,
진리 위에 서는 예배자를 세우신다.
도수 하나, 음정 하나, 코드 하나, 스케일 하나마다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새겨져 있다.
나는 지금 악보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심장에 새기고 있는 중이다.
나는 천재가 아니다.
하나님은 나를 바보로 부르셨다.
무식하고 느리지만, 겸손하고 정직한 예배자로 부르셨다.
천재는 세상의 박수를 받는다.
바보는 하나님의 얼굴만 구한다.
천재는 실력으로 경외받고 추앙받지만,
예배자는 하나님만 높인다.
내 땀, 내 눈물,
내가 싫어하는 걸 참고 견디는 이 끈기와 고통은
하나님께 드릴 찬양의 깊이로 전환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내 기타 한 소리에 심령이 무너지고,내 찬양 한 마디에 눈물이 흐르고,내 순종의 흔적들이 예배의 울림으로 터져나올 것이다.
하나님의 해결 방안 36:5~13
문제 해결 방안은 하나님 말씀에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주신 해결책을 전합니다. 보통은 다른 지파 남자에게 시집갈 수 있지만, 슬로브핫 딸들처럼 기업을 물려받은 경우에는 같은 지파 남자에게만 시집을 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들이 없는 경우에 딸이 기업을 상속받을 수 있게 하셨고, 또 각 지파의 기업이 보존될 수 있도록 상속받은 딸들의 결혼에 대해서도 명확히 규정해 주십니다. 슬로브핫 딸들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 숙부의 아들들의 아내가 되어 그들이 속한 지파의 기업을 지킵니다. 민수기 마지막 장에서 자기 욕심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 슬로브핫 딸들의 행동은, 광야에서 불순종을 일삼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귀감이 됩니다.
슬로브핫 딸들은 하나님의 해결 방안을 듣고 어떻게 반응했나요?
문제 해결 방안은 하나님 말씀에 있습니다.
슬로브핫 딸들처럼 기업을 물려받은 경우에는 같은 지파 남자에게만 시집을 가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내가 포기할 것은 무엇인가요?
“주님, 제가 이것을 하겠습니다.”
그게 아니다.
진짜 순종은 이렇게 시작한다:
“주님,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기 위해
나는 내 마음속에 있는 수많은 생각들과
의지조차 내려놓아야 한다.
내가 스스로 포기하겠다고 결심한 그것조차
내 뜻으로 결정했다는 것 자체가 여전히 내가 주인이라는 증거다.
진짜 순종은 ‘포기의 주도권’마저 주님께 드리는 것이다.
- 내 자아, 곧 내 자신이 주인이 되고자 하는 태도
- 내 짐, 내가 감당하려고 쥐고 있는 무거운 삶의 무게
- 내 계획, 내가 뭘 하려고 하는 모든 의지와 결심
- 내 열심, 내가 정한 시간표와 방법
포기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십자가를 지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겠다.”
이 고백이 진짜 순종의 시작이다.
그 후에야 비로소
가벼운 마음으로 십자가를 들 수 있게 된다.
세상은 말한다:
“십자가는 무겁다.”
하지만 주님은 말씀하셨다: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태복음 11:30)
왜냐하면 그 십자가는
내 죄를 위한 형벌이 아니라,주님이 이미 대속하신 은혜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그 십자가를
죄의 무게가 아니라
사랑의 증표로 들 수 있는 것이다.
- 하기 전에 멈춰라 – 하나님의 뜻 없이 먼저 나서지 마라.
- 기도로 아뢰라 – 여쭙고 들으며 기다리는 훈련을 하라.
- 말씀을 통해 확인하라 – 감정이나 분위기가 아닌, 기록된 말씀으로 분별하라.
- 즉시 순종하라 – 계산하거나 미루지 마라. 명령이면 행하라.
- 영광을 주께 돌려라 –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결과는 하나님께 올려드려라.
내가 지혜롭다고 판단하기 전에,
내가 무언가 해보겠다고 나서기 전에,
항상 주님께 여쭙는 삶.
그게 바로 참된 순종의 출발점이다.
“내려놓는 것조차 주께서 시키시는 대로.”
이 고백이 매일의 삶에 새겨질 때
무한하신 하나님의 선하심은
내 발걸음을 정확히 인도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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